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의 신앙 부흥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느 8:8-9)
오늘 설교할 말씀은 8과 9절 상반절인데 1절부터 12절까지 읽어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회중 앞에 이르러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 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매 그 우편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 좌편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 다 그 처소에 섰는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데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케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종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
오늘 이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망해서 포로로 끌려가고 주전 605년에 첫 번째 포로로 끌려가고 586년에는 나라가 완전히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이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세 번에 걸쳐서 본토로 귀환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독립이 되었기 때문에 귀환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 원하는 사람을 고토로 돌아가서 살 수 있게끔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것이죠. 첫 번째 스룹바벨에 의해서 올라가고 그 다음에 두 번째로는 에스라가 데리고 올라가고 느헤미야는 마지막으로 본토로 백성들을 이끌고 돌아간 지도자입니다.
이 느헤미야는 원래 그 이스라엘 사람이었지만 또 동일하게 포로로 끌려서 바벨론으로 가게 됩니다. 바벨론 땅으로 가서 거기에서 이 느헤미야는 다행히 많은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는데 왕의 술맛을 맡는 관원이 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뭐가 되는지 모르겠는데 왕 근처에 있어서 경호실에 무슨 어느 중간 책임자쯤 될까요? 그래서 왕이 술을 마시기전에 그 술에 무슨 독이 들었는가 이런 것들을 검사하는 그러한 직책을 맡게 되었지요. 이 사람이 다른 동포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호사스런 궁궐생활을 하면서 그 속에서 왕의 신임을 아주 깊이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이 느헤미야의 마음은, 몸은 비록 이국의 땅에 와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고향에 있었습니다. 고향이 아니라 영적인 본향 이스라엘에, 그리고 예루살렘에 이 사람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느헤미야가 오늘 어떻게 백성들을 이끌고 이렇게 고토로 돌아와서 지도자가 되게 되었느냐 하면 아주 간단한 사건이 하나 발생하게 됩니다. 그 사건이 무엇인고 하니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온 다음에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본토로 귀향해서 성벽을 쌓고 성전을 건축하는 일들을 행하게 되는데 그 때에 느헤미야 1장에서 고국으로부터 돌아오는 형제들을 붙들고 예루살렘 사정이 어떻습니까? 하고 그 궁금했던 고향 본토의 소식을 물었습니다. 그 때에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니 성을 쌓는데 거기에 많은 사람들의 반대가 일어나서 그 성전을 짓고 성을 쌓는 일에 훼방을 놓고 그리하여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예루살렘 성을 훼파하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거에요. 그래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어 많은 사람들이 큰 환난을 만나며 능욕들 만나며 예루살렘 성을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실되었다 하는 지라 이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울면서 슬퍼하고 며칠동안 먹지도 못하고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기도하며 그렇게 깊은 시름에 잠기게 된 것이죠.
그런데 마음으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 느헤미야가 왕궁의 그 임금의 수발을 들면서 있을 때에 어느 날 아닥사스다 왕이 보니까 수색이 가득 차 있어. 느헤미야아, 네가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가득하냐 하고 물었어요. 그때 느헤미야는 아, 이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바로 나에게 주신 기회구나! 하고 두고 온 동족들에 대해서 소상하게 얘기 했습니다. 보십시오. 주님을 섬기려고 하는 그 마음 하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를 위해서 섬기고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성이 소실되고 성문이 불에 타고 수많은 동족들이 능욕을 당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거리는 한없이 멀고 정치적인 힘은 없고 그 자기의 동족들을 도울 수 없고 자기의 조상들의 성 예루살렘을 새롭게 세울 수 없는 이 느헤미야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주저앉아서 며칠동안 울며 슬퍼하며 곡기를 끊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이 사람은 지금 호화로운 궁궐에서 먹고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이렇게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움은 이 세상 자기가 먹고 마시고 그리고 호화스럽게 살고 모든 근심 걱정이 없는 그 왕궁에 살고 있었지만 