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불렀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 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 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녹취자: 조경훈
야곱이라는 이름은 원래 사람의 이름이지만 이 이름이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킬 때는 하나님의 애칭입니다. 원래 야곱이라는 이름은 썩 좋은 이름이 아닙니다. 형과 쌍둥이로 나오면서 형의 발꿈치를 꽉 잡았다는 데서 야곱이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 이 이름은 이삭의 아들로서 하나님보다는 자기를 의지하며 인간적인 생각으로 살아오다가 천천히 하나님을 만나고 성도가 된 사람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전체를 향해 말씀하실 때 이 이름은 애칭입니다. 이것은 은혜로 불완전한 사람을 천천히 변화시키셔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속에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이 넘칠 때 이스라엘을 야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야곱과 이스라엘을 함께 부르시고 계신데 야곱은 옛날 이름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얍복 강가에서 주신 새 이름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체를 야곱이라고 부르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변화시켜서 새 사람을 만드신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가 하나님 앞에 사랑스러운 자녀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희망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다운 성도가 되어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처음에 가족 중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혹은 여러분 자신이 장애를 갖게 되었을 때 여러분은 굉장히 좌절했을 것입니다. 저는 몸에 장애는 없지만 눈이 엄청 나빠서 -19디옵터(diopter)까지 시력이 내려갔습니다. 방안에 있어도 집사람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나빴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나중에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나빠져서 신호등이 6개로 보이고 길이 아닌데도 길 인줄 알고 잘못 차를 몰고 가서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아주 여러 번 있었습니다. 내게는 밝은 아침이 없이 언제나 흐린 날이었습니다. 그 정도만 되었는데도 제 마음에는 깊이 좌절 같은 게 있었습니다. ‘나는 잘 볼 수가 없다. 지금 이러니 내가 나이가 먹으면 결국은 실명할 때도 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때 굉장히 우울하고 힘들었습니다. 하물며 우리의 가족이 장애를 만나거나 우리 자신이 그렇게 됐다고 할 때 여러분이 느끼는 좌절은 굉장히 컸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를 명심하셔야 합니다. 큰 믿음. 하나님을 향한 열정. 그런 것을 갖기 전에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도 됩니다. 그런데 장애가 있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고 피할 수 도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왜 내게? 왜 하필이면 내 가족에게? 이런 상황 말고 다른 상황이 있을 수도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이 상황에? 이런 질문을 하면 안 됩니다. 이런 질문을 하면 마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과 자신의 장애를 원망하다가 죽는 것 밖에 없습니다. 사탄은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아주 깊은 절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예화) 제게는 장애에 관한 한 한 그림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원을 다니던 때였는데 새벽기도가 끝나면 기도를 잠깐 하고 빨리 출발을 해야지만 스쿨버스를 청량리에서 탈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 사택에서 살았는데 교회에서 새벽기도 끝나고 출발하면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 청량리에 스쿨버스가 떴습니다. 2년을 청량리에서 스쿨버스를 탔었는데 제게는 잊혀 지지 않는 그림이 있습니다. 스쿨버스를 타러 가면 아줌마 한 분이 장애를 가진 자기 아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아이가 얼굴도 잘 생기고 몸집도 좋은데 여기가 마비가 된 모양이었습니다. 아줌마는 그 아이를 휠체어에 태워서 학교까지 바래다주는데 그것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봄이나 여름이가 가을이나 겨울이나 매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거기서 어머니의 놀라운 사랑 같은 것을 느꼈다기보다는 한 인간의 의지를 느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어떤 비관이나 슬픔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가 막 행복해하고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탁 볼 때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그것은 인생을 살아내고자 하는 힘입니다.
