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략과 경영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잠 15:22)
녹취자: 백지영
오늘 지혜자의 말씀에 보면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의논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으니까, 서로 교통함으로써 나의 지혜를 저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서 좀 더 나은 판단을 갖게 하고 또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지식을 이해해서 나의 판단을 더하는 것, 이것이 의논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의논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항상 자신이 최고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나은 판단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은 의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의논합니다. 그리고 저는 누군가에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설득이 될 때 그때 나 자신이 업그레이드되는 것을 느낍니다. 일생 살면서 우리는 그렇게 배우고 배우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혼자 정말 잘 한다고 할지라도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다른 교파의 목사가 아니라 장로교의 목사가 되어서 이제껏 살아오면서 내 마음에 꿈꾸고 그리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지금 교회가 내가 꿈꾸고 그리던 그 모습하고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꿈꾸고 그리던 교회는 확실히 오늘날 우리들에게 유행하고 있는 그런 장로교의 모습은 아닙니다. 너무 극단적입니다. 어느 교회는 장로를 세워놓고 임기를 2년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장로 됐는가 하면 그 다음 해에 퇴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담임목사 혼자서 쥐고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교회가 평안할 때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어려움이 생기고 나니까 커다란 폭풍이 불고 결국 교회는 산산이 부서져서 7,500명모이던 교회가 2,000명으로 줄고 수십 건의 소송과 소출을 이으면서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목사는 목사대로 장로는 장로대로 집사들은 집사들대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내가 꿈꾸는 장로교회는 아닙니다.
두 번째는 작년 가을에 제가 어느 교회 집회에 갔는데 1,400명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1000명 모이는 교회에 14년 전에 동창 목사가 가서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잘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또 정반대입니다. 담임목사에게 아무 권한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백만 원도 자기가 지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 재정을 장로님들이 권한을 가지고 행사를 하는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지출이 합리적이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장로님들이 돈을 가지고 있으니까 교회 교역자와 제직들이 전부 다 줄을 서는 것입니다. 돈 쥐고 있는 재정장로님의 마음에 감동만 주면 지출이 되는 것입니다. 찍히면 지출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꿈꾸고 그리는 장로교회는 아닙니다.
오늘 여기에 보면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지만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략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일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지혜와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면 적하고 친구로 편들이 나뉘어져서 누가 이야기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이 이제 최근 기수 장로님들이 들어오고 또 앞에 들어오신 분들이 나가고 굉장히 빠르게 당회의 구성원들이 바뀌면서 열린 교회의 사역의 시대들이 많이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0년 동안 장로가 없었고 거의 모든 일을 기본적으로 10년 동안에 교회 되어진 모든 시스템들을 거의 제가 혼자서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후에 1기 장로님 4분 들어와서 그렇게 힘들었습니다. 한 2년 동안은 나하고 대놓고 다툰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끼리 다투고 늘 회의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3,4년 지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알 때쯤 되니까 그 다음에 떠나가셨습니다. 그러면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의논이 많고 지략이 많은 당회가 되라.”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크게 욕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세우는 교회가 그 본래의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교회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제도 누군가와 통화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마지막으로 열린 교회가 한국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교인이 많이 모이거나 개척교회를 많이 짓거나 선교 사업을 열심히 하거나 하는 그것이 아니라, 물론 그것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만, 왜냐하면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래도 비교적 온전한 교회였었다고 그래도 다른 교회 귀감이 될 만한 정직하고 깨끗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에 굳게 서 있고 성도들이 인격과 삶 속에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먹은 흔적들을 보여주는 교회로 그렇게 남는 것이 한국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제일 큰 봉사라는 그런 충고였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고깝게 생각하지는 않고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는 여러분들의 헌신이 전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제까지도 그랬지만 아직까지도 우리에게는 내가 모든 것을 중심으로 해서 처리하고 움직여 오던 관성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여러분들이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만약에 10년, 15년 가까이 여러분 혼자 일을 해 왔다면 여러분들도 그 관성이 몸에 배었을 것입니다. 나는 성경 다음으로 가장 신뢰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 모든 것들을 신앙을 토대로 합리적으로 결정하면서 가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싸우지는 마십시오. 그것은 미친 짓입니다.
