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새벽예배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히 12:27)
녹취자: 안두현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그 나라를 흔들리지 않는 진동하지 않는 나라라고 이미 앞에서 묘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나오는 영존하는 나라는 바로 진동하지 않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진동하는 나라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이세상입니다. 이 모든 우주를 하나님께서 만드셨지만 그리고 수십억개, 수천억개의 별이 우주에 있겠지만 그러나 종교적으로 이 모든 우주의 중심지는 이 지구라고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이 살지 않는 그 많은 크고 작은 별들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이 세상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드시고 또 하나님에 의해 그 다음에 성부 하나님에 의해 성자 하나님을 통해서 성령 하나님 안에서 이 온세상이 창조되기는 했지만 사람이 없는 그 모든 우주 세계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을 두고 신령한 역사라고 거룩한 역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성품을 사람에게 게시하시고 그들과 관련을 맺으실때에 그러한 성령의 역사를 가리켜서 거룩한 역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거룩한 이 거룩하고 신령한 은혜가 있는 곳으로서의 이 지구에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심이 진동할 나라 이렇게 말씀하셨을때 온 우주를 가리킨다기 보다는 하나님이 관심있게 창조하시고 거기에 당신의 거룩한 역사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있는 이 세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신 것도 그 이유이고 또 너무나 사랑하셨는데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도 바로 하나님의 그런 이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 2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리고 이 세상을 구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껏 인간이 타락한 이후로 계속해서 인간에게 언약을 베푸시고 당신 자신을 게시해 주시고 이렇게 하셔서 당신 안에 있는 참된 행복이 무엇이고 그리고 이렇게 게시해주셔서 당신 안에 있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이고 당신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께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인간들에게 끊임없이 제공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믿고 구원을 얻은 사람들, 교회들도 끊임없이 돌이킬 기회를 주시고 그래서 다시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지만 그렇게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는 것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진동할 수 있는 나라를 진동시켜서 그리고 모두 심판하시는 때가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핍박을 당하고 있거나 큰 핍박에 직면하고 있는 이 히브리 교인들을 이 어두운 핍박의 시대에서 신앙을 잃지 않고 뒤로 물러가 지면에 빠지지 않고 조용히 신앙을 가지고 끝까지 이기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사람들을 모든 핍박과 고난을 이기면서 믿음으로 살도록 강력하게 권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지금 신앙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 이 세상을 택한다면 이 세상은 진동할 나라다 언젠가는 모두 무너질 나라다. 그런데 너희가 여기서 믿음을 지키고 갈 나라는 진동할 수 없는 나라이다. 그러니 잠시 이 세상에서 낙을 누리기 위해서 영원희 진동하지 않는 나라를 포기하고 진동할 나라에 남겠느냐 그러면 주님이 심판하실 때 진동할 나라와 함께 배교하는 자들을 망하게 하시지 않겠느냐 그렇게 하면 안된다 그래서 좋은 신앙을 가지고 주님을 온전히 바라고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주님을 끝까지 따라가는 그런 진실하고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하도록 사도가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항상 오늘 이 세상에 치우친 불신앙의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공정해야 합니다. 공정해야 하는 균형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의식적으로 끊임없이 현세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세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때문이겠습니까? 현세는 생각하려고 노력을 하면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러나 진동지 못할 미래의 나라는 우리가 그냥 한없이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생각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세는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계속 생각되지만 내세의 진동할 나라는 생각을 안해도 늘 생각이 되지만 진동지 못할 나라는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어제 밤에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주일 밤에는 잠이 오질 않습니다. 잠을 꼭 설칩니다. 토요일에는 토요일이라서 긴장이 돼서 잠이 안오고 주일은 성도들이 다 돌아간 다음인데도 왜 그렇게 잠이 안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이렇게 생각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이 세상이 정말 희망이 있는 곳인가? 주님이 살라고 하셔서 우리가 이세상을 살아가지만 그러나 모든 것이 헛되지 않은가? 요즘에 이렇게 보면 이 죄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모릅니다. 그들은 진동해 버릴 나라밖에 모릅니다. 진동지 못할 나라를 모릅니다. 자신들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하나님과 관계없이 그렇게 충동적으로 육신의 욕구를 따라서 살아가는 삶이 남들이 보기에는 자유로운 삶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것은 노예된 삶입니다. 노예된 삶인 것입니다. 그것이 노예된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은 꼭 지나가는 진동하는 나라입니다. 우리 영혼에게 진동지 못할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소망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시시하고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더럽고 그리고 정말 추한 인생이 될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 세상을 적절하게 경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하고 말입니다.
(찬양) 잠시 머물 이 세상은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보다도 귀하다.
이것은 정말 잠시 지나 가는 것입니다. 정말 잠시 지나가는 것이고 이 세상에 목숨을 걸고 이 세상에 모든 자신의 운명을 걸고 사는 그것은 정말 미친 짓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진동지 못할 나라에 소망을 걸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소망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진동지 못할 나라를 위해서 고난을 받고 진동지 못할 나라에 대한 소망 때문에 오늘 목말라 하고 진동지 못할 그 나라를 하나님께서 세우셨으니 그 나라에 들어갈 백성에 부합하도록 살아갈 때에만 우리 안에서 그 진동지 못할 나라에 대한 신실한 소망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순간 우리는 매순간 진동하도록 있는 나라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적절하게 미워하고 진동지 못할 나라에 대해서 깊은 사모함으로 매일 매일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