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사랑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마 5:2)
녹취자: 백지영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한 가지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을 할 때에는 본무가 있고 잡무가 있습니다. 본무에 충실할 때 그때에 그 일이 잘 되는 것이고 본무가 아니고 잡무도 잘 하는 것이 돋보이는 법입니다. 사람은 인간성도 참 좋고 서글서글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갖기도 잘하고 잘 섬기고 유머도 있고 리더십도 있고 사람들 데리고 놀러도 잘 가고 희생적이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싸움을 잘 못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 직업이 군인입니다. 동의가 되겠습니까? 동의가 안 되실 것입니다.
그러면 교사는 본무가 무엇이냐? 교사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요즘은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 없습니다만 우리 옛날에 교사생활 할 때에 얼마나 하는 일이 많았는지 그래서 아이들 상담도 해 주고 또 공부 못하는 애들은 토요일 날 불러다가 수학도 가르쳐주고 영어도 가르쳐주고 또 아이들 데리고 놀러 다니고 그랬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입이 열려야 마음이 열린답니다. 그래서 자꾸 사주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해 주고 놀아주고 가끔 또 교회에서 행사도 하는데 행사도 해야 하고 그 다음에 여름 캠프도 가야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전부 다 교사의 본무가 아닙니다. 하면 좋지만 안 해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다 치워버리고 나면 마지막에 딱 하나 이것을 안 하면 그 사람은 교사일 수가 없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교사의 정체성이고 나머지는 그것을 하기 위해서 하면은 그 본무를 감당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들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4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옵니다. 각색병 들린 사람 - 귀신들린 자, 중풍병에 걸린 자 - 이런 사람들이 다 따라와서 예수님이 하나하나 그들을 다 고쳐주십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이것으로 이 사람들에게 할 일을 다 했다 그렇게 생각하셨으면, 예수님은 “가라. 이제 너희들은 행복하거라.” 그러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팔복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팔복산으로 올라가셔서 예수님은 산 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좀 과장이 심합니다. 그래서 호수는 바다라고 하고 좀 커다란 밭은 평야라고 하고 언덕은 산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산이라고 했지만 조그만 언덕입니다. 예수님이 위에 올라가서 앉으시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 모였습니다. 예수님이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하면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주린 자를 먹여주시기는 했는데 그것이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아놓으시고 천국 복음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5장 3절부터 시작해서 7장까지 내려가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과 그 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 그리고 그들의 생활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의 전체적인 요약이 이 산상수훈에 담겼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마그나카르타, 기독교인의 생활의 대헌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장이 5, 6, 7장입니다.
그런데 이 5, 6, 7장은 굉장히 긴 내용입니다. 그래서 신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산상수훈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전체 내용이 아니라 말씀하신 내용의 골자만을 뽑아서 옮겨놓은 것일 것이라고 보니까 이것은 장시간 동안 설교된 내용입니다. 그 팔복산에서는 귀신들린 자가 낫고 중풍병자가 벌떡 벌떡 일어나고 배고픈 사람들이 기적의 보리떡과 물고기를 먹는 놀라운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말씀하시는 예수님만 고요히 말씀을 선포하시고 모든 사람들은 거기 앉아서 온 마음을 집중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거기에 인간이 진정으로 살 수 있는 구원의 길, 죄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 떠나 그 결과로 비참해진 인간들이 이 세상의 슬픔과 고통을 이기며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시작이 바로 팔복부터 시작해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너희는 빛이라.” 하면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이 폭포수처럼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이 산상에서 왕처럼 좌정하셔서 백성들에게 가르치실 때 손에 뭐가 있었겠습니까? 성경책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때는 성경책이 없습니다. 두루마리에 성경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휴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회당에나 보관을 하고, 구약성경 전체가 손수레로 하나 가득 될 정도였기 때문에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세시대만 하더라도 성경 한 권을 필사하려면 양 200마리의 가죽이 필요하고, 필사자 한 사람이 밤낮으로 18개월을 필사해야지만 성경 하나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성경 한 권의 값이 그 당시에 좋은 집 사려면 팔아서 성경 다섯 권밖에 못 샀습니다. 그래서 합스부르크가의 한 왕비가 399권의 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중세의 유명한 장서가였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어려우니까 그것을 천년이상을 거꾸로 돌려서 예수님 때로 와 보면 예수님은 아무것도 없이 그냥 기억 속에서 백성들을 향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청산유수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옵니다. 그때 사람들이 어떤 풍경이었을까요? “아이, 무지하게 기네. 언제 끝나는 것이야. 난 또 뭐라도 보여주나 했더니 말이지.” 그러면서 도시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겠습니까? 집중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춘천에 가면 소양 댐이 있습니다. 소양 댐에 가면, 물을 꽉 채우면 춘천에서 배를 타고 설악까지 들어갑니다. 그런데 요새는 물을 그렇게 많이 담아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혹시 북한이 금강산댐을 파괴해서 수공(水攻)을 하면 그 물을 담기 위해서 비워 논다고 합니다. 맞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가끔 몇 년에 한 번씩 물이 너무 많이 차면 수위조절을 위해서 문을 엽니다. 열면 수백 미터 꼭대기에서 물이 확 쏟아집니다. 포물선을 그리면서 바닥에서 탕 튀겨서 그 물길이 공중으로 수십 미터가 솟아오릅니다. 그 광경은 미국의 나이아가라폭포는 아이들 소꿉장난입니다. 너무 너무 장엄합니다. 