에베소서 5장 2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뭐라고 합니까?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우리 교회는 아직 초창기의 교회고 아직 많은 장로님들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개중의 어떤 분들은 훌륭한 분들이었고 어떤 분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우리교회는 역사가 짧아서 깊은 통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목회자나 교회나 장로나 다 비슷합니다. 교회가 태어나고 유아기가 있고 소년기, 성장기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특히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쭉 쭉 자랍니다. 제가 중1에서 중2 올라갈 때 10센티, 중2에서 중3에서 올라갈 때 10센티, 중3에서 고1 올라갈 때 2센티 자라고 더 이상 안 자랐습니다. 더글러스 스위니 교수가 왔을 때 이야기 들어보니까 자기는 한창 많이 자랄 때 1년에 26센티가 자랐답니다. 그러니까 매일 통증이 느껴져서 못 견딜 정도로 그렇게 자란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계에서 딱 끝납니다. 끝나고 그 다음에 청년이 됩니다. 독립심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부모에 대한 반항도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완전히 어른이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더 이상 생산이 되지 않고 교회가 늙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어떤 목사가 교회를 개척하고 아름답게 성장했는데 2대, 3대, 4대에 계속 40년 동안 그렇게 계속 성장하는 교회를 보셨습니까? 똑같습니다. 신자의 일생도 여러분들이 교회에 와서 처음 방황하다가 설교 듣고 은혜를 받고 그러다보니까 교회 섬기고 싶고, 그럴 때 설마 장로 되려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주님의 은혜 감사해서 섬기고 봉사하고 애쓰고 그러면서 세월이 흘러가다가 집사도 되고 안수집사도 되고 장로도 됩니다. 우리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그러면서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위해 눈물이 있던 아주 따끈따끈한 신앙은 죽기 시작하고 그 다음에 교회 일을 해야 되고 그러면서 이리저리 부딪치고 심지어는 교회의 비리도 보게 되고 어두운 면들도 보게 되고 하는데, 은혜가 떨어지니까 신앙이 그것을 감당할 수는 없고 올바르게 해야 되겠다는 책임감은 있고 이렇게 하면서부터 신앙이 그 상황을 지탱하지 못하면서 마음이 황폐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예전처럼 이제 교회 오면 영혼들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돌보고 싶고 하는 마음들이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빌어서 여러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 하면 목양에 대해서 어제 밤에도 내가 곰곰이 생각했는데 한번 점검해 볼 때가 됐습니다. 말은 안하지만 나도 우리 목회자들이 목양하는 모든 것을 맘에 들어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또 참된 회심의 비울도 줄어들었고 교회를 찾는 동기도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고 예배의 집중도도 현저히 떨어지고 공간은 삼지 사방으로 찢어지고, 이것이 누구 한 사람이 범인이 아니라 다양한 것들이 맞물려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교회가 커지면서 변심한 나 자신의 변화도 포함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시점에 와서, 교역자들은 몇 년에 한 번씩 점검을 했습니다만 그렇지만 한번 좋은 기회다 생각하고 평신도들과 장로들과 그 다음에 목회자들과 같이 위원회를 만들었으니까 연구를 해서 그래서 자기네들끼리만 하지 말고 평신도 이야기도 듣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교인들의 영적 생활에 대한 앙케트 조사한 것이 벌써 상당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해서 정말 모두가 다 지금 현재의 우리의 목양에 어떤 어려움들이 있는지, 그러니까 지하실 교회에서 사역할 때 교회를 찾았던 사람들하고 방배동 예배당에서 교회를 찾았던 사람들하고 평촌 여기서 예배당을 찾아오는 사람들하고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입니다. 이런 속에서 잘 분석을 하고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교역자들이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러면 어떻게 교역자들을 그런 면에서 좋은 능력을 가진 사람을 뽑고 또 목양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북 치고 장구 치고 교회에서 수많은 행사를 하고 그러면 무엇 하겠습니까? 기본적으로 영혼들이 안자라는데,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들이 계속 부담을 느끼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고민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 많이 하면서 가장 현실적이고 아무리 이상적이어도 우리들이 실행할 수 없으면 안 되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합의를 이룬 가운데 적용해 보자, 그런 맥락에서 교구를 개편할 수도 있고 교구를 축소할 수도 있고 늘릴 수도 있고 아니면 교역자를 재 발령할 수도 있고 외부에서 교역자를 충원하는 방법도 있고 교역자들을 인사 이동하는 방법도 있고 그 사람이 누가 어디로 갈 것인가라고 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고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를 같이 고민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합리적이고 설득될 수 있는 것이라면 채택되고 교회를 위해서 실행되어져야 된다고 봅니다.
