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게하는 말씀
“내가 주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하심이니이다”(시119:93)
녹취자: 문선미
시편에 보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혹은 법도를, 율례를 잊지 아니하오리니”라는 표현이 관용구적으로 여러 차례 등장을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말씀 하실 때에 가장 심한 책망 중에 하나가 ‘너희가 나를 잊었도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버렸다’라고 하는 것과 거의 동일합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살펴보면 계시의 빛깔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또 하나님이 언약 백성들에게 보여주시는 최고의 호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너희를 잊지 않겠다.’ 혹은 ‘내가 너희를 잊어버리지 않겠다.’하는 이런 말씀들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이 시인이 ‘내가 주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우리가 어느 정도 파악을 하게 되고 또 얼마나 중요한지도 우리들이 이해하게 됩니다.
그럼 도대체 잊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잊어버린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잊어버린다는 것에 대해서 ‘마음에서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러니까 잊었던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있었던 것이 사라지는 것이 바로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모체가 있을 때에는 이 모체가 여기에 있다가 사라지면 없어졌을 때에 우리는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있던 것이 없어질 때에는 있을 때에는 끼치던 영행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저 꽃은 조화입니다만 만약에 저게 실재 꽃이라고 하면 그 꽃이 작용을 하겠죠. 그래서 많은 향기를 우리에게 발해줄 것이고 빛을 받으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겠죠. 사라지면 저것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기억이 항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았다가 필요해서 우리가 불러내면, 그것이 기억의 밑바닥에서 떠올라 우리의 마음의 평안을 건드리면서 정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시인이 ‘나는 주의 법도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법도가 내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라지지 않게끔 하겠습니다.’ 그런 뜻입니다. 마음 깊은 곳 밑바닥에 뜬 물처럼 가라앉아 있다가 부르면 올라와서 ‘툭’ 하고 건드려 마음의 정동을 일으키고는 다시 내려가는 그런 기억들이 우리에게 많이 있잖아요? 그렇죠? 오늘아침에도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경을 읽다가 ‘아, 이 구절은 내가 옛날에 읽던 성경구절인데…….’ 하고 옛날 추억이 떠오르는 것 이런 것들은 가라앉았다가 떠오르는 거잖아요? 여기에서 시인이 ‘내가 주의 법도를 잊지 않겠나이다.’ 라는 얘기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건 우리 모든 기억과 우리가 감각으로 겪는 모든 정신적인 경험들이 다 거기에 해당이 되요. 잊지 않는 건 그런 뜻이 아니라, 기억의 표면에 있어서 부르면 이게 올라와서 마음의 막을 ‘탁’ 건드리게 될 때 정동이 일어나는데 이게 계속 떠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게 잊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너를 잊지 않겠다.’ ‘강인석을 기억하겠다.’ 그럴 때 기억하고 집어넣어서 ‘오, 그래? 그런 사람이 있었는가?’불러보니 ‘아 있네? 그대가 강인석 목사야?’ 이런 식의 기억은 기억하는 게 아닙니다. 항상 마음속에 마음의 막에 작용하는 것으로 남아서 만나면 기쁘고 헤어지면 그립고 행복하고 그런 것들이 마음에서 계속 움직이는 상태입니다 그건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주의 법도를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제 얘기할 수 있겠죠? ‘아, 말씀의 이치가 그렇게 되는구나. 역시 성경은 이성과 조화를 이루는구나.’ 하고는 마치 돌을 던지면 돌이 입수할 때에는 물 표면을 건드리지만 그 외에는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서 다시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잠재의식에 기억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제는 오늘날과 같이 신앙의 영적인 경험들 ,신앙에 있어서 은혜의 체험들의 요소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는 굉장히 중시되어져야 할 문제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바람직한 정동생활은 출렁거리되 이 출렁거리는 근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런 종류의 감정주의와 충동주의가 아니라 출렁거리되 그 출렁거리는 정동의 한 복판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서, 그 말씀으로 출렁거리는 정동이 우리를 그 말씀으로 데려가게 만드는, 그래서 그대로 믿게 만들고, 정동 속에서 감격하고, 그대로 살게 만들고, 그래서 정동 속에서 의지를 결단하게 하는 그런 방식의 생활이어야 된다 이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주의의 핵심입니다. 