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사모함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 하니이다”(시 119:82)
녹취자: 임미정
시편은 다섯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각 권은 모세오경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1권은 창세기와 관련되어져 창조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고 , 2권은 출애굽기 즉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해방되는 장면들이 다루어지기 때문에 2권에서는 자유, 해방, 하나님의 속죄의 권능, 등 등 이 나타납니다. 3권은 레위기, 4권은 민수기, 5권은 신명기로 오게 됩니다. 5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영광과 은혜의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인은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승리한 자신의 경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삶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을 앙망하는 신앙은 두 가지와 관련되어 나타납니다. 첫째는 성소신앙입니다. 시편에는 하나님의 성소를 그리워하고 성전을 사모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것은 그들이 역경과 시련, 축복과 은혜, 형통함과 전쟁이 모든 삶의 맥락 속 에서 시종일관 바라보았던 처소입니다. 국가적이고 커다란 문제뿐만 아니라 가정에 있는 작은 문제 까지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지고 성전으로 올라갔고, 성소에서 하나님께 마음을 토하며 국가적인 대사, 커다란 일뿐만 아니라 개인의 문제 까지도 해결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지탱해 주었고 나만 성소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성소에 올라가서 같은 하나님께 문제를 해결 받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성소는 하나일수밖에 없었고 이 속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의 영적인 연합이 구체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똑같이 우리의 인생의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어도 교회와의 관계 속에서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련을 이길 수 있는 큰 은혜와 능력도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이들이 어떠한 인생의상황속에서도 시종일관하나님의 말씀의 은혜에 붙들려 살려고 했던 것이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오늘 시인이 바로 그런 것 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 하실까 합니다. 여기서 안위는 시편23편에 나오는 것 같은 위로입니다. 이 시인이 얼마나 피곤하고 고달픈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었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고난이 깊으면 작은 위로에도 감동을 받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위안을 간절히 바랬는데 이 위안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값싸고 가치 없는 위안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직접적인 영적인 위안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시련과 어려움을 만나거나 내가 원하지 않는 고통 속에 있을 때 그것을 이기게 하는 힘은 환경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을 통해서 이기는 것은 하나님 없는 사람들도 늘 하는 것 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의 독특성은 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영적인 은혜의 힘으로 위로와 기쁨을 받음으로써 그렇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시련과 어려움들을 이기면서 살아가 는 그것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특권이요. 커다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시인은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였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오 는 직접적인 위로를 이 시인이 간절히 바랐던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 로 부터 오는 위로를 거두고 나면 섭섭한 마음이 들고 사람들이 주는 위로는 완전 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주는 위로는 완전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 들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강해 질수 있었던 이유는 원래 강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안 에서 남이 모르는 비밀스러운 위로와 격려를 받음으로써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발견 하였던 것 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지상의 자원으로만 살아가도 우리는 천상의 자원으로 살아가는 사람 들 이기 때문에 이 지상의 자원이 부족해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위로가 넘쳐서 견딜 수 없는 시련 들 을 극복 하며 살아 갈수 있는 힘 과 능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에게 큰 힘과 능력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주님의 위로와 격려가 필요 합니다. 이것을 많이 받는 사람들은 오래 참을 수 있고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고 모든 것을 바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이런 하나님의 위로를 이 시인 이 갈망하였는데 이 위로를 어떤 통로로 받기를 기대 하였는지를 보여 줍니다.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여기서 바라다는 단어는 “바타”라는 단어인데, put hope in (into) ∼에 소망을 두다는 뜻입니다. 주의말씀을 내 눈이 (마음의 눈이)주의 말씀에 소망에 두었습니다.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조금 내가 원하는 데로 된다고, 교만하고 조금 안된다고 낙심 하는 삶을 살면 우리의 삶엔 안정이 없고, 끊임없이 요동치게 마련입니다. 그게 어떻게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겠습니다. 이 시인은 마음의 눈으로 주님의 말씀을 바랬습니다. 물론 육신의 눈으로 율법을 읽는 것을 의미 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없다면 눈으로 율법을 읽는 것 이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그의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격려 할 때 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 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랑해 주실 때 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렇게 당신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끊임없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위로 와 은혜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그 시련의 길을 어떻게 지금처럼 걸어 올수 있었을까요?
