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세우소서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시119:38)
저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유별나게 의협심이 뛰어나다든지 또 이렇게 애국 애족정신이 투철하다든지 뭐 그런 사람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은 별로 없습니다. 애국가를 들으면서 눈물 흘린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찬송가는 부르면서 더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읽으면서 제게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국사공부를 하다보면 아무 아무개는 당대에 유학자였고, 문장이 뛰어났고, 학문에 도통했고, 쭉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역사를 보면 이렇게 간신배 같은 일을 했던 사람들 중에는 대학자들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럴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은 옛날 역사에만 있나? 그랬더니 근대사를 이렇게 보아도 학문에 전진하고 그랬으면 좋았을 사람들이 이 정치계를 넘나들면서 물론 기여하신 분들도 많지만, 넘나들면서 결국은 그때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지나가면 그 사람이 그러지 않았다면 훨씬 더 존경을 받았을 사람들이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나라의 어떤 역사를 근본 적으로 왜곡된 방향으로 가게 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말입니다. 본인들이야 뭐 할 말이 많았겠지만 유신시대 때 헌법을 만들었던 그 유명한 학자들이라든지 이런 사람들 그런 일을 안 했으면 지금 훨씬 더 평가가 좋았겠다. 그런 반성들을 사람들이 함께 하잖아요. 그죠.
그 왜 그렇게 학문 또 인간의 사는 위치 그런 것을 쭉 배우는 것 따로 실제로 살아가는 삶 따로 왜 이렇게 될까? 그 사람 사람들 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그 학문을 존경하면 배었을 텐데 왜 그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간신배 비슷하게 그렇게 되었을까? 그런 게 어려서부터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습니다. 뭐 지금도 다 풀린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 것이었습니다.
왜 뜬금없이 그 이야기를 하느냐? 이것입니다. 도대체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입니다. 많이 신앙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거의 안 할 수도 있고, 거의 아는 것이 매우 적은데도 신앙생활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명한 기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신앙의 본질적인 것이 그러면 무엇이냐? 이것입니다. 신앙에 물론 지식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그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여러분들이 아마 잠깐만 우리 열린교회 다닌다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 아닙니까? 그 너무 지식 지식해도 안 된다. 신앙이라는 것은 그런 것만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뭔가 좀 들은 게 많은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해야 폼이 나는 것이지 아무 것도 없는데 그렇게 신앙은 지식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 말 빨이 섭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뭐 전문가는 아니지만 불교도 마찬가지라고 그럽니다. 뭐 이렇게 불교의 도리에 대해서 많이 아는 사람이어야지만 그거 가지고 안 되고 이 기독교 용어로 말하자면 각성을 하고 거기 용어로 말하자면 이 득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지 말이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깡통만 들은 사람들이 그 다 지식은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무슨 말이 되냐? 이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입니다. 지식을 쌓는 것이냐? 그러면 우리 같이 글이 짧은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해야지만 신앙생활을 하겠느냐? 그 어떤 할머니한테 전도를 하니까 그럽니다. 우리는 틀렸어. 예수 믿기 틀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글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글하고 아무 상관이 없다. 상관이 사실은 없는 게 아닙니다. 있습니다. 그렇지만 상관이 많다고 이야기하면 교회 나오겠습니까? 그러지 않습니까? 글 몰라도 괜찮다고...... 저희 할머니도 별로 모르셨습니다. 나중에는 많이 터득하셨습니다. 뭘 보고 터득하셨느냐 하면 그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보면서 한글을 배웠습니다. 걸리버 여행기가 너무 재미있으니까 돋보기를 쓰고 가가겨겨 이렇게 하다가 터득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뭐 잘 그렇게...... 옛날 글자 쓰시고 그러셨습니다. 그런데도 아주 훌륭하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뭐냐 이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러나 신앙의 핵심이 뭐냐 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글 못 배우고 영어를 못 배운 사람들이 효도를 못합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대학 나오고 대학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공부를 하고도 효도를 안 하는 불효막심한 자식이 있는가 하면 초등학교도 못 나오고 소달구지 끌고 다니면서 논 갈고 밭 갈고 그렇게 한해 씨 뿌려서 한해 먹고 사는 그러한 가난한 농군의 생활을 하면서도 부모를 훌륭하게 공경하고 효도하는 자식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이 알고도 전혀 핵심적인 신앙생활에서 빗나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알고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공경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그게 신앙이라는 말입니다. 