이 사람의 몸이 거기에 있었을 뿐 이 사람의 마음은 고난을 받는 예루살렘 성과 함께 상처를 받고 시험을 향하는 예루살렘 성과 함께 마음의 환난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인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깊이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신실하게 하나님을 바라고 섬기기를 원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도무지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주님은 여기에 기회를 주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이 없는 사람은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어도 그 기회를 언제나 놓치고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주께서 쓰시려고 해도 스스로 주의 쓰심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신을 내어 던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느헤미야에게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축북이, 꿈과 같은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하면 왕이 친히 그때 다리오 왕인데 그 아닥사스다왕이면은 그 모든 권세를 소유하고 제국을 손에 쥐고 있는 왕이었는데 그 왕이 하는 말이 느헤미야아, 느헤미야아, 네가 정녕 그 고토에 돌아가는 것이 네 소원이면 그렇다면 느헤미야아, 너는 가서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라, 망한 나라 그것도 적국의 성을 건축하도록 적국의 왕이 명령해 주면서 그것도 친히 조서를 내려서 국고에서 보조해주고 지방 재정에서 보조해 주도록 공문까지 띄워서 그래서 너희 원하는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 이렇게 명해 주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역사입니까? 꿈에나 생각할 수 없었던 소원을 느헤미야는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느헤미야가 올라와서 죽 성벽들을 건축하는 데 수많은 애로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성이 건축되어져 나가는 장면을 오늘 7장까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곽 건축은 성곽 건축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건축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먼저 왔던 에스라와 함께 합력하여서 사역하는 가운데 이제는 성을 쌓아서 하나님의 성읍이던 시온을 보호하던 예루살렘을 보호하던 일을 하다가 이 예루살렘 성을 쌓기 위해 애를 쓰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무엇을 깨닫는고 하니 무너져 버린 마음의 성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예루살렘 성을 건축해 가는 가운데 그 황폐한 예루살렘 성을 보면서 자기들의 마음속에 부숴지는 성벽을 보는 거에요. 성벽이 부서지니까 어떻게 되었어요? 수많은 적군들이 들어와서 언제든지 성을 유린하게 되었잖아요. 마음의 그러한 견고한 신앙의 성이 무너지니까 그 마음속에 이 세상에 있는 습관과 풍속과 불신앙들이 들어와서 자기들을 주장하고 있는 사실들을 주장하면서 드디어 8장에서부터 이제는 사람 속에 있는 예루살렘 성의 건축, 이 영적인 개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예) 지난주에 부천에 가서 제가 집회를 하는 가운데 그 참,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말씀을 그 교회 목사님이 저한테 해 주었습니다. 무슨 얘긴가 하니, 무리하게 교회를 짓다가 시험에 드는 교회를 많이 보지 않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이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 어떤 교회는 통장에다가 교회를 질 수 있는 돈을 완전히 가지고 교인들에게 돈을 걷지 않고 통장에 있는 돈을 빼가지고 교회를 지면서도 시험에 드는 교회가 있고 돈 한 푼도 없어서 모든 사람들이 초긴장하는 가운데 물질의 어려움을 많이 겪으면서 교회를 지었는데도 오히려 그 교회가 건축되면서 성도들의 신앙이 한 차원 높게 부흥되는 역사를 이루는 교회가 있습디다.”
그래서 제가 아, 그렇다, 내가 이제껏 까지 모든 시험에 드는 것은 돈이 없는 것이요, 돈을 준비하면 그리고 교회를 지으면 시험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얼마나 평면적이었는가를 깨닫게 되었어요. 오늘 이 예루살렘의 성 건축이 바로 이 놀라운 영적인 자각을 가지고 왔던 것이에요. 그러면서 깊이 깨닫는 역사를 가져온 것이에요. 그 중에 그 첫 번째 역사가 이 8장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 이 이스라엘 자손이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고 그랬는데 이 수문 앞 광장은 성전 앞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전을 여러분, 알다시피 에스라가 와가지고 성전을 건축하고 느헤미야가 와서 성벽을 건축하게 되는데 솔로몬 때 지은 그 성전을 다시 재건할 수 가 없었어요. 왜, 너무나 어마 어마하게 크니까 남의 도움을 받아서 지으면서 그대로 재건할 수가 없었어요. 금만 90조 원 어치가 들어갔다고 하니까 그 무슨 수로 그것을 지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할 수없이 그것을 축소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많은 백성들이 그 성전에 모일 수가 없죠. 그래서 수문이라고 하는 곳에 모였는데 성전 앞 정도 되는 곳에 백성들이 다 모였는데 7/1이었습니다. 이 날은 무슨 날인고 하니, 우리 달력으로 하면 10/2일인데 이 날이 무슨 날인고 하니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정초였습니다. 그러니까 원 날이죠. 1/1이에요. 이 날은 나팔을 불면서 모든 사람들이 기쁨으로 모여서 하나님 앞에 성회를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그 성회로 모였던 것입니다.
