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마무리가 바울 서신이나 베드로 서신이나 이런 거하고 조금 다르잖아요. 그죠? 다른 것에는 축복 기도로 마치는데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야고보 선생 그 마지막 부분 이야기가 진리에 미혹된 자들에 대한 미혹돼서 진리에서 떠난 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여기에서 피력하고 있는 것이죠. 근데 이제 그거를 여기서 어떻게 이야기 하냐면. 미혹하여 떠난 자를 너희가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너희가 돌이키면 그렇게 나오죠. 우선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첫 번째 이야기는 뭐냐 하면 신자들에게도 미혹을 받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 하는 것이죠. 신자들에게 미혹이 받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신자들이 이렇게 미혹을 받게 되는 그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로 나눠지는데 신자들이 미혹을 받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는 신자들이 미혹을 받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첫 째는 뭐냐 하면 하나님에 말씀에서 장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혹을 받는 것이죠. 예를 들자면 요즘은 별로 없습니다만 우리 어렸을 때에는 그렇게 유괴 사건이 많았어요. 유괴 사건이 많은데 그 어린 아이들을 보면 대게 전 지금도 생생합니다만 저 올곡동 살 땐데 목욕탕 집 아들 이였는데 유괴가 됐어요. 유괴가 되어서 어떻게 풀려났는지는 모르겠는데 간신히 풀려났는데 애가 이렇게 부자집 애처럼 뚱뚱하고 이래 이런 애들이 표적 이였거든요. 지금은 뭐 그렇게 뚱뚱한 애들이 표적은 아닙니다만 옛날에는 아주 부자집 애처럼 얼굴이 허여멀겋고 그냥 좀 목살이 든든하게 붙어 있으면 아빠가 돈 좀 있나보다 그러고 유괴해 가는 거죠. 풀려났는데 여기 밧줄에 묶인 선명한 자국이 목을 졸라서 죽이려 하다가 살아난 거죠. 지금도 두려움에 차있던 그 아이가 사람들에게 애워 쌓여서 거리를 지나서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생생한데 초등학교 4학년쯤 되었을거야. 유괴를 많이 하잖아요. 유괴를 할 때 똑같에. 아저씨가 사탕 사줄게 가자 그렇게 아이들이 순진해. 어른보고 사탕 사줄게 나와 같이 갑시다. 그럼 어른이 뭐라 그러겠어요. 야 임마 사탕은 너나 먹어라. 그러니깐 어리기 때문에 어려서 잘 모르기 때문에 쉽게 미끄러져 가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하느님에 말씀에 대한 지식이 절대로 철저해야 됩니다. 요새도 제가 공부하면서 느끼는 건데 정확하고 철저하지 않은 지식은 그 사람이 신앙 생활을 붙들어 주는데 거의 도움이 안되죠. 그래서 교인들이 보면 말씀이 별로 없는 사람은 쓰려졌다 일어나고 쓰려졌다 일어나고 그러 잖아요. 지기는 그걸 성장이라고 생각하거든. 성장 아니에요. 똑같은 상태에서 쓰려졌다 일어섰다 쓰려졌다 일어섰다 하는 거지 성장이 아니라고. 말씀에 대해서 철저한 지식이 없이는 결코 견고한 성장이 없다 이거죠. 그러기 때문에 말씀이 든든하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어린 아이와 같아서 잘 미혹되고 그래서 자기가 두 가지 면에서 정리가 되기 때문에 자기가 왜 기독교를 믿는가? 사실 그건 얘기할 필요도 없거든요. 왜 기독교는 진리인가. 사실 그것도 얘기할 필요도 없거든요. 왜냐하면 자기는 이미 진리라고 믿으니깐. 그래도 믿었어도 그게 왜 진리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되요.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내가 왜 기독교를 믿는가? 왜 진리인가 왜 믿는가 전자는 변증적인 요소고 두 번째는 어려운 말로 험증적인 요소입니다. 체험 할때 그 험자에요. 험증적이 요소요. 그래서 왜 예를 들자면 버틸란트러셀같은 사람 있잖아요. 그 사람이 쓴 대표적인 책이 뭐죠? 그렇죠. (책이름)뭐 그런 책이 있자만 그러나 아주 더 결정적인 책 이름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아니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면서 자기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지를 설명하는데 여러분들은 왜 기독교 인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는 거예요. 