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시고 싸매시는 하나님
(2004년 설교모음)
설교기간|2004년
편집내용|녹취원본
출 력 일|2013년 3월 23일
목 차
1. 징계 하시는 하나님(히12:10) 2004.10.25 가을기도학교 사경회(새벽) 1
2. 싸매 주고 싶으신 하나님(사1:5-6) 2004.10.26 가을기도학교 사경회(새벽) 7
3. 징계를 사랑으로 바꾼 회개(호12:4) 2004.10.27 가을기도학교 사경회(새벽) 12
4. 징계후의 번영(호14:4) 2004.10.28 가을기도학교 사경회(새벽) 15
1. 징계 하시는 하나님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히 12:10)
이 히브리서 12장에서는 특별히 징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자녀를 길러보면 알지만 아이들을 징계없이 기른다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입니다. 부모도 아이를 징계하는 즐거움으로 아이를 기르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를 기를때 부모의 즐거움은 아이를 징계하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부모의 뜻을 잘 헤아리고 좋은 사람으로 자라는데에 우리의 자녀를 양육하는데에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항상 부모의 말을 잘들으면서 자라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아이가 아주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이미 그 아이의 마음속에는 자기멋대로 자라려고 하는 악한 본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만약에 그 아이를 제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 두면 아주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화) 여러분 교회 마당에 가면 나무가 잘 심겨져 있는데 그중에 한 나무가 뿌리가 썩었는지 서서히 죽어갑니다. 그래서 결국은 빼버리고 새로운 나무 하나를 심었습니다. 말하자면 새가족입니다. 나무가 새로 심겼는데 그 나무를 볼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마음에 늘 여기서 잘 정착해야 될텐데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무도 보면 굵기가 똑같고 키가 똑같아도 나무 값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니까 같은 굵기의 나무 크기가 거의 같아도 한 20만원 하는것부터 시작해서 200만원까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무의 가치도 산속에 쳐박혀서 제멋대로 자란 나무는 그 모양새가 사납습니다. 그런데 어떻게해서 사람들이 돌보고해서 잘 예쁘게 자란 나무는 값이 보통 비싼게 아닙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가 아무렇게나 자란나무는 잘라서 땔깜이나 쓰지만 잘 자란 나무는 정원에 심겨져서 수천 수만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목장에서 돼지를 기릅니다. 돼지를 기르면 돼지를 사육을 하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전부다 돼지를 출하를 합니다. 그래서 중돼지쯤 길러서 파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아주 크게 만들어서 파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이제 시세와 돼지를 기르는 사람의 자금사정과 사료의 가격 이런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보고 어느 시기에 출하하는것이 좋은가 하는 것을 정해서 이윤이 극대화 하는때 출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돼지를 징계하는것을 보셨습니까? 밥 시간이 되어서 뜬물을 갔다 부으면 돼지라는 놈들도 정말 대단합니다. 그것을 서로 먹겠다고 제일 먼저 달려온 힘센놈이 다른놈들 못들어오게 발을 돼지 밥통에 집어넣고 퍼 먹습니다. 이래도 주인이 돼지를 불러다가 니가 진짜 돼지로서 이렇게 살수 있느냐? 넌 오늘 아침에 매우 불공정한 식사습관으로 돼지의 명예를 심히 실추했으니 징계하지 않으면 니가 어찌 내 돼지라 할수있느냐 하고 볼기를 때리고 두손들고 무릎꿇고 있는 돼지를 본적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가지고 있는 계획과 관련이 있습니다. 주인이 가지고 있는 계획은 뭐냐면 근수를 채워서 빨리 삼겹살집에 빨리 팔아 버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돼지를 향한 계획은 인물을 예쁘게 만든다든지 교양있는 돼지를 만든다든지 하는것이 아니라 그냥 근수 채워서 삼겹살 집에 보내는 것이 계획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소리 지르면서 끌려가서 돈 만 남겨주면 주인으로 족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라는 우리에 가둬놓은 돼지세끼처럼 취급을 하시면 좋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으로 낳으시고 태어난 우리 하나하나를 향해서 크고 원대한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나는 우리 교회의 마당을 뛰어다니는 개구쟁이 어린아이들을 봅니다. 지금은 솔직히 이야기해서 도움이 안됩니다. 엄마가 옷 깨끗이 빨아서 주일날 데려오면 애들은 왜 두다리가 있는데 복도에서 주저 앉아서 다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복도가 미끄럼틀이라고 그렇게 돌아 다닙니다. 그래서 내가 니네 엄마가 참 좋아하겠다. 그러나 어떤 생각을 하냐면 다음세대에 그 아이들 중에서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나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그 아이들이 시대가 될꺼고 그 아이들의 시대가 되면 이렇게 앉아서 말씀 듣는 사람도 필요하고 전하는 설교자도 필요하고 큰 나무와 같은 인격을 가진 교육자도 필요하고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누가 아는 정도가 아니라 저는 거기서 그런 훌륭한 인물이 태어나서 그리고 자라나서 역사에 기여하리라고 나는 확신을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들이 자녀를 교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영적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니까 하나님이 이런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계획대로 살지 않을때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육신의 아버지 육신의 부모는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저는 그렇게 매 맞으면서 자란 사람은 아니지만 여러분 어렸을때 학교에서나 학교에서 선생님 한테나 집에서 부모님한테 야단을 맞을때 가장 서러울때가 언제인가 하면 동생이 잘못했는데 대신 두들겨 맞을때 마음이 억울함을 주는 아픔은 볼기를 얻어맞는 아픔보다 훨씬 큽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가 우리를 징계해도 사실은 동의하지 않는 징계를 받을때가 있습니다. 공평하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날은 뭘 잘못했는데 반 죽여 놓더니 또 어떤날은 엄마가 기분이 좋으니까 동생이 잘못했는데 그럴수도 있지 하면서 용서를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관성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럴때에는 자신이 받은 징계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의 육신의 부모에게서는 불완전한 부모이니까 언제나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그렇지 않으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잘살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낸 그런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너무나 그 뜻으로부터 벗어나서 불순종하면서 살면 하나님이 우리들을 때리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 그러나 잊지말아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단번에 발길로 걷어차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것은 자녀에게 하는 태도가 아니고 노예, 노예중에서도 사랑스런 노예가 아니라 아주 미운 노예에게 하는 태도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징계하시기 전에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아주 여러번 타이르십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의 양심을 자극해서 ‘아! 이렇게 살면 안된다’라는 그런 마음이 들게 하시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래서 윤리학에서는 양심 신성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양심의 곧 하나님의 목소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안된다 여러분도 신앙생활 하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아! 나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하여튼 어느 한순간에 가서 전에는 막 살아도 불편하지 않았는데 어느 한 순간에 와서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 스스로 제동이 걸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안된다. 그렇게 살면 안되는데...” 이것이 뭐냐면 하나님께서 양심을 통해서 우리에게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환경을 통해서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 주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나가는데 하나님이 강력한 징계는 아닌데 언뜻언뜻 하나님께서 자기를 경고하시는 것이 느껴 집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혹은 책을 읽으면 하나님이 어떤 특정한 것에 대해서 계속 마음에 걸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권면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펴면 그 이야기가 딱 가슴에 걸리고 몇주 안나오다 교회에 나오면 바로 또 그 문제를 이야기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권고를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징계를 받아야될 정도의 상황이 되면 우리의 기도의 세계가 많이 무너져 있기만 그래도 기도를 하면 어떤 한가지를 계속 우리에게 생각나게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행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옳은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계속 인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인격적인 권고가 있고난 후에 결국은 충분한 권고가 있고난 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강팍해져서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때리시는 것입니다. 탁 때리시는 것입니다. 그 때리시는 것은 결국은 환경을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환경적인 변화로 인간을 몰아가시면 마음이 반드시 변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혹은 물질을 치시거나 혹은 질병이 들게 하시거나 혹은 의지하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덜 의지하게 만들던 그런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데려 가시거나 관계가 깨뜨려지게 하시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사람이 징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보복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가끔 그럴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잘 되라고 때리지만 때리는 그 순간에는 보복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나를 그렇게 괴롭히고 속 썩였지, 이놈의 자식 맞아봐라”하면서 막 떄리는 것입니다.