제일 먼저 해야 될 것은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 받아들이면 끊임없이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이 마음속에 둥주리를 틀고 그것이 낚시 바늘처럼 올무가 되어서 그 사람을 계속해서 좌절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사는 것은 인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화) 지금은 썩 그렇게 신비감이 없지만 제가 한때 굉장히 좋아했던 가수가 있습니다. 맹인가수인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 입니다. 이 사람은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콩쿠르에서 1위를 해서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Time to say goodbye’ 라는 노래를 불러서 수 백 만장의 앨범을 팔았고 지금도 탑클래스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사고로 눈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한테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몇 년을 씨름하고 그랬을 텐데 너무 놀라왔던 게 그는 자기가 앞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1시간 반 걸렸다고 합니다. ‘내가 앞을 보지 못 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가야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고는 1시간 반 만에 깨끗이 자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현실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지금은 가수들 중에서 둘이 앉아 있으면 그렇게 농담도 잘하고 성격이 낙천적이고 밝다고 합니다. 아내와 함께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그 사람의 노래에 대한 평가는 동정심에서만 나온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요지는 세상을 등지려고 하지 않는 한 현실을 받아드려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마 이 중에 계실지도 모로는 사랑부에 속한 지체를 한번 심방을 하는데 그 분이 이런 얘기를 하였습니다. 목사님. 열린교회에 와서 제일 은혜를 받았던 게 현실을 받아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헤쳐 나갈 길이 보였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신다. 두 번째는 현실을 인정하라. 세 번째는 굳센 마음을 가지라. 우리들이 정상적인 자녀를 기르면서도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이 새끼가 내 마음대로 안 움직여주는 것입니다. 회초리로 때리는 것도 한계가 있고 잔소리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잔소리를 해야 안 듣습니다. 그래서 힘이 드는 것입니다. 장애까지 있을 경우에는 배나 많이 엄청나게 힘이 듭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현실을 받아들인 후에는 마음의 크기를 크게 가져야 됩니다. 이 삶이 평범하지 않지만 현실을 받아들였으니 내가 살아내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보면 아이를 안 낳습니다. 어제도 신문을 보니까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결혼하지 않는 자매들이 결혼한 친구가 애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면 결혼하지 않은 보람을 느낀다고 합니다. 나도 시집갔더라면 저 개고생을 하고 있을 텐데 내가 혼자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하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요즘 자매들은 애 하나나 둘 기르는 것을 가지고도 너무 힘들어 합니다. 옛날에 우리 할머니나 세대나 우리 장모님만 해도 10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5명이 죽었습니다. 강아지도 아니고 자기가 낳은 자식이 하나 죽을 때마다 부모의 마음이 어떠했겠는지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5명이 죽고 5명을 길러낸 것입니다. 거기에 들어갔을 에너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옛날에 부모님들이 강한 이유는 시집을 가서 자식을 낳으면 엄마든 아빠든 비상한 각오를 가지는 것입니다. 내가 이 새끼를 위해서 어떠한 희생을 해서라도 이 자식들을 제대로 길러내야 되겠다. 내 인생을 살아 내야한다고 하는 힘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굳게 가지니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마음의 크기보다 작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능히 이겨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더 큰 일도 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작은 것입니다. 거기서 어머니의 힘, 아버지의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어린이 하나가 있는데 몇 년째 아픕니다. 수술도 서너 차례 이상 했고 병원에서는 이제 가망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엄마의 표정이 너무나 밝습니다. 어디서 오는 것이겠습니까? 자녀를 돌봐야 되겠다는 마음의 크기가 훨씬 크니까 현실에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일어나도 자기가 견딜 수 있는 범위 안에 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살아있는 한 살아야 합니다. 어려운 말로 하면 존재하는 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현실입니다. 자신이 존재는 하는데 죽어도 살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국 세상을 등지거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살아내야 합니다. 기왕 살아내야 하는 거니까 마음을 크게 가져야 됩니다. ‘더 크고 어려운 일이 일어나도 나는 이길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살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우리 가족도 없다.’ 라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때 평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면 바보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인생이 아닙니다. 나는 내가 살아야 됩니다. 옛날 어른들이 말씀하셨습니다. ‘쳐다보면 한이 없다. 내려다보고 살아라.’ 우리 할머니가 잘 하시던 말씀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살고 싶은 또 다른 삶이 있고 되고 싶은 더 좋은 교회도 있을 것 아닙니까? 나는 어마어마하게 큰 교회에서도 설교를 해 봤습니다. 4,000명을 모아 놓고도 설교해 보았습니다. 