두 번째는 그렇지만 그 일을 할 때 여러분들이 깊이 목양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시야를 가지고 목양의 문제를 바라보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른 쪽에서 목양의 문제를 바라봅니다. 거기 내 책임도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이상하게 장로님만 되면 목양에 관심이 없어집니다. 물론 장로들이 하는 일이 너무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인 것은 알지만 장로만 되면 구역장부터 사표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걱정하게 되는 것은 그렇게 되면 자칫 잘못하면 우리들이 의논을 하고 지략을 모은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교회는 목양에 있어서 영적인 생명체인데 목양은 목양을 하고 목양을 하면서 고민하고 아파하는 사람이 목양의 문제를 결정할 때에 가장 현실성 있는 이야기들을 듣고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교회도 구역장이 아닌 사람들은 장로를 안 시킵니다. 그래서 나는 좋다 이것입니다 그 모든 일을 하자 그런데 우리들이 만약에 당회에 어떤 모임이 목양을 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면 시간을 합리적으로 바꾸어서 모이더라도 여러분들이 실제로 목양을 하면서 그 속에서 고민이 무엇인가, 여기서 내고 싶은 이야기를 거기서도 목소리를 내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우리가 이것은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이런 식으로 바꾸어서 가야지만 교회가 건강하게 목양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여러분들은 그 안에 없고 바깥에서 무엇을 만들어서 위에서 시달하는 식으로 하지 말고 여러분 자신들이 목양 구조 안에서 목양을 하는 교사로서 아니면 구역장으로서 순장으로서 영혼들을 돌보면서 고민하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엇을 아파하는지 이야기도 듣고, 한 두 사람 투덜거리는 사람 이야기 말고 말하지 않는 다수의 착한 구역장의 이야기도 듣고 그 중에서 교역자들이 듣지 못하는 이야기들 전달해 주고 이렇게 하면서 교회가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해 가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런 고민이 진실하게 모아진다면 우리가 무슨 의견이 합치되지 않을 일이 무엇이 있겠으며 무엇이 그렇게 서로에 대해서 불평하고 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우리는 교구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어젯밤에 마음 상하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상했으면 상했다고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그리고 그런 것들은 내가 교역자편에 서 있으니까 잘 못 듣던 이야기이고 저렇게 담임목사하고 와서 당회수련회에서 격정적으로 교구가 다시 세워져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할 때에는 교역자들이 다 이해하지 못하는 또 다른 아픔들이 있었겠다고 이해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기도하면서 다 씻어버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그것이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 대신 싸우지는 말라 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질서를 허물어뜨리지는 말고 설득시키려고 하고 기꺼이 설득되려고 하고 그래서 마음 중심 속에서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가 하는 것을 찾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7년 장로하고 예전보다 주님 더 사랑하고 성도들이 보기에 온유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아야지 7년 동안 하고 나서 은혜도 다 떨어지고 교회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장로들끼리 서로 갈등하고 목회자들 마음속에 서로 불편한 관계가 있고 그렇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내 이야기는 우리가 서로 좋고 편하기 때문에 대충 하고 중요하고 올바르게 되어질 것들을 짓밟고 넘어가자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내가 늘 말씀드리는 게 생각보다 내가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는 게 나는 다 내려놓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정말 제가 교회를 지어야 되겠다는 것이 가슴에 불타는 열정이었으면 지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오해하고 있지만 전혀 그것 아닙니다. 그리고 교회 짓자고 여러분들 다 권유 했지 않습니까? 지으려고 했으면 지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교회 지어지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합니까? 우리 목회자와 장로들은 감각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성도들을 만나보면 마음속에 간절히 그것을 하고 싶은 것이 없는데 간절히 하고 싶지 않은데 그것을 하자고 밀어붙인다고, 바보입니까? 그렇게 눈치가 없습니까? 30억이 안 나와서 홧김에 제가 그만 둔 것 아닙니다. 제가 줄을 그은 이유는 성도들이 정말 짓고 싶어 한다면 짓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면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여러분들이 하자고 한다고 해서 제가 그냥 하면 되겠습니까? 앞에 당할 어려움이 뻔한데. 그래서 짓지 말자 그랬을 때 내가 승복할 때도 좀 마음은 힘들었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짓자고 했을 때 다시 안 짓게 된 지금에도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이 나의 목회에 대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성적표구나 생각을 하면서 나 자신이 기쁘지는 않지만 받아들이려고 하고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간에 교회당 덜렁 지어지는 것보다도 그렇게 해 놓고 사람이 무리한데 추진을 했다 해서 마음이 찢어지면 뭐하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에는 다 도달할 수 있는 평범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긴 시간, 다섯 달의 세월이 흘렀는데, 나는 그래도 고통스러웠지만 의미 있는 훈련의 기간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의논을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숙한 민주시민은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고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 설득할 수 있는 교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 교회를 경영해 나가는 것들이 정말 지혜롭게 잘 되게끔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정말 저는 당부를 드립니다.
