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9.2 새벽예배
9월 2일 새벽예배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히: 13: 10-11)
녹취자: 김지혜
제사 제도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속죄의 제사를 드리면서 짐승을 잡아서 이제 제단에 바치게 되면 그 피는 가지고 제사장이 성소로 들어가고 그래서 거기에서 제사를 드리고 바쳐진 것들은 영문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불살라서 없애버린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속죄를 위해서는 바쳐진 재물이 완전히 희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먹고 이러는 것이 아니라 화목제 같은 것은 드리고 나서 그 재물을 나눠서 먹습니다. 이 속죄의 제사는 드려진 후에는 피는 가지고 들어가서 성소에 들어가서 뿌리고 그래서 이제 속죄를 위한 제사에 쓰이고 나머지 바쳐진 헌재물의 나머지 부분들은 이제 성문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다 살러서 없애버린다는 것입니다. 피만 남고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이 다 불태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무엇을 보여주냐 하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데 그 우리의 속죄를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속죄를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피만 남기고 당신 자신의 모든 몸을 하나님 앞에 다 희생하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피만 남긴다는 의미는 무슨 뜻이냐 하면 속죄의 효과를 남기고 그리고 예수님의 육체는 산산히 다 불태워서 없어지는 그 재물처럼 그렇게 고난을 받아서 온전히 희생을 다하고 죽으신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재물이 불태워지는 그 일이 영문 밖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것도 바로 영문 밖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깐 기가 막힌 일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역사는 우연이 아니라 아주 치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에서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죄의 제사는 드리고 그리고 나서 그 다음에 이제 바쳐지는 그 속죄의 제물들은 영문 밖에서 불태워진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으로 가셔서 골고다 언덕에서 고난을 당하고 완전한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사도가 이야기하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의 유비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재물이 영문 밖에서 불태워진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으로 가셔서 우리를 위한 모든 속죄의 재물이 되셨으니깐 우리도 영문 밖으로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 영문을 뭐로 생각하는 것이냐며 이제 예루살렘을 교회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비유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영문 밖을 세상이라고 한 것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영문 안에서 죽지 않으시고 영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신 것도 결국은 그 십자가를 지고 이 세상 속으로 나아오셔서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영문 안에서 죽지 아니 하시고 영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고 은혜 받은 곳은 교회라고 할지라도 이제는 우리가 실제의 삶에 있어서는 그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로서 그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에 있는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긍휼이 여기고 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처럼 그런 사랑과 희생의 정신을 가지고 그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도록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영문 밖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그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셨을 때 영문밖에 있는 사람들이 열렬히 환영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당하러오셨구나! 이 은혜를 어떻게 감당할꼬? 그리고 금방 감동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으로 나오셨을 때 예수님은 멸시와 모욕이 있었고 그리고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영문 밖에서 그들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에게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가 알려졌습니다. 사도들이 그 후에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성령 강림이후에 알렸고 그래서 영문밖에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는 결국 영문 밖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믿음을 지키면서 살려고 할 때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이 많은가? 왜 이렇게 고난이 많은가? 왜 이렇게 힘들까? 그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시고 또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우리를 어려움 가운데서 건져 주시지만은 그러나 실제로 우리들이 죄 많은 이 세상에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으로 걸어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멸시와 모욕을 당하시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렇게 멸시와 모욕을 당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는 그러한 삶을 모두 사시면서 그런 대접을 받으시는 곳이 바로 세상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대접했는데 우리는 세상이 박수치고 그냥 대접을 잘해준다면 우리와 주님 사이에 일치가 없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뒤를 잘 따라갈려고 하면 어느 정도는 주님이 당하신 것 같은 일들을 이 세상에서 당하지 않겠습니까? 왜? 이 세상의 본질이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여전히 대적하고 자기의 뜻대로 살아갈려고 하는 세상.. 그래서 우리들이 항상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또 두려운 마음으로 매일 매일 그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의 삶이 고달프고 고통스럽기만 하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몰랐더라도 세상에서 십자가는 안졌지만 죄의 짐을 지고 그렇게 살아갔다면 마지막은 사망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가면 거기에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주님이 동행해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가 있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바로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시고 영문 밖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도 또한 이 세상을 향해서 그렇게 걸어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너무나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문밖에 나아가서 잘 감당하고 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은혜에 대한 깊은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깊이 갈망하고 사모하고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매일 매일 살아가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