수문이 탁 트이면 물이 걷잡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힘으로 확 쏟아지는데, 예수님이 그렇게 과묵하신 분인 예수님이 입을 여시자마자 하나님의 말씀이 폭포수와 같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이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그리고 이 맛을 잃은 세상에 소금으로 살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지만 인간의 삶이고 어떻게 살아야지만 우리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구원해 주신 그 뜻에 합당한 삶이 될 것인가 이것을 청산유수와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적을 체험하고 병이 나았어도 또 병에 다시 걸릴 수도 있고, 생전 다시 그런 병이 안 걸린다고 할지라도 병 고침 받은 사람이나 안 고침 받은 사람이나 결국은 다 죽습니다. 기적의 보리떡과 생선을 먹었다 하더라도 내일이면 다시 배고픕니다. 예수님이 나누어준 보리떡을 먹었다 해서 일평생 배가 안 고프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그들이 너무 불쌍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랑의 마음으로 베풀어 주신 것은 사실이지만, 인생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주일 학교 학생들을 접할 때 그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이 아이들이 아닙니다. 그 중의 어떤 아이들은 여러분들 보면 순진해서 자기네 어렸을 적 생각날지도 모릅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교회 안에 갇혀서 왔다 갔다 하니까. 이 아이들은 벌써 세상에 눈을 뜬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도 정말 불쌍한 것이 개념 없는 시대에 태어나 상대주의 속에 살아서 무엇이 절대적인 진리인가 하는 것에 대한 확신도,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느냐에 대해서 대답해 주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윤리교육 자체가 이미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때도 오면서 뉴스 들으니까 교사들이 이직률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직장 중에서도 안정적인 직장이었는데 요새는 한번 아이들한테 폭력을 당하거나 심지어 여선생들이 성희롱을 당하고 하면 교직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어치워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무서워서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으니까 아이들도 불쌍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대를 잘못 태어나고 개념이 없는 시대에 태어나서 인간의 도리를 못 배우니까 불쌍한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을 가엽게 생각하고 친구가 되어주고 같이 먹고 그런 아이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다 좋은데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면 되는데 해결이 안 됩니다.
그들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그들 마음속에 들어가서 진리와 맞닥뜨리는 변화가 일어나고 거기에서 자기가 창조주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 이 온 우주의 중심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것, 나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서는 결코 행복해 질 수가 없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의지해서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지만 된다는 것, 그런 것들을 아이들이 깨닫게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진리의 말씀과 맞닥뜨려서 만나는 진정한 회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회심이 있어야 합니다. 회심 없이는 구원 없습니다.
그 회심이 무엇이냐? 회심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깊이 뉘우치고 예수 그리스도 밖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그분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회심입니다. 아이들은 이 회심 없이는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 하면, 죽어있는 시체에 대고 “야, 이 자식아 바보야 멍청아.” 욕을 해 보십시오. 반응을 하나? 죽은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한테 가서 “야, 이 자식아 바보야 멍청아.” 그러면 가만있습니까? 한번은 주먹이 날아옵니다. “자식이 누구한테 욕을 해?” 왜? 살아있으니까. 영적으로는 중생하고 회심하지 못한 아이들은 죽은 아이들입니다. 기독교적인 가르침을 아무리 많이 가르쳐도 그 아이들은 변화될 수가 없습니다. 외면적으로 조금씩 변화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 중심으로 돌아설 수는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의 책 신국론에서 “전도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권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전도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영혼의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때에 그때에 기독교의 진정한 가르침이 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바탕을 모두 초월적 진리, 이성으로 입증될 수 없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또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동정녀로 탄생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 2000년 전 나무에 매달려 죽으신 그분의 죽음이 오늘 우리의 구원과 관련이 된다는 것, 그분이 다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이라고 하는 이 확신, 그리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이것들을 여러분들이 이성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이 초월적인 진리의 바탕 위에 기독교적인 가르침이 세워지니까 이것이 예수 믿고 회심해서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이런 영적인 세계의 가르침들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마치 알 안에 있는 병아리에게 알 밖의 세계가 이런 것이라고 수없이 이야기해 주어도 그 병아리가 바깥 세계를 알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교사를 올해 시작한 분도 있겠지만 한 10년쯤 한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하나 아주 의미 깊은 숙제를 내드려보겠습니다. 교회 와서 뒤져보든지 여러분들 수첩을 보면 10년 전에 여러분들이 가르쳤던 아이들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한번 다시 찾아보십시오. 10년 전에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10년 후에 찾아보십시오. 맘만 먹으면 찾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도 뒤지고 경찰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망도 이용하고 하면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지금 장로님 되신 분이 교회 와서 은혜를 많이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자기가 정말 옛날에 무지하게 살았고 그래서 교사생활도 정말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래서 15년 전쯤에 가르쳤던 아이들을 명단을 찾아서 사명감을 가지고 수소문을 했습니다. 12명의 학생을 가르쳤는데 아직도 그리스도인인 아이는 두 명, 두 명이 교회에 남아있는데 그 아이들도 만나보니까 참 신앙이 있는 것 같지 않고, 나머지 10명은 다 신앙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들보다 말도 안 될 정도로 못난 분이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냥 생각 없이 매일매일 사역합니다. 일합니다. 그런 것 신경 안 쓰고 그냥 지나갑니다. 하루하루 일하면서. 그러나 생각 있는 사람은 우리가 올바로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번 조사해 보십시오.
