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을 위해 쓰신 한 사람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스 10:1)
녹취자: 김세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이 주전 586년경이었습니다. 그 후 6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하나님이 기적적인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귀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통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특별히 이제 고레스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제국 전체에 종교적인 관용정책을 펼치게 되는데 이 일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토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3차에 걸쳐서 귀환이 이루어지는데 각 시기마다 포로귀환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스룹바벨이었고, 두 번째 사람이 학사 에스라였고 세 번째 사람이 느헤미야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두 번째 바벨론 포로 귀환 즉,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때의 연대가 주전 458년 정도 되고 마지막 세 번째 지도자인 느헤미야의 포로귀환이 444년 정도 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거의 같은 시대의 사람입니다.
바벨론 포로로부터 귀환할 때 지도자를 따라 온 것은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각자 원하는 사람들이 지파별로 지도자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운동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자신의 땅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미 떠나온 지 70여년이 지났고 거기는 비어 있는 땅이 아니라 이미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왕의 명령이 있기는 하였지만 바벨론 포로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고 돌아간 후에도 말할 수 없는 모함과 투서, 위험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길을 선택하는 것은 보통 모험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남의 나라 땅이라 하더라도 70년이면 벌써 3대가 내려와 살고 있는 것인데, 그 사람들에 의해서 이미 자리 잡혀진 자신의 삶의 터전이 있었을 텐데 모든 것을 버려두고 귀환의 길을 택한다고 하는 것은 커다란 모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 중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포로귀환에 동참하였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에스라를 따라서 바벨론으로부터 포로귀환 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 사람들은 각별한 하나님의 신앙적인 감화가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모든 삶의 터전을 버려둔 채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을 붙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예루살렘이 아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때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것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고, 성전의 파괴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황폐하게 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다시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고 성전을 수축해서 거기에서 다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곧 하나님을 뵈옵는다는 의미였고, 다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오셔서 좌정하셔서 그들을 다스리시는 임금이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벨론 포로와 함께 끝나버린 신정국가의 이상을 다시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 신앙을 가지고 그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에스라를 따랐습니다. 이때 이들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에스라가 이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광경을 기록하고 있는 에스라서 3, 4장에 보아도 잘 나옵니다. 에스라는 이 사람들을 데리고 아와가 강가에 이르렀을 때 비록 왕의 허락은 받았으나 어떠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마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을 인도해 달라고 마음을 겸비하게 낮추며 온 무리들과 함께 금식하며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모세의 손에 이끌려 애굽을 탈출해 허허벌판인 광야를 지나던 그 때의 마음과 같았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통해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지는 에스라를 따라서 예루살렘에 올라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우 특별히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고 신앙이 투철한 사람들이었다는 말씀입니다.
9장에서 매우 큰 사건이 발생합니다. 누군가가 와서 에스라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수축한 다음에 이들이 타락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이 타락은 구체적으로 이방 민족들과 자기들의 자녀들이 결혼하고 첩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에스라는 깊은 탄식 속에 옷을 찢고 수염을 쥐어뜯으며 하나님 앞에 통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끊임없이 연구하며 자신도 그것을 준행하며 백성들에게 그것을 가르쳤던 경건하고 탁월한 학자였으며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들이 이끌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상태나 실제적인 삶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알게 되자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되었고 급기야 이 10장에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아갔고 그 앞에 엎드려서 울며 기도하며 죄를 자복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우리가 여기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에스라”, 이 한 사람의 이름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도움”이라는 의미입니다. 에스라, 한 사람이 10장에 등장합니다. 10장 뒤편에 보면 커다란 영적인 각성과 부흥이 일어나고 그와 함께 대대적인 신앙의 개혁이 일어난 것을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라, 이 한 마디 속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당신의 시대를 개혁하실 때, 하나님이 언제나 한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과 은혜, 죄를 각성하게 하는 커다란 영적인 눈뜸과 대담한 개혁을 위한 용기, 이러한 것들은 사람이 만든 제도나 방법이나 기술과 이러한 것들 위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직 사람 위에 부어집니다. 그리고 어떠한 위대한 일도 끝까지 그 일의 발생의 경로를 추적해 가다 보면 하나님이 최초로 그 일에 눈 떠서 하나님 앞에서 매달리며 쓰임 받았던 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새롭게 할 때 온 가족을 한꺼번에 새롭게 하지 않으십니다. 한 사람을 일깨우고 그의 마음에 신앙적인 기대를 불러일으키시고 그 사람의 마음의 변화를 주어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그 가족을 새롭게 하십니다. 한 교회를 새롭게 하실 때 하나님은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을 깨우시기 전에 먼저 한 사람을 깨우시고 깨운 그 사람에 의해서 또 다른 사람들을 깨우시고 그들을 하나로 모아 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하시고 그렇게 하면서 당신의 교회를 새롭게 깨우십니다.
