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찾으면 발견하리라
녹취자: 남궁지선
안녕하셨습니까? 성도 여러분, 벌써 봄이, 봄 속으로 우리가 들어간 것 같아요. 꽃이 만발하게 피었고 벚꽃은 군데군데 벌써 꽃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자 우리 겨울에 아사밤을 시작했는데 봄에 끝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대망의 마지막 과입니다. 찾으면 발견하리라.
문제 1번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말해 주겠습니까?
한번 지체들의 얘기를 들어볼까요?
인터뷰 1) 하나님의 존재를 전하는 자가 잘 준비된 성경적 지식과 잘 훈련된 빼어난 말솜씨로 전한다고 하더라도 머리에서 머리로 지식을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영혼을 이해시키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정말 힘들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꼈고 또 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책에서 목사님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스스로 나타나신 바 되고 발견되기를 원하시며 직접 하나님께 여쭤보면 답변해주신다는 말씀을 듣고 아! 그렇구나. 전하는 자가 전하는 자의 소임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 직접 한번 간절히 여쭤보라고 권면하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한번 그렇게 권면해 보고 싶습니다.
인터뷰 2)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 교리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존재되심을 성경 속에서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고 하십니다. 우리 안에 영으로 계신 성령 하나님, 우리들을 위하여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이신 성자 하나님 이 모든 구원을 계획하신 성부 하나님, 위격으로는 각각 계시지만 능력과 권세가 동일하신 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다 알 수도 없고 이해될 수 없지만,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여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존재되신 성경은 참 신이시며 참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로 통해서만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과 죄의 비참함을 알도록 철저하게 사함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귀하고 높으시며 거룩하고 아름다우신 그 멋지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깨달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속에서 사랑의 열매를 드리기를 소원하게 되며 언젠가 죽음 넘어서 하나님 앞에 선다는 준엄한 사실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인터뷰 3) 저 또한 어린시절 불행이 가득찬 세상을 바라보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존재하더라도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오해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를 만나게 된다면 꼭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니가 세상을 불행하게 바라보는 건 신을 믿지 않아서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는 순간 똑같은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거야. 하나님이 널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너 같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죄인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이미 너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어. 하나님은 그런 분이야. 절대 오해하지마.’
목사님 : 참 어려운 문제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에게 과연 그 의심을 해소시켜줄 수 있을까? 우리 어렸을 때 유신론 주장하는 친구들하고 무신론 주장하는 친구들하고 언쟁하던 경험들이 있죠? 결국은 둘 중에 한 사람이 계속 논쟁을 하다가 졌어요. 그렇다고 해서 신이 있다고 믿던 사람이 졌다고 해서 신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아니고,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 졌다고 해서 신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떤 식으로 우리가 이런 문제를 좀 접근해 볼 수 있을까요? 한 번 볼까요?
1961년 최초의 소련의 유인 우주선이 있었습니다. 보스토크 호인데, 거기에 탑승했던 유리가가린이라는 인물입니다. 오래 못 살았죠. 서른네 살밖에 못 살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최초의 우주인이였으니까 어마어마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죠. 저 때만 해도 소련이 미국보다 훨씬 과학기술이 앞서 있었던 때였기 때문에 이때에 미국이 받았던 충격은 정말 굉장한 거였습니다. 소련이 베일에 쌓여있어서 그 나라가 어떤지도 몰랐고, 내부사정도 몰랐던 시대였으니까 더 무서웠겠죠.. 그 다음 장면을 보면 우주의 장면이 나오잖아요. 저거 여러분 어떻게 읽었어요? GODISNOWHERE? God is now here.유신론자니까 저렇게 읽는 거에요. God is now here. 유신론자가 아닌 사람들은 어떻게 읽냐하면 God is no where. 하나님은 아무데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저걸 보는 순간에 그런 식으로 읽는 법은 없어요. 항상 God is now here. 이렇게 읽죠. 그렇게 보여지는 거에요. 왜 이 말씀을 드리냐 하면 소련의 우주비행사들이 유리가가린 이후로 우주에 가잖아요. 그때 거기서 유명한 말을 남겼어요. 저 말을 남긴 거예요. God is no where. 내가 우주에 가 봤는데 아무데도 신은 없다. 그럼 동영상을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달에 도착해 우주선에서 내리기 직전 성경구절을 읽고 성찬식을 거행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울드린은 암스트롱과 협의해 성찬식 현장을 나사와 교신하지 않았습니다. 