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7일 새벽예배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3-14).
여기서도 그러니깐 세월이 많이 흘러도 우리들이 육신에 정욕을 이기고 세상에 어떤 유혹에 물결들을 이기면서 살아가는 원리는 항상 같은거죠. 여기에서 지금 갑자기 뜬금없이 아고보 선생이 인생에 덧없음에 대해서 아침 이슬과 같고 안개와 같은 인생에 덧없음에 대해서 상기시키고 있는 이유가 뭘까 하는 궁금증이 들거든요. 이제 이런거죠. 뭐냐 하면 왜 그렇게 너 자신에 본성까지 진정으로 변화되어서 그래서 가짜 믿음이 아니라 진짜 신앙을 소유해서 참 신자가 되지 않느냐? 이게 결국은 욕망 때문에 그런거에요. 욕망 때문에. 욕심 때문에 그런거죠. 욕심 때문에 결국 이렇게 믿음과 행위가 분리가 되지 않고 그리고 올바르지 않은 행실을 하면서 참 되고 진실한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는데 근데 이렇게 사람들이 자기를 속이면서 나는 믿으니깐 구원받았다 그러면서 구원 받았다 라고 하는 안도감 때문에 오히려 담대하게 악을 행하는 그리고 그 구원이 취소 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적당히 살아도 된다 라고 하는 말하자면 신앙적 해이를 가져온다 이거에요. 그런 식으로 복음을 곡해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뭐냐? 결국 다른 것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신앙을 곡해하면서 하는 이유가 결국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죄에 대한 욕망. 그리고 심지어는 신앙까지도 자기에 욕망을 이루는데 쓰려고 하는 이런 사악함들이 결국은 이런 비참한 결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제 인생에 덧없음을 상기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인생에 덧없음을 상기하면 욕망은 급격히 감쇠하거든요. 그러니깐 완전히 새 사람이 되지는 않아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지는 않지만 그러나 우선 급한 불은 끈단 말이죠. 그래서 정리하면서 그려면서 이제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기에 죄와 그 다음에 인생에 참 의미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지각들이 생겨나는 것이죠. 그래서 잠언에 보면은 지혜로운 자에 마음은 초상집에 있다. 그래서 죽음을 통해서 삶에 엄숙함을 배우고 죽음을 통해서 오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죠. 죽음에 현장이 가르쳐 주는 것은 너무 간단한 이치거든요. 사람이 죽는 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근데 인간들은 그거를 계속 외면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풍습을 보면 아무리 가까워도 연세된 어른들이 초상집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거는 결례가 아닙니다. 그러니깐 본인이 연세가 많이 드셨을 경우에는 아무리 친한 사람이 죽어도 그 장사집에 나타나지 않는다 해서 결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러냐 하면 연세가 들면은 웬만한 사람이 아니면 죽음을 직면하는 자체를 굉장히 싫어해요. 여러 가지 두려움도 있고 그렇기 때문이겠죠. 또 연세가 들면 너무 가까운 사람이 경우에는 장례식장에서 복받치는 어떤 감정적인 이 경향 때문에 건강에 이상이 올 수도 있는거죠. 충분히 있죠.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이 가까운 사람이 죽었는데도 상가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전혀 결례가 아닙니다. 이해를 해야되요 어느정도.
그런데 인간에게 그런면이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깐 어떻해 하던지 그것을 회피하면서 살려고 그러는거죠. 그게 사람입니다. 그게 인간이고. 그걸 이제 회피하면서 살려고. 그렇게 회피하고 그런 것들을 멀리 하면서 살려고 하는 그런 것들이 인간인데. 근데 그렇게 해서는 결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질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우리는 이슬과 같은 존재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그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살면 그렇게 믿음도 아닌 믿음을 가지면서 자기가 구원받은 신앙을 가졌다고 우기고 그래서 결국 자기에 영혼을 돌아 볼 여유도 없이 욕망에 시달려서 그렇게 살아가는 그런 헛된 삶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야고보 선생이 그 얘기를 하는거죠. 너희가 뭐냐? 하나님 없이 꾸는 많은 꿈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하게 만들고 그리고 이 세상에 헛된 것들에 대한 강한 충동과 자극 속에서 살도록 우리를 아주 강하게 인도하는 거죠. 이런 것들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매 순간 우리는 죽음에 빛 앞에서 삶을 봐야해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도 하루를 열심히 계획하면서 살아가면서 항상 무엇을 계획 해야하냐면 모든 우리 일에 우리에 마음까지도 주지 않도록 그렇게 노력해야하는 것이에요. 물론 우리가 주님에 일을 하고 사업을 하고 무얼 할 때에도 우리 마음을 많이 써야죠. 그러나 마음중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들은 그건 주면 안되요. 그건 하나님께만 드리는 거에요. 저는 목회를 하고 한 얼마되지 않았어요. 한 일년정도 됐을까나 그 때 어떤 비결을 터득하게 됬냐하면 말이죠 열심히 일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마음에 영향을 받지 않는 그런 비결들을 그 터득 할 수 있었어요. 물론 이전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마음 중심이 거기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야 된다 라고 하는 것은 몰랐던 것은 아니고 또 부분적으로 그것을 위해서 노력을 안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거보다도 더 확실하게 아무리 바쁘고 그렇게 해도 이 마음에 깊은 중심이 영향을 받지 않는 비결 그래서 일을 하면서도 일이 마음이 안 실린 일이 되어가지고 일이 다 망가지지도 않고 또 그렇게 마음을 실어서 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 볼 남은 마음도 없는 그런 상황에도 이르지 않고 그러지 않아야 되요.
그래야 되요. 열심히 해야죠. 잘해야죠. 그러나 그건 일일 뿐이고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언제나 남아 있어야 되요. 그리고 그것을 침범할 수 없어야 된다 이거죠. 그렇지 않으면 신앙에 있어서 순결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거에요. 모두 부서지고 그리고 깨트려지는 것이죠.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도 일을 하고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죠. 그런 꿈이 없는 인생은 너무 슬프죠. 그렇지만 항상 기억해야 되요.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찾는 마음까지도 송두리째 자신의 인생에 다 내어주고는 그렇게 내어준다면 생명생활 적군에게 짓밟도록 내버려 둔것과 똑같은 거에요.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거에요. 그래서 정말 인생을 살면서도 시시때때로 이렇게 하나님 앞에 죽음에 시작 앞에서 우리에 삶을 보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다 거둬가고 나면은 이제 주님과 나와의 관계만이 남는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하나님 바라보며 살 수 있는 그런 신앙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허무한 이 세상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이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