두 번째로, 내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 중에서 양심에 손을 얹고 오늘 밤에 죽으면 진짜 구원을 받을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되는가? 구원의 교리를 여기서도 배웠을 것 아닙니까?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다 죽으면 이 아이들 중에 몇 명이 천국 갈까? 한번 양심에 손을 얹고 헤아려 보라는 것입니다. 결과에 대해서는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것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확인하느냐 하면 하나하나 만나보고 또 평소의 생활을 보면서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구원 얻은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회개와 사랑입니다. 무언가 잘못했을 때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이 있고 자기가 깨지는 마음이 있고 두 번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가끔 잘못하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라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생활의 거룩함의 열매가 있는가 하는 것을 보아서 조금 모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확실히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아이다 그것을 확인해보십시오. 꼭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2, 3년에 한 번씩 전체 조사를 합니다. 구원받은 아이들이 몇 퍼센트나 되는지. 그 결과를 가지고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신학생들이 모여서 목회자 인턴십을 합니다. 한 20명 정도 모여서 월요일 날 가르치는데 이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그대들이 이 주간 시간을 줄 테니까 소년부 중등부 가서 한 사람 한 사람 면담을 하고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혹은 부모한테 물어보고 해서 정말 구원받았는지를 조사해 보라고 그랬더니 그 중의 한 학생은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45명을 목회하는 친구인데 다 조사를 해 보았더니 네 명 정도가 구원을 받은 것 같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가 처음 그런 사실에 직면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세미나 하고 있는 동안에 어떤 아이는 오늘 밤에 죽을 지도 모릅니다. 제가 산 증인입니다. 저는 기어 다닐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예수를 안 다녔지만 저는 고모들의 등에 업혀서 기어 다닐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중학교 2학년까지 교회를 다니다가 하나님이 없는 것 같아서 집어치우고 신앙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방황하고 무신론에 젖어서 중고등부를 지냈습니다. 내가 그때 정말 잘 하는 게 교회 다니는 사람 30분만 나하고 대화를 시키면 모두 안 다니게 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때 첫 번째 피해자가 제 동생이었습니다. 열심히 교회 다니는데 내가 매일 밤 설득했습니다. 가짜다. 왜 가짜인지 내가 설명을 했습니다. 성경은 인생을 사는데 비교적 도움이 되는 책일 수는 있지만 너무 빠지지 마라. 한 석 달 만에 교회를 그만두었습니다. 나중에 회개 많이 했습니다. 다시 전도해서 지금 우리 교회 장로님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보니까 그런 사실에 처음 직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교회 나온 지 100일째 되는 날부터 기독교신앙이 시작되었습니까?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 교회 오는 날 기독교신앙이 시작되었습니까? 아니면 여기서 새가족 공부하고 정식으로 등록 받아 주는 날 기독교신앙이 시작되었습니까? 아무 상관없습니다. 어떻게요? 주일날이었습니다. 복사기가 망가졌습니다. 주일 날 복사기를 제일 많이 쓰는 날인데 덜컥 망가졌습니다. 행정실에서 연락을 해서 복사기 회사에서 직원이 고치러 왔습니다. 다 고쳤습니다. 직원이 지혜롭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교회 다니세요?” “아니요. 옛날에 청년 때 다니다가 관두었습니다.” “그러지 마시고요 지금 딱 예배 시간 되었거든요? 딱 예배 한 번만 드리고 가시지요.” 고객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할 수 없이 이끌려서 기둥 옆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사람을 겨냥으로 설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중생과 회심시리즈를 설교할 때였는데, 그 사람이 펑펑 울면서 회심을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까?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는 심령의 변화가 없이는 누구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 믿고도 넉넉히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안 믿습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주님을 안 믿고는 살 수 없는 인생의 그 고통스러운 무게를 느낀 것입니다. 오늘도 오다 보니까 자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선생님이 학교 사무실에서 그것도 대낮에 목을 매고 자살했답니다. 아이들이 받는 충격이 어떻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인생의 무게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그런 상황이 있습니다. “아, 이제 나는 아무 희망이 없구나.” 그럴 때 그리스도 예수께서 바로 이렇게 아무 희망이 없는 죄인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복음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2000년 전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의 사건이 확 밀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심령을 찌르는 것입니다.
