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남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9)
녹취자: 양현정
I. 본문해설
교회에서 형제들이 찢겨 나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요한 사도는 이 일을 통해 교회와 형제 사랑에 대해 가르쳐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습니다. 이들이 사랑하던 교회에서 찢겨 나간 것은 소위 영지주의라는 이단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공로를 기초로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죄 사함을 받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고 보았지만 이 사람들은 영혼의 빛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무지한 사람이 구원을 얻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신들만 하나님에 대해 잘 안다는 교만의 죄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자기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이 세상에 나타났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II.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남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가장 찬란하게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사랑이셨기 때문에 지혜안에서 이 세계를 창조하고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인간과 교제하고 살게 하시기 위해서 사람을 지으셨고 그에게 당신을 닮은 영혼을 주셔서 알고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하나님께 범죄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죄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었고 자기의 욕망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의 그 많은 전쟁과 갈등, 약육강식의 역사는 바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함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마음에 사랑이었습니다. 인간이 타락했지만 즉시 하나님은 끊어지지 않은 당신의 사랑을 인류에게 보이셨으니 구원을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을 택하시고 가족을 택하시고 또 민족을 택하시고 이스라엘 나라를 그 모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호하셔서 위대한 왕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나타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의 예고편일 뿐이었습니다. 그 예고편은 감동적이었으나 본편을 능가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세계에서는 예고편이 본편보다 더 과장해서 제작되기도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본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것을 두 가지로 요약해서 말합니다.
A. 독생자를 보내심
첫째는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라고 말입니다. (독생자는 “독종자”((獨種子)이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한 생명을 인류에게 주실 유일한 씨(the Seed)입니다. 영원 안에서 낳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시간 안에서 태어나 아기 예수로 오셔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1. 하나님이 보내심
제일 먼저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났으나 사람이 보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요, 또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그 분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어야 했습니다. 죽으시기 위해서는 그 분이 사람이셔야 했고 하나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완전한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또한 하나님이셔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라면 완전하지 않고 하나님이기만 한다면 죽으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때에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것은 모두 인간이 지어낸 말이고 그런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셔야 했습니다. 우선 하나님이신 그 분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기 위해서는 사람으로 태어나셔야 했고 사람을 통하지 않고는 사람으로 태어나실 수 없었으니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태어나셨던 것입니다. 당연히 예고된 바와 같이 그 분은 여자의 몸에서 다시 자신의 육신을 입으시고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만약에 그 분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고 인간의 생식에 의해서 태어나셨다면 그 분은 사람의 몸을 입으셨으나 죄의 오염된 몸을 입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되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온 인류의 죄를 위해 하나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제물이 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사람의 몸을 입으시기 위해 여자의 몸에서 오셨고 그리고 사람의 몸을 입으셨지만 죄없는 사람의 몸을 입으시기 위해서 처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이 성탄절은 바로 하나님이 그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날을 축하하며 하나님 앞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한 기쁜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독생자이심
또한 그 분은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으로부터 낳은바 되셨으나 그는 본체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영원 전에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을 낳으셨으니 그 아들은 또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영원한 세계에는 시간과 공간이 초월하니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낳은바 되었으나 아버지는 아들 없이 계신 때가 없었습니다. 영원 전에 낳은바 되신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유일하게 낳으신 그 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생명을 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여 생명을 주실 분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 분은 다른 곳이 아닌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으셨으니 여기에서 세상은 바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류 혹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기적적으로 잉태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셨으나 아무도 없는 신비한 세계에서 태어나지 않으시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말구유에서 태어나시고 사람들 속에서 살고 사람들 속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기 아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서는 그것을 볼 세상 속에 계셔야 했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요절처럼 여겨지는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약을 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고 독생자를 주셨고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영생은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인간은 육체의 생명과 함께 영혼의 생명을 가지고 있어야만 진정으로 사람다운 인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죄 때문에 이것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과는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었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런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때로는 여러분들의 기대대로 살아주고 때로는 기대대로 살아주지 않아 가슴 아플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여전히 자기 자식을 끔찍이 사랑합니다. 그러면 불안정한 인간도 자식을 사랑한다면 영원한 하나님이신 그 분은 자식을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온 인류를 당신의 자식으로 여기시고 창조주로서 그들이 잃어버린 생명을 되찾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당신 사랑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자기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여전히 죄를 짓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 모든 죄와 악을 이길 것입니다. 신자는 바로 이런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죄인들을 바라보도록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를 살리셨기 때문에 그런 살리신 하나님을 따라 살도록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구유에 오셔서 모든 사람을 위해 사시다가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철저하게 사람들을 위한 생애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그 일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당신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이셨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은 비록 말구유에 태어나 십자가에서 죽을 수 없으나 그 정신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였는지 그런 자신을 위해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찬란하게 나타난 지점이 예수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니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배우면서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B. 우리를 살리려 하심
