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로 피하는 자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시18:30)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수시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건져내 주셔야 할 필요를 수시로 느낍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죄로 가득차기 때문에도 그렇고 우리가 매우 약하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든 위기와 고통 속에서 우리에게 얼마나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큰 행복인가 하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이런 환경 속에 두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를 의뢰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삶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에 가장 주의 깊게 보시는 대목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든지 간에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 나름대로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들어도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는 평범한 교리로 우리의 마음을 가져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지으신 것은 당신의 목적을 따라서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지어 놓으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자기의 의지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다양한 삶의 견해를 버리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마음으로 나를 이렇게 초라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인간을 왜 나를 이 세상에 창조해 놓으시고 그리스도로 구속해 주셨는지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그 뜻을 묻는 것이 성도의 인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들의 세상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서 밥을 벌어먹고 살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으면서 어떻게 우리의 이름을 이 세상에 내고 살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처럼 보이고 우리에게 있어서 커다란 사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눈에 있어서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를 하나님께서 창조한 목적을 따라 살도록 창조해 줄까 그것이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첫 걸음은 위대한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진정한 행복이 하나님의 뜻에 이바지하는 삶을 사는 데 있다는 그 경외의 정신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의 출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성경 속에서 이렇게 당신에게 피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건지시고 또 하나님 앞에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이 18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이 가장 어렵고 곤고하던 때에 하나님이 지은 시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라는 고백으로 시작되는 이 시편 18편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에서 시인이 경험한 환란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위로가 자기를 살게 한다는 그런 고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구원을 경험하고 하는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하신다는 것이지요.
한 사람이 깊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변화 받고 싶어 해서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자 해서 깊이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소원대로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소원대로 새 삶을 찾게 되었다고 그럴 때 그런 삶은 어떤 삶입니까? 가슴에 벅차오는 감격은 진하게 다가올 때로 있고 잠시 사라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영혼들에게 은혜를 주셨다 그럴 때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산다 그럴 때 주님을 위해서 산다 라고 하는 의미가 무슨 의미냐 이거지요. 주님이 화목케 해준 그 화목을 견고하게 하면서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또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 위에 견고하여 져서 흔들리지 않고 산다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중심이 하나님께 향하였다고 하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이건 모두 한 사람의 신자가 주님을 믿고 깊이 주님을 만난 다음에 주님의 진리의 말씀 안에서 살아간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으면 무거운 부담이나 고통스런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깨닫는 동기가 되고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로 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산성이 되고 바위가 되고 요새가 되십니다. 피난처가 되십니다. 도피성이 되십니다.
하나님께로 피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이제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안에서 안전해 질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분의 품으로 피하는 것이고 어떻게 하면 보호하시는 그 분의 날개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까? 무엇입니까? 그것은 결국 하나님 앞에 자기의 잘못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올바른 관계로 들어가는 거예요. 잘못된 관계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어떻게 했길래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관계가 되어버렸습니까? 어떻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화목 된 관계가 깨뜨려지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죄고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주님 안에서 견고하게 서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말씀위에 서야 되겠다고 하는 진지한 관심이 없이는 그들은 요동할 수밖에 없고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흔들려서 하나님 앞에 아무 좋은 것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피한다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 그리고 이전의 어떤 새로운 능력으로 알기는 하지만 행할 길이 없는 우리의 삶을 더욱 하나님 앞에 부요하게 풍요하게 주님을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은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성도들의 태도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우리는 언제나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신앙생활 하도록 만들어 주셨어요. 어떻게? 동물과 같이 감각을 따라 배우고 경험을 통해 실패를 배우고 그 실패를 반복하면서 그 소중하고 귀한 인생을 ... 우리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마음대로 할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할 의무가 있고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될 깊은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인생을 허비하면서 살아가게 하려고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모으신 것이 아니란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깊이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를 행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신실하고 귀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계속 출판사의 독촉을 받으면서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그 후편을 쓰고 있습니다. 쓰면서 제가 요새 은혜를 많이 받아요.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 시대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쉽게 얘기하면 한 사람의 신앙인이 믿음을 따라 산다 라고 그럴 때 그가 먼저 매일 매일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에 깊은 은혜를 받아서 매일매일 하나님과 생생한 교제를 누리면서 살아가야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이 다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요.
