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 새벽예배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행 16:27-32)
녹취자: 전인현
그것도 이제 하나님의 어떤 큰 섭리를 이해했다고 할까요? 그런 것이라 보아야지 되겠습니다. 옥토가 흔들리고 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어진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런 기적은 무엇을 하라는 기적이겠습니까? 도망치라는 기적입니다. 빨리 나가라는 기적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을 것이라 믿어지지만 왜 도망치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바울은 현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지금 투옥되었지만 이것이 그렇게 뭐 그렇게 중벌을 받을 만한 죄로 투옥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곧 풀려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자신이 로마의 시민권까지 갖고 있었으니 황제에게까지 재판을 받겠다고 요구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며칠 있으면 풀려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봅니다.
이렇게 기적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나를 기적 속으로 도망치기 위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아마도 ‘하나님께서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이시기 위해서 이런 일들을 베푸셨나보다.’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좀 사소한 이야기긴 합니다만 12장에 보면 똑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바로 베드로가 투옥되었고 기적이 일어나서 베드로가 옥을 탈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베드로도 옥이 다 열리고 그래도 좀 가만히 있지 왜 베드로는 도망쳐 나오고 바울은 여기 가만히 있었을까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경우가 좀 틀리다고 봐야 합니다. 베드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다고 봐야하고 바울은 상황이 좀 다르다고 보아야합니다.
어쨌든 사소한 문제이지만, 거기를 지키는 간수가 아마 책임자쯤 되지 않았겠습니까? 자다가 눈을 떠보니까 옥문이 다 열리고 그리고 차꼬가 다 풀어지고 죄수들이 다 도망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당시에 로마의 법을 보면 죄수를 지키는 사람이 죄수를 놓쳤을 경우 그 죄수의 형벌을 자기가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죄수의 형벌이 3년 징역이면 자기가 3년을 살아야 되고 사형이라면 자기가 사형을 당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이 옥에 있었는지 다른 죄수들도 모두 옥에 있었는지 다른 모든 옥토가 흔들리고 다른 모든 문이 다 열리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는지 아니면 이 사람들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성경을 보면서 모든 것을 다 성경이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어떻든지 간에 이 간수는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결하려고 자기의 몸을 상하려고 할 때 바울이 “그러지마라!” 왜냐하면 바울도 법을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우리가 여기에 다 있으니까 비록 지진이 나서 옥토가 흔들리고 차꼬가 풀어졌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네가 형벌을 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지 마라!” 그러고 났더니 그 다음에 이 사람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여기 계시구나’ 그런 종류의 큰 두려움입니다.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그리고 그 하나님이 바울과 실라 이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역사하고 계시는 구나!’ 하는 큰 두려움이 이 사람에게 아주 엄중하게 임했습니다. 크고 두렵게 엄중하게 이 사람에게 임했습니다.
결국은 그들 앞에 부복하는 것입니다. 엎드려서 “선생들아 내가 어찌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 이것을 보면 아마 이 사람은 이미 옥 속에서 혹은 옥 속이 아니라 바깥에서도 예수님에 관하여 무엇인가 들었고 아니면 유대인들로부터 무엇인가 신앙에 관한 하나님을 믿는 신앙 혹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구원신앙에 대해 무엇인가 들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관심이 즉각적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겠느냐?” 이렇게 물어보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사도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하면서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필요를 이 사람에게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의 마음에는 이미 무언가 진동하였으니 이렇게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그 권유를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사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기 집에 내려갔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하니까 이제 잠깐 데리고 밖에 나간 것 같습니다.
감옥 속에 자기네 집이 있을 일은 없을 것이니까, 그렇게 해서 가족들에게 사도 바울이 복음을 그대로 전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래놓고 그 믿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왜 믿어야 하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상세하게 다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믿고 변화를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실 때 이렇게 하나님이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을 아주 기적적이고 놀라운 방법으로 그 마음을 흔들어 놓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들이 전하면 그 마음이 하나님이 흔들어 놓으셔서 움직이는 마음이 반응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을 깊이 의지하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역시 똑같이 이 간수와 같은 많은 사람들을 이 세상 속에서 만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결코 주님을 믿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큰일을 당하면서 그러면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과 실라의 인격이 아주 돋보입니다.
간수를 자기를 억울하게 투옥시킨 사람들이고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들도 구원받아야 할 한 영혼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까 감옥에 있는 생각들이 감옥에 있는 생활들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그렇게 찬송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렇게 찬송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고난의 때를 이기니까 그 고난의 때에 자기중심적으로 생각이 치우쳐서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고난의 때에 하나님이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위대한 계획들을 발견하고 그리고 정말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모본을 보여서 그 간수와 간수의 집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게 되지 않습니까? 이런 것이 사랑입니다. 이런 것이 또 관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스쳐가는 삶 속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됩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사람 그리고 주님이 도와주시는 사람 하나님이 역사해주시는 사람 이런 사람으로 살아갈 때 우리를 통해서 이런 구원의 역사들이 계속해서 펼쳐져 나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