(예화)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곳에 가면 유치원 다닐때부터 아이들에게 철저히 교육을 시켜서 부모가 때리면 전화하라고 다 가르쳐주고 만약에 부모가 때리면 경찰차가 금방 옵니다. 그리고 부모를 잡아 갑니다. 그런데 어느 부모가 있는데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때리려 하는데 그러는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18살까지 자녀를 양육할 책임만 있지 때릴 권리는 없다고 말입니다. 애들이 그렇게 배우니까 그 엄마가 “한국에 한번 가자, 너무 좋단다.” “안가요 내가 거기를 왜가요.” 그래서 며칠동안을 달래고 꼬여서 거기가면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고 “너도 자랐는데 조국 구경 한번 해야되지 않느냐?” 그래서 아이가 “그럼 한번 가지요” 하고 갔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는지 공항에 내리자마자 막 따귀를 때리면서 “전화 해봐라 해봐!. 여기서 설마 전화하면 미국서 달려 오겠냐? 여기는 한국 땅이다. 여기서는 너를 길거리에서 몽둥이로 때려도 나를 안잡아 간다.” 꼬집고 때리고... 솔직히 이야기해서 부모의 징계는 복수의 개념이 있습니다. 내가 자녀 길러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 그런분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자신의 경험속에서 해석하는것 아닙니까? 그래서 자기가 자녀를 향해서 그러니까 한차례 때리시면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수하신다. 그것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비뚤어진 양심이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뚤어진 양심이 똑바로 가르쳐주질 않고 또 넘어질때 율법과 함께 손잡고 봐라 니가 그렇게 개떡같이 사니까 하나님도 싫어하신다. 그렇게 죄가 양심을 사용해서 우리에게 일깨울때 목표로 하는것은 강팍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도 불복종하는 것을 겨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도 보면, 학교에서도 보면 딱 버티고 앉아서 패라 니 자식이 죽지 내 자식이 죽냐하고 버티는 아이는 많이 맞습니다. 한 대만 때려도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 아이들은 덜 맞습니다. 지혜로운 것은 뭐냐면 하나님이 한번 탁 때리셔서 뭔가 아니다 라고 생각이 되면 갈때까지 가보자 하고 버티면 안됩니다. 그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계속 얻어 맞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1장에 보면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얻어 맞아서 성한데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리시면 즉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 잘못했구나.”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시는 이유는 결국은 우리에게 복수하시기 위해서 때리는 것이 아니며 당신의 마음이 속상해서 한번 풀어보려고 때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뭘까요? 오늘 성경에 보니까 두가지를 이야기 하는데 우리 유익을 위하여 때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이들이 제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 두면 아이는 얼마나 좋습니까? 부모가 해달라는 대로 다해주고 집안의 모든 결정을 이 도토리 만한 아이가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 결정을 하고 모든 것을 부모의 주위와 부모를 자기 원하는 대로 이끌어가고 자기가 원하면 부모들이 마치 예스맨처럼 머리를 숙이고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어린시절이 얼마나 행복 하겠습니까? 왕처럼 사는 것 아닙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데 그 아이를 위해서 너무 불행한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그렇게 기른 아이들이 결혼하면 이혼하고 회사 들어가면 집어치고 아주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더군다나 결혼할 때 만나서 저 같이 똑같이 자란 배우자를 만나면 더 빨리 헤어집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보면 기본이 전혀 안되어 있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신앙이전에 그런 인격적인 교육이 전혀 안되어 있습니다. 부모가 너무나 이렇게 해서 징계없이 기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그것이 좋아보이고 말하자면 떠 받들면서 공주처럼 왕자처럼 자란것 같겠지만 결국은 마지막에 그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번도 자라면서 누구에게 굴복해 본 적도 없고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양보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자란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부 제멋대로의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징계가 없는것이 그 당시에는 정말 좋아 보이고 제멋대로 자라서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합니까? 이세상에 누가 자기를 그렇게 떠 받들어 줍니까? 한 나라의 왕이라면 모를까 누가 자기를 생긴대로 떠 받들어 줍니까? 안 합니다. 자기도 그렇게 한 적이 없는데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절대로 그렇게 안합니다. 결국은 그 아이를 위해서 가장 좋게 해주는 것이 가장 망가진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면 어려운 환경에서 맏이로 태어나서 동생들 한테 치이고 양보도 많이 해보고 해 보고 싶은것도 스스로 못하도록 환경적으로 절제도 당해보고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아주 조화롭게 사회생활을 잘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결핍도 배우고 부족한데도 그것을 참는것도 배우고 다른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것도 배우고 다른사람을 대신해서 짐을 지는것도 배우고 잘못 했을때는 호되게 혼나서 용서를 비는것도 배우고 관계가 꺠뜨려 졌을때는 찿아가서 사과하는 것도 배우고 사과도 받아보고 이렇게 하면서 가지고 있는것도 나눠서 써보고 물질보다 더 중요한 형제에 때문에 서로 끌어안고 형제애 때문에 형제가 울어도 보고 이런것을 경험하고 자라난 아이들이 그 당시에는 고통스럽고 변화가 많은것 같지만 결국은 사회에 나와서 사회생활 잘하고 많은 사람과 어울려서 잘 살아갑니다. 상식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격이 틀리고 배경이 틀린 배우자를 만나도 이해하는 것을 배웁니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지 배우고 자기의 욕망을 억제하고 자기가 잘못했을때는 사과하고 사과하면 용서해주는 너그러움도 체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부모가 올바르게 기르기 위해서 때릴때에는 그 아이가 불행해 보였지만 징계에 통해서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강력하게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으신 영의 아버지 이신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를 징계하시는 자체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리실 때에 반감을 품는 패역한 자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때리실 때는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와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떄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어머니와 같은 눈물을 생각 해야 합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평안하게 살고 하나님과 평강을 누리고 이땅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쳐 행복하게 사는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때리셔서 그들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게 하시고 마음을 아프게 하시고 홀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애통하게 하실 때 그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가 사랑하시니까 징계를 하신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징계가 없다면 우리가 친아들이 아니요 친자식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사생자가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무슨 유익을 위하심이냐, 거룩의 유익을 위하심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신앙이 식거나 사고가 육적인 방향으로 돌아가게 되면 우리의 삶의 목표는 그냥 이세상에서 평안하고 그리고 그냥 좋은 환경에서 사업 잘하고 돈 벌어서 배불리 먹고 살고 또 자기의 꿈을 이루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지간에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이땅에 두시고 싶어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세상에서 우리들을 잘 보존하셨다가 당신의 나라로 데려가시고 싶어하십니다. 다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잘살고 평안하고 여유있는 삶을 살면 그것이 좋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에 살려두시는 이유는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살려두시는 이유는 거룩한 성도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자기자신에게 정말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 그것을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시는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목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살아야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듣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전파가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중대한 사명입니다. 그러나 그와 똑같이 강조되어야 할 것은 정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 그리고 이제 나는 어떻게 하나?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내 신앙이 정말 껍데기구나 그리고 나는 정말 망가진 사람이구나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것이 무엇일까? 이것을 생각나게 해주는 것은 그냥 허공중에 울려퍼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라는 일반적인 선포가 아닙니다. 