그게 바로 중심적이고 핵심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그리고 선지서에 나온 모든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교훈을 하나로 꽉 짜면 그게 뭐냐 하면 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게 그 말씀입니다.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해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도 이와 같으니 이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 강령이라는 말이 히랍어로 “크라마타”입니다. 벽에 박힌 못이라는 말입니다. 못에다가 율법도 걸고, 선지서도 걸고, 이게 다 걸리는 것입니다. 이게 없으면 다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게 없으면 무슨 교훈을 배운다고 할지라도 하나도 걸리지도 않고 다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무슨 교훈이든지 간에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 계명에 다 걸린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것이며, 그리고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 보다 더 영광을 돌릴 것이며, 그리고 그 사랑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이며, 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며, 내 몸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또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며 각자 살아가고 있는 삶의 상황에서 그 말씀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 것이며,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터득하고 배워 나가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탄탄히 공부해 나아가야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계명을 충실하게 지킬 수 있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공경하고 경외하고자 하는 이 기본적인 공경의 동기, 경외의 동기에서 비롯된 모든 신앙적인 탐구가 의미 있는 것이지 이 기초가 잘려 나가버리면 그건 하나의 종교적인 호기심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식은 많이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게 나으냐? 지식은 거의 없지만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는 게 나으냐? 이건 질문 자체가 성립을 안 하는 것입니다. 왜 성립을 안 하냐 하면 그 두 가지가 그렇게 양립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지식이 참된 지식이면,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감화를 불러일으키고 그 감화가 불러 일으켜지기 위해서는 참된 하나님의 말씀의 회복이 없이는 그런 것들이 불러 일으켜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걸 여러분들이 기억을 하셔야 됩니다. 분명한 것입니다.
이렇게 겉으로 보이는 어떤 그 헌신적인 삶 그것이 내면의 뿌리가 없이 흘러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종종 있습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그런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가장 예민해 하는 부분이 뭐냐 하면 여러 가지 많이 있겠지만 물질입니다. 돈 하면 얼마나 사람들이 벌벌 떨고 뭐 난리 나지 않습니까? 그렇게 아주 자기이익에 대해서 예민한 그런 시대입니다. 가계가 쭉 있는데 한 가게에서 10원만 비싸게 받아보세요. 그러면 다 딴 가계로 갑니다. 그게 또 경제생활의 원칙입니다. 그것 사실이잖아요.그런데 가끔 그런 합리적인 동기에 의해서만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화) 저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데 직장 다닐 때니 20년이 훨씬 전에 결혼하기 훨씬 전에 그 때 같은 직장에 낚시를 아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 물고기하고 결혼해야 될 사람이 사람하고 결혼 했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눈 감으면 그냥 고기가 눈에 선하답니다. 주님을 그렇게 눈에 그리면 참 천국을 백번 갔을 텐데, 그런데 자기 동네 낚시 클럽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낚시 클럽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낚시회 운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니까 한사람이 그러지 말고 내가 백만 원을 내 놓을 테니까 이 돈을 가지고 다시 낚시회 조직을 일으켜 보라고 하더랍니다. 25년 전에 백만 원이면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하여튼 공무원 월급 한 4~5만 원쯤 됐을까? 5만원은 좀 넘었을 래나? 하여튼 상상할 수 없는 큰돈이었습니다. 정말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지금 저한테 1억을 갖다 놓아도 그렇게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그것을 주는 대가로 무엇을 받나? 아무것도 받는 것이 없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돈 내고 회장 되냐고 했더니 그것도 아니랍니다. 그럼 왜? 자기가 낚시를 워낙 좋아하니까. 우리 같은 사람은 꿈도 못 꿔 보는, 제가 백만원 가지고 장가를 들었으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백만 원이 얼마나 큰 돈 인가? 뭐 실감이 잘 안 나시는가봅니다. 엄청나게 큰돈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이 큰돈이었습니다. 은행에 가서 대부를 받을 때 그저 십 만원 대부 받으러 가고, 이십 만원 대부 받으려고 보증서가지고 가고 그러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백만 원은 얼마나 큰돈인지 생각이 되냐 구요. 지금 뭐 다 따지면 지금 제 계산으로는 1억보다 더 큰 것 같습니다. 그걸 내놓는 것입니다. 왜? 무슨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런 것 아닙니다. 그냥 자기가 좋으니까 그냥 내 놓는 것입니다.