드디어 제사장겸 학사 에스라가 나왔고 그 에스라에게 전에 행하던 대로 정초이면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다고 백성들에게 읽혀 들려주는 그런 행사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1월 달에 신앙 부흥집회를 갖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 사람들은 정초 첫 번째 날에 하나님 앞에 모여서 말씀의 성회를 갖는 것이었어요. 제사가 아니라 말씀의 성회였어요. 그래서 그 말씀을 통해가지고 다시 한번 자기들이 이 일년 동안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그러한 집회로, 성회로 모이게 되었던 것이지요. 신년에 축복 성회, 축복성회 그러는데 그 축복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1년 동안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삶을 살아 드려야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모이게 되었어요. 그 때 주위에 많은 돕는 사람이 있었고 모든 백성위에 올라서서 특별히 나무로 만든 강단에서 여호와의 율법을 낭독하는 이런 일들을 하게 되었어요. 여호와의 율법을 낭독하게 되는 이런 일들을 하게 되었어요. 이 일들을 하게 될 때에 모든 사람들 앞에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는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수많은 백성들은 머리를 땅에 대고 손을 높이 들고 아멘, 아멘 에스라가 송축하는 그 하나님을 우리도 송축하나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이지요.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에스라와 그리고 에스라와 함께 한 말씀의 종들이 특별히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였습니다.
이 율법책은 모세의 오경을 가르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쓰여 있는 가장 기본적인 주의 백성의 도리를 백성들에게 죽 낭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석해 주고 이렇게 그 말씀으로 그 일을 만들 때 정초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이 정초에는 나팔을 불면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뻐한다고 해서 나팔절이라고도 하는데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고 찬미하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이것이 정초 집회에 공식적인 일정이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통곡하며 슬피우는 이변이 일어난 거에요. 아마 이런 일이 매년 일어났던 것 같지는 않아요. 수많은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통고하며 울면서 커다란 각성과 변화와 은혜가 주어졌어요. 그러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가운데에 이 백성들이 참으로 일찍이 없던 그러한 곤고한 포로 생활 가운데서 영광스러운 정초의 성회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어떻게 해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이 집회가 영광스러운 집회가 되었는지를 조목조목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8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이 율법책을 에스라가 백성들에게 낭독해 주기 전에 먼저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 남자와 여자와 모든 사람들이 에스라에게 우리에게 율법책을 읽어주십시오. 그렇게 청했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동안 성을 건축하느라고 힘을 다 소진하고 애쓰고 수고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이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싶던 마음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성을 건축하면서 이들은 이 세상이 정말 얼마나 악한 가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투서질을 하면서 이들이 성을 쌓는 것은 왕께 세금을 내지 않고 왕을 대적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 지방을 옛날부터 역사를 살펴보십시오. 반역으로 유명한 동네가 예루살렘 동네가 아닙니까? 왜 국고를 낭비해서 이 나쁜 놈들에게 성을 지어줍니까? 이것은 잘못된 것이옵나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방해하는 투서가 올라갔어요. 그리고 이것을 지어놓으면 사람들이 성의 문을 꽉 닫고 군대로 무장을 해서 왕의 나라를 대적하면 왕이 손해를 볼 것입니다. 황당무계한 유언비어와 그리고 황당무계한 모함이 수없이 들어갔고 그리고 심지어는 무역을 동원해서 이 성이 건축되는 것을 저지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자기네 나라 땅에 와서 자기의 손으로 자기의 성을 건축하는데 이렇게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의 핍박과 반대에 부딪치면서 오늘 이 7장까지 살아왔던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오늘 이8장에 와서 신년의 첫 번째 한해의 첫 번째 날을 시작하는 이 나팔절을 맞이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모든 곤고하고 그리고 슬픔과 눈물이 많았던 그 모든 포로 생활과 고국으로 돌아와서 더 편한 것이 아니라 더 고난에 넘치는 생활을 해왔던 의지할 곳 없는 이 인생들이 오늘 하나님 앞에 마음을 정하고 그 마음 깊은 곳에서 이제 우리는 주님의 율법을 듣고 싶다 이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놀라운 신앙의 감격을 누리고 그리고 이전에 없었던 영혼의 변화가 일어나서 정말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자녀다운 그 사랑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놀라운 영적인 변화가 있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는 이러한 심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결론은 얼마나 훌륭한 것이었습니까? 