가까운 친구가 가까운 직장동료가 가까운 가족이 누군가 주님을 만나서 깊이 변화되고 참 신자가 되어갈 때 그렇게 변화되지 않은 많은 주위의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 무언가 이 신앙의 세계속에 있구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나? 지금 나는 인생의 어느 지점에 와 있는가? 내 신앙은 정말 살아있는 신앙인가? 이것을 생각하면서 고민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굉장히 사람을 진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 섰을때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그렇게 두려워 하였던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사는 한사람의 실존은 불결하게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이 되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격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이 세상은 내가 너를 낳았지만 이세상 그리고 교회는 너를 근수 채워서 출하하려는 돼지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너를 거룩하게 할 지어니 너는 나아가서 존재로서 나를 선포하는 사람이 되어라 하고 책망하시면서 일깨워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그런 부르심을 받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실 때가 있습니다. 때리십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깊이 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손길 속에서 하나님을 느껴야 합니다.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의 목적은 복수가 아니라 우리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큰 풍파가 일어 납니까? 마음에 그치지 않는 번민이 있습니까? 아니면 큰 환란과 어려움이 있어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당합니까? 여러분들이 한 일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살아온 이제까지의 삶의 발자취를 한번 돌아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다루시는 그 손길들을 한번 느껴 보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아마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깊이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이미 징계가 시작된분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끊임없이 경고하시는 분도 있고 변화된 친구 동료 가족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경고하시는 붇도 있을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하나님 저의 유익을 위해서 징계하시는 주님의 뜻대로 주님께 순종하는 거룩한 자녀가 되겠습니다. 저를 도와 주십시오. 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평화롭게 하시며 우리를 성장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2. 싸매 주고 싶으신 하나님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 1:5-6)
하나님은 원래 우리들이 이 세상에 거하면서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분 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맨 처음 아담과 하와, 처음 사람을 만들어 놓으시고, 만들어 놓은 그 처음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하나님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셨으며 그들로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뭐냐면 하나님이 인간을 정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지만 인간이 하나님께서 원래 자신들에게 주신 그 본래의 자리에서만 인간이 행복을 느낄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하기 직전에 아담과 하와를 비롯해서 그 후의 모든 인간들이 이 평범한 사실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나님이 지정하신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을 하고 인생에 있어 즐거움을 다른곳에서 찿아 보려고 애를 썻던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하고나니까 이제 이 사람의 행복이요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고는 찿을수가 없는 그런것인 것처럼 되어 버리게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전심으로 하나님의 뜻안에 거하면서 하나님 안에서의 행복을 찿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뜻안에 거하면서 찿는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스려서 찿는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적당하게 거스려야 함을 인식하고 또 하나님은 마치 자신들이 행복해 지려하는 것을 훼방하려 하시는 분인 것처럼 그렇게 인간들이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사람들이 자신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등지고 거스리고 이렇게 해야지만 행복해 질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나온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로 그런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을 거스려서 결국은 불순종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섬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내 인생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그 아름다운 계획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하는 그런 삶에서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대신에 이렇게 하나님을 거스리고 반항하고 하는 그런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되고 나면 하나님께서 당신이 구속하신 백성들을 그렇게 맘대로 살게 내버려 두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피 값을 주셔서 한사람 한사람 건져내셨는데 아깝지 않습니까? 창조하고 구원하신 계획대로 안살고 하나님을 거스리는 그 백성들을 가만 내버려 두시면 그들을 구원하시 위해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의 희생이 아깝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는 그들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제멋대로 그렇게 살수 있지만 어느 한순간이 되서 하나님이 이들을 되돌리셔야 되겠다 라고 마음을 먹으시면 하나님이 그들을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돌아오지 않는 그들을 하나님이 작대기로 후려 패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격적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그렇게 처음서부터 다루시지 않으시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어제 말씀드렸습니다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반복적으로 보이시고 또 상황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이시고 기도속에서 보이시고 또 만나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도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보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시간 현재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뜻, 그 뜻으로부터 그 사람이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하나님이 끊임없이 보여 주십니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뭐냐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멀리떠나서 자신의 행복을 찿고 자신의 기쁨을 찿아서 살 정도가 되게 되면 그 다음에는 그사람이 하나님이 그렇게 불러 주시는 세미한 음성 또는 세미하기는 하지만 또렷한 하나님의 음성 그를 돌이키시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음성이 잘 안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잘 순종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려는 사람의 마음에는 이런 음성이 잘 들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그런 마음의 자세가 안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안 들립니다. 그래서 계속 불순종 합니다. 하나님이 이제 할수 없이 그를 때리시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복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때리실 때에 절실히 깨닫고, 때리실 때에 즉시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죄가 워낙 깊고 죄가 주는 즐거움의 집착이 강력해지게 되면 하나님이 때리셨는데도 도통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때리실때는 하늘에서 손이 나와서 여러분 따귀를 때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때리실 때는 주위에 있는 환경들을 일반적인 섭리 속에서 활용해서 하나님이 때리시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을 당하게 될 때 하나님을 느끼는 것도 영적인 해석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때리시는구나 그리고 내가 참 잘못했다. 이렇게 때리시고 아프실 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실까? 