하나님은 이미 구약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주님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경윤하고 있는 방법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목양을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처음 택해놓을 때에부터 하나님이 택해 놓으시고 ‘ 내가 택해 놓았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신앙생활 잘해라 율법도 주고 돌판도 주었으니 너희끼리 알아서 잘 해라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기독교 신앙은 누군가 매우 특별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께로부터 많은 지체들을 돌보도록 특별하게 부르심을 받은 매우 특별한 한 사람 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나님이 경윤하신 거예요. 많은 사람이 오늘날과 같이 민주주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회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예수님을 향해서도 예수님도 한 표 나도 한 표 하는 사람들이 사람이나 목회자나 또는 목자를 향해 그런 사고방식을 갖는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개인의 생각이고 개인의 판단이고 성경은 그렇게 경윤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의 회복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꽃처럼 일어나야 된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의 양떼들을 목양하는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깨어나는 일 없이는 양떼들의 혁명을 통해서 기독교 혁명이 타도되고 새로운 사회가 건설되는 것 같은 그런 혁명가적인 발상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에요.
결국은 그 시대에 태어난 목회자들도 결국 교회가 만들어 낸 것이에요. 성도들의 작품이라고요. 벌써 우리는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고 있잖아요? 어떤 식으로 신앙생활을 해 나가든지 이 안에서 다음 세대의 목회자들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만들어지겠는가? 그것은 교회의 수준이 매우 크게 좌우하는 거예요. 이론적으로는 아무 사람이나 보내면 신학교에서 새 사람 만들어서 훌륭하게 기르면 된다고 하는 데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변하질 않아요. 사람이. 그렇게.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은 한 시대가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안일한 목회자들이 나오고 자기의 속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불행하게도 그런 안일한 목회자 밑에서 다음 세대의 목양을 받게 됨으로서 하나님 앞에 말씀 안에서 자신들을 부인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거룩한 진리의 터 위에 놓지 않았던 모든 대가들을 후세에서 다시 받는 거예요. 그런 악순환이 계속해서 되풀이 되는 거예요. 그런 사람에게 혼돈된 가르침을 받고 형식적인 가르침을 받고 그렇게 하면서 형식적인 신자들이 만들어지고 만들어 낸 신자들이 형식적인 삶을 요구하니까 뭔가 변화된 것을 가지고 성도들을 깨우치려고 해도 금방 시련과 박해로 다가오는 거예요. 그런 악순환들이 계속 되풀이 되는 거예요.
결국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정미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피한다 라고 이야기 할 때 결국은 어떤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정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예배시간에 설교 똑바로 듣고 정신 바짝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에요. 그게 중심이에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그 말씀 속에서 또한 통일되게끔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듣는 거예요. 하나님은 중구난방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셔요. 여러분들이 지금 처해있는 처지와 위치가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똑같이 우선적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제가 성도들을 보면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 아니에요? 이 사람을 보면 당신 기도 많이 해야 되겠다 이 사람 보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을 안 해서 되겠느냐 사랑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각자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다르듯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계신 거예요. 개인을 향해서 공동체를 향해서 하나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이 계신 거예요. 그러한 공동체를 향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개인을 향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분리되지 않고 아주 깊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요.
뭔가 하나님이 우리의 신앙의 문제들을 지적하시고 싶을 때가 되면 어디로 가든지 어떻게 하든지 피하려고 해도 끊임없이 자기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그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터치하시기 시작하시는 거예요. 우연이겠지. 어떻게 하다 보니 나에게 해당이 되는 데 우연이겠지. 피하면 또 다가오고. 피하면 또 다가오고.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어요. 계속 흘려보내면 하나님이 말씀을 멈추신다고요. 그리고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을 보이시기 위해서 이제는 환경을 통해서 사람들을 인도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대화가 끝나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싶어 하시는 거지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분이신지 우리가 뭔가를 잘못해서 넘어져서 깊이 책망을 받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주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주님은 실로 지루할 정도로 위대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으리라고 여겨질 정도로 매우 반복해서 매우 마음을 다하셔서 여러 가지 방법과 여러 가지 방향으로 꼭 같은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을 우리에게 전하고 싶어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끝난 후에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정말 우리들이 돌아와야 됩니다. 이것이 합의가 되어 지지 않고서는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에서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어요. 저는 박순영 목사님 만나서 대화하면서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저는 청교도를 만나고 나서 얻은 최고의 수확이 있어요. 그것은 일평생을 살아가면서 저에게 얼마나 커다란 수확이었는지 몰라요. 그것은 뭐냐하면 인간의 비참한 타락을 철저하게 믿었던 그 칼빈주의자들의 마음속에 지성의 위대함에 대한 확신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비참하게 타락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한 사람을 새롭게 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구원을 주시는 모든 방법은 이해를 통해서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 우리를 목양하시는 방법,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책망하시고 의로 교훈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이 모든 방법들이 결국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향한 징계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의 한 방편이란 말이지요. 성찬도 하나님의 말씀의 한 방편이에요. 그러니까 아무리 많은 징계를 피투성이가 되도록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가 그 징계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는 일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징계의 목적은 성취가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청교도들의 확신대로 이해가 되고 하나님 앞에 깊이 깨닫는 것 없이는 어떠한 성화 어떠한 구원 어떠한 변화 어떠한 말하자면 영적인 성장도 없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벌써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깊이 주님 앞에 엎어져서 자기의 환경과 처지 자기의 고통이나 기쁨을 보지 아니하고 지금 주님은 말씀하시고 나는 피조물로서 주님 앞에 엎드려 있다 라고 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신전 의식이 토대가 되지 않고서는 어떠한 새로움도 어떠한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는 거예요.