우리들이 18세기 경건주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경건한 삶의 핵심이라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출렁거리며 정동적인 작용이 일어나는가, 그래서 믿어야 할 바를 정동 속에서 깊이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 바를 정동 속에서 결단하는 거. 그것이 우리의 의식의 표면 속에 항상 출렁거리며 살아있는 이것이 진정한 살아있는 복음주의란 말입니다. 그게 바로 경건의 비밀입니다. 그런 것들이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무시되어 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게 그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매일 그런 출렁거리는 정동의 작용이 일어나고 눈물을 쏟으며 한없는 기쁨으로 감격을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안 그럴 때가 많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래도 계속 안 그러면 복음주의자가 될 수가 없죠.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이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이 ‘내가 잊지 아니한다’라는 말이 그런 의미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부사 ‘영원히’ ‘앋 올람’이란 말을 생각해보란 얘기죠. 원래 그 뜻은 Age to age 입니다. 시대와 시대를 쭉 이어가면서 ‘영원히 내가 잊지 아니하겠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이런 것들을 하나의 느낌 없이 전달되는 상투적인 표현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결국은 이런 사랑의 정동은 우리를 영원에 대한 앎으로 데려가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로 ‘사랑은 영원을 향하여 들어가는 유일한 스타게이트’입니다. 영화의 스타게이트처럼 그 문을 열면 시간과 공간이 완전히 다른 세계로 빨려들어 가지 않습니까? 사랑이 그 영원을 아는 유일한 스타게이트입니다 그 문을 열면 완전히 시간과 공간이 다른 세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히’라고 노래하지 않습니까. 영원히 잊지 아니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이 고백하는 게 뭐냐 하면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 하심이니 이다.’ 이게 지금 시편 119편은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에 막 감격하고 있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의 영광의 장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깨끗한 모시바지저고리를 입고 풀질을 해서 깨끗하게 다려서 반짝반짝하고, 숲이 아주 우거지고, 정자가 있고, 깨끗한 마루에 아주 깨끗한 돗자리가 깔리고 신선 같은 사람이 거기에 앉아서 깨끗한 나무책상을 좋고 앉아서 성경을 묵상하는 그런 그림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신선처럼 감격하는 그런 게 아닙니다. 말하자면 철모 쓰고 전투복을 입어서 너덜너덜 떨어지고 군데 군데 핏자국이 있고 얼굴은 흙먼지를 뒤집어 쓴 가운데에 그 성경을 읽으면서 감동하며 눈물 흘리고 있는 그런 그림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숲속과 같은 조용한 곳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람들의 아비규환이 들리고 총알이 날아가고 하는 포연이 가득한 전쟁터 같은데서 이 말씀에 감격하고 있는 그런 그림을 보여주는 거란 말입니다. 시인은 군인이었어요. 그러면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전쟁터에서 얼마나 생생하게 느꼈겠어요? 그렇죠?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죽음을 보면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사실은 삶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기를 포기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사는 것을 죽는 것만큼 무서워하기 때문에 사실은 죽음을 택하는 것입니다. 역설적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2교구에서 나한테 편지를 이만큼 써줬어요. 읽는 것도 보통 노동이 아닌데 써준 성의를 생각해서 읽었는데 어떤 자매가 특이한 편지를 썼어요. 길게는 안 썼는데 ‘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열린 교회를 온지 9년 되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은혜는 많이 받았는데요. 환경은 나아지는 게 없데요. 그런데 신기하게 하나님은 나에게 놀라운 힘을 주십니다. 생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잘 믿을 수 있게 만들어주십니다.’
내가 시편 23편 1절 옛날에 하면서 다 한 얘기거든요. 오늘 은혜 받고 집에 돌아간다고 해서 핍박하던 남편이 울면서 기다리고 있다든지, 공부 안하고 속 썩이던 애들이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손들고 우리를 기다리는 거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기실 수 있는 힘을 하나님이 주시는 거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 생명입니다 생명의 힘입니다.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고, 주 말씀 따라서 용감하게 하소서.
용기라고 하는 것은 가득 차 있는 생명의 분출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지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용기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살게 하시는 방법이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펼치면 끝이 없겠지만 두 가지만 얘기하자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이 살게 하실까요?