그리고 돌아가게 하시는 것이 때리시는 의도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그런 일들도 있을수 있지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을 자꾸 해버리고 나면 어떻게 되냐하면 하나님이 계속 때리시면서 인도해도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때리신다고 생각을 안하고 살아가면서 흔히 있는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얻어 맞는게 기분이 좋아서 그런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돌아갈 자신이 없거나 혹은 그렇게 얻어 맞으면서도 하나님께 돌아가기 보다는 이세상에서 죄 가운데 살면서 누리는 죄의 낙이 훨씬 더 즐겁고 재미있기 때문에 세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면 인간이 매우 추해 집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결국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살고 주님이 공급해주시는 힘을 덧입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주시려고 하지 않는데 나는 그것을 얻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어떻게 되냐 하면 하나님과 한판 겨루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 가는길에 자꾸 가시를 두시고 엉겅키를 두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가는길을 가로막고 그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싶어하시는데 올곧음이 거기서 작동을 하는 것입니다. 온 발이 가시에 찔려서 다 피 투성이가 되고 두들겨 맞으면서도 시종일관 가던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수없이 싸인을 보내시고 가시를 주시고해도 무릎에 피가 흥건하게 배어도 붕대감고 앞으로 계속가고 심지어는 발목이 부려져도 나무에 묶고 지팡이 짚고 가던길을 계속 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완고함이라고 하는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많이 맞았습니다.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온 머리가 상하였다. 머리를 두들겨 봤더니 다 상했습니다. 사실 이것을 하나님이 작대기로 패셨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올곧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해도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그렇게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하게 되면 우리가 선택한 것 때문에 그 잘못된 선택이 결국은 우리에게 되돌아와서 우리에게 많은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런데 올곧음을 가지고 바르게 살 때에는 하나님이 이런 것을 막아 주십니다. 그런데 이제 어느 단계에 도달해서 이 사람을 일상적인 방법으로 깨닫게 해서는 안되겠다, 그래서 하나님이 특별히 이 사람을 다루어야 겠다라고 생각이 드시면 그렇게 보호하던 당신의 보호를 하나님이 거두십니다. 그러면 잘못된 선택을 하면 그 잘못된 선택의 결과들이 그대로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결국 여기서 얻어 맞았다고 하지만 결국은 자기가 자기를 상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치셔서 돈을 잃어 버리게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느날 예금통장의 잔고를 다 빼가지고 하늘나라로 옮기시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바보같은 인간이 자기자신이 그릇된데에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날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예전에 은혜안에 있고 올곧게 살때에는 하나님께서 수시로 막으시면서 보호하십니다. 그러나 그를 치셔야 되겠다고 하실 때에는 가만히 내버려 두십니다. 가만 내버려둬도 어두워진 인간이 자기 탐욕을 가지고 잘못된 선택을 자꾸하고, 그 선택의 결과는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기머리를 자기가 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 보니까 머리가 많이 상하였다. 생각해 보십시오. 머리는 존귀의 상징입니다. 그것을 다 얻어맞고 상한 것입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어깨를 툭 치면서 오래간만이야 하는 것하고 머리를 쾅 쥐어 박으면서 오래간만이다 하는 것하고 똑같이 생각 할 수 있겠습니까? 머리는 원래 존귀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막 살컷 두들겨 맞아 가지고 결국은 빈틈이 없을 정도로 두들겨 맞으면, 결국은 뭐냐면 자존감 자체를 잃어 버릴 정도로 고난을 당하게 된 것을 가르키는 동시에, 머리는 또 생각입니다. 그냥 두들겨 맞아서 머리가 터질 정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제길로 걸어가는 사람의 머리는 항상 끓습니다. 머리가 아주 복잡한 것입니다. 정리가 안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안 두들겨 맞은대가 없어서 모두 다 상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앞에 돌아오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살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 오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냐, 그렇게 때리시면서 그를 돌아오게 하셔도 끝까지 인간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느 한순간에 하나님이 생명을 거둬 버리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을 이세상에 나뒀을때 이 사람에게 더 이상 기대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사람이 이 땅에 남겨져 있을때 신앙으로 하나님께 돌릴 영광보다는 하나님께 범죄하면서 살아와서 교회와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수치스럽게 하는데 그것이 너무 현저하다 생각이 되면 그중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섭리가운데 생명을 거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마지막이 그렇게 되어서 되겠습니까? 인생의 마지막 말이 매일매일 하나님께 순종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삶을 살다가 인생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 가장 성화된 모습으로 주님이 부르실때에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십시오 하면서 주님께 가야지 실컷 두들겨 맞고 정신 못 차리다가 하나님이 이제 더 이상 너를 이세상에 두는 것이 가하지 아니하도다 하고 생명을 취해서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는 그런 인생을 맞이 하면 우리가 어떻게 참다운 신자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인생을 그렇게 마감하는 것을 차마 보실수가 없어서 때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이 맞은 것입니다. 이유가 뭐 때문입니까? 말도 구유를 알고 소도 자기 주인을 아는데 그렇게 많이 맞으면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주님이시며 자기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자기들을 이 어두운 세상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 백성되게 하신분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어려움을 당하고 위기를 만나고나면 물질도 필요하고 잃어버린 사람도 되돌려 주어야 하고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진짜 어려움 당한 사람들에게 필요한것이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꺠달으면, 깨닫고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구나 그리고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구나 하나님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들은 더 때리실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특별히 오늘 여기에 보니까 머리도 상하였고 그다음에 마음도 상하였다 하였습니다. 그렇게 죄 가운데 사는 동안에는 잠시 죄의 낙을 누릴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치시기 시작하면 마음의 평화가 없습니다. 절대로 마음의 평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때리시는 것입니다. 치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죄의 즐거움과 낙이라고 하는것도 어느 순간까지는 그것을 맛보지만 하나님이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그를 매우 떄리시면 고난 받는데서 오는 고통이 죄의 낙을 능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낙이 없고 깊은 고통속에 휩싸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꺠졌고 상황은 막혔고 몸과 마음은 깊이 상해서 어떻게 자신을 추스릴 수가 없게 되었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나 하나님께서는 응답이 없고 주위의 사람을 보니까 자기 같은 사람에게는 관심도 없고 각자 자기의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깊은 외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죄가 여러분들을 빨아먹고 껍질만 뱉어버리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그 좋은자리를 뛰쳐나가고 하나님이 주신 그 많은 은혜들을 부패로 바꾸고 그래서 제멋대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인생을 살아간 댓가로 마지막에 돌아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제대로 돌아오는 것이 없이 제대로 얻게 된것이 없이 그렇게 형편없이 되어 버린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죄의 계획이요 불순종의 계획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 나옵니다. 너희들이 그렇게 상하였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을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상처가 나면 그것을 아무 치료도 없이 내버려 둬 보십시오. 그러면 어떤 현상이 납니까? 한쪽으로는 곪고 그리고 바깥 부분들은 햇볕에 바짝말라서 건딜기만 하면 다시 찢어지기 쉬운 상태가 되지 않습니까? 