(예화) 예수원에서 생활하시던 고 대천덕 신부의 할아버지 가운데 R. A. 토레이라는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이 쓴 자신의 간증 속에서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 자신이 어느 교회에 부임하게 되었고 그 교회는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어려운 교회였는데 부부가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기도 전에 이제 교회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간절히 매일 교회에서 기도하면서 커다란 교회의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는지 주일 예배 때면 경찰서에서 경찰들을 보내어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주님을 만나는 은혜의 감격을 누렸습니다. 목사님은 자신과 아내의 간절한 기도가 교회를 그렇게 살렸다고 믿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몇 명의 자매들이 이미 이 목사님 오시기 여러 해 전에 하나님께 커다란 각성을 받고 하나님께서 좋은 목사님을 보내 주셔서 이 교회에 커다란 부흥이 있게 해 달라고 몇 년 동안 기도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자신의 사역에 열매가 맺혀지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행하실 때 우리는 커다란 집회를 계획하고 방법을 짜고 계획을 하고 조직을 하지만 하나님의 위대한 부흥은 이러한 것들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각성한 한 사람을 통해서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오늘 새벽에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이 이 위대한 일에 쓰시려는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구역을 위해서, 교구를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쓰시려는 그 에스라와 같은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에스라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는데 기도의 특징이 세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는 그 기도는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드린 기도였습니다. 왜 하필이면 성전이었습니까.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인데 하필이면 성전이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에스라는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가장 잘 만나 주시는 하나님이시고 거기에서 당신에 의해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주는 장소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거기에서 죄의 용서가 있고 그리스도의 희생의 중보가 있고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전망을 보여주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어디서나 기도하였고 어디서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았고 그리고 우리가 회심한 곳, 회심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던 곳, 그래서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몸을 세우신다는 이 모든 탁월한 신앙의 체험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교회에서 이루어진 경험이었습니다. 수많은 곳이 있었지만 에스라는 회개한 후 다시 하나님의 성전을 찾았고, 거기에서 그 성전 앞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숙정하셨습니다. 비둘기 팔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며 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내 집은 만민을 위한 기도의 집이 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렇게 당신의 교회를 중심으로 당신의 위대한 구속의 경륜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에스라는 바로 이 가장 위급한 시기에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제일 먼저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기도하였습니다. 주님의 임재 앞에서 기도하기를 원하였던 에스라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를 기도의 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과 온 뜻을 다해 중심을 쏟으며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주님의 교회에 위대한 부흥의 간증을 남기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기도의 자세는 엎드려 우는 기도였습니다. 아마 여기에서 말하는 엎드렸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모든 이 사태에 대한 주권이 하나님께만 있고 자신은 주님의 다스리는 통치에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고 하는 자기 굴복을 보여주는 태도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지만 그래서 자신의 삶의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하지만 하나님까지 움직이는 기도의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위대한 기도는 단지 열렬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온 땅과 만물 위에 뛰어난 주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기도, 그 주권 앞에 깊이 부복하고 자신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그 뜻을 받아들이며 살겠노라고 하는 자기 복종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대체로 순종하는 수천 명의 사람보다는 자신의 모든 삶의 마지막까지라도 드려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겠노라고 하는 한 사람을 통해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에스라의 기도 세 번째 특징은 죄를 자복하는 기도였습니다. 