그러는 가운데 미혹되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이 왜 진리인가도 말 할 수 있어야 되고 왜 자기가 그 진리를 믿을 수 밖에 없는 가도 말해야 되는 거예요. 근데 자기 개인에게는 별로 필요가 없잖아요.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아멘 아멘 하면서 가면 되는데 근데 이제 말이에요. 사상이 공격을 받거나 거짓된 가르침에 접하거나 할 때에 그것이 확실하게 없으면은 넘어지고 쓰러지는 거예요. 미혹되는. 그렇기 때문에 말씀에 관한 철저한 지식이 필요하다. 철저하게. 그게 남을 위한게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이다. 철저하게.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미혹되는 이유가 뭐 때문이냐면 변하지 않는 자기 자신을 합리화 하는 과정에서 말씀이 제시하는 유일하고 어려운 길 보다는 다른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결국 덮어버리는 거죠. 제가 그런 비유를 잘 하는데 이제 타락한 인간이 수술대 위에 오르잖아요. 죄가 가득해요. 근데 성화에 관해서 이야기 하는 거예요 이제. 구원받고 나니깐 그 다음에 이제 수술대 위에 딱 올랐는데 배를 쭉 찢고 근데 거기서 부패한 덩어리들을 하나씩 하나씩 힘살과 핏줄을 나누면서 이렇게 힘줄 힘살 핏줄 정맥 동맥 다 이렇게 나누면서 수술을 하잖아요. 수술을 하잖아요. 수술 하는 사람들의 그 칼은 그래서 아주 굉장히 예리하죠. 뭐 저는 보지는 않았는데 한번 쓰고 버린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깐 하여튼 수술 칼을 숫돌에다 간다라는 이야기는 별로 못 들었으니깐 그렇게 해가지고 배를 가르고 하나씩 꺼내잖아요. 그때에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하나씩 이렇게 말하자면 고쳐가는 과정이 너무 힘드니깐 오직 가만히 은혜 받을 땐 가만히 누워 있어요 눈 감고. 그래서 이제 하나하나 속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 저 새사람 만들어 주세요. 인제 말씀을 가지고 고치시는 거죠. 막 이렇게 고치시지 않잖아요. 이렇게 핏줄 힘살 장기 다 가려내면서 잘라내도 되는 부분은 잘라내고 치료할 부분은 막 치료하잖아요. 아 그러다 은혜가 떨어지면 갑자기 가만히 누워있던 환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거에요. 그래서 아 냅둬요. 덮어줘요. 냅둬요 그만 덮어요. 그리고는 그 다음에 안됩니다 안된다. 더 고쳐져야 새사람이 되느니라. 아 냅둬요. 이대로 살래요. 그리고 배도 안 꼬매고 그냥 나가는 거야. 그걸 어떻게 생각하냐 하면은 이 의사이신 하나님은 너무 가혹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에요. 그리고 이 가르침을 말고 또 다른 가르침이 있을꺼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가보자. 그리고 점집을 찾아 가보는게 그게 여기서 이야기 하는 미혹되는 거에요. 그런 실제로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정직하고 진실한 복음 앞에서 자기가 깊이 변화되는 그 과정들이 너무나 힘겹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스스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쉬운 길을 택한답시고 잘못된 가르침으로 빠져들어가는 거죠. 그러니깐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생명으로 이르는 길을 좁고 협작하고 그죠? 그리고 사망으로 이르는 길을 넓고 동행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래서 미혹에 빠지는 겁니다. 그러나 전자건 후자건 간에 어떤 거든 간에 그 미혹은 크게 두 번째로 어떤 형태를 띄냐면 진리에서 떠나는 형태로 띈다 이거죠. 진리에 길에서 떠나는 형태를 취해. 그러니깐 신자가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 가를 보여주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에 말씀을 굳게 붙들고 그 하나님에 말씀 주위로 와가지고 설교가 들으면서 그때 비로서 성경에 관심을 갖는 그런 것이 되어선 안된다. 