최근에도 김의원 총장이 와서 나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교회에 이름대면 여러분들 다 아는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자기가 뭐 좀 하고 싶은데 하도 당회에서 반대하니까 할 수 없이 뭐 좀 하려면 자기보다 나이 많고 반대하는 장로님을 하나하나 집에 찾아가서 밥 먹으면서, “형님, 동생이 이것 좀 한번 해 보겠다는데 그렇게 반대를 하느냐고 당신 마음에 좀 안 들어도 이렇게 사정하러 왔는데 한번 넘어가자.”고 이렇게 하면서 목회를 해오셨답니다. 저는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아마 제가 은퇴하는 날 까지 그렇게 여러분들 개인적으로 집에 찾아가서 나 좀 봐달라고 사정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논을 많이 하고 그리고 지략을 세워서 교회의 경영에 유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늘 명심하십시오 싸우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당회가 끝나고 돌아갈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그런 고통을 갖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을 비롯해서 교회의 질서와 하나님의 통치 같은 유장한 시리즈들을 다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 중에는 그 말씀을 듣고 생애가 바뀐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런 눈으로 여러분들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처럼 성직에 대해서 존중심을 가지고 있고 당회에 대해서 존중심을 가지고 있는 교회 많지 않습니다. 당회원들을 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 들려올 때 얼마나 제가 많이 덮었는지 여러분들이 알면 아마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되어온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지략을 세우고 의논하십시오. 제가 다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대신 담임목사하고 맞서려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여러분들이 은퇴하는 날까지 김남준 목사가 여러분들의 맞상대다 그리고 꺾어야 할 대상이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내가 나가든지 여러분들이 나가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당회에 모인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이 있는데 여러분끼리 다툰다는 것은 어른을 졸로 보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일생 안 한 이야기인데 어느 기수 장로 때 모이면 싸움입니다. 열 번 모이면 아홉 번을 싸우는 것입니다. 너무 화가 나서 내가 그랬습니다. 둘이 그렇게 싸우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여기에 있는 당회장을 아주 하찮게 봐서 싸우는 것이다. 싸우다가도 어른이 들어오면 싸움을 멈추는데 어떻게 둘이 사이좋게 있다가도 당회장만 나타나면 싸우느냐고 그래서 제가 문을 쾅 닫고 나간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해서 교회를 이끌고 다스리는 지도자들이 그렇게 혈기 충만해 가지고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의견을 내고 지략을 세우십시오. 그리고 나를 설득하시고 동료 장로님들을 설득하십시오. 갑시다. 좋은 것이 있다면 가자 이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기득권 가진 것이 없으니까 훨씬 행동하기 편합니다. 여러분 저한테 빼앗아갈 돈이나 권력 없지 않습니까? 저는 열린 교회 20년하고 단 10만원도 영수증 없는 돈 쓴 적이 없고 예산에 없는 돈 쓴 적이 없습니다. 뺏어갈 것도 없습니다. 가진 것도 없기 때문에. 그 흔한 교회 카드 하나 내 지갑에 안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재정 감사도 더 강화하자 그러면 나는 오케이입니다. 얼마든지 강화하십시오.