사실 지금 에스라의 마음이 찢어지게 만드는 이 기도 속에 나오는 열거되는 많은 죄들은 이 에스라와는 아무 상관없는 죄였습니다. 그것은 에스라가 지은 죄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끔찍한 죄를 학사 에스라는 마치 자신의 죄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 토설하며 용서와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경건은 이 죄를 개인적으로만 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전체의 한 몸의 죄로 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구별되지 않았고 그 모든 죄를 자신이 지은 것처럼 짊어지고 성전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니 은혜가 떨어지면 교회 안에서 서로 손가락질 하며 싸움질 하지만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지은 죄 까지도 자신의 죄인 것처럼 여기며 하나님 앞에 용서의 은혜를 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그렇게 품기 원하였던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는 그 순간에도 고통당하는 자신을 돌아보는 대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진노를 받게 될 그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저희는 저희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옵니다.”라고 빌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말도 되지 않는 기도입니다. 왜 그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을 몰랐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에 몰고 올 두렵고 엄위로운 심판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마치 당신의 한 지체처럼 여기면서 그들의 용서를 하나니 앞에 비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교회가 보여주는 진정한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으로 에스라 선지자는 간절히 그들의 죄를 자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통곡하며 자복하기 시작하였고 그리고 그때까지 에스라의 태도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지도자 에스라가 성전 앞에 나아가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며 눈물로 기도하는데 그 기도 속에서 언급되는 죄악들이 에스라가 지은 죄가 아니라 자신들이 죄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 이야기들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달되기 시작하였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남녀 많은 사람들이 학사 에스라가 기도하는 성전에 모였고 심지어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여 많은 백성들이 이제 성전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의 가슴을 찢는 이 기도 소리는 거기에 모여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때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에스라는 한 마디도 그들을 단죄하고 너희들의 잘못을 회개하라고 외치지 않았으나 그 모든 죄를 짊어지고 통곡하는 에스라의 기도를 들으면서 이들의 마음속에 커다란 존재의 울림이 있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그 학사 에스라의 기도의 장사에 나아오면 에스라의 통곡에 동참하게 되었고 그래서 남녀, 어린아이들이 큰 무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스라의 위대한 대개혁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성공한 개혁은 단지 개혁 하나만 가지고 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커다란 각성과 변화가 항상 동반한 개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놀라운 개혁과 함께 심오하게 주님을 만나고 죄의 본질을 인식하고 회개하는 영적인 큰 부흥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의 사명은 바로 이렇게 존재의 울림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 그 분이 거룩하시다는 사실, 그 하나님이 위대한 분으로서 우리뿐만 아니라 이 모든 세계에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존재의 울림을 통해서 알리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 일을 위해 교회는 전적으로 그 내면의 세계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형체만 그리스도의 교회가 된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예수의 정신, 예수의 혼이 흘러야 그것이 진정한 교회입니다. 예수의 혼, 예수의 정신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근본 하나님의 존체시나 그의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이것이 예수의 정신입니다. 그러한 정신은 신자들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그 예수의 정신이 자신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때 그 한 사람 한 사람 신자의 총화를 통해서 그 교회 전체에 흐르는 예수의 정신과 혼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가 될 때 비로소 교회 자체가 존재의 울림이 있는 교회가 되고 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은 이 말씀을 굳게 붙들고 적게는 교회를 위해서, 더 크게는 조국의 교회를 위해서, 더 크게는 보편 교회를 위해서, 더 크게는 이 모든 인간이 사는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가 이 세상을 위해서 섬길 수 있는 최고의 봉사는 참으로 교회가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 섬길 수 있는 최고의 봉사는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존재의 울림이 있고 그 존재의 울림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도 학사 에스라의 마음속에 일어난 것 같은 큰 은혜의 부흥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