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lms 20
목 차
시온에서 응답하시는 하나님(시 20:1-3) 47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시 20:4-5) 52
시온에서 응답하시는 하나님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셀라)”(시 20:1-3)
본문해설
시인은 전편의 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게 감사와 찬미의 시를 올립니다. 본문이 그리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장면으로서 시인은 저들이 그렇게 되기를 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장 큰 특권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누리는 것을 뛰어넘어 다른 사람들을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특권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2)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은 다른 사람들을 축복해 주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언약 백성으로서의 가장 큰 축복인 것입니다. 물론 만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께 잇대어 사는 우리는 그 복의 작은 샘들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복을 받게 하며, 내게 있는 진리를 아는 지식의 빛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주고, 내게 있는 물질로 다른 사람들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언약백성들이 살아가야할 모습입니다.
기도를 응답해주심으로 축복하심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러한 축복들을 우리에게 주실까요? 오늘 본문은 세 가지로 그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네게 응답하시고, 너를 높이 드시고, 너를 도와주시고”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심으로써 축복을 보이십니다. 신앙은 그 자체가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이며, 그 신앙의 가장 훌륭한 표현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심령 속에 꽉 차있을 때 그때가 가장 기도할 만한 때입니다. 그 마음은 겸손하고 겸비한 마음입니다. 마음이 교만하고 높아지게 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기도의 영이 거기에 깃들기 힘들어집니다. 기도의 영은 겸손의 영입니다. 자신은 비참한 죄인이고,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마음이 심령에 늘 가득하게 될 때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심으로써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자들은 그분을 의지하는 자들의 기도를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고 더욱 더 의지하게 됩니다. 이것은 영혼의 놀라운 격려와 위로가 됩니다.
우리를 높여주심으로 축복하심
둘째로 우리를 높이심으로써 축복을 보이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호와의 이름’은 ‘여호와’와 같은 말로서, 여호와께서 우리의 이름을 높이신다는 말이 됩니다. 곧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명예롭게 해 주신다는 말이 되겠지요. 우리가 때때로 깊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만물의 찌끼처럼 멸시를 받게 되나(고전 4:13),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이렇게 낮추시는 것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그분만을 의뢰케 하고자 함입니다.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9)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라고 해서 항상 높여만 주시지는 않으십니다. 때로는 아주 비천하게 낮추십니다. 그것이 자신의 허물로 인할 때도 있지만, 사람들로부터 받는 많은 존경과 칭찬이 자신 속에 원래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높여주셔서 그렇게 된 것임을 깨닫게 하시고자 그리 하십니다. 하나님만을 붙들고 살 때에만 명예롭고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서 황급히 도망할 때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시 3:3) 자신을 한없이 수치스럽게 만드시고, 비참할 정도로 낮아지게 하신 그것을 통해 다윗은 자신에게 있는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기댄 영광이었음을, 주님이 곁에 있지 않으면 자신 안에 있는 영광이 아무것도 아님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 낮아짐의 수치를 통해 오히려 주님을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붙드실 때에는 하나님의 덕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영광스러워지지만, 주님의 손이 자기를 놓을 때에는 그 영광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복을 누린 자는 솔로몬 왕이었습니다. 열국의 사람들이 그 솔로몬의 영광을 보기 위해 찾아왔을 정도였습니다. 처음 왕으로 부르심을 입었을 때에는 그 마음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 중 유약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천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 그는 모든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분께 잇댄 영광이었습니다. 의존적 영광을 누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훗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나니까, 많은 물질과 영광은 여전히 그에게 있었지만 그것은 옛날의 그 영광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 6:29)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그 영광은 한 떨기 꽃보다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저마다 영광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광이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람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어떤 효과입니다. 이는 그 사람의 사람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며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영광입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을 우리를 높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높여주셔서 생활이 편안해지고 나면, 그 영광이 하나님을 의존해서 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그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생각입니다. 주님을 떠난 자는 수치만이 있을 뿐입니다. 핍박과 시련 가운데에서도 그렇게 살아가게 하는 힘은 주께서 높이시는 데서 나옵니다.
우리를 도와주심으로 축복하심
셋째로 도와주심으로써 축복을 보이십니다. 여기에서 도와준다는 말은 도와준다는 말은 내가 훌륭하게 잘 완수해 나갈 수 있는데 다른 힘이 조금 보태어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어떤 상황과 판세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조적으로 나를 도와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아무 힘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그리고 갈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도와주신다는 말입니다.
응답하시고, 높이시고, 도와주시는 이 모든 강복의 중심에는 성소가 있습니다. 성소와 시온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 하나님과 대면하는 장소, 곧 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붙드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성소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파문이 퍼져나가듯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되고, 거기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사랑하게 되며, 거기서 축복을 받고 헌신하게 됩니다. 또한 거기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응답하심과 높이심과 도와주시는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파문을 그리며 그 축복들은 번져 가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에서 많은 축복을 받은 자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집니다. 피도 살도 섞이지 않은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와의 관계를 바르게 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자신을 꽤 괜찮은 자로 여기며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교회는 배우고 경험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신앙의 구도자에게 있어서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과 적용
인생을 살다가 어려움을 만나면 기도하고 도움만 받으려고 하기 쉬운데, 삶 자체가 하나님 앞에 정위되어야 함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올바르게 되어야 올바르게 구할 수 있습니다. 좋은 믿음으로 사십시오. 주님을 꼭 붙들고 성소에서 나를 복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 나 자신을 하나님께 다 드리는 헌신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 헌신을 통해 교회 공동체가 한 몸을 이루어 자신이 받은 축복이 파문을 그리며 타인에게 전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시 20:4-5)
언약백성들 향한 축복기도
본문 속에서 시인이 비는 축복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비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언약 백성들을 향하여 비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들을 축복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성도들은 서로 서로 다른 사람의 복을 비는 그런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고 다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마음 아파하십니다. 언약 백성들은 서로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그 자비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서로를 축복해주며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시인도 그렇게 저들의 축복을 빌고 있습니다.
언약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받는 최고의 축복은 무엇을 기도하든지 하나님이 들어주십니다. 모세도 신명기를 통해 이를 고백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7).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언약 백성들인 이스라엘이 누리는 축복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이 얼마나 정확한 관찰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할 때에 잘 들어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특별한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분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다윗이 자기의 백성들을 축복하면서 가장 간절하게 비는 제목이 바로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은 아주 포괄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직까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말은 아직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 기도 속에는 인격적인 교제가 있고, 교제 속에서 맺히는 응답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시인의 기도의 제목
시인이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비는 기도의 제목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로 저희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원은 육욕적이고 정욕적인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받아들이고, 그 부르심을 따라 살려고 할 때 필요한 도우심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주 안에서 품고 있는 소원이 이뤄지도록 함께 빌어주는 것이 공동체의 아름다움입니다.
둘째로 그들의 승리를 빌고 있습니다. 시인은 전투적인 삶을 빗대어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승리가 곧 시인 자신의 승리인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씨름하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그들의 삶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각자에게 놓인 그 상황 속에서 저들이 승리하길 원하며, 온 마음을 다하여 애쓰며 싸우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승리를 빌어주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저들이 일이 나의 일인 것처럼 실패할 때 함께 아파하고, 승리할 때 함께 기뻐하면서 말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깃발을 높이 들어 그 땅을 차지하였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 깃발을 보고 군사들의 사기가 충천하여 또 다시 전진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 깃발이 되게 하십니다. 신자의 삶은 매일 매일 전투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와 싸우고, 세상과 싸워서 이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 승리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꿈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뢰하며 매일매일 살아가길 바랍니다.
시편20편 강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