무얼 사업을 하는 가운데 그 다음에 회사를 경영하는 가운데 직장 생활 하는 가운데 사회 생활을 하는 가운데 하다 못해 가게에서 자기 사업체와 거래하는 가운데 가족들과의 관계 모든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에 말씀이 자신에 전 삶을 움직이는 권위가 되게 하고 자신에 모든 먹고 마시고 숨 쉬고 생활하는 모든 것이 말씀에 그라운드 위에서 설수 있는 그런 삶이 되야 한다 이거죠. 그렇지 않으면 그가 하나님에 말씀에서 떠나는 거에요. 그래서 그 빛 대신 주님에 말씀을 붙들고 자신에 가야 할 길을 탐사하고 그리고 그 길 대신 주님에 말씀을 따라 걸어가고. 그리고 능력이 되신 그 말씀을 따라서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걷기로 작심하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 걸어 생활하면서 걸어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고 그리고 바라시는 삶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깊이 깊이 기억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매일매일 살아가는 그럼 삶에 발자취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그 무슨 사경회때 한두번 말씀을 많이 깨달았다고 그러는데 그거는 겨우 이제 돌이킨 거에 불과한 거에요. 그래서 그 돌이키는 것이 참 중요하긴 하지만 돌이키는 것만 가지고는 안되잖아요. 더 가야지 그게 한걸음이라도 목적지로 다가가는 거지 그니깐 돌이킨 경험만 수없이 많은 거에요. 걸어간 경험은 별로 없고 곁길로 나아가다 수없이 돌이켰는데 항상 자리는 제자리에요. 왜 그 자리에서 걸어가다가 즉시 즉시 곁길로 나갔으니깐 돌이키는 회개의 경험은 많은데 맨날 부산까지 가야하는데 수원까지 가다가 항상 삼천포로 갈라 그랬거든요. 그러니깐 얼마나 많이 갔는지간에 하여튼 돌이키기를 잘하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깐에는 굉장한 은혜의 체험을 가지고 산거 같지만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때에는 그냥 돌이켰을 뿐이지 삶에 진전은 없는 것이죠. 그러면서 결국은 그 진리 안에서 살고 그 진리를 붙들고 그 속에서 은혜를 받고 그 진리 안에서 행복해 하고 그 진리 안에서 아파하고 진리 안에서 승리를 얻고 진리 안에서 고난을 받으며 사는 그 하나님에 말씀을 떠나지 않고 사는 바. 이것이 그로하여금 이제 미혹되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이에요. 그러니 마지막으로 뒤에 보면은 돌이키면 너희가 돌이키면 그러고 나오잖아요.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누가 돌아서게 하면 그러잖아요. 돌아서게 하면 이건 뭐냐하면 신자에 신자에 가장 중요한 사명이에요. 이게 어떻게 말하면 말이죠. 들어보세요 선교에 사명보다도 더 큰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겠어요. 너희가 차라리 이스라엘 집에 이른 양에게로 가라. 선교적 사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진리 안에서 바르게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가르쳐서 바른 믿음으로 돌아오게 하는거. 이것이 그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신자에 사명 중요한 신자에 말하자면은 삶에 목표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자기만 올바르게 믿을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올바르게 잘 믿을 수 있어요. 그런 면에 있어서는 신자가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되야해요. 그래서 사람들 흔히 이러잖아요. 나만 잘 믿으면 돼. 안돼요 그렇게 하면. 자기가 진리에 빛을 받은 것만큼 빛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이 그 빛을 나누에 줄수 있는 사람이 되야해요. 그래서 어떻게 하던지 그들을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자리로 돌아오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두가지가 꼭 필요한데 하나는 진리 그 자체를 소유한 사람이여야 하고 두 번째는 사람들을 깊이 그 영혼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