1998년 방영된 톰 행크스가 책임프로듀서를 맡은 “지구에서 달까지는” 성찬식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했습니다. 울드린은 웨스터 장로교의 담임목사의 허락으로 준비해간 성구에 포도주를 따르고 종이에 적어간 요한 복음 15장을 낭독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어 달 표면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했습니다. 장로교와 가톨릭은 같은 그리스도교로서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고백합니다. “지난 며칠간의 사건들을 돌이켜 보면서 시편의 한 구절이 제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을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저게 무슨 얘기냐 하면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도착했을 때 히든 스토리에요. 나중에 알려지게 됬죠. 그때 우주 비행사가 거기 내려서 땅에 발을 디디면서 성찬식을 했다는 유명한 얘기에요. 그리고 요한복음을 거기서 낭독하게 되었죠. 그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그런 고백을 했어요. 저 사람들인지 아니면 다른 우주인이였는지는 제가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주인 중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었어요. 자기는 우주를 여행하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보다 더 강력하게 느끼게 되었다. 차이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결국은 마음의 결이에요. 내 마음에 설명을 다 하지는 못해도 내 마음의 결이 신을 의지하고 싶다. 그리고 절대적인 존재가 분명히 있어서 그래서 우리의 존재의 근거가 되고 세계의 모든 운명이 그분의 계획 속에 있을 것이다라는 마음의 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이 기독교든지 다른 종교든지 신의 존재를 이야기할 때 와 닿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것이죠.
결국은 누가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잖아요. 전도해봐야 알지. 또 몇 년 전에는 저처럼 완고한 무신론자였는데 그런데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변해서 그게 그 신이 하나님이라고 특정할 수 없지만, 확실히 인간이라는 것은 정말 보잘 것 없고, 우주와 신 없이는 설명이 안 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변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말이에요. 결론은 전해 봐야지 우리가 누가 마음에 믿을 준비가 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거죠. 결국은 인간이 믿을 수 있도록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만 진짜 믿음을 심어주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님의 역사를 복음을 전하면서 우리가 기대어 보는 거죠. 그때에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여러분도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서 믿게 된 거 아니겠습니가? 자 그러면 2번 문제를 볼까요? 같이 읽어 봅시다.
“이혼 상담하는 여성과의 대화”에서 당신을 생각에 잠기게 한 부분이 있었다면 나누어 봅시다.
인터뷰 1) 본문에 “사랑하는 게 아는 길이란다. 남편에게 파브르가 되지 말고 사랑하는 이가 되거라.” 라는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남편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을 관찰하고 세상적인 잣대로 평가했습니다. 진정 사랑하지 못한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세 아이를 돌보느라 남편의 믿음 성장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을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남편을 주님 안에서 깊이 사랑하고 믿음의 성장이 일어나길 돕고 기도하겠습니다.
인터뷰 2) 이혼을 상담하는 여성에게 “상대방을 알려고는 해 봤니?”라고 물으심이 제게는 큰 울림이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는 것인데 하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사랑해서 얼마나 간절히 알려고 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또 이 한 마디(알려고는 해봤니?)가 저의 신앙의 재정비를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터뷰 3) 부부는 운명 공동체인데 함께 살면서도 서로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함께 살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서로를 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할 때 “사랑하는게 아는 길이다.” 라는 말씀이 와닿았습니다. 사랑하는 것과 아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 둘은 서로를 촉진해서 더 사랑하게 하고 더 알게 하는 것 같아요. 또한 이 사랑이 내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목사님 : 저도 이것을 라디오에서 들었어요.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아내이름을 폰에다가 뭐라고 저장했나 그냥 정직하게 자기 아내 김 아무개, 이렇게 써 놓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내 이렇게 써 놓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다른 이름으로 써 놓는 남편들도 많더라구요. 사람들이 모여서 아내를 뭐라고 적었나 보았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자기는 아내 이름을 마돈나라고 저장한대요. 마돈나는 유명한 댄스 가수잖아요. 미인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런 사람이잖아요. 아내에 대해 매혹적인 느낌을 갖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왜 이름을 그렇게 폰에다가 저장했냐 그랬더니 자기는 술을 너무 좋아한대, 그런데 술을 먹으면 항상 돈이 없대 그래서 “마누라 돈 가지고 빨리 나와. 그래서 마돈나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 타고 가다가 한참 웃었는데, 또 옆에 사람은 아내를 “파브르”라고 지었데요. 왜 그랬냐 그러니까 자기를 늘 곤충보듯 한데요.