율법책을 가져다가 읽어주어서 우리로 하여금 그 말씀을 듣게 하라, 이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은 겸비해졌고 겸비한 그 백성들의 마음은 어린아이와 같이 오랜 동안 묻어두었던 조상의 그 율법책을 듣기를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낭독하는 것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원하는 이러한 마음이 생겨났을 때 백성과 그리고 그 모든 에스라의 마음과 느헤미야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말씀을 듣기 원하는 모든 소원이 하나가 될 때에 주님은 드디어 이 나팔절을 다른 해의 나팔절과 다른 특별한 영적인 각성과 변화가 있는 나팔절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였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말씀을 들려줄 때에 수많은 백성들이 에스라와 함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 마음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세상 일에 분주합니까? 그리고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은 이렇게 말씀을 듣는 시간을 통하지 않고는 우리가 참으로 누구를 찬송하기 위해서 지음 받은 자이며 그리고 우리의 본분이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의 이름을 높여 드려야하는지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백성들은 수시로 모여서 말씀을 듣고 말씀을 읽고 주님의 말씀의 그 교훈을 생각하고 묵상함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우리의 본분을 말씀 속에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펴고 낭독해 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들었을 것입니다. “너희는 나의 택한 족속이요 그리고 나는 너희 아버지가 되니라. 너희가 내 법도를 순종하고 내 율례를 지키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낭독되어질 때에 자기가 누군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누가 이 세상의 민족이 이런 율법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세상의 어떤 백성들이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되돌아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라을 통하여 이렇게 하나님의 율법을 낭독할 때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이 율법을 향하여 집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율법을 향하여 집중되어질 때에 에스라는 그 뜻을 해석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해석되어질 때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이후에 실망에 찬 얼굴로 엠마오로 가는 제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실망과 슬픔에 가득 차서 낙심해서 돌아가는 그 사람의 마음을 뜨거워지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주님을 향한 사랑과 그리고 신앙에 대한 뜨거운 그 열심을 회복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어떨 때 이런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여러분, 하나님 앞에 정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질병에 걸려있는데 그 질병은 ‘냉담병’이라는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싸늘하고 차가웁고 그렇지 않으면 고작해야 미지근하고 이러한 영적인 냉담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아니하고 그리고 가슴을 쳐도 애곡하지 아니 하는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향하여 피리를 부셔도 춤출 줄 모르고 성경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통곡하여도 가슴을 칠 줄 모르는 이러한 모든 원인은 영적인 질병 속에서 오는 것입니다. 냉담병입니다. 말씀드리거니와 참으로 주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주님을 기뻐했는지 보십시오. 에스라가 손을 들어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하실 때에 수많은 백성들이 함께 손을 들고 그리고 머리를 대어 엎드리며 ‘아멘, 아멘,’ 주님은 실로 거룩하시고 광대하나이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하나님을 향한 경배가 생겨났습니다. 에스라의 마음속에 차고 넘쳤던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광대하심을 향한 그 찬송이 모든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 같이 울려 퍼졌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냉담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모든 백성들은 냉담하지 않았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마른땅과 갈라진 그 홍해 길을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갔습니다. 언덕 위에서 홍해를 내려다보니 새까맣게 바로의 군대들이 말을 타고 병거를 끌고 창과 칼을 손에 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물 사이로 난 그 길로 수많은 백성들이, 물의 물기둥 사이로 기어 올라오고 있을 때에 주께서 그 물을 합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바로의 위엄에 가득찬 그 600승의 병거를 물위에 낙엽과 같이 띄우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며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파도치는 그 홍해를 바라보고자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허, 바로의 군대가 죽는구만!’ 하고 말았습니까? 성가대가 있었습니까? 피아노가 있었습니까? 올간이 있었습니까? 나팔이 있었습니까? 악기를 다 찾아보니까 조그만 북이 하나가 나왔습니다. 