오늘 우리도 김희철 집사님하고 다 같이 두란노에서 나온 그림책을 보았어요. 박 전도사님이 ‘목사님 예수님 팔 꺾기 여기서 베끼셨지요?’ 맞다고 그랬죠.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요. 성도가 하나 앉아있고 예수님이 막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뒤에 앉은 사람이 하는 말이 ‘ 저 설교? 땡!’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향한 겸비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겸비함을 동일하게 생각하십니다. 아니 동일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 앞에 깊이 겸비해지는 것 그것을 통해서 당신에게 향하여 겸비해진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시는 거예요.
매번 사경회때마다 하나님이 거저 돌려보내신 적은 없었어요. 우리가 사경회를 꽤 여러 번 했는데 여름 수련회 때에는 굉장히 힘들었던 여름이 있었어요. 그리고 겨울 사경회때에도 하나님이 거저 돌려보내신 적은 거의 없었어요. 봄 사경회를 한 번 했는데 은혜는 많이 주셨는데 힘든 사경회였어요. 가을 사경회는 지금 세 번째인데 한 번도 우리를 거저 돌려보내시지 않으셨어요. 이번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직 본문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살리실 자들을 살리시고 만나실 자들을 만나실 것입니다. 그 때가 오기 전에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대해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약속해야 합니다. 뭘 기도해야 합니까? 정말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이 주님이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겸비한 심령이 되도록 기도해야 하고, 뭘 기대해야 합니까? 내 형편과 처지가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나를 만나주실 것이라는 것을 기대해야 됩니다.
사실 저는 살아가면서 죄의 문제에 시달리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거든요. 지금도 보고 있지요. 그런데 가만히 같이 이야기해보면 옛날에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깊이 괴로워하고 있는데 사실은 옛날의 죄가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보다 큰 문제는 뭐냐하면 현재 자기 안에 역사하고 있는 죄가 죽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과거에 죄를 짓고 커다란 잘못을 했어도 그것이 오늘 자기의 삶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으면 솔직히 말해서 오래전에 지은 죄 때문에 오늘도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징계 받은 것같이 살아간다 라고 하는 것은 복음적인 사고는 아니에요. 근데 문제는 오늘 ‘오늘’ 이 더 커다란 문제가 있는 거예요. 오늘.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으실 때도 그거잖아요? ‘Do you love me?'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니까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보다도 지금 현재에요. 현재 이전에는 A라고 하는 죄로 크게 하나님 앞에 넘어졌지만 지금은 똑같은 죄가 반복되지는 않는데 형태가 다르고 옷을 다르게 입고 우리 안에 역사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죄는 간과하고 이전의 죄 그 문제만 가지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철저하게 죄를 죽이기 위해서는 무슨 대가를 치르고서든지 우리들이 은혜 안에서 살아야 한단 말이지요.