여기 보시면 파브르의 초창기에 나왔던 곤충학이에요. 늘 곤충 보듯이 자기를 보니까 아내 이름을 파브르라고 지었데요. 실제로 남편을 곤충 보듯 하는 아내들을 많이 보았어요. 그리고 또 아내를 그렇게 노는 남편들도 있어요. 그래서 남편! 그럴 때 생각이 없고 잘 잊어버리고 칠칠치 못한 대명사가 되어서 그래서 좋은 의미에서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뇌적 존재로 취급받는 남편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여러분 가운데에는 아마 없을 겁니다. 또 어떤 분이 있다고 하시네요. 그런데 결국 중요한 거는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있죠. 곤충은 이런식으로 관찰이 되지만, 결국은 사람이 사람을 알아간다고 하는 것은 교재와 사랑 속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 남편을 창조할 때 지혜와 사랑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이 내 남편을 어떻게 여기셨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남편을 아시는 것처럼 알 때 진정한 남편을 아는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거죠. 남편도 마찮가지예요. 아내가 좀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남의 아내는 부동산도 사고 팔아서 남편을 부자로 만들어 준다는 데 저 사람 저렇게 주변머리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아내를 그런 사람으로 만드신 하나님이 어떤 사랑과 지혜 속에서 아내라는 사람을 창조하셨는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야 해요. 그리고 아내를 보면 정말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은 있어도 못난 사람, 못된 사람은 없다.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에요. 우리가 사랑하기 전에는 진정으로 안다고 말할 수 없어요.
제가 지난 시간에 나나무스쿠리에 대해서 얘기해 드린 거 기억나세요? 한참 인기 절정에서 폭발적인 명예를 누릴 때에 남편은 쓸쓸히 자살의 길을 택했잖아요. 일종의 고독사를 한 거죠. 그런 거 보면 진정한 인간 승리와 인생에서의 성공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아내는 남편을 파브르처럼 관찰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서로 사랑하고 남편도 또한 그러해야 합니다. 피차 사랑하고, 피차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에게 복종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야 하겠죠. 기 쎈 사람이 이기지 말고, 진리 안에서. 문제 3번 같이 읽어 볼까요?
“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에 대한 저자의 재해석에 공감하는 바를 나누어 봅시다. 나누어 볼까요? 보겠습니다.
인터뷰 1)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지 못했다면 저의 존재는 세계 속에 홀로 내던져서 살아가는 존재와 같았을 것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자유라고 말하지만, 그 세계는 불안과 고통에 저주 받은 어두운 밤과 같은 곳입니다. 성냥팔이 소녀 역시 세상의 그러한 어둠 속에서 힘겹게 살아갔던 것 같습니다. 그때 소녀에게 한 개비 성냥 같은 진리의 불빛이 있었다면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었다면 성냥팔이 소녀가 그렇게 슬프게 죽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2) 어둠을 물리칠 불빛이 없어서 죽었을지도 모를 성냥팔이 소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빛을 몰라서 이미 죽은 영혼들, 지금도 그 빛을 몰라 죽어가고 있을 영혼들이 막연히 떠올랐습니다. 누군가에게 그 불빛을 비춰주고 싶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한 개비 성냥불이 되기 위해 기도하고 싶은 밤은 누구라도 사랑하고 싶은 밤이 됩니다. 누군가의 불 꺼진 방에 등불이 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인터뷰 3)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에 대해서 저자는 소녀가 죽은 것이 추워서 죽은 것이 아니라 어둠을 물리칠 불빛이 없어서 죽었다고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 동화를 떠올리면서 ‘추운 겨울날 눈 위에서 성냥을 팔고 있는 소녀에게 누군가 다가가서 따뜻한 관심 한마디 그리고 사랑을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어서 저자는 불 꺼진 방에 홀로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한 개비의 성냥불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저도 직장생활 하면서 세상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이들이 밤이 오는 것을 무서워하면서 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수면제나 알콜에 의지해서 현재도 잠들려고 애쓰는 이들을 주변에서 보기도 했습니다. 세상 가운데서 빛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크리스찬으로서 빛을 줄 수 있는 그런 제 자신이 되었으면 하고요. 저자의 재해석과 말을 통해서 제 자신을 되돌아 보는 그런 시간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 그 어린 시절이니까 그랬을지는 모르지만, 아마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비슷하지 않을까요? 어린 시절에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던 청소년 시절에 전 먹고 싶은 것이 없었어요. 지금은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고 그런데, 제가 한 20대 후반, 중반 담배를 끊기 전까지는요. 세상에 먹고 싶은 것이 없었어요. 그리고 뭐가 먹고 싶다는 사람들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갖고 싶은 것도 없었어요. 그때는 뭐 물건도 많이 없었지만, 예쁜 사제 교복 입고 다니는 학생들을 보더라도 나도 저런 걸 입고 싶다든지 그런 생각 해본 적 없고요. 갖고 싶은 것도 없고 그랬어요. 저희도 가난하게 살아서 늘 물질이 부족했는데도 워낙 정신적인 고민에 압도당하니까 그런 게 뭐 힘들다든지 그런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성냥팔이 소녀가 당연히 추워서 얼어죽은 건 틀림이 없죠. 하나의 재해석이죠.