헌대들로 가득 상처가 말라서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고름을 짜내고 적절한 약을 바르고 상처에는 기름을 발라서 부드럽게 해줘서 피부가 마르지 않는 가운데에 부드러운 상태에서 계속 아무러야지만 새살이 돋을것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죄에 빠져서 얻어 맞고 그렇게 비참한 모습이 되었을때에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비록 그들이 자신의 죄로 인해서 당한 고통일지라도 주님은 싸매시고 싶어하시고 고름으로 깊이 곪아버린 환부들을 도려내고 짜내시길 원하시고 거기에 약을 바르시길 원하시고 터지기 쉬운 그 모든 상처들에 좋은 기름들을 발라서 새살이 돋게 하시고 싶은 마음을 가지신 분이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 불완전하고 악한 부모들도 자식을 심하게 때린 후에는 자신의 손으로 약국에서 약을 사다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다리에 바르고 종아리에 바르고 하는데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부모보다는 훨씬 사랑이 뛰어난 분이시고 부모는 우리를 낳기 위해서 아홉달반동안 배에다 넣고 잠시 해산의 수고를 했을 뿐이지만 우리를 잠시 길러 주었을 뿐이지만 하나님은 만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고난을 당하고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 시간에도 여러분들의 영혼을 보살피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보내주셔서 그래서 이제까지 살게 하시고 고난의 길을 면함을 오게 하시고 다양한 은혜의 방법으로 더 많이 산출되었을 죄의 산출을 가로막아 여러분들을 보호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당신의 자녀들이 불순종하며 살떄 하나님이 그들을 치시지만 잠시 후에는 그들이 얻어맞은 상처로 인해 아파하고 고통하는 그 괴로운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자비심이 발동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싸매시고 그리고 그 고름을 짜시고 약을 바르시고 기름으로 발라서 그들에게 새살이 돋게 하시고 싶어하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오늘 회개하지도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가지시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왜 얼마되지 않은 인생을 그렇게 하나님을 등지고 그렇게 얻어맞고 위로받지 못하고 상한 마음이 되어서 그렇게 어두움 속에서 일생을 살아야 됩니까? 그렇기 살기에는 우리의 일생이 너무나 짧고 우리의 가야할 길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싸매고 고치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러실까요? 그렇게 싸매고 고쳐서 이제 성하고 온전한 사람을 만들어서 예전에 가던 그길을 버리고 이제 처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주시고 구속해 주셨을때 가게 하고 싶으셨던 그 길을 걷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그들을 불러서 싸매고 고치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회개하지도 않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그들이 받은 상처와 고통에 대해서 이렇게 아파하시면서 싸매고 짜내고 기름으로 발라 주시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할것 같으면 그럼 만약에 우리가 진실하게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그리고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징계가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온것입니다. 하나님 나에게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나를 상하고 고통받는 나를 어루만지시고 나를 새롭게 해주십시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참회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이 얼마나 더 싸매어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때를 기다리시면서 당신의 백성들을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큰 환란과 시련을 만나고 상처를 받도록 허락하시는 것은 그들이 다시 참회하고 돌아와서 그들의 상한곳과 그리고 거친곳을 주님의 손으로 어루만져 치료해 주시고 다시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의 간격을 회복하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그 참뜻을 따라 살게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렇게 살게 하십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오늘도 우리를 어두움 가운데 있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징계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미워서 때리시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게 하셔서 싸매고 고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 죄 가운데 있고 범죄해서 하나님께 많이 징계를 받고 온 몸에 성한곳이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복수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상처주시고 고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자기의 백성들이 괴롭게 되는것이 하나님의 뜻에 있는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괴로운 징계를 통해서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의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위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때리시고 치셔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사시렵니까? 주님을 거스리고 징계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인생의 말에 기쁨이 있습니까? 징계를 받으면서 인생의 고난의 길을 접어들때 수시로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왜 그렇게 삽니까? 주님께서 오늘 이시간에도 여러분들을 싸매시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짜시기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들의 상처에 기름을 바르고 새살이 돋게 하시기 위해서 지금도 하나님이 여려분들을 부르고 계시고 그 하나님이 지금도 여러분들을 찿고 계십니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지금도 돌아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쁘게 받아 주시겠습니까? 그의 집에 쉼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정말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렇게 불러주셔서 주님의 뜻대로 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려분들에게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직접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순간이 하나님의 인내가 끝나는 마지막 지점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여러분들에게 인격적으로 호소 하십니다. 돌아와서 빛 가운데 사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 하시면서 사십시오. 하나님 없는 곳에서 우리 인간은 어떠한 행복도 없습니다. 마치 햇볕 들지 않는 곳에서 어떤 식물도 자랄수 없듯이 하나님 없는곳에 어떤 기쁨도 없습니다. 그 분께 돌아오고 그 안에서 기쁨의 삶을 다시 찿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3. 징계를 사랑으로 바꾼 회개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호 12:4)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 사람들은 한 가족에서 출발한 선택된 백성이 이제 민족으로 이어지게 만들어주는 아주 훌륭한 징검다리의 역할을 했습니다. 모두 신앙의 사람들이었고 물론 그들이 각각 결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의 승리를 보여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네 족장가운데 사실은 가장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사경회의 주제를 따라서 판단한다면 네 족장가운데 사실은 가장 올곧음이 결핍되었던 사람이 야곱이라는 사람 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후에 이 사람을 많이 만나주시고 은혜를 주셔서 다른 족장과 다름없는, 어떤 면에서는 그들을 능가하는 그런 올곧음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의 승리를 나타내 보여줍니다. 그런면에서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이 많은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성화의 은혜의 그 모본을, 예표를 아주 훌륭하게 야곱에게서 찻을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야곱은 오늘 여기에서 왜 거론이 되냐하면 그 야뽀강가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에 오늘 이 호세아서에서 거론이 되고 있습니다. 야뽀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제 형과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메소보다미아에 가서 라반의 집에 거하면서 여러 가지 사연이 있었지만 어쨌든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데 재물도 많고 아내와 자식들도 여럿 거느리게 되었지만 그에게 풀지못한 숙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형과 화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실은 형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 형의 장자의 명분을 속여서 빼앗고 아버지까지 속여서 하나님 앞에 축복을 얻게되는데 여기서 형을 만나야 하는데 그 형이 긴 세월동안 얼마나 마음에 분을 품고 살았을 텐데 여기에서 형과 만나서 도저히 살아남을 생각이 들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속여 빼앗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렇게 축복하셨을까? 그 이유는 쉽게 생각해서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장자의 명분을 갈망했던것은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 살고 싶다하는 신앙적인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얻는 방법은 그 신앙은 하나님이 동의해 주실수 있는 신앙이었지만 얻는 방법은 하나님이 동의할 수 없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가 관계가 깨뜨려지고, 가족과의 관계가 깨뜨려지고 많은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한 예를 들어보면 아버지를 속여서 대신 축복을 받기위해서 형을 대신해서 아버지에 들어가려 했는데 아버지가 눈이 침침해서 잘 안보였습니다. 그런데 자기하고 형하고 틀리는데, 뭐가 틀리냐면 형은 털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팔에다가 토시를 하나 차고 들어갑니다. 그것이 무슨 가죽이었는지 아십니까? 염소 가죽이었습니다. 염소가죽을 취해서 가니까 아버지가 팔뚝을 만져보면서 목소리는 야곱인데 손을 만져보니까 에서가 틀림없구나 하면서 축복을 해줍니다.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후 세월이 많이 흐른후에 야곱의 가슴을 찢어놓은 고통스러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뭐냐면 요셉이 형들에 의해서 이스라엘 상인에게 팔리고 형들이 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요셉은 죽은것 같습니다. 아니, 왜? 어떻게하냐? 그리고 가지고 왔는데 요셉이 입던 옷에다가 피를 묻혀 왔습니다. 그런데 그피가 무슨 피였는지 아십니까? 