신앙의 영역에서도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뿌리가 없는 우발적인 섬김 같은 것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나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뭐 나쁠 게 뭐가 있습니까? ‘아! 오늘은 아침 일찍 나가서 내가 한번 교회마당을 깨끗이 썰어야 되겠다.’ 뭐 나쁠 게 뭐가 있습니까? 하십시오. 아무도 말릴 사람 없습니다. ‘내일 새벽에 새벽 기도 나가는데 이 사람들 새벽기도 끝나고 직장 갈 때 얼마나 배고플까? 내가 김밥을 한 보따리 싸가지고 와서 한 줄씩 나누어 주어야 되겠다.’ 하십시오. 아무도 말리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뭔가 하면 그런 것들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그 뿌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에 대한 깊은 사랑의 동기에서 울어 나오는 것이 야지. 나를 과시하고 내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좀 봐 주겠지. 뭐 이런 식의 어떤 그 자기과시에서 비롯되는 것은 신앙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여러 많은 지식들, 그리고 성경에 대한 깨달음, 이런 것들을 통해서 집처럼 지어져 가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뭔가 하면 이 중심에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공경의 정신 그것이 없는 지식이나, 지식이 없는 공경이나 이런 것들은 존재할 수도 없지만 그러나 굳이 억지를 부려서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거의 가치가 없는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들이 빠지기 쉬운 가장 커다란 두 오류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전혀 하나님을 향한 감격이나 영혼의 소생 같은 것들은 없이 그냥 꾸준히 뭔가를 배우면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 나가는 것입니다. 학교의 학년 올라가듯이. 이런 것들도 잘못된 신앙입니다. 또 반대로 아무것도 아는 것은 없이 항상 마음에 불 질러 줄 사람들만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오늘 시인이 경험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주를 경외케 하는 말씀을 종에게 세워 주시옵소서. 여기서 우리들은 뭐냐 그러냐 하면 시인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게 뭡니까? 내가 어떻게 하면 좋으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짜 같은 직업에 열사람도 같이 종사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다 다른 직업에. 뭐 삼만 오천 가지나 된다고 하니까 직업이. 그냥 다 다른 직업에 수많은 일에 다양하게 종사하면서 삽니다. 어떤 사람은 한 달 일하고 수억을 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어라 하고 한 달을 노력했는데 빚이나 지고, 채권자들에게 쫓겨 다녀야 하는 잘 풀리지 않는 사업가도 있고, 주인은 수십억을 벌어주면서 자기는 겨우 돈 백만원 타 자지고 오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하는 그러한 셀러리맨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모두 인생을 살아가는 겉모습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무엇을 하고 살든지 간에 인생에 있어서 길이 남는 핵심적인 것은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공경하고 경외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고 할 것 같으면 좋은 직업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들 꿈지럭 거리고 편하게 벌어 먹고 사는 것이고, 좀 덜 배우고 고달프게 종사하는 사람들은 품 팔아서 그냥 힘들게 벌어서 먹고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 차이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들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동안에는 대단한 것이 되지만, 그러나 우리들이 이 세상을 일단 떠나고 나면 아무른 의무가 없는 것들입니다. 문제는 우리들이 이 세상도 지나가고, 정욕도 지난가고, 우리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모두 지나 갑니다. 그런데 남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우리들이 정말 주님을 경외하고 산 삶이었는가?