미리암이 기쁨을 참지 못해 소고를 들고 두들겼을 때 200백 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그 소고 두들기는 소리를 들으며 그 언덕에서 일어나서 그 파도치는 홍해를 바라보며 주 여호와는 크시도다, 만방에 여호와 같은 신이 뉘시뇨? 수많은 백성들이 15절에 걸쳐서 합창하며 노래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그들의 심령이 주님을 찬양하고 베길 수 없는 이러한 심령으로 바뀌어졌던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주께서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이적을 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하나님의 나라에 상달되는 아름다운 성가는 일류 성가대에 의해서 나오는 연주가 아니라 주님을 참으로 만난 백성들의 영혼 속에서 나오는 이 소리가 비파와 수금의 소리보다 더 아름답고 일류 성가대의 공교한 연주를 능가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가슴이 벅차오르는 찬양과 그 놀라운 아름다운 찬미가 마음이 뜨거워지고 그 심령이 변화될 때에 영혼의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것입니다. 누가 이 노래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예) 제가 아는 전도사님 한 분이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것에 걸렸는데, 그것은 노래를 하거나 말을 하면은 기관지가 점점 넓어지다가 죽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사가 권고하기를 오래 살고 싶으면 2년 동안만 말을 될 수 있으면 절대 노래를 부르지 마라. 치명적이다 그랬어요. 그럼에도 이 사람은 늘 매일같이 목소리를 높여서 찬양했어요. 자기의 생명을 깎으며 하나님을 찬양했어요. 왜, 의사 말을 그렇게 안 듣습니까? 노래 할 이유가 나에게는 있다. 그리고 이 노래를 누구도 그치게 할 수 없다. 냉담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주실 때에 이 백성들이 하나님과 만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율법을 풀어주시고 그리스도가 어떻게 고난을 받고 죽을 것을 설명해 주시는 가운데 이들은 눈을 밝히 떠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었고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음의 감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실망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낙심이 변하여 소망이 되었습니다. 곤고함이 변하여 풍요로움이 되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영혼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오늘 이 느헤미야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라 앞에서 어찌하여 울게 되었을 까요. 이들이 오늘 나팔절은 모두 통곡하는 나팔절로 만들자 그렇게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나팔절은 기쁨으로 하나님께 찬미하고 기뻐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에스라가 그 하나님의 율법을 해석하게 해 주자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 오지지 않을 때에 깨달을 수 없었던 놀라운 깨달음과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 뜻을 해석할 때에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신앙 생활에 있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중요한 한 교훈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곤고합니까?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가 부흥의 전단지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주를 위해 살기 원하나 그 길을 확신할 수 없고 이 죄악 된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섬기기를 원하나 그러나 그렇게 섬기며 살 수 있는 힘이 없는 모든 사람들의 유일한 소망은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곤고한 심령과 연약한 자들과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자들과 고난에 처한 모든 사람들이 새 힘을 얻는 길은 주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의 율법이 해석되어질 때에, 그 말씀이 풀려져서 사람들의 귀에 들릴 때에 주님은 이러한 변화를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해석되어질 때에 이 에스라시대에 이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변화가 일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확신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영혼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그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없습니다.
그런데 이 백성들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와 어른아이와 무릇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다 모였다고 그랬는데 이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목 놓아 울었던 것입니다. 수 십 만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기 모였을 것입니다. 그때에 이 수문 앞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기뻐하는 노래 소리 대신에 슬피 울고 탄식하며 하나님 앞에 통곡하는 그 울부짖음이 수문 앞 광장을 가득 메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뻐해야할 절기에 사람들이 슬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왜, 이 기뻐해야 할 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깨닫게 하매’, 그랬습니다. ’깨닫게 하매,’ ;깨닫게 하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니까 백성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그리고 깊이 울게 되었던 것이죠.