염소의 피 였습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자기가 아버지를 속였는데 이번에는 똑같은 염소를 가지고 자식이 아버지인 자기를 속여서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바로 야곱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주십니다. 그러니까 너무 인생이 다급하니까 야뽀강에 남아서 하나님 앞에 제발 나좀 살려 달라고 간절히 빕니다. 그래서 천사를 내려 보냈습니다. 천사를 붙들고 나를 축복해 주십시오. 축복해 달라는 것은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축복해서 내 형 에서를 만날텐데 내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상하지 아니하고 인생의 이 위기를 넘길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절히 빌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그래 해주마하고 그 자리에서 축복을 해주었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이 천사가 축복을 안해주고 다시 노임을 받아 가려고 하니까 야곱이 나를 축복하시기 전에는 가실수 없습니다 하고 꽉잡고 씨름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씨름을 우리들이 기도로 묘사를 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기도라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 또 똑같은 기질입니다.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하는 것은 훌륭한 것이지만 그렇게 천사와 씨름하는 방식으로 구하는 것은 혈기라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끝까지 놓지지 않고 씨름을 하게 되는데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것이 아니라 어떻게 된것인지 얼마나 힘이 센 것인지 모르지만 천사와 겨뤘는데 천사를 그가 이기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환도를 탁 친것입니다. 환도가 허리 아래 아닙니까? 그곳을 탁 치니까 사실 남자의 모든 힘의 근원은 허리 아래에서 나오는데 그것을 쾅하고 치니까 뭐가 뿌러 졌겠죠. 그래서 더 이상 씨름해서 이길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가 도저히 천사를 이길수 없으니까 울면서 간구를 한 것입니다. 그때에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참회하면서 나를 이 인생의 위게에서 건져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울면서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환도를 내리쳐서 그를 절뚝거리게 만든 천사의 행동은 하나님의 징계였다고 보는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고집대로 하나님을 꺽으려하는 이 야곱, 이제껏 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이번에도 하나님을 꺽어보려고 하는 이 야곱을 하나님이 탕하고 징계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둑질을 한다든지 사람을 죽인다든지 큰 죄를 지은때에 그런것만 하나님이 징계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지 않은 태도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것도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도와달라고 천사를 붙들고 씨름하는것은 시실 타락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지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으니까 도와달라고 매달리는 것인데 그것이 무슨 타락이겠습니까? 아니면 범죄이겠습니까? 그런데 그 속에 혈기가 충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간구가 될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열심은 혈기가 배어있는 혈기 충천한 몸부림이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간구는 인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기의 연약함에 대한 고백과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겸손함이 그 간구속에 모두 배어 있을때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간구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믿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탕하고 쳤습니다. 허리를 치니까 상체의 온힘이 다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천사와 겨루어 이길수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사에게 사정하는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제서야 울며 매달리면서 나 축복해 주시고 가시오. 나를 축복하기 전에 당신을 절대 놓을수 없습니다. 난 널 안다. 난 올라가야 되겠다. 무슨소리 날 축복하기 전에는 어림도 없지 그리고 싸우다가 쾅하고 환도를 얻어맞고 도저히 그 싸움을 계속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천사는 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린아이처럼 그때는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를 도와주십시오. 그러면서 거기에서 소위 이야기하는 자기가 깨뜨려 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쾅하고 깨트려지는 것입니다. 아마 이 사건이 야곱에게 있어서는 생애에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사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혈기 배어있는 믿음으로는 만날 수 없는 하나님을 징계를 받은후에 자기의 힘으로 도저히 천사를 붙들 수 없어서 나는 죄인이며 불쌍한 자이며 이제 천사를 붙들 힘도 없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주님의 은혜를 구했을때 하나님이 거기서 그를 만나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위기를 면하게 하셔서 형으로부터 보복을 당해야 할텐데 오히려 야뽀강에서 그 형과 뜨겁게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해후하며 화해하는 역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럼 여기에서 오늘 아주 중요한 결론을 얻을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왜 징계 하실까요? 비록 그가 범죄해서 교회를 떠나고 주님을 버리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찿으려고 하고 혹은 혈기로서 신앙을 대신하려고 할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제법 그래도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고 자기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오고 고통이 와도 교회를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잘 믿어보려고 애를 쓰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징계중에 있는 사람이 있을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뭘 잘못했나? 내가 십일조 생활을 안했나 교회를 멀리 떠났나? 내가 성도로서 개인적인 의무를 안 한것이 무엇인가?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곤고하고 하나님의 징계중에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때에 하나님을 향한 어느정도의 낙심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찿고 당신앞에 나아오는 자녀들을 끝까지 깨끗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강하고 단호한 열심이 계십니다. 그래서 그런 경우에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자기자신의 혈기가 배어있는 신앙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인간의 꾀를 수시로 바꿔가면서 행사하면서 사는 올곧지 못한 삶에 대해서 하나님이 슬퍼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징계하셔서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나 어려움 가운데 처하게 하시는데 그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는 첫째는 참회입니다. 야곱이 자신의 모든 잔재주와 인생을 향한 모든 계교를 포기하고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천사를 붙들 수 없게 되자 그는 어린아이처럼 울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드렸습니다. 자신의 방법을 포기하고 나는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도와 주십시오. 간절히 참회하는 이것이 징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참회를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될 때에 야곱을 불쌍히 여기셔서 도와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싶은것은 당신의 자녀들의 고통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자아가 깨트려지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하시고 싶으신 그런 마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고 싶어하시는 마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신자에게 그런 자기 깨어짐을 원하신 다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참회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은 몰랐지만 말씀을 듣고 보니까 여려분들의 인생이 이제 야뽀강에 와있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깊이 참회해야 합니다. 내 방식대로 잔재주로 하나님에게 받아 보려고 했던 죄를 회개하고 나는 정말 힘이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내가 이 위기 가운데서 어떻게 살아 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처럼 진실하게 참회해야 합니다. 그런 참회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순수하게 기도할 때 인간의 하나님을 배제한 인간의 혈기가 배어있는 열심히 이룰수 없는 기도의 제목들을, 그런 어린아이처럼 깨트려진 마음으로 참회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징계중에 있던 신자가 들이는 그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징계는 바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시간 기도할 때 여러분들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이런 자세로. 혈기 배어있는 열심을 모두 포기하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주님을 찿았지만 정말 진실하게 주님을 위해서 주님을 찿지않은 것을 참회하고 어린아이처럼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진실한 간구를 주앞에 드릴때 여러분들을 살려 주실 것입니다.
