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lms 31
목 차
나를 건지시는 주의 의(시 31:1-2) 1
하나님께 드리는 탄원(시 31:3-4) 5
시편56편 강해 1
시편31편 강해 1
시편31편 강해 1
나를 건지시는 주의 의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시 31:1-2)
본문해설
시편 31편은 탄원시입니다. 이 시는 역사적으로 마틴 루터가 복음을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시입니다. 특별히 1절을 통해서입니다. 시인은 굉장히 곤고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때 시인이 고백하는 바가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그 앞에 보태는 말이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입니다. 여기에서 주의 의로 건진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인간의 의가 있고 하나님의 의가 있는데, 인간의 의는 하나님이 계시해주신 법도에 맞게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의입니다. 그것 없이 제멋대로 사는 것이 불의입니다.
하나님의 의
그러면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신데 당신이 만든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도전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죄 때문입니다. 죄라는 것 자체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도전을 합니다. 하나님의 고유한 거룩하심은 인간에 의해 도전받거나 훼방 받을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세상에 주신 거룩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것을 공장에서 만들 때는 가구였는데, 하나님을 경배하는데 바쳐지니까 성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때문에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거룩한 가구 위에서 요리를 하거나 화투를 친다면 이 가구에 하나님이 주신 거룩함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구 자체에 거룩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가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이것을 폐기처분이 해서 버렸습니다. 고물상에 있는 물건 위에서 요리를 하거나 화투를 친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이미 폐기처분 되어 쓰레기 속에 묻혀 있는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 자체는 도전될 수 없지만, 인간들이 하나님이 부여하신 이 땅에서의 거룩함에 간접적으로 도전함으로서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 같은 반역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로부터 하나님 자신이 거룩함을 지키시는 성품이 바로 의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에 도전하고 맞서면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의롭다는 사실은 두렵고 떨리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 편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함에 도전 하는 사람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면,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사실이 그에게 무한한 위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의로 건지소서˛
시인이 그런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 편에 있는데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공격을 받으면서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큰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그 때 시인은 자신이 그런 고통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건져주셔야 된다는 기도를 합니다.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이것 자체가 “내가 주님의 통치 아래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주님의 편입니다. 악한 것들이 나에게 고통을 주고 내가 이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주의 의로 나를 건져 주소서. 그러면 나에게 큰 복이 되겠나이다.” 이런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에 힘이시며 ♬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라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 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뜻대로 행하시는 것이 큰 위로요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내 뜻을 모두 포기하고 주님의 뜻에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친구가 나의 친구이고, 하나님의 원수가 자신의 원수이니 주님의 마음대로 행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이것은 또한 자기 안에 이런 의로움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없다기보다는 나에게는 하나님이 구원해주실 정도의 의는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없으니까 그분을 깊이 의지하면서 주님께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데도 하나님이 당신 자신을 위해 일 하시는 열심을 보면 나는 정말 부패하고 게으른 인간일 뿐입니다. 또 하나님을 깊이 바라보면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도 온전해지기를 애쓰지만 완전하신 하나님에 비하면 불결하기 짝이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바라보면서 “주의 의로 나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피하는 자들의 산성이신 하나님
그러면서 시인은 2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시인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매달리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위’라는 것은 전쟁에서 숨을 수 있는 요새를 의미합니다. 무엇에 의해서도 해를 당하지 않는 안전함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피하는 사람들에게 바위가 되시고 신성이 되십니다.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마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붙들지 아니하시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아름다음을 보면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또 한편으로는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고 주님께 온전히 매달리는 것이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어떠한 위기와 곤고하고 힘든 일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당신을 의지하면서 살게 만드십니다. 여러분도 이런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탄원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저희가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어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시 31:3-4)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
이 당시는 포탄이나 총으로 전쟁을 하는 시대가 아니라 창이나 칼, 병거로 전쟁을 하던 시대였습니다.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는 가장 훌륭한 장소가 산성이었습니다. 접근하기 어려운 깎아 지르는 듯한 절벽이나 가파른 산위에서 성을 쌓고 거기에서 항쟁을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한사람이 수비를 하면 백사람이 공격을 해도 쉽지 않은 지형입니다. 여기에 성을 짓고 항쟁하는 것입니다. 도시가 설 때는 이런 전술적인 고려를 제일 먼저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인은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라고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이 산성이시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 한, 외부의 어떤 공격을 받아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을 정복하고자 하는 외부의 공격이나 어떠한 시도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전하는 적들을 향해 우리의 보호할 산성이요 바위가 되어 주신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정복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기만 하면 보호와 은혜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그런 보호와 은혜의 혜택을 하나님 앞에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라고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 할 때 갈 길을 가르쳐 주고, 힘이 없어서 그 길을 가지 못할 때 실제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은혜를 간절히 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산다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한 삶을 말합니다. 많은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도 하지만, 산성이신 하나님 안에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본문을 보면 시인이 하나님 앞에 제일 먼저 기도하고 있는 것은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정복할 수 없듯이, 내가 주님 안에 있는 한 누구에 의해서도 정복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인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원수를 두려워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려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숙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 주님 앞에서 살아가도록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물에서 빼어내소서˛
시인은 “저희가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어내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원수들이 시인에게 고통을 주는 방법이 그물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그물은 고기를 잡는 데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짐승을 잡거나 특히 새를 잡는데 사용했습니다. 새가 날아가는 곳에 가느다란 실을 그물처럼 만들어서 넓게 펼쳐 놓습니다. 그러면 새가 날아가다 탁 걸립니다. 걸리면 목만 빠져 나갔거나 몸의 3분의 1쯤만 빠져 나간 상태에서 더 이상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뒤로 빼려고 하면 깃털이 거꾸로 걸려서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새는 한번 그물에 걸리면 자신의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올무, 그물, 웅덩이와 같은 비유는 빠질 때는 자신의 힘으로 빠지지만 거기서 건짐을 받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안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시인은 깊은 고통 속에서 건져냄을 받지 못해 아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론과 적용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끊임없이 당신의 품으로 불러들이십니다. 하나님은 산성이시며 피할 바위이시기 때문에 그분 안에 있기만 하면 누구도 하나님을 반하여 그 사람을 넘어뜨리거나 해치거나 쓰러뜨릴 수 없습니다. 시인은 주님을 의지하면서 간절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은 똑같은 일을 만나도 우리가 어떤 마음의 상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처하게 되는 상황이 각각 다른 것입니다. 똑같이 어려운 상황을 만났는데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살아있으면 그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꼭 붙들고 의지하며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올바르지 못하면 어려움을 만날 때 마음이 굳어지고 하나님을 향한 반감이 생겨서 시련으로 자신을 다루시는 하나님 앞에 반항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자의 사람에게는 고난이 십자가가 되어서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고 그분 앞에 서게 하는 기회가 되지만, 후자의 사람에게 고난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회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떠나가고 마음이 굳어지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주셔도 신앙이 살아 있을 때 그것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 우리의 신앙이 살아 있지 않으면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셔도 그것을 좋은 것으로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매순간 주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56편 강해 1
시편31편 강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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