어떤 사람들은 목사나,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면 직접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지만 자기가 이렇게 직업에 종사하거나, 또 학교에서 또 뭐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사업을 하는 것이나,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삶 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일생을 다 살고 난 다음에 여기서 무슨 말씀을 전하고 어떻게 여러분들을 섬겼는지를 가지고 평가를 받는다고 할 것 같으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 활동이나 아니면 사업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렸는지를 가지고 각자 하나님 앞에 판단을 받는 것입니다. 설마 사업을 하라고 부른 사람들에게 너 왜 목사일 안 했느냐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다그치시지는 않을 것이고, 저 같은 사람 불러서 돈 안 벌고 도대체 그동안에 뭐 했냐고 주님이 그러시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각자 불러 주신 자리가 있으니까.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전부 다 목사만 되겠느냐 이 말입니다. 목사는 가끔가다 나와야 합니다. 한 수백 명에 하나씩 . 그래도 많잖아요. 우리 교회에도 목사가 두 사람 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두 사람가지고 안 되겠다. 한 삼십 명은 돼야지. 그렇게 생각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에.
그러니까 각자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럼 문제는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을 진심으로 공경하는 정신이 여러분 출근하게 하고, 주님을 정말 공경하게 하는 정신이 직장생활을 정직하게 하게하고, 주님을 진심으로 공경하는 정신이 주께 하듯이 여러분들의 고용자에게 하고,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일류의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 자신의 학문을 연구하고, 그러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리고 나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고,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이 삶이 액면 그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군인을 한다. 전쟁을 한다. 그러면 총을 쏘는 군인은 미군들의 경우에 일곱 명의 군인이 있으면 한명이 나가서 총을 쏜다고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일곱 명이 모두 전쟁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의 임무를 다해가니까 필드에서 전쟁이 치려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전쟁이 치려지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역시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그 삶의 현장에서 가끔 뛰쳐나와서 하나님을 섬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거기서 잘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기업을 경영한다고 하면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업을 해서 돈을 너무 많이 벌어 가지고 혼자 가지려고 그런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죄입니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 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오히려 여러분들은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돈 많이 벌어서 돈 다 벌어서 남 좀 주자. 그런 생각하고, 그래서 여기서 사업을 이렇게 잘 해서 우리 종업원들이 직장 다니는 보람을 느끼게 하자. 그렇게 하고 난 거기서 벌어먹고 그저 어느 정도 인간적인 삶을 누리면 되지 않느냐 이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니 그럼 그 많은 자본을 들이고, 뼈 빠지게 고생을 하고 망하면 혼자 다 책임을 지는데 그 무슨 재미로 합니까? 무슨 재미는요. 하나님 섬기는 재미로 사는 것입니다. 맨 날 돈만 벌어 먹고 사는 사업가에게는 하나님 섬기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미친 듯이 돈 벌려고 돈이라고 그러면 대기업에서 이 쑤시게 까지 만들어 내고 그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식의 사고를 버려야 됩니다. 그래서 이제 가치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여러분들이 만약에 학교에서 생활을 한다. 그러면 부지런히 공부하십시오. 연구하고, 학생들을 만나서 인격적으로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전도도 하고, 그리고 신앙도 바르게 하고, 그래야 되지 않습니까? 요즈음은 말이죠. 대학교수들이 전부 텔레비전에 나와 가지고 돌아다니고 그러는데 그런데 저는 그 진짜 꼴불견입니다. 그러고 언제 공부 하냐는 것입니다. 가끔 나오는 것은 괜찮습니다. 일 년에 한번 정도씩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뭐 본업이 텔렌트인지 교수인지 모릅니다. 그 맨 날 보따리 싸 놓고 자기는 맨 날 그런데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깡통 되기 십상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보래 가지고 있는데 투철하게 충성해야 됩니다. 제가 목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 노릇은 잘 못하지만 조기 축구는 잘 한다고 그러면 여러분들이 인증해 주겠느냐 말입니다. 이 방배동 대표라 그러면 인증해 주겠습니까? 