여기 보시면 너무 여러분들이 잘 아는 한스 안데르센의 동화에요. 1845년에 덴마크에서 발표된 건데요. 맨 처음에 저렇게 촌스러운 표지로 나왔어요. 그림에 보면 이제 성냥팔이 소녀가 있고 이렇게 맞아주는 장면이잖아요. 저거는 거의 죽음의 상태에 들어간 것입니다. 뭐 당연히 추워서 얼어죽은 거 맞죠. 그런데 이제 저자로서 그때의 진리의 빛이 없어서 고통스러웠던 그 경험을 저런 식으로 표현한거죠. 재해석을 해놓은 거죠. 결국은 그 아이에게 따뜻한 온기가 없었던 것, 그것 때문에 그 아이가 죽은 것처럼 사실은 오늘날 많은 사람 사람들이 살아있으나 죽은 자 같이 살아가는 데 그 이유가 진리의 불빛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인간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인간은 끊임없이 좌절하고 괴로워 하잖아요. 아까도 수면제 이야기하셨는데 수면제 먹는 사람이 모두가 고민을 많이 해서 수면제 먹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물리적인 변화도 있고, 알코올도 먹는다고 하는데 사실은 여러분 꼭 기억하세요. 술을 한 잔이라도 먹으면 잠이 안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의사들은 수면 그래프를 보면 그래프를 보고 어느 날 몇 시에 술을 먹었는지 다 알아맞춰요. 예전엔 저도 잘못된 상식으로 포도주 같은 거를 한잔 먹으면 잠이 잘 온다더라 상식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에요. 그래서 사실은 그것을 먹으려면 이른 시간에 먹고 저녁 시간에는 알코올 끼가 없는 가운데 잠들어야지 숙면에 들 수 있습니다. 어쨌든 결국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따뜻하게 살고 육체적으로는 풍부하지만 진리의 빛이 없기 때문에 방황하고 있는 현실이죠. 누군가에게 진리의 빛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4번을 읽어 보겠습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찾아가려는 노력과 당신에 대해 알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봅시다.
인터뷰 1) 저는 모태신앙으로 어릴 때부터 교회 생활에 익숙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었기에 저 스스로가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열린교회에 와서 나이가 40이 된 지금의 무렵에 이르러 생각을 해보니 저의 지나온 인생의 곳곳에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의 발자취를 남겨주시고 계셨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더 알고 찾아가려는 노력은 부끄럽지만 지금부터 조금식 시작하게 된다는 고백을 해봅니다.
인터뷰 2) 예수님을 안 믿는 가정에서 믿는 가정으로 결혼해 살면서 그저 막연한 하나님이었습니다. 내가 감당할수 없는 힘든 일을 겼으면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세상에서 나 홀로 남겨진 것과 같은 시기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와 함께 하신다.”고 설교와 기도중에 만나 주셨고, 그 기쁨과 감격은 지금도 생생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물의 찌꺼기같은 저를 사랑하시고 고치시고, 인도하시고, 날마다 순간마다 함께 하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길 원하며 하나님의 기쁨 되기를 소망합니다.