나는 어느 교회를 다녀도 내가 지하실에 있던 교회조차도 어마어마하게 큰 교회에서 설교할 때 내가 양심을 걸고 한 교회도 부러워한 적이 없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두신 자리는 거기가 아니고 여기입니다. 나는 이 현실을 가지고 고민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기본입니다. 대게 고통스러워하고 갈등하고 이러는 사람들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가족들이나 자기 자신이 장애가 있을 때 10년을 계속해서 그런 갈등과 고민을 했다고 친다면 거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 이외에 얻을 열매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눈을 뜨고 나면 내가 처해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음의 크기를 크게 가져야 됩니다. 조금 어려운 일이 일어나도 마음을 강하게 먹고 ‘이보다 더 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됩니다. 절대 다른 사람들을 보기 시작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차를 한 대 샀다고 해보겠습니다. 오랜 시간을 별러서 스파크를 하나 샀습니다. 새 차를 뽑아서 시동을 걸고 시장갈 때 늘 걸어 다녔는데 이제는 차를 타고 다녀 보니까 너무 좋은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친구의 에쿠스를 타게 됐습니다. 뒷자석에 앉아서 단추를 누르니까 의자가 앞으로 쫙 나가고 쿠션자체가 다릅니다. 왜냐하면 에쿠스 시트 값이 스파크 2대 값도 넘습니다. 그렇게 에쿠스를 타고 난 후에 자기 스파크를 타니까 기쁨이 싹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교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남편이 오래간만에 큰맘을 먹고 제안을 했습니다. “여보. 그동안 애들하고 너무 고생했지? 내가 당신을 위해서 준비했어.” ‘짜잔!’ 하고 보여주는데 제주도 가는 항공권에다가 호텔 2박3일 숙박권인 것입니다. 너무 행복해서 잠을 못 이뤘습니다. 그 다음날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서 같이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자기하고 똑같은 날짜에 유럽여행을 간다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여행을 하는지 상세히 얘기를 하는데 집에 돌아오니까 자기가 제주도 가는 게 야유회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기쁨이 싹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비교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교하지 않는 비결은 ‘하나님이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어서 하나님께 보여주는 삶은 다른 사람들이 보여줄 수 없는 삶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만의 독특한 삶이라고 그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림을 그리는데 비록 나보다 더 잘 그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그린 그림은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동일하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남이 살아줄 수 없는 독특한 인생입니다. 물론 비교를 하게 되면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비교하기 시작하면 마음속에 기쁨과 감사 이런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절대적인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마음의 크기를 크게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하고 우리가 묻는다면 끝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아무리 왜냐고 묻더라도 대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 드러내 보여주신 뜻이 있는데 그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 안 드러난 뜻이 있습니다. 살아봐야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섭리는 다 살기 전까지는 모릅니다. 어쩌면 살고 마지막에 죽는 순간에도 내 인생에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해명할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아마 한 번에 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내가 살아온 인생의 길을 보게 될 테니까 그때에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됩니다. 하늘나라에서만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현실을 살면서도 우리는 그런 것들을 많이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는 저희 집이 매우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돈이 필요할 나이쯤 되니까 아버지가 쫄딱 망했습니다. 그래서 엄청 가난하게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저는 한 가지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무리 가난해도 살 수 있다. 그 때는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그 후에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물질 때문에 내가 유혹을 받지 않고 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하게 고생을 할 때 이게 도대체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나? 나에게 무슨 인생에 유익을 줄까? 젊었을 때는 몰랐습니다. 수 십 년을 살고 보니까 하나님은 섭리 속에서 나를 주의 종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런 가난한 세월들을 보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장애가? 왜 나에게 이런 사고가? 왜 나의 사랑하는 가족에게 이런 일들이?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설명할 수도 없거니와 알아보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지막에 도달하는 것은 똑같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그것 이외에는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은 다음과 같은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다 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이 참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가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분을 믿는다. 합력해서 선을 이룰 것을 내가 믿는다.’