우리 목사님은 목회는 못해도 조기 축구 잘한다고 그러면 인증해 주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건 인증해 주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거기서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줘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랬고, 다니엘이 그러잖아요. 여호와의 신이 저와 같이 함께 한 사람을 우리가 어디에서 구하겠느냐? 그랬습니다. 그 뭐할 때입니다. 국무총리로서 일할 때입니다. 뭐 국무총리 명함 달고 가서 빌리그레함처럼 전도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나라일 봤습니다. 그것도 남의 나라일. 월급 받으면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 섬기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가정주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열심히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는 것을 허무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이 다 허무한 것입니다. 저는 지금 누구한테 설교하고 있습니까? 얼마 없으면 다 죽을 사람한테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허무합니까? 더군다나 잘 들을 경우에는 모르지만 안 들을 경우에는 더 허무하잖아요. 조는 사람 있으면 더 허무하죠. 그런 것 생각하면 다 허무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하느냐 이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 각자 자기가 부르심 받은 자리가 있어서 거기에서 우리는 각자작자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삶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냥 자기 직업에 충실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여러분들이 보람을 못 느끼고 실패하면, 둘 중에 하나입니다. 신앙이 실패 했던가 아니면 하나님이 거기 두시지 않고 다른 데로 뭔가 소명을 두셔서 보내려고 하시든가 둘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경외의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 와서 그냥 예배드릴 때나 발동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삶에서 뭘 먹을 때나, 마실 때나, 직업 활동을 할 때나, 무엇을 할 때나 주님을 깊이 사랑하는 경외의 정신이 그게 우리의 모든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자부심은 아! 오늘도 내가 또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오늘도 하나님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나를 보고 얼마나 기뻐 하셨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면서 섬기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주일을 그렇게 섬기면서 살다가 주일날 와서 다시 하나님의 은혜에 깊은 영혼의 교감이 있는 그러한 하나님과의 교감을 누리고 그 힘을 가지고 가스 충전소에서 잔뜩 충전을 하고 다시 달리는 자동차처럼 그렇게 다시 세상에 나가서 그래서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교회에서는 어떻게. 깊이 부흥을 받고 세상에 나가서는 그것을 토해 놓으면서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 입만 열면 욕에다가 바가지입니다. 요새는 대학교수들도 그렇게 욕을 잘 하드군요. 입만 열면 뭐 xx하고 막 쏟아져 나옵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욕을 쏟아내는 세상에서 내가 교회 와서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신으로 채워진 다음에 세상에 나가서 입을 열면 고통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그리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그리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그렇게 줄 수 있는 그러한 말들을 막 반대로 쏟아내어서 그렇게 더러워진 세상을 정화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게 바로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 될 삶이 아니냐? 껄렁껄렁한 사람들에 의해서 잔뜩 높아진 부패지수가 있는 곳에 예수 믿는 사람을 갖다가 쫙 쏟아 부으면 부패가 지수가 쭉 떨어지는 그런 맛에 하나님 자꾸 우리보고 전도하라고 그러는 것 아닙니까? 그것 아닙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경외의 정신이 자신의 전 삶의 영역에 배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하면 그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정신 이런 것들은 누가 뭐 머리를 뚫어서 부어 줄 주 있는 것들도 아니고, 뭐 그렇게 따지면 신학을 하는 사람이 가장 신앙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그렇습니다. 요즈음은 아주 헤 깔리는 세상입니다. 그러니까 그 경외의 정신은 그런 어떤 수학적인 방식에 의해서 우리에게 부어지고 뭐 이렇게 교회에서 들어 가지고 가고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건 오늘 아침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은 순결하고 그리고 거룩한 영이십니다. 그 영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적인 영을 통해서만 우리들이 정말 근본적으로 우리의 신앙과 삶의 동기가 새로워 질 수 있는 변화의 원동력들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가리켜서 영적인 회복이라고 그러고 소생이라고 말하고 그저 우리들이 여태까지 들어 온 말로 은혜를 받는다. 그런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오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주를 경외케 하는. 그러니까 이 시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심은 주님을 경외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 시인이 직업이 무엇이었습니까? 