죽을 때까지 잊지 말아야 할 격언이 하나 있어요. 은혜는 죄를 죽이고 죄는 은혜를 죽입니다. 여기서 은혜라는 것은 위로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기보다도 우리의 가슴속에 역사하고 있는 은혜에요. 우리에게 역사하고 있는 이 은혜가 살면 죄는 죽어요. 죄가 살면 우리 안에 역사하는 은혜가 죽는다고요. 영원한 투쟁의 관계예요. 죽을 때까지. 눈 감는 그 순간까지. 그러면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견고함도 있고 성화도 있고 주님 닮아가는 변화도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일들이 먼저 일어나요?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어떠한 형편에 처해있든지 자기가 먼저 겸비하게 낮아지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아무런 선한 것도 얻을 수 없어요. 겸비하게 낮아져서 하나님의 지식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그 마음. 그러니까 하나님의 등 뒤에서 평안을 누리면서 살기 보다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갈등하고 싶어 하는 마음.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태평하게 살기 보다는 주님의 불꽃같은 시선 앞에서 차라리 안절부절 하면서 살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게 은혜로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이에요. 은혜로 들어가고자 하는 결심이에요. 이런 마음 없이는 우리의 많은 말씀의 잔치. 무수하게 듣는 설교. 그리고 그런 마음 상태를 가진 사람이 성경을 펼칠 때 성경 속에서 금싸라기와 같이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면 그건 연구대상입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정미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로 피하는 것은 곧 그의 말씀으로 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와 감각을 회복하고 그 말씀 앞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에 깊은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방패가 된다는 거예요. 왜? 말씀대로 사니까 하나님 앞에 담대해요. ‘너 옛날에 이런 죄를 지었지’ 뜨겁게 양심이 자기를 찌르고 옵니다. 그 때에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기 때문에 정죄의식이 우리를 찔러 올 때에 우리는 담대히 말합니다. ‘ 자 나는 범죄 했고 나는 나쁜 사람이었어 그리고 그 실수는 정말 주님 앞에 고통을 드린 것이었어 그러나 주께서 나로 하여금- 나는 비록 주님을 배반하여 죄에 빠졌지만 - 주님은 그 죄를 통하여 하나님의 더 크고 놀라운 은혜를 보이셨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나의 연약했던 것을 하나님 앞에 자랑한다. 왜냐하면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바울의 마음이고 모든 진정으로 참회하는 자의 자유가 주는 마음이에요.
피하고 어둠 속에 숨으려고 하지 않아요. ‘ 너 나쁜 놈이지’‘나 나쁜 놈이었어. 그러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는 정말 놀라와’ 하나님 앞에 경배하고 찬송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는 거예요. 이게 바로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방패가 되어주시는 거예요.
수 없지만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볼까요? 죄악의 유혹이 우리를 꼬입니다. ‘여기 네가 세상에서 맛보던 세상적인 즐거움이 있지’ 그 때 말씀 앞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배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즐거움은 잠시지만 그 즐거움이 잠시 지나가면 나에게 쓰디 쓴 쑥처럼 내 영혼에 고통이 될 걸. 나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사는 이 즐거움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피하는 것입니다.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과거의 잘못 살았던 삶 때문에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태도예요. 현재의 태도가 올바르려면 과거의 죄를 회개해야 되겠지요. 문제는 오늘의 태도가 올바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이 점에 있어서는 매우 철저하신 것입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깊은 어두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모든 지름길은 다 실패한 길이에요. 그런 길은 없어요. 쉽게 벗어난 사람들은 너무나 빨리 그 방법을 깨달은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선 것이에요. 그것 없이는 우리는 진정한 영혼의 회복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에요.
오늘도 우리도 그렇게 기도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사역을 제가 수종 들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두 가지-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능력을 많이 주셔도 좀처럼 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은 정말 어려워요. 여러분들이 스스로 마음을 지키는 것이 굉장히 힘들잖아요. 그렇죠? 그런데도 여러분 자신이 마음을 지키는 데 있어서 가장 쉽게 지킬 수 있는 자들이에요. 다른 사람은 더 어려워요. 그리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가는 사람들은 점점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좋게 말하면 하나님을 의뢰하는 마음이고 나쁘게 말하면 인간적인 좌절의 감정 같은 것들이 계속 목양을 하면 할수록 제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이에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제목은 각 지체와 성도들이 자신의 마음을 그래도 자기가 지키는 것이 제일 쉬우니까 자기의 마음을 끊임없이 지키면서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에요. 그게 최고의 기도제목이에요.
이번 사경회 때에도 말씀하실 것입니다. 말씀하시는 것은 제가 전달하겠지만 그러나 여러분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주님 앞에 매달릴 때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직접 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지막으로 같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정말 큰 은혜를 주시고 우리와 우리 모든 성도들의 마음을 견고하게 붙들어 주시도록 우리 같이 기도하고 각자 편리한 대로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