두 가지를 살펴보아야 되겠습니다. 우선 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깨달았는가! 무엇을 깨달았는가! 우리는 한 가지로 말할 수 없습니다. 율법을 낭독할 때에 어느 부분은 굉장히 긴 시간동안을 낭독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때에는 율법을 읽을 때에 그 율법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서 백성들의 마음에 다가올 때에 이런 말씀도 있었을 것입니다. 너희가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서 살면 하나님이 너희를 멸하시리라, 주님의 심판의 경고를 들을 때에 그들은 회개했고 그 회개하는 자들을 용납해 준다는 용서의 음성을 들을 때에 그들은 감격했습니다. 이 눈물은 단순한 슬픔의 눈물도 아니고 기쁨의 눈물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이 파노라마 치면서 장엄한 말씀의 세계를 들려주고 그 장엄함 위에 에스라의 해석이 그 장엄함 말씀의 골짜기에 에스라의 해석을 통해 그 골짜기에 바위가 놓여지고 나무가 심겨지고 물이 흐르고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지나가고 구름이 있고 온갖 열매가 피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도 없이 말씀도 없이 오직 이 예루살렘에 와서 수많은 고생을 하며 그렇게 벌판과 같이 살았을 때에 이 나팔절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장엄한 세계를 보게 된 것이에요. 그러고 나서 아, 진심으로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놀랍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죄악을 회개하고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때로는 슬픔의 눈물을 때로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너와 늘 함께 하리라는 율법의 말씀 속에서 도비야와 산발랏을 비롯한 수많은 반대편들의 도전과 핍박을 받으면서 가슴 아파했던 모든 날들을 회상하며 ‘과연 주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건지셨도다’ 라고 그들은 노래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그리고 그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말씀 속에서 깊이 깨닫게 되자 이 백성들이 한없이 우는 영혼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회개에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이 길에는 값싼 눈물이 있고 비싼 눈물이 있습니다. 값싼 눈물도 눈물이고 비싼 눈물도 눈물인데, 값싼 눈물을 잘 흘리는 사람들이 언제나 이점에 있어서 실수를 합니다. 여러분 주의 신앙생활을 하는데 이런 것을 보신 적이 있죠? 눈물을 흘리고 회개를 했다고 하는데 삶이 잘 고쳐지지 않는 것, 두 번째는 눈물을 흘리고 회개를 했다고 하는데 다시 그렇게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매달릴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을 우습게 평가하는 사람들을 봤죠? 그것은 모두 값싼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반짝이는 모든 것이 금이 아니듯이 흘리는 눈물이 모두 눈물이 아닌 것 입니다. 오늘 이 백성들은 고향에 와서 타향살이처럼 시련을 만나고 핍박을 만나는 것이 서러워서 운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성이 다 지어서 기뻐서 우는 눈물도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에 두고 온 가족과 친척들이 생각이 나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흘리는 눈물은 그런 눈물이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흘리는 눈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율법의 뜻을 해석해주는 에스라의 설교를 통해서 이 백성들의 마음속에 확실히 자기를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자기들의 인생을 통하여 무엇을 말씀해주시는지 그 진리의 내용을 확고하게 붙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 앞에서 흘리는 그 눈물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깨달음이 없는 눈물은 눈물이 씻겨지면 감정 밖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마는 진리 앞에 흘리고 그 뜻을 깨닫고 흘리는 그 눈물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눈물이 그로 하여금 그의 영혼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싹터서 이렇게 열매 맺고 줄기 가지가 뻗게끔 내려주는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깊이 깨닫고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설 때에 흔히 하나님의 백성들은 눈물을 흘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인 됨을 인하여 애통해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에스라의 말씀이 능력있게 증거되고 백성들은 또렷하게 순전한 율법을 낭독한 후에 그 해설이 얼마나 적절한지 말씀을 듣는 가운데 깨달을 수 없었던 깊은 성경의 뜻을 에스라의 해석이 닫게 했습니다. 그 말씀이 귀에 들어오고 그 말씀이 마음을 두드리고 마음을 두드린 말씀은 영혼으로 내려가서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회개하고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그 하나님의 놀랍고 광대하신 은혜를 새롭게 느끼면서 이 백성들은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울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보십시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율법의 말씀, 해석되는 율법의 말씀을 듣고 모든 백성들이 울었습니다. 기쁨의 날이 눈물 바다가 되었습니다. 