(찬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Was blind but now I see.
그러면서 그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가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쓰레기 같은 자신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나를 주인 삼으며 살아온 것, 내가 이 온 우주의 중심이고 내 행복이 이 온 우주의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해 왔던 나를 주인 삶은 삶이 마지막에 가져다 준 것이 이 비참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이것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때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오히려 나를 위해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는 내 안에서 살아가시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그리스도인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 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에, 영적인 변화의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월급한 번 한 주고 세상의 명예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교사로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똑같은 일들이 아이들에게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이 문제이냐 하면, 이 기독교의 가르침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치는 것, 이 죄인인 영혼의 변화가 일어나서 그들이 자기를 주인 삼은 삶을 포기하고 이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으로 변화를 받게 하는 것이 기독교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하는 신념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이 그것입니다. 여러분들이 2년, 3년 교사를 했습니다. 앞으로도 하겠지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그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것입니까? 1월 달에 만나서 12월 달에 헤어져야 하는데, 그때 이 아이들을 어떤 아이들로 만들고 싶은 것입니까? 그런 것이 있기는 있습니까? 또 그런 것이 안됐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아픕니까?
그것이 삯꾼입니다. 삯꾼은 사기꾼을 삯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개 자기 양을 자기가 칩니다. 그런데 양이 숫자가 작아서 20, 30마리밖에 안 되면 20, 30마리 길러서는 인건비가 안 나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가족이 생계유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그런 집들이 한 10집쯤 모여가지고 양마다 색깔을 칠해놓고 다 섞습니다. 표시를 해 놓고 그리고 사람을 하나 고용합니다. 양 300마리가 모였는데 치면 한 달에 얼마씩 주겠다고 그러면 그 사람이 양을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양이 새끼를 낳든 늘어나든 말든 자기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어차피 고정 월급 받으면서 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자기 할 일을 합니다. 그러나 저기서 늑대가 나타납니다. 양 좀 먹어야겠다고 기지개를 켜고 컹컹거리고 나타납니다. 그러면 늑대하고 싸워서 양을 지켜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사표내면 되니까. 그런데 다윗 같은 사람은 자기 양입니다. 그 양이 어려움이 당할 때 이 양 한 마리에 얼마인가 그런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목자가 산 넘고 물 건너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러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삯꾼의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삯꾼을 너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냥 보통 나쁜 사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또 이렇게 도전하면 어떤 사람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었는데 나는 어차피 자격이 안 되는구나.” 하고 사표를 냅니다. 그러니까 삯꾼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리차드 백스터라고 하는 사람이 키더민스터의 목회자였는데, 저하고는 신학이 좀 달랐지만 그러나 아주 탁월하게 목회를 하고, 400년이 지났는데도 지금도 리차드 백스터 목사님을 그 주민들이 흠모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제가 거기에 가서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의 회심이라는 책에서 말했습니다. "회심하여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사람은 누군가 대신 울어주어야 하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기독교 교육은 눈물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사들이 눈물이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가장 커다란 문제입니다.
제가 총각 집사 때 76년서부터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신학교도 안 가고 직장 다니면서 공과책이나 보고 가르치는데 뭐가 그렇게 대단하겠습니까? 지금은 너무 좋은 환경이지만 그때는 요만한 데서 바글 바글 모여가지고 난리를 치는데 아이들 앉혀놓고 공과를 가르치면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입에 욕을 달고 살던 아이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애들이 눈물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혹시 예배를 드리거나 성경을 가르칠 때 눈물을 흘린 적이 있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 제가 정말 주님을 간절히 찾는구나.” 그것이 없어진 이유는 선생님들에게 눈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가르치는 영혼이 불쌍해서 목 놓아 울어본 마지막이 언제입니까? 여러분이 가르치는 아이들이 아직도 구원 못 받고 있고 가정에 문제가 많아서 아이가 방황을 합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이 아이는 반드시 삐뚤어지는 아이가 됩니다. 예배시간에 산만하고 기독교적인 가르침이 도저히 들어가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중에는 중고등부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가출을 밥 먹듯 하고 심지어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동거까지 하고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엉엉 울어본 적이 언제입니까? 우리의 힘으로 그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가서 패겠습니까? 그것이 통하기나 합니까? 아이들이 힘이 더 센데. 여러분들이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정말 무기력함을 느끼고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나는 이 아이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선한 목자가 될 수 없다는 그런 자각 속에서 여러분들이 울어본 적이 언제입니까? 교사회의를 하다가 그렇게 펑펑 울어본 적이 언제입니까?