4. 징계 후의 번영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호 14:4)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속적인 책망과 징계에 대한 언급이 사라지고 이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사랑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그동안 오랫동안 하나님을 떠나고 불순종했던 이스라엘의 역사에 놀라운 변화가 오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사랑해 주시고 그들을 다시 당신의 백성으로 가까이 당신과 함께 거하게끔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시겠다 하시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저희의 패역을 고치시겠다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고 불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오랫동안 자신의 뜻대로 행한 사람들에게는 패역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패역은 히브리말로 ‘메슈바’라고 하는 것인데 굽은것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혹시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을 보면 성격이 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서로 대화를 하거나 같이 일을 하거나 할때 무엇이든지 굽은것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는 인식된 것도 똑바로 인식되지 않고 느끼는 것도 똑바로 느끼지 않고 행동하는 것도 똑바르지 않아서 무엇인가 비뚤어 지게끔 그안에서 굽어있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말하자면 굽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지속적으로 불순종하고 오랫동안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져서 하나님을 거스르면서 살게 되면 매일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더욱 무서운 것은 그 사람안에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르면서 살고자 하는 경향들이 생겨 납니다. 소위 말하는 죄의 악한 경향성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예화) 우리들이 처음에는 술이나 담배 같은것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다른사람들도 하니까 호기심에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택하는데 시간이 지나게 되면 술의 맛에 길들이게 되고 그 다음에 그 술을 먹게 됩니다. 그래서 시간이 점점 흐르게 되면 술이 사람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즐거워서 술을 먹었는데 그 다음에는 술을 먹지 않으면 손 발이 떨리고 고통스러워서 술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패역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능히 죄를 짓지 않고 살수 있는데 죄가 호기심에 혹은 죄가 좋아서 잠깐 죄를 짓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되는데 그러지 않고 그 죄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계속 범죄하고 불순종하게 될 때 마음속에서 그 죄의 악한 경향성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인간이 죄를 택하는데 다음에는 죄가 인간을 택해서 자기를 뜻대로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악한 경향성 패역이라는 것입니다. 정반대가 되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은혜안에서 계속 하나님을 섬기게 되면 마음안에 주를 경외하는 경향성이 생겨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자기가 힘써서 선택하려고 애를 썻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를 지배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그런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무엇에게 순종하면서 살아가느냐에 의해서 우리안에 패역한 경향성이 생겨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향성들이 생겨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악한 패역한 경향성이 마음에 깊이 자리를 잡게 되면 웬만큼 은혜를 받아도 그사람이 잘 고쳐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옛날의 그 기질들이 남아 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그를 배나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아무렇게나 살다가 어느 한순간에만 신앙생활을 잘하면 되는것이 아니라 일평생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평생 신앙생활을 잘 해야지만 우리안에 이런 악한 패역의 경향성들이 생겨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그런 악한 패역한 경향성들이 있게되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언뜻언뜻 그런것들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가끔은 교인들을 이렇게 보면 여러분들이야 사실은 착하죠 그러나 너무 교만해 지지는 마십시오. 그래서 목사들이 모여서 이야기 하면 항상 그럽니다. 나는 교인들 때문에 별로 속썩는게 없다. 만약에 교인들이 속을 썩이고 내가 마음의 개혁적인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하려고 하는데 교인들의 뜻이 집단적으로 저항을 하고 해서 도저히 내마음에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선한 뜻을 목회를 통해서 펼수 없다 생각됐다면 나는 벌써 접고 다른데 가서 새로 개척을 했을 것이다 라고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참 착합니다. 원래 착했겠습니까? 어느 목사님이 교회를 하시는데 교인들이 수평이동을 많이 합니다. 설교를 잘하시는지 다른 교회 교인들이 많이와서 다른 교회 목사들이 그런 답니다. 자기는 말이지 괜히 서울서 목회하지 여기와 가지고 남의 양들 다 뻇어간다고... 그 목사님은 “나 양 뻇어 간적 없어 우리교회 온 사람들 다 염소지, 염소였다가 은혜를 받고 이제는 양이 되었지”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교인들, 다른 교회에서도 목회하는 것을 보면 은혜 받았을 때에는 잘 모르는데 은혜가 떨어지고 나면 패역한 본색이 들어 납니다. 그래서 헐뜯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은혜 받을때에는 그렇게 선한 말하다가 은혜가 떨어지면 다른 사람들을 막 헐뜯습니다. 그리고 잔재주 피우던 사람은 잔재주 피우고 술 좋아하는 사람들 술먹고 말입니다. 그렇게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안에 패역한 경향성들은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오래도록 은혜안에 있어야 합니다.