다윗처럼 많은 직업을 전전해 본 사람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왕도 해 봤지만 목동생활도 해 봤잖아요. 시인이어서 노래도 지어서 불렀지만 칼 들고 전쟁에도 나갔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또 선지자 노릇도 해 봤지만 왕 노릇도 해 봤지만 또 지명수배에도 수배가 되어 가지고 그 수많은 나라들을 도망 다니면서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본적도 있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지금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하면서 주를 경외하는 삶. 여기에 대해서 꿈꾸고 있을 때 무슨 직업을 그리고 있었겠습니까?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런데 다윗이 다윗이라고 여겨지는데 다윗이 주를 경외하는 삶 이랬을 때 그래도 주를 경외하는 것 그러면 그래도 시편을 노래할 때 그 때가 주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왕이 되었느냐? 목동의 생활을 계속 하고 있느냐? 쫓겨 나니느냐? 한 나라의 제왕이 되었느냐?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느냐? 시를 짓고 있느냐? 악기를 타고 있느냐? 칼을 휘 두려고 있느냐? 적군의 목을 치고 있느냐? 이러한 외면적으로 드려난 삶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아니라 이것입니다. 그건 모든 삶의 표면 그 깊은 속에 흐르고 있는 삶의 그 동기 자체입니다. 그런 삶을 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삶의 동기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일과 속된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일도 밥 벌어 먹으려고 하면 속된 일입니다. 밥 벌어 먹는 일도 주님 섬기기 위해서 하려고 하면 거룩한 일입니다. 아무리 속된 일도 거룩한 사람이 그것을 통해서 정화된 동기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해서 하면 그건 정말 거룩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정말 그렇게 이 속에 그런 경외의 마음이 흐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제일 싫어하고 예수님께 책망이 받았던 사람들이 바로 그 시대에 가장 거룩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일을 거룩 하는데 종사하는데 동기 자체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염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가끔씩은 한번쯤 말이죠. 인간의 내적인 그 삶의 모든 동기가 보링이 되어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엔진 다 뜯어내어 버리고 다시 고치는 것처럼 왁 하고 세탁을 해 가지고 장서부터, 심장부터 시작을 해 가지고 예수의 피로 쌀 닫아 내 자지고 완전히 새것을 갈아서 다시 집어넣어야 됩니다. 한참 달리면 또 떼가 또 끼겠지요. 그렇지만 그건 또 그 때의 일이고 일단 한번 정화 되어서 이제는 내가 진짜 밥 벌어 먹기 위해서 사업을 하면 내 인간이 아닙니다. 그냥 먹고 살기나 위해서 직장 다닌다면 하나님! 저는 진짜 얼마나 비참한 인간 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일억만 맡겨 놓아도 뭐 한 달에 백만원씩 받는데 백만원 받고 직장 생활하는 사람은 내 존재 가치가 일억 밖에 안 되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바보나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뭐 어느 강아지가 TV에 출현을 해서 한 달 사용료가 삼백만원 받았다고 그러더군요. 그랬더니 TV에 나오는 누가 그러더군요. 자기는 개만도 못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면서 섬기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 인간밖에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동기가 전체적으로 새로워져서 새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이 일념에 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물론 그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들을 생명이 끝나는 것과 같이 다 두고 갑니다. 이 성경책 하나 들고 가겠습니까? 다 두고 갑니다. 저 책도 많이 사는 편이지만 다 두고 갑니다. 열린교회 물려 줄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목사 안 된다면, 저는 열린교회 물려 줄 겁니다. 그냥 마음대로 보십시오. 사 놓기는 제가 사 놓아도 읽는 것은 여러분들이 읽으시라고.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런 것 하나도 안 가지고 가지만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주님을 진심으로 섬기고자 했던 이 마음의 경외하는 마음, 그리고 그런 동기에서 비롯된 삶 겉모양은 두고 가지만 그것은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쓰레기 같이 자기의 육신을 위해서 마시며 살았던 인간과 삶의 동기가 정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고 싶었던 사람의 최후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인생과정도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비굴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정말 인생의 본래의 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일에 정확하게 고정된 그런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교회생활을 습관적으로 해 나가면서 계속해서 은혜를 받으면 계속 강화가 되는데 자기를 새롭게 하는 진심이 담겨진 오늘 아침에 말씀 드린 것과 같은 그 영혼의 회복, 진심이 담긴 자기 깨어짐과 회개 이런 것들을 통해서 정화 작용이 되지를 않으면 그것이 금방 더러운 것으로 꽉 차서 그래서 이 삶의 동기 자체가 처음에 시작은 그렇게 안 했는데 삶의 동기나 이런 것들이 전부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삶의 모습으로 다 뒤바뀌는 것입니다.