그리고 정말 10년, 20년 지난 다음에도 사랑의 교회나 명성교회나 같은 일들이 열린 교회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피눈물 나게 서로를 격려하고 해야 합니다. 하자 이것입니다. 다 들어주겠습니다. 이야기하십시오. 그래서 이번에도 교구도 교역자들은 간절히 하기 원하는데 여러분 이야기 다 듣고 보니까 내가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설득하겠습니다. 하려고 했는데 장로들이 반대해서 못했다 절대 그렇게 바보같이 이야기 하지 않고 여러분들의 논리로 제가 다 설득시키겠습니다. 그래서 교역자가 너무 과도하면 몇 사람 내보내겠습니다. 하겠습니다. 그 대신 싸우지 마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큰소리 내지 말고 인격적으로 내가 저 사람에게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여기서 가장 오래 남으신 분들이 6년 6개월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 이외 분들은 4년도 안 남았고 5년도 안 남았습니다. 차례대로 나갑니다. 한번입니다. 그래서 존경받고 사랑하고 그리고 임기가 끝나고 목회가 끝난 뒤에도 마지막에 목사님하고 열린 교회에서 7년을 장로로 보낸 것이 가장 보람된 시기였다고 내가 당신하고 7년을 지냈는데 당신이 정말 최고였다고 처음에는 당신이 나하고 의견이 다른 것 같아서 힘들었지만 결국은 당신 때문에 내가 강해졌고 교회가 보다 더 반듯한 모습이 됐고 그리고 내버려 두었으면 욕먹고 어려움이 생길 수 있는 것을 이렇게 깨끗이 정리해서 하나님 앞에 살게 했다고 참 감사했다고 그러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교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한번 교구 목회자 때문에 어려워하는 사람이 와서 상담을 했습니다. 한 2년 전의 일입니다. 이름을 대면 아는 안수집사님하고 장로님입니다. 그러면서 계속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그 힘든 문제를 내가 몰랐을 때는 못 도와줬지만 내가 도와주마고, 그런데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한번 도와준다고 될 문제가 아니니 이번에는 내가 도와주겠지만 그런데 다음에는 내 도움 받지 말고 스스로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여러분 분과장해 보면 알지만 분과회의 할 때 제일 짜증나는 사람 누구입니까? 모임도 잘 안 나오고 돈도 안 내고 잘 협조도 안 하면서 분과장이 고민 많이 해 가지고 와서 이야기하면 왜 너 혼자 떠드느냐고 하고 그러면 우리는 뭐냐고 하고 내 생각은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누구나 다 마찬가지잖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십시오. 제일 먼저 구역장 시켜달라고 하십시오. 내려놓은 것 다시 찾으십시오. 서너 명이라도 데리고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어려움이 오고 그러면 목회자들에게 알리고 같이 식사도 가끔 하십시오. 가끔 문자도 보내고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목사님 그것은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하십시오.” 그것이 목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그런 점에서 있어서 부족했습니다. 그러니까 돌아가서 영혼들을 돌보십시오. 제가 간곡히 부탁합니다. 정 능력이 없고 바쁘면 한 3명 달린 구역이라도 달라고 하십시오. 주일구역이라도. 그래서 돌보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눈물을 흘리십시오. 그 고민을 가지고 교회의 일을 보면 그런 고민이 없을 때 교회 일 보는 것하고 다른 국면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해서 지략이 많은 그래서 의논이 많은 당회가 되어서 주님의 마음에 정말 기쁨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20년 동안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해 왔는데, 여러분 눈에는 담임목사가 잘 못하는 것 같지만 잘 못했다고 해서 쉽게 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육체가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과 한계를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이 길을 더 가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가는 한 여러분들은 나 없이 이 교회에서 하나님 섬길 수 없고 또 나 역시 여러분들이 장로로 있는 한 여러분 없이 나 혼자 교회를 섬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인백보는 불여 백인일보(一人百步 不如 百人一步)라, 한 사람이 백 걸음을 뛰어가는 것은 백 명이 함께 한 걸음을 옮기는 것과 똑같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같이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기도 많이 하시면서 새벽기도도 자주 나오시고 기도 많이 하시면서 그러면서 성도들의 모본이 되십시오. 그리고 정말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 다음에 마음대로 하십시오. 어거스틴의 말대로.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정말 소중하게 써 주셔서 이 생애에 정말 빛나는 7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