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4일 교직원예배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산다 할 때, 하나님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일입니다. 그래서 일은 일일뿐입니다. 일이 사람을 바꾸어 놓지 못합니다. 그래서 거룩한 일을 하면서도 세속적 일 수 있고, 세속적인 직업에 종사하면서도 거룩한 사람일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이 일을 할 때에 그는 일한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그는 하나님을 섬긴다. 일을 하면 일을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는 작은 일 하나도, 결국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는거죠,
아주 오래전에 어디에서 읽은 일화인데, 잔잔하게 오랫동안 감동이 되었어요. 불치의 병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는 어느 청년인데 너무 가엾으니까, 주위에 있는 시골교회에서 와서 복음을 전해주었어요. 그래서 인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병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거기에서 복음을 듣고 회심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 한거에요.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무엇 좀 해드리고 싶은데, 할 것이 없는 거예요. 일어날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병수발을 받으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처지에 있으니까, 뭐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거죠. 그러던 와중에 있는데, 그가 자기가 이렇게 돈도 없고, 병들어서 자기 대소변도 가릴 수 없는 그런 처지에 있는 데에도,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하면, 그 자매가 죽었어요. 그리고 결국은 인제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그 교회에 있는 목사님과 교구들이 와서 장례를 치러 주는데, 그 병 속에서 계속 베고 있던 그 베개에 그 뭐 집도 가난하고 하니까 빨아주는 사람도 없이 때가 묻어 있는 그 베개 속을 뒤져보니까 사람들의 명단이 나오는데, 아, 동네사람들의 명단이에요. 놀랍게도 그 명단과, 최근에 그 시골 교회에 나와서 예수 믿고 회심한 사람들의 명단이 일치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자매가 발견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것이 기도였죠. 그래서 그 자기가 빨리 예수 믿고 회심했으면 좋을 사람들을 적어놓고, 그 처음 회심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병속에 누워서 그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 한거에요. 거 하나님이 역사 하셔서 그 명단을 따라서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 예수 믿게 만드신거죠.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다가 종종 그만 두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때마다 이유가 여러 가지지만, 대부분 나는 하기 싫어서 집어치웁니다. 이러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 힘든 거죠, 어려운거죠. 그래서 결국은 그만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되느냐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것이, 일이 많고 힘들어서 우리가 결국은 감당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사랑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에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에요. 그래서 내가 하는 이야기가 그거에요. 사람이 일을 하면, 일을 할 때에 사람이 일을 할 때에 그는 일한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죠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을 책망하여 징계하시는데, 그게 무엇이냐 하면, 열심을 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보면은 순수하다 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것을 뜻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중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주님을 섬겨야 되겠다라고 하는 뜨거운 마음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문제는 다른 것들이 섞여 있는 것에요, 그래서 순수하지 않은 것 그게 문제가 아니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가장 큰 의무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예요. 지난 주일에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꾸김없는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안전해, 어디에 있던지 어디서 살던지, 그것은 모두 양태에 지나지 않아요. 내가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지, 아니면, 이름 없는 선교지에서 봉사를 하던지, 목회를 그만두고 내가 평범한 한 시골사람으로서 채마밭을 가꾸면서 살던지, 이게 무슨 문제가 되겠어요. 어차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건데, 그렇치 않아요. 문제는 우리에게 그러한 열심히 없다는 거죠. 그 열심히 없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집중이 모자라는 거죠. 흩어지는 거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향해 주님이 필요한 것이 회개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회개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던 것에서 돌이켜 서서 주님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회개에요.
(찬송) 큰 은혜를 주신 내 예수시니 이전 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죠. 주님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독특한 권위가 있어요. 영적인 뛰어난 은사와 신비의 경험이 없어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설 때마다, 주님 앞에 선 것 같은 찔림을 받게 되는거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보고 너는 왜 주님을 사랑하지 않니하고 한마디도 꾸짖지 않아도, 우리의 양심은 떨리고,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가책의 눈물 흐리게 되는거죠. 그것이 진정한 권위에요. 여러분들은 양떼들이 여러분들을 볼 때에, 저 분은 나보다 공부도 덜하고 그리고, 지혜도 좀 부족하고, 인생의 경험도 나보다 모자라지만, 돈도 내가 더 많지만, 저 분은 한 가지에 있어서만큼은 나보다 뛰어나다. 저분은 주님을 많이 사랑하고 나는 저 분에게 미치지 못한다. 이런 인상을 주는 것이 목회의 전부에요. 강대상에서 울려 퍼지는 메시지는 그러한 그 삶의 한 일부분의 표현 일뿐이에요. 여러분들이 주님을 섬기면서, 성도들에게 그런 마음을 줍니까? 나는 모든 면에서 교회에서 일하는 직원들 보다 낫지만, 비록 여기가 촉망받는 직장도 아니고, 젊은이들이 오고 싶어하는 커다란 기업도 아니지만, 그러나 저 자매 저 형제들이 교회를 위해 봉사하면서 정말 주님을 점점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구나 그것을 성도들이 느낄 수 있을 때 그가 정말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잘 사는 것이에요. 나머지 것들은 모두, 나머지 것들은 모두,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죄 많은 여자가 당신에게 향유 옥합을 깨뜨려 붇고 눈물로 당신의 발을 씻기시는 광경을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 졌도다 이는 저 여자의 사랑하는 것이 많음이니라” 하고 말이죠 행위가 그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님을 충심으로 사랑하는 그것 자체가 그 죄와 악에서 떠났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러므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우리는 사랑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이 알고 계셔서 너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라고 물으면, 우리는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신자의 그 내면의 세계에요. 사람은 우리의 외모를 취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시다. 그래서 주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모자라면 모자라는 데로 쓰십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데로 하나님이 쓰시더군요. 우리들이 거룩한 열심히 없다는 것은 주님을 덜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섬기데 ,오직 사람때문이 아니라,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람에게 환영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혹은 사람에게로 부터 받는 보상 때문이 아니라, 주님 한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당신을 섬기고, 봉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수련회를 앞두고 한번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있는 많은 고민들이 얼마나 대부분의 것들이 본질적인 것이 아닌 지를 가려내고 그리고, 나의 영혼이 빈들에서 주님을 만나는 그런 마음으로, 그래서 그 사랑으로 온전히 충만하게 채워지도록, 주님을 주님답게 사랑하지 못하고, 나를 나답게 복종시키지 못했던 것들을 뉘우치면서 그렇게 주님 앞에 다가가는 여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