첫째는 뭐냐 하면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법도를 사랑하고 이것이 내 마음에 막 영향을 주면 선명한 태도, 지혜로운 행동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환경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예화) 어제 강남해 집사를 만났는데 우리교회 교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승진을 해서 사회교육원 원장이 돼서 여러 교수들이 그 자리에 되게 가고 싶어 했는데. 졸지에 높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거느리는 사람도 많고 직원들도 많고 그래요. 그런데 학교와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 와서 인사를 하는데 쇼핑백을 하나 두고 가면서 ‘원장님, 작은 선물 하나 놓고 갑니다.’ 하더래요. 바빠서 안 열어보다가 가방을 열어보니 백이 하나 들었는데 자기가 그걸 사줬다는 걸 표시가기 위해 가격표를 안 떼었더래요. 근데 오백 팔십사 만 원이더래요. 탁 빼보니까 정말 예쁘더래요. 안 예쁠 리가 없죠. 어깨에 한번 매어보고 거울을 본 뒤 바로 가방에 넣어 기사에게 ‘도로 갖다 줘라’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법도가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있으면 그 쓸모없는 탐욕 –소위 얘기하는 지혜가 흐려져서 스스로 그 어리석음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그런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원치 않음에 개입되고 그렇게 삶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법도가 살아있으면 거기서 피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렇지 않겠어요?
(예화) 여러분, 여기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마찬가지인데, 절대, 공짜 좋아하지 마세요. 일단 누가 공짜를 주면 의심해야 되요. 난 싫다. 아주 싫다 라는 걸로 해야 돼요. 사은품 같은 것 도 너무 밝히지 마세요. 체육대회 경품 같은 것 도 난 반대입니다 그걸 왜 해요? 이번에 우리 노회 어느 교회에서 보통 시험에 든 게 아닙니다. 발칵 뒤집혔어요. 무슨 큰 비리가 있느냐 하면 그런 거 없어요. 그저 마음이 틀어진 어느 장로님 한분이 온갖 투서를 만들어서 교회에 막 뿌리는 것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뭔지 알아요? 일부 목사님들 잘 들어요. 그게 뭐냐 하면 심방 때마다 교인들이 목사님에게 돈을 줬다 이것입니다 우리교회는 그런 거 없죠? 없으리라 믿어요. 여러분은. 절대로 그러면 안 돼요. 자 그럼 그대들이 심방을 갔다고 칩시다. 예배를 드리는데 봉투를 내왔어요. 여기에 쓰여 있어요. 심방헌금 – 심방을 감사합니다. 여성 2교구 김 말자. 이렇게 줬으면 이게 무슨 용입니다? 어느 목사가 이걸 in my pocket 하겠어요? 근데 예배드리고 가는데 ‘목사님, 이거 필요한데 쓰십시오. 하고 줬으면 이건 뭐에요? 개인적으로 쓰라고 준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걸 30년 치를 다 돈으로 계산을 한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1억 4천만 원을 떼먹었다고 고발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뭐냐 하면 그런 관행을 교회에서 내버려 둔 것 자체가 잘못된 거라는 것입니다. 그걸 왜 받아요? 그게 나중에 독이 되는 것입니다. 그걸 제일 많이 주던 사람이 고발을 한 것입니다. 그걸 왜 받아요? 80년대에 한국교회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어요. 여행사를 하는 어느 집사님이 전화를 걸어서 옛날에는 10,15분씩 쪼개서 방송설교가 나갔었는데 ‘목사님, 저는 무슨 여행사 대표인데 무슨 교회 다니는 집사입니다. 목사님의 방송설교에서 너무 은혜를 받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여행사가 굉장히 커졌습니다. 창립 10주년을 맞이하여 존경할 만한 목사님 몇 분을 성지 순례를 시켜드리려 하는데 목사님이 선정되셨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라고 하면 싫어하겠어요? 이 목사, 싫어하겠어요? 좋아하겠죠? 그러다 찾아오는 것입니다. 비행기 표에 여권까지 만들어서 30명이 다 간 것입니다. 최고의 호텔. (여기에서 말씀이 끊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