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새벽예배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11:17-19)
녹취자: 장현수
믿음을 이야기 하면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받쳤던 사건을 아마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겠죠.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받쳤던 사건을 이야기를 반드시 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삭을 하나님 앞에 바치는 이 사건은 사실 갈대아 우르를 떠난 사건 못지않게 하나님 앞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오늘날 신약성도들인 우리들과 비교해서 만약에 말 한다 면은 갈대아 우르를 떠난 사건이 주님을 믿기로 결심한 사건이었다고 할 것 같으면 이삭을 하나님 앞에 받친 이 사건은 이미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성화의 길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중대한 결단을 했던 그러한 사건에 비 할 수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네 독자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내가 지시한 산으로 가서 내게 제물로 바쳐라 번제로 바쳐라 하나님이 주셨다고 해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 축복을 우리들이 지키면서 사는 것은 아니에요. 하나님이 주셨어도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잘 쓰고 관리해 나가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 많이 달려 있는 거예요 우리의 신앙에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 시죠 아브라함이 무슨 노력을 하고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벌써 단선된 상태에서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노부부에게 하나님이 자녀를 주신 거에요. 하나님이 전적으로 주신 거에요. 그러면은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항상 자기에게 죽은 자와 방불한 자신에게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리고 그 아들보다는 아들을 보면서는 늘 자기에게 자손이 끊어지지 않게 금 아들을 주신 그 하나님을 생각해야만 했지요. 그런데 그렇게 만드는 것은 매일 매일의 신앙이지 옛날에 하나님이 이삭을 한번 주셨다고 해서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에요.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지요. 그 지혜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쓰는 사람은 솔로몬 자신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을 때에는 그 지혜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사용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그 지혜를 사용할 수가 없었던 거지요.. 이처럼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셨을 때도 역시 그랬단 말이죠. 성경에 상세한 이야기는 안 나오지만은 어째든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하고 따르는데 있어서 이삭을 사랑하는 것이 방해가 되었음에 틀림이 없어요. 우리들이 흔히 시험 그러면은 타락하기 직전의 상태를 가리켜서 시험이라고 말하지만은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말 하면은 시험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기에 어려운 상황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순종하고 그 뜻대로 살기에 순종하기 어려운 그런 상황 거기 있는 모든 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시험이라고 우리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런 점에서 보 면은 하나님이 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아서 아브라함의 마음이 이 아이에게 많이 빼앗겼던 것 같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셔서 누리게 하셔도, 하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주실 때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주신 것은 아니에요. 사랑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 한분이시고, 그 하나님 한분 때문에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에 기초해서 사랑하는 것은 괜찮지만 거기로부터 떠나서 사랑하는 것은 원치 않다 그거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깊이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던 거지요. 아브라함이 불순종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더욱이 아브라함이 있었던 곳에서 이삭을 제물로 받쳤던 모리아산까지는 삼일 길이나 되었어요. 그런데도 순종했지요. 그러면 이제 궁금한 거는 순종 했을 때 어떻게 자기 사랑하는 아들을 죽일 수 있었을까 죽 일려고 맘을 먹은 것 아니에요 그죠.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것에 대해서 오늘 성경이 답을 주고 있는 거 에요. 뭐냐 하면 죽 일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그리고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죽음 직전에 자기 아들을 건져 주실 것 이라고는 사실은 생각을 못했겠죠.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죠 그러면 어떻게 생각했느냐 답이 나오는 것은 뭐냐 하면 자기가 죽여도 하나님이 그 아이를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믿었다는 거죠. 사실 이것이 부활의 신앙이에요 근데 그 이제 모리아산으로 갈 때 보 면은 종에게 넌 여기 기다려라 그리고 그 다음에 제물을 태울 장작과 불 칼을 가지고 이제 이삭을 앞세우고 올라가잖아요. 그때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나와요. 너는 여기 있어라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하고 돌아오리라 제사하고 돌아오리라 할 때 그 우리말 성경에는 돌아오리라 이렇게 되어 있는데 히브리 성경에는 낫수바라고 되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우리가 돌아오리라 그러니까 그 두 가지 사실을 합치면은 아브라함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냐면 올라가면 난 이 아이를 죽여야 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받쳐야 되는데 하나님은 이 아이를 다시 살리실 것이다. 그런데 먼 훗날 살린다든지 아니 면은 이삭의 동생을 하나님이 한번더 허락 하신다 든지 그런 개념이 아니라 다시 이 산을 내려오기 전에 그 아이와 함께 내려오리라 하는 즉각적인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이걸 보면은 그 동안 아브라함의 믿음이 얼마나 많이 성장했는가는 것을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난 그 이후에 그 긴 세월동안 하나님께서 그를 다루셨어요. 때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해서 그 긴 세월동안을 영적인 어두움 속에 지내기도 하고 또 하나님 앞에 범죄하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런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를 철저하게 다루시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철저하게 다루셔서 좋은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셔서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자기의 약속을 이루실 것이다 그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 이루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그 믿음 그게 뭐죠. 이루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그 믿음 그게 무엇이었죠. 네 몸에서 난 씨라야 너의 후사가 될 것이요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레와 같이 많아 지리다. 그리고 그들이 내가 너에게 약속한 땅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누리리라 하는 그 말씀이었어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단순히 자기의 혈육의 한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이후에 계속해서 확인해 주셨던 약속 너에게서 민족이 나고 왕이 나리라고 하는 큰 약속의 말하자면 그 씨앗 이었단 말이지 그거를 굳게 믿은 거에요.. 이 하나님의 역사도 참 재밌잖아요. 자손을 하늘의 별 바다의 모레같이 많게 하려면 아브라함 때에 한 열 댓 명 났어야 되잖아요. 그럼 이렇게 벌써 보이잖아요. 이게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레와 같이 많아 질 거라는 게 보일 거 아니에요. 애들이 한 열댓 명 내지 이십 명 되서 이름도 다 못 외울 정도가 되면 야 진짜 이제 뭔 일이 되긴 되는 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 아니에요. 하나님은 그렇게 안 하시고 딱 한사람 한 사람 한 아이 아마 열댓 명 쯤 되서 그중에 하나 받쳐라 그랬더라면 물론 부모니까 열댓 명이나 있는데 뭐 그까짓거 하나정도야 뭐 제가 쓰지요 그럴 수는 없었을 거야 자기 자식이니까 그렇지만 어쨌든지 간에 이삭 하나를 애지중지 하고 바라볼 때 그거를 받치라고 할 때에 하나님의 명령처럼 그렇게 잔인하게 들리지는 않았을 거야 하나님이 받치라고, 여기서 우리들이 하나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거요. 뭐냐 하면 특히 그 우리들이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이게 뭔가 뒤썩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있거든요 그때에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희생시켜서 하나님 앞에 받치므로 말미암아 신자는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분이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는 그래서 그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 자신의 귀한 것을 드리고 자신의 시간을 드리고 해서 자기를 희생하며 헌신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위한 것, 이 일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말년에 그 이렇게 헝클어지기 쉬운 신앙을 한번 확~갱신하는 개인적인 영적 부흥의 한 전기가 되었다 그거에요. 그래서 진짜 내가 의지할 분이 하나님 밖에 없구나, 그리고 그 하나님은 반드시 내게 준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구나 하는 강력한 확신을 아브라함이 같게 되는 그래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삶을 매일 살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