둘째는 우리를 살리려 하십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죽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육체로는 살아 있으나 곧 죽도록 필멸할 운명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향해 완전히 죽어있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보고 사랑하고 그 분으로부터 충만한 사랑을 받으며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 하나님과의 사귐은 곧 영적 생명이었습니다. 영혼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가 사랑해야 할 하나님을 몰라보고 오히려 대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하고 자기를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두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할 사람이 하나님을 대항하며 행복을 찾기를 원했고 그 결과는 철저한 영혼의 죽음과 불행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비참과 고통은 이렇게 영혼이 하나님을 떠난 죄의 열매였습니다. 이런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이 세상에 권력과 재물을 탐하며 잠시 있다 사라질 육신의 만족을 위해 종노릇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사라질 자기의 육체를 편파적으로 사랑하고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멀리 멀리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끊임없이 찾으면서도 그 진실한 하나님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종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자신은 비록 그 진리대로 살지 못하지만 행복이 진리 안에 있다는 희미한 감각이 남아있기 때문에 생각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진리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모든 종교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치려던 노력이었고 모든 학문은 진리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더욱이 인류 역사의 눈부신 철학의 역사는 바로 인간이 이렇게 진리를 찾고 싶어 했던 그 열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종교도 그 길을 보여주지 못했고 어떤 철학도 그 진리를 완전하게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비극은 아무것도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없었습니다. 오직 이 하나님의 생명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는 모든 사람에게 이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더 이상은 자기의 육체를 위해 종처럼 살아가기를 거부할 용기를 가졌습니다.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고 그리고 누구 때문에 살아있고 앞으로 마지막 자신의 인생의 결말이 누구에게로 향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렇게 알게 된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생명을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허무를 딛고 그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셨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렇게 찾아도 발견할 수 없었던 행복을 주셔서 그 안에서 만족한 삶을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이전에는 더 많은 권력과 많은 재물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소유해야만 행복했지만 진정한 행복이 하나님께서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소유한 그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주셨으니 이 비밀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길일 뿐 아니라 진리일 뿐 아니라 그 진리를 따라 살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갈 수 있는 충만한 생명력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의 죽음이 됩니다. 이미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은 또한 살아있는 사람을 죽게 만듭니다. 그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음 너머에 있는 그 사람을 한 번 만나고 자신의 생명을 바꿔야 한다면 능히 그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 사람이 사랑하는 것과는 비교될 수 없는 사랑으로 온 인류를 사랑하셨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아들을 그렇게 사랑하셨지만 자기 아들보다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당신에게 더욱더 간절한 소망이었기 때문에 자기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까지 우리 인간을 위해 구원해주시도록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성탄이 우리에게 즐거운 이유는 아기 예수가 구유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기가 구유에서 태어난 것이 무엇이 그렇게 기쁜 일이겠습니까? 우리의 구유는 나무로 짜서 그렇게 식탁처럼 세워 놓고 말들을 먹이고 짐승들을 먹였지만 당시 예수님 시대 때 구유는 땅을 파고 거기에 짐승의 먹을 것들을 주는 구유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땅바닥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 일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즐겁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사람의 옷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일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그 구원은 사실 하나님의 슬픔을 통해 얻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이 땅바닥에서 태어나는 그 구유의 탄생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에 당신을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이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우리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모른다 할지라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는 있으니 하나님이신 그 분을 한 뼘으로 줄여 사람의 몸을 입고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귀로 들을 수 있도록, 그 분을 만져볼 수 있도록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삶과는 전혀 다른, 모든 훌륭한 사람의 인격과는 전혀 다른, 모든 훌륭한 사람들이 살아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을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사랑이 촛불처럼 혹은 희미한 불빛처럼 나타나다가 예수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심으로 밤하늘의 폭죽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귀를 기울이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이천년 전에 이 세상에 살아계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분이 어떻게 말씀하시고 어떻게 사셨고, 어떻게 사람들을 사랑하셨는지를 믿게 하심으로 자기도 그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비록 영원한 하나님이지만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될 때에 그 하나님을 진심으로 알 수 있게끔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우연으로 가득 찼던 이 세상이 어떻게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있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지를 깨닫도록 만들어주십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때문에 울고 웃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눈물 흘리고 교만했던 사람들을 그 모든 보이는 세상 너머에 있는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자신은 비록 이 세상에 이런저런 일을 만나지만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힘으로 그 모든 현실들을 극복하고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오직 육신을 위해 섬기고 살았고 노예처럼 자기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참 하나님을 알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의 의미와 이 세상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비록 잠시 있다 사라지는 인간이지만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끊어질 사랑이었고 사람을 향한 사랑도 결국은 사라질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토록 있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가 사랑을 받고 그 분을 사랑함으로 영원한 생명 안에서 살도록 그렇게 우리를 살리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그렇게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 그 분 보시기에 좋았을까요? 왜냐하면 영원히 죽어 있는 그것은 그 사람에게 끊임없는 번뇌와 고통과 시련과 괴로움과 허무와 고독의 연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빛 가운데서 살도록 그리고 모든 인생의 삶의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렇게 당신을 향하여 살기를 원하십니다. 당신께 무엇을 바치고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길이 당신을 사랑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생명이 필요한 때입니다.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고 모든 고독을 극복하고 인생은 여전히 살만한 것이며 잠시 사라진 육신의 삶이어도 자신은 하나님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라는 신앙의 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살리시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의사에 의해 치료받은 사람도 결국은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지만 하나님이신 그분에 의해 영혼이 살아난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원인이 되어 우리를 살리려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다고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충만한 생명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누리며 살게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매달려야 할 십자가에서 그 분이 대신 죽으셨고 우리가 당하여야 할 모욕과 수치를 그 분이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기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구원의 혜택을 입는 사람들에게는 기쁨이지만 자기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에게는 슬픔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큰 기쁨을 바라보시고 자기의 아들을 우리를 살리실 한 종자 씨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 분이 한 알의 밀알처럼 육신이 썩어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 열매를 받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살려 내셨으니 이제 여러분들도 그 생명이신 하나님을 충만히 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셔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 자신을 위해 가장 행복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리신 그 분을 믿고 여러분도 살아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I. 적용과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하여 행복하게 살게 하시기 위해서 자기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맞이하는 이 날에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보일 최고의 선물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사랑하신 것을 믿고 그 사랑이 자기의 독생자를 보내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충만한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