시대는 악하고 아이들의 마음은 무서울 정도로 거칠어지는데 그것을 녹일 수 있는 것은 아이들 비위나 맞추고 그런 것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뭐 좀 한다고 하면 교회에 가면, 주일학교인지 이벤트 회사인지 맨 행사입니다. 벌써 교회개척하기 전이니까 20년 넘었습니다. 신학교 교수하면서 전도사로 섬겼는데, 어느 주일날 교회를 갔는데 교회가 난리입니다. 떡복기를 하고 고구마를 튀기고 호떡을 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아이들이 거기 가서 열심히 사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냐고 했더니 달란트잔치를 하는 것이랍니다. 달란트가 무엇이냐고 선생님한테 물어보았더니 일 년 동안 아이들에게 달란트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 데리고 온 아이한테는 백 달란트, 기도한 아이한테는 20달란트, 성경 읽은 아이한테는 10달란트, 예배시간에 조용히 앉은 아이한테는 5달란트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다 1년 동안 모아서 그날 그것을 주고 사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아니 그렇게 해서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 것이냐고, 달란트를 많이 받았으면 그것을 잘 남겨가지고 주님께 돌려드리고 하늘나라에 가서 상을 받아야지, 주일 날 교회에서 친구하나 데리고 오고 떡복기 한 접시 받아먹고 기도하고 저기 가서 솜사탕 하나 얻어먹고 요절하나 외우고 사탕하나 받아먹고 그러면 아이들한테 그것을 가르쳐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그러면 나가서 아이들이 볼 때, 아이구 저 백 달란트, 백 달란트, 백 달란트, 떡볶기가 한 접시, 두 접시, 세 접시 그럴 것 아닙니까? 그리고 아이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이 무엇인가 소위 문화사역이라는 미명하에, 그래서 아이들이 정말 변화됩니까?
(찬양)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하시네.
좋은 교사는 아이들을 자기의 영혼의 상태로 인해 근심하게 해 주는 교사,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 주는 교사, 그리고 하나님을 힘입어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줄 수 있는 교사입니다. 여러분, 초등학교 때는 엄마 아빠가 교회 안 간다고 하면 '이 자식이' 하면 따라옵니다. 중학교 때는 용돈가지고 흔들면 따라옵니다. "너 교회 안 나오면 용돈 없어. 네 마음대로 해." 그런데 고2, 3쯤 되면 더럽고 치사해서 안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교 끝난 다음에 가서 차라리 알바를 합니다. 대학 들어가면 아예 바이 바이입니다. 무엇으로 그 아이들을 붙들어 줄 수 있겠습니까? 신앙이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신앙은 하나님 말씀으로 들어갑니다.
제가 고등학교 학생들 80명쯤 되던 교회에서 고등부 전도사로 간 적이 있습니다. 가보니까 주일 프로그램이 공과공부만 2시간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는 역시 어마어마하게 성경공부를 시키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웬걸. 예배는 40분에 딱 끝났는데, 공과공부를 하는데 갑자기 저쪽에서 '와아' 하고 함성을 치며 공과 공부하러 가자고 합니다. 그래서 공과공부를 여기서 하지 어디를 가느냐고 했더니 우리 선생님이 웬디스에서 공과 공부시켜 준다고 했다고 갑니다. 순진한 저는 한번 따라가 보았습니다. 들어가니까 지지고 볶는 음악이 나오는데 공과는 무슨 공과입니까? 거기서 선생이 사주는 닭다리 하나씩 뜯고 집에 돌아갑니다. 또 선생하나가 들어옵니다. 얘들아 우리 공과공부하기 전에 지난주에 어떻게 지냈는지 나누어보자고,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데 되는 얘기 안 되는 얘기 최수종 팬클럽에 쫓아간 얘기까지 한 바퀴 돌고나니까 한 시간입니다. 이제 공부하나 싶었더니 선생이 자기 일주일 동안 데이트한 얘기, 회사이야기, 미술전시회 갔다 온 이야기까지 끝나고 나니까 80분입니다. 그러더니 선생님이 “얘들아, 정말 오늘 은혜스러웠지?” 그러니 한 아이가 오늘 공과공부 안하느냐고 하고 또 옆에 있는 아이는 가만있으라고 합니다. 선생이 손잡고 기도하자고, “하나님, 정말 고맙습니다.”하는데 뭐가 고맙습니까? 또 저쪽 반에 보니까, 선생님이 얘들아 너희 아침 못 먹고 왔지 하면서 선생님이 너희들 주려고 샌드위치를 만들어왔다는 거 아니냐고 가방을 여니까 쿠킹호일에 싼 샌드위치가 쏟아집니다. 한 아이가 우유가 없다고 사가지고 오겠다고 하니까 옆에 있는 아이 둘이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섭니다. 6명이 모이는데 3명이 우유 사러 갔으니까 50%의 교인이 우유 사러 간 것입니다. 근처에 가게도 없어서 한없이 걸어서 하나 사들고 올라오니까 20분이 지납니다. 먹으려고 보니 컵이 없다고 한 명이 가지고 오겠다고 하니까 옆에서 나도 같이 가자고 전 교인의 33%가 컵 가지러 갔습니다. 컵을 가까스로 가지고 왔는데 또 잘못 따라서 쏟았습니다. 걸레 가지러 가고 다 닦고 나니까 샌드위치 먹는데 1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제 공부하려나 보다 했더니 “오늘 정말 은혜로운 시간이었지?” 하는데 뭐가 은혜롭다는 것입니까? 아니, 그 새벽에 일어나서 왜 샌드위치를 싸고 있습니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선생님이 공과공부를 안 해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샌드위치 먹고 기도 한 번씩 해 주고 보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그 아이들의 소중한 시간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1년을 다녀도 단 한 번도 선생님 눈에서 진리의 말씀에 불타는 그래서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나의 영혼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하는 그 눈빛과 마주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교회를 다니나가 떠났는데 수십 명들의 선생들을 만났습니다. 한 번도 “남준아, 예수님의 널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믿어지니?” “너 정말 구원받았니?” 물어보아준 선생님이 한명도 없었습니다. 우리 집에 와 준 선생님도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목양이 아닙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강남에서 세미나를 할 때 항상 20명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리고 물어봅니다. “자, 오늘은 화요일이고 주일은 이틀 전입니다. 