제가 제일 불쌍하게 생각하는 환자들 중에 하나가 그 신장이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투석하는 사람들 있죠. 삼일에 한 번씩 온 몸의 피를 다 꺼내어서, 신장이 그 일을 못하니까 다 걸러서 다시 집어넣습니다. 저도 신장이 나빠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나쁘면 진짜 인생 살고 싶은 맛이 안 납니다. 왜냐하면 오백 미터만 걸어가면 피로감이 확 밀려옵니다. 투석하는 사람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삼일에 한 번씩 투석을 한다니까 투석할 날 쯤 되면 이틀쯤 산 다음에 그 투석할 때쯤 되면 그 몸의 컨디션이 어떻겠습니까? 상상도 못할 정도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말입니다. 살아가는 것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지식은 분명히 하나님이 이렇게 살라고 하는데 몸이 안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노년입니다. 그래서 안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이렇게 탁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회복되는 방법은 뭐냐 하면 피를 한번 갈면 됩니다. 피를 갈아 끼우면 됩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문제는 영적으로 그렇게 하는 비결이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정신이 새로워지도록 우리 자신에게 한번 이런 커다란 소생함을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인데 그것을 가리켜 오늘 시인이 뭐라고 말 하냐하면 주를 경외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 자신을 주님을 진정으로 공경하고 살아가야 할 우리의 모든 인생 속에 깃들어야 할 내면의 공기를 정하 시켜 주는 방식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도” 그 도를 깨우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경회라고 하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제가 늘 말씀 드리지만 사경회가 필요 없는 교회입니다. 너무나 은혜가 넘치고 너무나 새롭기 때문에 주일날하고 수요일 날 모이면 충분한 교회, 사경회를 따로 해야 할 필요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소생된 영혼으로 살아가는 교회, 그런 교회가 언제 될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런 교회를 꿈꾼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사경회는 사경회가 없는 교회를 그리워하면서 아쉬움 속에 이루어지는 사경회입니다. 올해도 사경회를 해야 되는 구나! 그러면서 한쪽으로는 기대하고, 한쪽으로는 슬퍼하면서 다시 사경회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사경회입니다. 사경회 같은 경우는 뭐냐 하면 우리의 그런 형식만 남아있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정신이 사라진 그런 우리의 내면의 세계에 새 피를 집어넣고 그리고 우리의 묵은 피를 꺼내 내는 그러한 변화를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것을 벌써 일곱 번째 사경회거든요. 신년 사경회라 일곱 번째입니다. 일곱 번째 사경회인데. 해마다 하나님께서 만나 주셔서 사람들, 사람들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끔 만드셨습니다. 특히 이 신년 사경회가 말입니다. 전통이 있는 사경회입니다. 전통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이 항상 우리를 그저 돌려보내신 적이 없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을 말씀 속에서 깊이 만나게 되면 그 다음에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우리의 마음이 순수해 지는 것입니다. 단순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단순해지는 것입니까? 인생의 고민이 많은 줄 알았는데 에레미아 선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고통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염이 없기 때문이구나! 그것을 깊이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정말 그 잃어버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 주님을 깊이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제 충전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방법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 같이 굳어진 우리들로 하여금 감화를 받게 하시고 그래서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되겠다라고 하는 신령한 각오를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순종해야 되겠다라는 마음으로 한해를 출발하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 겨울을 새해 사경회를 통해서 인생이 뒤바뀐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 정착하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히 많은 숫자가 1월에 맺은 하나님의 열매들입니다. 작년 한해만 하더라도 사경회를 통해서 백명 정도의 출석인원이 확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상당수가 교회에 정착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분명히 기억해야 될 것은 이러한 새로운 일을 우리의 영혼 속에 행하셔 야지만 우리들이 업그레이드된 신자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뭐라고 비유를 할까요? 호박에다가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겠습니까? 요즈음 뭐 굴비라고 돌아다니는데 그 다 굴비 아닙니다. 부쇠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쇠를 아무리 석쇠에다 구운 다고해서 그게 진짜 굴비가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광어는 광어고, 도다리는 도다리입니다. 어쨌든 생긴 게 바탕이 잘못 되었는데, 그 사람의 외면적인 것을 아무리 바꿔본다고 해서 그게 진짜 새 사람이 되겠습니까?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만지고 지나가시고, 갱신하시고, 정화시켜서 그들에게는 본래 없거나 매우 희미해진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면서 살아가는 그 정신을 하나님이 새롭게 만들어 주시지 않으면 새로운 삶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걸 기대하는 것은 개똥참외 밭에서 파인애플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런 열매가 맺겠느냐는 것입니다.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는 것이 사경회고, 그래서 이 사경회는 부흥회라는 말을 쓰는 게 아닙니다. 부흥회는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서 모인다. 그러는데 그건 전부다 잘못 나간 사상들이라는 것입니다. “사경회” 살필 “사”자입니다. 성경을 살필 다는 것입니다. 어떤 동기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 앞에 정화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살면서도 하늘나라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진짜 변화 되어서 주님을 드려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은 이렇게 혼란하고 사상은 변천하는데 어떻게 우리들이 불변하는 진리를 붙들고 살 수 있을까? 이런 모든 의문들을 안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성경 속에서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필 “사”자입니다. 그래서 사경회는 목표 자체가 여러분들은 막 불 받게 만드는 것이 그런 게 사경회의 목표가 아닙니다. 그런 목표 자체를 갖는 것 자체가 매우 타락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해서 무슨 친교를 위해서 모이는 것도 아니고, 세를 과시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도 아닙니다.