(예화)어떤 때는 지난날 설교한 것 들을 생각해 볼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저, 나는 도구였을 뿐이고 하나님 당신이 필요한 것 들을 말씀 하셨구나! 다시 하라고 하면 내가 이 내용을 이렇게 질서 정연하게 말 할 수 있을까? 그러한 점에서 설교자는 설교 한다 할지라도 설교자는 말씀의 주인이 아닙니다. 가게에서 받아 나누어주는 유통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말씀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예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우리의 영혼의 위로를 얻고, 즐거움을 얻으려고 할 때 모든 영혼의 위기가 닥쳐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의 즐거움을 끊임없이 누려야합니다. 우리들이 교역자로써 복음사역을 위해 부름 받은 일꾼들로서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산다!, 주님을 꼭 붙들고 산다!" 는 말 이 무슨 의미 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사랑 하는 것이나 붙드는 것이나 붙들리는 것 이 나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런 말 이 성립이나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끊임없이 마음을 잠그고 그 말씀 속 에서 마음이 출렁거려 은혜를 받고 교훈을 받고 책망을 받고 바르게 하고 위로를 받고 하는 남이 알지 못하는 지성의신앙의 은혜작용들이 말씀 통하여 우리에게 일어 날 때 그 때에 우리가 위로를 얻어서 하나님 앞에 더욱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말씀을 바라기에 나는 피곤합니다. 지칩니다! 이런 뜻입니다. 우울한 이야기 같지만은 우리의 영혼은 육신의 눈하고 똑 같아서 한 가지 사물을 쳐다보고 있으면 그 분별력이나 감동들이 흐려지게 됩니다. 내 눈이 주님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합니다. 눈이 피곤하다 는 이야기도 되겠지만, 마음을 그렇게 하나님께 집중시키는 일이 우리의 본성에 어울리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방해 요인이 언제나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어느 한 순간 말씀의 은혜를 받고나면 그 말씀에 집중 하고 싶어도 잠시 집중 하고 나면 흐려지는 것 입니다. 성경을 펼칠 때는 생생했는데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생생하다가 시간이지나면 잠이 솔솔 옵니다. 내 맘이 잠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 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나의 본성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성경을 읽으면 덮고 싶고 기분을 전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입니다. 피곤하다 는 그것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 을 나의영혼이 아무 방해 없이 바라기에 적합 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오늘 이 시인은 시련을 계속 당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소망이 주님밖에 없다 말하지만 그때는 신앙이 있을 때 이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시련과 어려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 하지 못하도록 방해 하는 것입니다. 근심과 염려와 걱정들이 말입니다. 본문에서 연기 속에 가죽부대같이 되었습니다. 에서 가죽부대는 물 담는 통입니다. 물을 담아 허리에 차고, 어깨에 메어 다니며 물을 먹습니다. 너무 고생스럽게 다니다보니 연기 속에 있는 가죽 부대같이 가죽은 쭈글쭈글 해지고 시커먼 그을음에 싸인 것이 바로 자신의 외형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연기를 마시면 눈물이 납니다. 시련의 연기를 마셔서 쭈글쭈글해지고 시커먼 그을음이 난 가죽부대가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말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의 율례를 잊어버리지 아니 하였습니다. 율례, 규례라고 하는 것은 아주 구체적인 삶의 교훈들을 가리킵니다. 삶과 종교의 규례들 규칙들을 말합니다. 이 시인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시련 속에서 당신에게 만 위로를 구하는 사람들 가까이 계십니다. 힘들게 섬길 때 도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매 순간 도우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걸어 올수 있었고 그 위로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과 함께 주어 줍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에 위로를 주셔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