이틀 전에 아이들을 놓고 성경을 펴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 사람만 남고 나머지는 자리에 앉으십시오.” 그러면 70% 이상이 자리에 앉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 보고 물어봅니다. “지난주에 행사 있었습니다.” “지난주에 제가 교회에 못 나왔습니다.” “지난주에 교회에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진실한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이기 제일 기가 막힌 나이가 언제냐 하면 7, 8, 9, 10, 11살 때입니다. 유치부부터 3학년 그 정도입니다. 4학년만 되도 아이들이 다릅니다. 중학생만 되도 좀처럼 회심 안합니다. 고등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런 좋은 시절을 누가 그 아이들을 놓고 진지하게 영혼을 안타까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 적이 없이 그냥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가르친 사람에게 무슨 성경 어디를 가르쳤느냐고 물어보면 하면 그 중의 몇 사람은 또 앉습니다. 생각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재판하는 이야기인데 어디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제가 20년 다니면서 통계를 내보았는데 강남은 20퍼센트 정도 되고, 그래도 강남이 낫습니다, 그리고 이외의 지방으로 내려가면 20명 중에 1명이나 두 명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지난 주 성경을 가르쳤고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말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지난주에 무엇을 가르쳤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가르친 것이 생각이 안 나는데 그렇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리 없지 않습니까? 또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해 본 적도 없을 것 아닙니까? 그럼 생각해 보십시오. 근본적으로 우리의 사역에 진리의 요소가 빠져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진리의 요소가 빠져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아이들한테 잘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성경말씀을 들으니까, 성경 가르칠 때 말을 들을 테니까 그렇습니다. 교회도 좀 활기차야 그래야 아이들이 설교를 듣기 위해서 마음을 열을 테니까 거기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입니다.
“야, 어떻게 하니? 미안하다 너희 선생님이 많이 아프시단다.” 그랬더니 “와아, 공과공부 안 한다.” 그러다가 어느 해 제가 결심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변화되든지 내가 죽는 순교를 하든지 둘 중의 하나다.” 그리고 한창 젊은 나이였으니까 토요일마다 보따리를 싸가지고 교회를 갔습니다. 9시쯤 도착합니다. 사찰 집사님이 연세 드신 분이 계신데 청소를 잘 못했습니다. 내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모인 예배 장소가 성령과 진리로 넘치게 하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건데 깨끗하게 하는 것은 자기 맘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지저분한 목회자는 용서가 안 됩니다. 그것이라도 해야지요. 못하면. 그래서 웃통을 다 벗고 그리고 한 20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장의자를 깨끗이 청소를 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청소를 하고 마지막에 비닐이 다 들러붙은 것을 다 떼어내어 가지고 하나씩 하나씩 물수건으로 다 닦아서 말려서 해놓고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흐르면 그것이 2시간쯤 걸려서 11시쯤 됩니다. 샤워할 데는 없으니까 수건으로 좀 씻고 예배당에 올라가서 철야를 합니다. 내일 여기서 설교할 텐데 하나님이 큰 은혜를 부어 주십사고, 한 2년 정도 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이 부흥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는데 어쨌든 은혜를 주셨습니다. 영혼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되는데 얼마나 놀라운지 아십니까? 선생님이 안 왔습니다. 그런데 아파서 못나왔으면 괜찮은데 왜 안 나왔는지 연락도 없습니다. 그 중에 어떤 선생님은 나중에 연락을 해 보니까 어제 너무 과음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못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딴 때 같으면 아이들이 ‘와아’ 하고 갔을 텐데 아이들이 모여 앉아서 기도회를 하는 것입니다. 큰소리로 안하고 작은 소리로 하나씩 돌아가면서 기도를 하는데 아이들이 놀랍게 눈물을 비 오듯 쏟으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내가 들은 기도가 나에게 충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선생님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우리 선생님을 변화시켜 주세요. 새사람 되게 해 주세요. 우리 선생님이 주님을 깊이 만나고 새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세요." 그러니까 말은 안 하고 있어도 얘들이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고 나니까 무엇이 그리스도인이 삶인가 하는 개념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사랑이 선생님의 마음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애들이 그렇게 말썽을 부리고 하여튼 예배만 끝나면 공치러 가는 것입니다. 축구하러 농구하러. 그런데 아이들이 은혜를 받고 나니까 예배만 끝나면 아이들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어디가나 했더니 저 창고 같은 데 모여가지고, 화장실을 메워버린 작은 방이 있었는데 정상적으로 한 다섯 명 정도 들어가면 사실은 앉을 자리가 없는데, 25명이 들어가서 기도회를 하는 것입니다. 정말 뜨겁게 기도를 합니다. 영혼의 변화는 사람을 하나님 앞에 아주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변화되어서 하나님 사랑해도 계산이 많지만 애들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주님 사랑하니까. 애들이 대학에 많이 떨어졌는데 떨어진 아이들이 대학 붙은 아이들한테 전화를 해 가지고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니까 교회 계속 나와야 한다고.