(찬양)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잘 알지 못하는 인생의 길을 헤치며 지나갈 때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엄마가 내 손을 꼭 붙들고 큰 집에 갔다가 어두운 고개 길을 넘어서 우리 동네로 돌아오시는데 어둡고 무섭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그 손을 꼭 붙들고 있습니다. 엄마를 신뢰하고 옆에 있는 아빠가 나를 지켜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유는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 인생과 가족들의 인생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분을 깊이 신뢰하기 위해서는 그 분의 인격을 우리가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인격을 느끼는 것을 가리켜서 우리가 기독교에서는 쉬운 말로 은혜라고 부릅니다. 그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주시는 사랑의 감동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감동이 되고 나면 이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제가 장애를 가진 부모를 한 번 만났는데 우리교회 사람은 아닙니다. 얼굴이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 찬 가운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와 함께 살아오면서 제가 받은 말할 수 없는 은혜와 축복은 이 세상사람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을 꼭 붙들고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놀라운 일들은 일어납니다. ‘그 아이를 위해 내가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내 영혼이 아름다워질 수 없었고, 그 아이와 함께 시련을 이기지 않았더라면 겸손해 질 수 없었고,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애쓰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았을 리가 없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나의 이 자리는 누구와도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승리한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엄마로서의 에너지 넘치는 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자녀들을 양육하면서도 힘겨워했는데 이분은 넘치는 에너지로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산에서 물이 흐를 때 그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장애 없이 흐르고 싶어 합니다. 내려오면서 수많은 돌멩이에 부딪칩니다. 그렇게 내려온 물이 것이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장애가 없이 흐르고 싶어 하는 물들이 돌멩이를 만납니다. 이 돌멩이에 부딪치고 저 돌멩이에 부딪치면서 계곡을 휘돌아 내립니다. 그 소리가 계곡 속에서 아주 아름다운 소리로 들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아무런 거침이 없는 매끄러운 유리관 같은 곳에 물이 흘렀더라면 아마 그 숲속에 침묵이 깃들었을 것입니다. 시냇물은 침묵 속에 고요가 흘렀을 계곡을 내려올 때 폭포수로 떨어질 때는 큰 함성을 지르기도 하면서 온 산을 재잘거리는 노랫소리로 가득 채웁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굳은 마음을 갖고 그것을 이겨 낼 수 있는 큰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무한정으로 솟아납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낙심하고 실망하고 좌절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예배당에 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찬양)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내 심사를 통촉하시고
부르짖는 소리 들어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내가 주께 기도하니 주께서 내 소리 들어시리
오 주여 아침에 내가 기도하고 주께 바라리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솔직해 집니다. ‘나는 인생을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습니다. 예수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면 신기하게 예전에 없었던 힘이 우리 안에 솟아납니다. 어린아이같이 연약한 인간이 예수님의 손을 잡고 인생의 험한 계곡을 통과하지만 그 분이 선한 목자가 되어서 나를 지켜주신다는 확신이 드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아무도 너를 해치 못하고 빼앗아 갈 수 없다. 너는 내 것이라.’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이 아니면 살 수가 없다는 마음을 굳게 가져야 됩니다. 꼭 주님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며 살게 하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여러분들은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훌륭한 줄 알고 교만하고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멀리 떠나서 살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붙들어 주시고 지켜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한 때는 하나님께 범죄 해서 멀리 당신을 떠났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진노하심으로 책망하셨지만 마음을 돌이키시고 그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주님 손에 우리가 붙들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을 간절히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요지는 이것입니다. 첫 번째는 현실을 받아들이라. 하나님은 있는 모습 이대로 받아 주신다. 두 번째는 현실을 받아 드려라. 세 번째는 마음을 굳게 하고 넓게 하라. 네 번째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라. 왜냐하면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주님께 깊이 의지하고 주님을 붙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