환희하여야 할 날에 이들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릇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아가는 이런 일들을 절기도 막을 수 없었고 전통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원하는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그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벗어난 잘못된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그를 다만 죄 있다고 지적해 줄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을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그 은혜를 너무나 감사하고 그 은혜가 너무나 놀라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듣고 슬피 울며 그리고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그렇게 긴 시간을 수문 앞 광장에서 말씀에 집회로 보냈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될 때에 이스라엘 속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모두 말씀을 인하여 다 울면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서서 그것도 선채로 계속되었습니다. 서서 말씀을 들으면서 백성들이 흐느껴 울 때에 백성들이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아, 이제는 우리가 여호와의 율법으로 돌아가야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향하여야 하리라, 그 말씀을 향하여 살아야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들려왔던 음성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흐느껴 우는데 그 흐느껴 우는 욺이 얼마나 심대했는지, 온 수문 앞 광장을 뒤덮고 수많은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서 이제는 그만 울라고 얘기를 해도 울음을 그칠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감성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에 느헤미야와 지도자인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친 레위 백성들이 말했습니다. 얘들아, 진정해라, 진정해라, 오늘은 우리 모두가 기뻐해야 하는 여호와의 성일이니 가서 이제는 울며 금식하지 말고 살진 것으로 먹고 달콤한 것들을 마시고 없는 자들에게는 너희가 나누어주어 우리가 모두 기뻐하자, 이것이 우리의 힘이 되리라, 백성들에게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통회하는 사람들 앞에 하나님의 친히 주시는 위로가 이 백성들에게 엄청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위로를 얻기 원하십니까? 그리고 진정으로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시는 이 놀라운 사랑,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놀라운 분이지를 깨닫고 위로 받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슴아파하는 일이 있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거짓된 위로가 아니라 완전하고 참된 하늘의 위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지나갔습니다. 이 절기에 이렇게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인하여 슬퍼하고 우는 일이 없었더라면 맛볼 수 없었던, 예년에 없었던 놀랍고 커다란 기쁨과 희락이 당신의 백성들의 온 마음과 영혼을 건드리고 지나감으로 말미암아 평생에 잊혀질 수 없는 그러한 나팔절로 이들의 역사 속에 기록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리는 근본적인 위로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사람으로부터 오는 위로는 잠시는 우리들을 소생하게 하실 수는 있지만은 그러나 주께서 나의 영혼을 소성케 하시고 주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하시고 주님만이 우리의 마음속에 참된 기쁨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참된 기쁨을 얻기를 소원하지만은 우리들이 왜 그런 참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놀라운 위로와 그런 사랑을 감격에 가득찰 정도로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사랑과 하나님을 만날 놀라운 감격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그 기쁨과 놀라운 희락에 가득 찬 삶을 그렇게 경험하기를 원해도 그렇게 경험하기를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순서가 바뀌었기 때문에 그래요. 눈물의 나팔절이 되었을 때에 예전에 어떤 희락의 나팔절로 변했어요. 이것이 성경이에요.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 고난이 있은 후에 영광이 있게 된 것과 같이 그리스도도 이 길을 걷지 않으셨습니까?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먼저 말씀을 듣기를 원했고 희락하기를 원하기 전에 말씀을 듣고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깊이 깨닫고 자신들을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할 때에 이들에게는 세상에서 빼앗을 수 없는 값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그 눈물은 급기야 그 눈물이 마른 후에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쉽게 빼앗아 갈 수 없는 친히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놀라운 위로가 넘치는 이러한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완전한 희락과 평화와 기쁨을 눈물 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심으로 말미암아 이 어둔 세상을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그 능력으로 살아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이 어두운 세상에서 찬란한 불꽃으로 살아서 우리를 보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보게 되는 이러한 놀라운 변화가 여러분들에게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같이 한 음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