7월 30일 새벽예배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상관 없이 자기 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 9:28)
녹취자: 안두현
이와 같이라고 하는 그것은 그 앞에 이야기를 받는 것입니다. 앞에서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그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이와 같이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사실 죽으실 수 없는 분이셨고, 그리고 죽을 필요도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하필이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은 아주 중요한 목적이 있었는데 죽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지 않고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죽으실 수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셨는데 말도 안되는 것이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것은 모두다 죄인에게 해당되는 말이고 죄인이기 때문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그 죄인들이 당하게 되는 그 죄 때문에 당하게 되는 한번 죽는 것, 그리고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는 것,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이 당하게 되신 것입니다. 다만 인간은 믿지 않고 죽는 인간의 경우 죽게 되면 첫 번째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요 두 번째 죽음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서 영원히 그 영혼이 심판을 받아서 지옥에 던져지기 때문에 두 번째 사망인 것인데 예수님의 경우에는 인간들에게 첫째 사망은 어쩔수 없더라도 그 둘째 사망을 제거하시고 또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지고 고난을 받고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해내셔서 죽음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두 번째 사망을 맛보지 않을 뿐 아니라 또한 두 번째 사망 대신에 맛보게 될 하늘나라의 영생의 신비를 이 세상에서 맛보면서 살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그 죄인들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이와같이 라고 하는 말은 죄인들에게는 반드시 죽음이 있고 그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이 그런 죽음과 심판을 당하셨다라는 그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신 것입니다.
지금 히브리서 전체에서 지루할 정도로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왜 죽으셔야 했고 그 죽으심의 효과가 어떤 것이었을까? 그래서 우리는 그 죽으심의 공로를 인해서 구원을 얻은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것을 죽으심의 공로를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지난주에 제가 설교한 것 처럼 그리스도인의 모든 거룩한 삶에 기초가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이 나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나는 그 피로 사신 정말 그 사랑의 빚을 진, 존재 가치가 그 사랑의 빚을 진 부채 덩어리다 - 그것을 아는 것 그것이 모든 성화의 삶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빛으로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빛같이 살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고 누구도 그 심판을 피할 수 없는데 그렇게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죽음과 그 심판을 예수님이 동시에 맛보신 것입니다. 어디에서? 십자가에서 맞보시고 당하시고 고난을 모두 당하시고 그래서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일 마지막으로 성경이 말하기를 ‘단번에 자신을 드리셨고’ - 이것은 이미 과거에 이루신 것이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 이것은 그 마치 예수님이 자기 몸을 드리신 것이 틀리고 구원이 틀린 것 처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이야기 하는 구원은 구원이 최종적으로 완성된 상태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그러나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정죄함은 없지만 여전히 죄가 우리 안에 남아서 그래서 말할 수 없는 신비한 방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 죄 때문에 우리의 순종을 빛나게 하고 은혜를 구하게 하고 그리고 겸손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깨어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죽으면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진 못합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 때문에 죽음이 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과 육체가 갈라져 있습니다. 영혼과 육체가 왜 갈라져 있어야 합니까? 결국은 죄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어서 죽는 순간에 우리를 완전히 성화시켜서 그래서 당신 품에 들어가게 하셔도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죄로부터 우리가 궁극적으로 완전히 구원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무엇을 기다리냐 하면 영화의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부활의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때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악인들이 그리고 주님을 믿지 않고 죽은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게 되고 그리고 죄와 악이 최종적으로 완전히 제거되고 그리고 우리는 섞지 않을 몸으로 다시 영혼과 육체가 만나서 결합을 하게 되고 찬란한 빛을 지닌 사람이 되어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그렇게 성화되기를 힘쓰고 몸부림 치고 애쓰는 동안에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갈망하고 사모하고 몸부림치던 그 이유들이 바로 그렇게 죄와 상관이 없는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 몸부림치고 애썼었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되게끔 하나님이 그렇게 되게끔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때 그 심판하시는 분으로 오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래서 첫 번째 나타나실 때에는 죄와 상관 있게끔 나타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 지고 죽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두 번째 오실 때는 그 죄를 이 세상에 가져왔던 악한 마귀 그리고 그 죄 속에서 살던 수많은 사람들 하나님의 구원의 기회를 거절했던 그 무수한 인간들을 죄와 함께 완전히 심판하고 그래서 온 창조세계가 모두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 하나님이 자기들을 지으신 창조의 본래의 목적대로 기여하고 영광 돌리는 그 날을 위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십니다. 그것이 바로 두 번째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다.
성도는 바로 고린도 후서 5장에 표현된 바와 같이 신음하고 탄식하며 그 날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새벽 2시 5분에 깨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희망이 없는 곳인가 얼마나 철저하게 소망이 없는 것인가. 그리고 정말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것인가. 그렇게 허무한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래서 경건한 시인이 시편에서 노래하기를 주께서 인간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그래서 이 세상의 그 인간의 존재라고 하는 것이, 이 세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고 얼마나 철저하게 이 세상 삶 안에 소망이 있다고 믿고 살아 가는 삶이 얼마나 비참한가. 그것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깊이 그것을 깨닫고 두려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밖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삶을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 진정한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나라를 바라보면서 매일 매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음하듯이 그 날을 사모하고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들이 이 세상에 있는 많은 탐욕들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심이 적으면 죄를 적게 지게 되고 그래서 그것들을 끊임없이 죽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게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그러한 소망에 정말 불 붓는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고 우리들이 간절히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기도하고 간구한다면 정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신자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모두 꽉 쥐어서 짜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뭐냐하면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쓸모없는 죄인을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과 우리가 잠시 머물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 그 나라가 그렇게 요약이 되는 삶을 살야아 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잠시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서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인생동안 참된 신자가 되는 비결이 무엇인가. 영원히 멸망에 처할 수 밖에 없는 나같은 인간을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고 그 피로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을 어떻게 내 생애 사는 동안에 정말 온전히 사랑하며 그렇게 하나님 앞에 살 수 있을까 그것을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