신앙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들이 영혼의 변화가 있는 현장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영혼의 변화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지 다른 것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지성을 집중시켜서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 아이들에게 아주 아이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설명을 해서 그 아이들의 마음속에 넣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 아이들의 회심을 위해서 진지하게 기도하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다 해보았습니다만 이것도 내가 권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 5500만에서 정점을 찍고 인구가 줄어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520년 후에는 우리나라 인구가 50만 미만의 나라가 된다는 비관적인 보고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구가 감소되는 추세, 아이들 낳지 않는 추세, 모든 것을 대입해서 아이들이 회심하는 비율 다 조사해서 대입을 해 보십시오. 그리고 20년 후에 이 교회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남아있겠는가 보십시오. 충격적인 결과가 나옵니다. 제가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신경을 안 쓴 것은 아닌데, 10년 동안을 나는 장년하고 청년 사역에 올인 해야지 그리고 그것은 부교역자들한테 맡겼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지금으로부터 12년쯤 다 대입을 하면서 계산을 해 본 것입니다. 그 결과는 창피해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완벽하게 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 80% 가량은 수학적인 대입을 하면 계산이 나오게 돼 있습니다. 예상을 엄청나게 빗나가는 그 팩터(factor)만 없다면 나오는 것인데 비극적인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정말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비장한 각오로 교회학교에 개입하면서 오늘날의 시스템을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해 놓고 아이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역자들은 연초 되면 3월 달까지 심방하느라고 정신없습니다. 250정도 되는 가정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심방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야 합니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라면 무엇을 고민하나, 영혼의 상태는 어떤가, 이 아이에게 어떤 말씀을 가르쳐야 될 것인가, 그것을 가지고 고민하는 그 속에서 눈물과 기도와 몸부림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모두 모아서 회심집회를 합니다. 회심집회를 하면 경상도 전라도에서도 올라옵니다. 외부에서 그렇게 많이 오지 않지만 멀리 사는 교인들이 아이들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회심집회를 합니다. 부모들은 금식하면서 며칠씩 교회당에서 기도하고, 기도하는 동안에 어린이 집회를 하고 주님을 만나고 새사람이 되고, 그 아이가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가 충격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가정에서는 ‘아빠보고 안고 기도해 달라고 하기’ 숙제를 내주고 매일 한 번씩 해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초등학교 1학년인 이 아이가 아빠보고 해 달라고 하면 아빠가 안 해주는 것입니다. 아빠가 신앙이 별로 없어서 안 해주고 엄마보고 해 달라고 하라고 하니까, 이 아이가 어느 날 아빠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우리 전도사님이 아빠보고 기도해 주라고 했는데 아빠는 왜 나를 위해서 기도를 안 해주느냐고 나쁜 사람이냐고, 아빠가 너무 찔리니까 아이들 붙들고 기도를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하나님 내 아들 아무개 기도했는데, 거기서 회개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생전 처음 기도해 준 것입니다. 이 아이를 위해서. 태어나고 기도를 안 했고 안고는 더 더욱 기도 안 했고. 그래서 아버지에게 신앙이 들어간 것입니다. "내가 이러면 안 되겠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깨달은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왜 오늘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영혼이 변화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데 왜 교회 교육이 이렇게 피상적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려는 몸부림이 교회에 없는가? 그런 것이 왜 그렇게 현저하게 부족하게 되었는가? 어느 이야기를 들으니까 연예인을 불러가지고 아이들을 모았는데 그 연예인 아이돌 가수를 불렀는데 와서 한번 노래해 주고 가는데 4500만원을 냈다고 합니다. 그것이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핑계 댈 것이 없는 것이,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이속에 전하지 않으면 안 될 진리의 말씀이 여기에 가득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실험해 보는 것이 있습니다. 저 뒤에 있는 사람을 20명 일으켜 세워서, 지난 주 주일 날 예배드린 사람으로 일으켜 세워서 목사님이 어디를 설교했느냐고 물어보면 18명 정도가 그냥 앉습니다. 생각이 안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예배시간을 통해서든지 무엇을 통해서든지 말씀에 깊이 은혜를 받고 그 말씀에 강하게 붙들려야 하는데, 그래서 주님을 만난 간증이 있어야 하는데, 말씀을 통해 예수님 만난 간증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무언가 보고, 무언가 감동을 받았을 때 말하지 않고 못 배기잖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여 앉아서 지난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난주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뭐가 그렇게 궁금합니까? 