인터뷰 3) 회심 즈음에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 말씀을 붙들고 끈질기게 기도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거든요. 그때 하나님께서는 저의 사소한 기도 하나하나에 다 응답하시며 하나님의 실제를 존재하심을 저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셨어요. 저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하나님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것은 저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목사님 : 결국은 그럼 하나님을 어떻게 발견하냐. 결국은 우리가 찾는다고 하나님이 들키시는 하나님은 아니지만 그렇게 당신을 찾는 것 자체를 믿음으로 보시는 거죠. 찾는데, 내가 찾지만 내 삶을 그분께 복종한다든지 그런 의지는 전혀 없고 한 번 교통사고 난 거 구경하듯이 한 번 신의 얼굴이나 보자 하고 찾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자기를 보여주시지 않아요. 그거는 우리 기독교만 그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모든 종교가 동일하게 얘기합니다. 중요한 건 마음을 다해서 찾는 거죠. 도를 찾는 것도 도가 뭐야? 얼굴이나 보자. 내가 꼭 그대로 산다는 건 아니고 이런 사람은 도에 접근할 수가 없어요. 자신의 인생을 다 걸고 내가 도를 깨우치고 그 도를 따라 하루를 살 수 있다면 그 도를 모르고 짐승처럼 천년을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 이런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도에 대한 깨우침을 가졌다 자기들도 그렇게 얘기한다 이거죠.
그래서 삼위일체라는 책에서 어거스틴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하나님을 찾는다고 할 때 우리는 그 하나님께 우리 인생 전체를 결부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찾는데 찾게 되는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우리 자신의 인생과 존재 전체를 결부시키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을 우리가 알 수 없다 그렇게 이야기해요. 그러니까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당연히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거죠. 그러면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는데 어떻게 믿음을 갖느냐? 처음에는 남에게 듣는 거죠. 성경을 통해서 듣는 거죠. 그것도 남이잖아요. 그런데 내 마음속에 내 인생의 기원이 무엇이고 내 끝이 무엇인가 방황을 하는데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하나님임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또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 그것을 내 마음에 믿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다 더 상세하게 경험하여 알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거죠. 그래서 지식과 믿음은 그렇게 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더 알고 싶을 것이고, 또 하나님을 자신의 인생을 걸고 알고 싶어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는 거요. 그래서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이미 알았지만 모두 안 것이 아니죠. 그래서 과거에 우리가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때 내가 지금처럼 하나님을 알았다면 그렇게 방황하며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그거는 그때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잘 아는 지금에서 생각해보니까 그때 내가 인생을 방황했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 그 다음에 생각해 봅시다. 지금보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훨씬 더 뛰어나게 알게 되었다고 쳐요. 미래에. 그러면 회상해서 오늘을 볼 때에 그때 내가 하나님을 지금처럼 알았더라면 그때처럼 방황하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지 않겠어요? 보다 더 행복하고 쓸모있는 삶을 살았을텐데,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결국 오늘도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끊임없이 배우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 이 책의 요절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 15권 28장 51절 마지막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당신 스스로 우리에게 발견되게 하셨고 우리가 당신을 찾으면 찾을수록 더 많이 발견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주셨사오니 또한 그렇게 찾아갈 힘을 주소서.” 사실 제가 이 구절을 읽었을 때 참 많이 눈물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그 구절이 마지막 구절이었어요. 또한 그렇게 찾아갈 힘을 주소서. “magisque inuenidndi te spem dedisti.”그렇게 찾아갈 수 있느 힘을 주시옵소서. 어거스틴이 무슨 뜻으로 이 말을 했는지 아시겠어요? 뭐냐하면 하나님이 나의 손은 놔 버리시고 당신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의 은혜를 주시지 않고는 나의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도 끝까지 못합니다. 그 고백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은혜로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실 뿐 아니라 발견할 때까지 굽히지 않고 계속 하나님을 알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자체가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어둠 속에서 알게 되는 것도 은혜로 시작하고, 알았다. 라고 할 때에도 결국은 은혜로 된 것이고, 더 알고싶다는 마음도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된 것이고, 그 마음을 간직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지탱되는 것이고 마지막에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온전히 알게 되는 그날도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사밤 우리가 8주 동안 공부했습니다. 어떠셨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의지하며 살아갈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스럽게 다가오지 않습니까? 아직도 이 세상에는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은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은 너무 고독하고 한 줄기 불빛이 없어서 죽어갑니다. 그 사람들을 사랑합시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줍시다. 그래서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님 안에 살도록 그렇게 사랑합니다. 그동안 끝까지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 대단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