사경회는 그야 말로 말씀을 찬찬히 풀면서 거기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많은 의문들을 거기서 푸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푸는 것과 함께 말씀이 풀리면서 그 말씀이 가지고 있는 성령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신적인 작용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내면의 동기가 정말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들이 세상에 살지만 세상사는 사람들 하고는 정말 다른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이 여기에 살아가게 하는구나! 이런 것을 깊이 인식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하셨구나! 이런 것을 깊이 인식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뭐 나와라. 나와라. 하는 뭐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제 하나님 앞에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외하는 정신을 불러일으키시고 그 일을 위해서는 나는 죽고 하나님의 말씀은 서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이 뭐라고 그럽니까? 주의 말씀을 세우소서.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소서. 무슨 이야기야 하면, 내 삶을 움직이는 주된 주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므로 나는 이것이 좋아. 내 생각엔 이렇게 하고 싶어. 그런 식으로 따라서 살면 계속해서 충동과 자기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삶이 되고, 그 결과는 불순종과 범죄고 그 결과는 영혼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악취 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을 우리에게 명하시므로, 내 생각엔 이것을 원하지만 하나님이 저걸 원하시므로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말씀에 의해서 움직이는 삶을 살아갈 때 거기에는 항상 순종과 기쁨이 있고 그리고 향기 나는 삶이라 이것입니다. 그래서 냄새나는 나는 죽고 내 안에서 주님이 사셔서 주님이 나를 통해서 자기를 들어내는 그런 삶을 우리들이 이어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런 일들을 위해서 실제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언제 나에게 어떻게 말씀하실지 모른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모든 예배 시간에 참석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 순간마다 여러분들이 그런 마음의 각오를 가지고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리고 그 말씀에 깊은 감화와 은혜를 받고 그렇게 새로워지는 그런 삶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의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죄와 유혹이 가득한 이러한 세상 속에서 우리의 신앙의 순수성을 우리자신의 힘으로 얼마만큼 세울 동안 우리가 지킬 수 있겠느냐 이 말입니다. 그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이 오늘 하나님 앞에 호소하기를 단지 주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들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성처럼 높이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흔들려도 하나님의 말씀은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서 그 말씀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그러한 신령한 삶이되기를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사경회에 마음을 다해서 참석하고 그리고 잘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그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이 시대에 정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하고 길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쓸어져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여러분들이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섬김이 뭐냐 하면 그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족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입니다. 닷 세 다 참석하기 힘들면 하루라도 데리고 나올 수 있도록,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고 은혜 받게 하고, 깨닫게 하고,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이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대하고 그러는 것 이외에 죄인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죠셉얼라인이 그랬습니다. 희망이 없는 죄인들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하나님의 진리가 정직하게 우려 퍼지는 곳에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죄에서 돌이키고 하나님을 등졌던 길에서 돌이켜서 구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변화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늘서부터 깊이 기도하시면서 결사적으로 이번 사경회에 하나님, 제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정말 만나야 되겠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나에게 이 삶과 인생의 모든 동기를 새롭게 해 주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의 만져 주심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사모함을 가지고 교회에 나오시는 그런 성도들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