(예화) 제가 여러번 말씀 드렸습니다만 담배를 하도 좋아하던 사람입니다. 진짜 예수 믿고 회심하고도 그렇게 담배를 못 끊었다기 보다 안 끊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책 펴 놓고 담배 피면서 성경책 보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전혀 없었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금식기도 삼일하고 맥주먹고 그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까불었습니다. 하루에 한갑반씩 피었습니다. 담배 한 대 피우는데 빨리 피우면 7분이고 천천히 피우면 15분씩 걸리는데 그것을 30개피 피웠다 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루종일 물로 있어도 3시간씩 걸리지 않습니까? 솔직히 밥먹고 있지 않으면 담배피고 있는것 둘중의 하나 이었습니다.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고 끊었습니다. 나중에 다시한번 은혜를 받고 술도 끊고 담배도 끊었는데 술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담배는 끊었는데 어느날 아침 출근을 하는데 저 앞에 어떤 사람이 버스 기다리면서 담배를 피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쭉 내밀고 담배연기를 들이 마시는데 그렇게 좋을수가 없습니다. 그때가 담배 끊은지 3년후의 어느날 일입니다. 꿈에 담배 피우는 것은 무수히 피고 또 후회하고... 5년이 지나고 나니까 이제 담배 냄새가 싫어 졌습니다. 지금은 음식점에 들어가서 담배 냄새가 나면 테이블에 앉았다가 일어나서 도로 일어날 정도로 토할것 같이 힘이 듭니다. 5년이 지나니까 몸속에 있는 니코친과 어울리는 모든 성질들이 다 빠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게 그렇게 지독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안 변하는게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안 변하는게 인간의 숙명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끼리 물고 뜯고 그렇게 개판으로 살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물에 슬쩍 담궈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도라지 쓴것 있습니다. 물에다 슬슬 씻어서 만약에 까서 묻혀 먹는다면 큰일 납니다. 써서 먹을수가 없습니다. 도라지는 하루나 이틀 물속에 넣어서 쓴물을 뺴야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인간도 똑 같습니다. 몸속에 쓴물이 잔뜩 배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쁜 일 입니까? 나는 고칠수 없는데 하나님이 은혜의 물에 집어넣고 그 쓴물을 다 뺴서 하나님이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경향이 바뀌면 얼굴고 바뀌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활짝 핍니다. 온유함이 얼굴에 넘침니다.
(예화) 언젠가 한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길을 잘못들어 잠깐 섰는데 어떤 사람이 내 뒤에 똑같이 와 가지고 갈림길에서 차를 세웠습니다. 왜 서냐고 했더니 뭘 좀 여쭤보자고 했습니다. 어디로 가려면 어느쪽으로 가야하는지 물어 봤습니다. 그래서 이쪽으로 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이제 티셔츠와 잠바 바람으로 기도원에 기도하러 가던 길이었는데 “저 혹시?” “왜 저를 아세요?” “아니요” “그런데 왜 가시지...”하니까 “혹시 맞나 여쭤 보려구요?” “뭘요?” “혹시 목사님 아니세요?” “아니 나를 어떻게 아십니까?”하니까 모르는데 얼굴을 보니까 쓰여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은혜생활을 잘 했던 모양입니다. 그거 쉽지 않습니다. 밤중에 고속도로에서 티셔츠에 잠바 걸치고 있는데 얼굴보고 목사님이시죠 그러는거 보니...
그렇습니다. 은혜생활을 잘 하다보면 얼굴에 패역이 빠져나가서 얼굴이 확 펴지면서 빛이 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두 번째가 사랑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호세아 12장 5절을 보면서 야곱의 이야기를 했음니다만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져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가운데 살았는데 그가 번영하고 많은 돈을 얻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항상 평안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사랑해 주시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때리고 치시던 하나님이 다시 그 백성을 사랑해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번영을 주시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합화 같이 피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은 백향목 같이 뿌리가 굳어지며 감람나무와 같이 포도나무와 같이 쭉 뻗어 나가는, 특히 포도나무는 재미 있지 않습니까? 나무가 하나 이렇게 서 있는데 가지가 계속해서 뻗어나가는 것입니다. 쭉 뻗어 나갑니다. 그래서 자기 키의 12배 까지 뻗어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포도나무는 포도나무만 하나 달랑 심어놓고 가만히 내버려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쭉 얼개를 만들어 놓고 그 위를 지나 가면서 계속 뻗어가면서 열매를 맺도록 하는것이 포도나무를 기른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 하나 맺지 못하고 그렇게 패역하게 하나님을 거스르며 자신도 행복하게 살지 못하던 그런사람을 하나님께서 고쳐주셔서 쭉 뻗어나가면 그 가지가 뻗어나가서 열매가 맺게끔 만들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렇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럼 어떻게 할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시느냐? 오늘 성경에 네가지를 가지고 말합니다. 첫쨰로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돌아올때, 말씀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로 돌아올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는데 죄인에게는 자기 스스로 힘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갈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꺠닫게 하면 나는 그렇게 하리라 결심을 하게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허락해 주시고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께로 돌아 올수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주는 강력한 힘 그리고 말씀의 은혜가 가져다 주는 결단력은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게으르기 짝이 없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 부지런해지고 불결하고 더럽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정결해 지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사악하던 사람들이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 앞에 선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하는 결단과 용기와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에 위대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패역을 고치고 다시 사랑하시고 번영을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헌신하는 사람들, 다시 말하면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들, 오늘 여기 보니까 입술로 하나님께 숫송아지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무슨 이야기 인가하면 예전에는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을 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 신앙의 고백으로 찬양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 라고 하는 헌신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패역을 고치고 다시 사랑을 주시고 번영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의존의 마음입니다. 예전에는 아수르를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아수르를 의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다른 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은 하나님이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며 사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기쁨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않는 사람, 그 사람의 마음을 통해서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마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데 우리들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자기를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죄 가운데 있을때의 특징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것 같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없으니 기도할 리가 없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갈망할 이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 은혜를 받으면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 인간인지 다시 깨닫습니다. 하나님 앞에 다시 나와서 주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 은혜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앙의 정절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은혜로부터 멀어져서 하나님 앞에 범죄의 상태있을 때에는 신앙의 지조가 없습니다. 굽어 있습니다. 그리고 더럽습니다. 그러다 은혜를 받게되면 비로소 하나님 앞에 주님의 순결한 신부가 되어야 되겠다 라고 하는 정절의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버리고 신앙에서 정절을 헤치는 그런 부정한 일들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순한 신앙을 갖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언제 일어 나냐면 징계중에 있던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 올때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고 우리를 때리시는 그것은 우리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것에 대해서 주님을 섭섭하게 해 드린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복수하시기 위해서 때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기의 백성이 다시 돌아와서 다시 당신의 사랑을 받으며 백합화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견고해지며 포도나무와 같이 감람나무와 같이 열매를 맺어서 우리를 이세상에 살게하시고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징계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징계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징계 가운데 계속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돌이키지 않을때에 받을 그 형벌 같은 고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서 얻을수 있는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거기에 번영이 있겠습니까? 거기에 행복이 있겠습니까? 거기에 참다운 하나님과의 친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징계중에 깨닫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그 사람의 속을 고치셔서 패역한 사람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으로 바꾸시며 사랑하시며 번영을 주시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의 번영과 우리의 외적인 삶의 번영을 주셔서 삶의 많은 열매들이 맺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고침 이라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불순종과 징계속에서 가시와 엉겅키에 있는 그를, 그 무릎을 찢으며 걸었지만 이제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열매 맺으며 살도록 주님이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떤 삶을 택하시겠습니까? 깊이 회개하고 징계중에 꺠닫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때리시고 싸매시는 하나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