진리의 말씀을 전해야지요. 그러면서 시간을 때우다가 보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도 천당에 안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가로막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 순간에 아이들이 진리의 말씀을 받고 변화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이들이 진짜 변화되면 천사 같습니다. 너무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 아이들은 지루해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 패배적인 생각을 합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면 아이들이 주님을 만나고 깊이 변화될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불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은혜를 많이 받고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를 많이 받고 책을 읽으면서 은혜를 많이 받고 그래서 이 마음속에 댐에 물이 차듯이 말씀이 꽉 차 있어서 입을 열면 확 쏟아져 나와서 아이들이 그 말씀을 들으면서 “아, 여기에 길이 있구나.” 그것을 깨닫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이 뛰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놀랍게 변화되는 영혼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만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능력의 한도 안에서 그 일을 헌신하면 최소한 충성된 사람이라는 소리는 듣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헛일은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없이 기회를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 아이들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자신의 운명을 결단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제공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의를 느끼고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교회를 떠났는데, 아무도 나 찾아오는 사람 없고 그 흔한 우편엽서 한 장 보내 준 사람이 없습니다. “남준아, 너 요새 교회 안 보이는데 어디 갔니?” 전화는 물론 그때 없었으니까. 그것은 말도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1년에 편지를 몇 장이나 씁니까? 저는 교수하고 전도사하고 박사과정 공부하면서도 가방에 항상 엽서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왜? 중학교 고등학교 아이들은 말로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도 큰 글씨로 찍찍 쓰면 답장도 안 옵니다. 그래서 엽서 한 장에 원고지 40매 정도 들어가게 씁니다. 얇은 플러스 펜으로 가득 씁니다. 그러면 한 장 한 장 받으면 감동을 받습니다. 눈을 이렇게 크게 뜨고 보아야 합니다. “야, 이것을 어떻게 썼을까?” 그 정도의 사랑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매일 그 영혼들을 위해서 울어준다면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 교회에 어떤 아이가 회심을 했습니다. 엄마한테 가서 이야기 합니다. “엄마, 나 예수님 만났어요. 엄마 나 이제 회심한 것 같아요. 우리 목사님이 설교단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설교할 때는 믿어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리 선생님이 공부시간에 예수님이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실 때, 그 모든 것이 내 마음 속에 믿어졌어요.”
진리는 전달하는 사람의 그 진리와 일체된 가운데 전달할 때 거기에는 저항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 막나가던 애들이 정말 은혜 받으니까 교제가 별로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이 성경 펴놓고 하나씩 하나씩 설명하면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노트필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혼들은 무지무지하게 방황하고 있습니다. 부모들도 그 아이들을 돌보지 못합니다. 학교 선생님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여러분이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리고 눈물로 기도하고 그리고 피를 머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선생님이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가 아니란다.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이 아이들에게 진정한 영적인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그 영혼들을 위해 매일 눈물로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서 말씀을 준비해 가지고 가서 그 시간에 20분이면 20분 동안 이 아이들의 마음을 확 사로잡고, 하다가하다가 안 되면 이 말씀을 전하다가 내가 이 말씀과 함께 아이들에게 내가 은혜 받은 모습이라도 보여주어야 하겠다는 그것을 아이들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여러분이 전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여러분 자신의 경건생활입니다. 기도 많이 하고 은혜 생활을 잘 해서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퍼주어야 하는데, 자기가 여기에서 바닥을 헤매는데 무엇을 나누어주겠습니까? 엄마같이 젖을 꽉 담아가지고 앞섶을 풀면서 아이들에게 하나씩 먹일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일주일 동안 성경도 안 읽고 기도도 안하고 눈물도 없고 그렇게 거칠게 살다가 주일 날 금년만 하고 안 한다고 해야지 그러면서 무슨 변화가 일어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간절히 이 아름다운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