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08일 새벽예배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 4:15-16).
인생에 허무함이라고 할까 인생에 아무것도 아닌 것들 상기 시킨 다음에 그러면서 그들에 신앙에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문제가 뭐냐 하면 우선 첫째는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께 대한 자신에 모든 생명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 되 있다라고 하는 이 신앙에서 출발하는 삶이 아니라는 거죠. 다시 말하면 자신에 삶에 대한 하나님에 주제권을 인정하지 않는 삶이라는 거죠. 사실 우리들이 믿는다 라고 하는 그 말은 가장 그것에 핵심적인 이야기가 뭐냐하면 내가 지금 믿는다는 생각이 든다 안든다 그런거 보다도 그분께 자신의 삶에 주제권을 내어드리는 거죠. 그래서 나는 내가 내 인생을 살지만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인생에 주인이시고 그리고 주님이신 그분을 수종들면서 내가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사실은 신앙에 핵심입니다. 그런 것을 야고보 선생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데 근본적인 바탕에서부터 그들에게는 이런 것이 없다는 거죠. 그러니깐 지금 전개해 나가고 있는 논리가 아주 정연한 거에요. 그러니깐 이 대목에 와서 이제 이들에게 정말 신앙이 없다라고 하는 것을 야고보 선생은 보여주고 싶은 거에요. 처음에 나온 이야기는 뭐냐하면 이 자신들은 믿음을 가진다. 자신들은 믿음을 가졌는데 자신들은 믿음을 가졌는데 그 믿음은 이제 삶은 안따라 주지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 믿음은 구원을 얻기에 충분하다. 그러면 믿음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부더덕한 삶을 살아가는 그래서 심지어 교회 안에서 말하자면 여자의 간음까지 일어나는 이런 상황이 벌어 졌거든요. 그러니깐 이제 야고보 선생의 이야기는 그 바로 그런 것이 구원에 이르는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게 뭐냐 하면 오늘은 이 도시에 가서 장사하고 내일은 저 도시에 가서 돈을 벌고 그렇게 허탕한 것을 꿈꾸는데 그것이 너희들에 인생을 아침이슬과 같은 것이다. 오히려 너희들이 정말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말하면 안되고 주에 뜻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리라. 그래서 자신에 인생이 전적으로 주님에 주권 아래 있다라고 하는 것과 그리고 그 주권을 받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너희들이 인정한다면 그것이 진짜 믿음이 있는 것이지 너희들이 믿음이 속속들이 너희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허탈한 것을 꿈구면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 이거죠. 근데 결국은 어떻게 보면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회심하지 못한 사람에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걸 여기서 이야기 하는 겁니다. 이런 상황들을 이제 야고보 선생이 집어나가는 거죠. 그건 너에 참 믿음이 아니다. 그러면서 이제 너희들에 그런 믿음이 참 된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너희들은 이제 새로운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걸 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야고보 선생이 여기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뭐냐 하면은 이제 그 5장에서 보면은 다시 참 믿음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 더러운 악들과 탐욕이 이제 쭉 5장에서 전개됩니다. 근데 야고보 선생이 이야기 하는 것은 바로 그거거든요. 뭐냐 하면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 그래서 하나님에 너희들에 인생에 대한 주제권을 쾌히 인정하는. 그렇다면 너희들이 그렇게 헛타는 것을 자랑하지 않을꺼다 하는 거죠. 그래서 이들에게는 믿음에 비밀이라고 하는 것이 없었어요. 믿음에 비밀이라는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믿음에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만 믿음에 비밀이 생기는 것이지 근본 적으로 참된 믿음이 아니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에 비밀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어. 왜냐하면 믿음에 비밀이라는 것 자체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연합하고 계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부어지는 은혜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그리스도와 연합이 없는 사람들에겐 근본적인 믿음에 비밀이라고 하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그런 허탕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다 쓸때없는 것들이다. 그러면서 이들에 믿음이 참된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걸 보여 준다 라는 거죠. 그래서 비유가 적합할런지는 모르겠는데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한번 집에를 내려갔는데. 내려가는 곳에 생선회를 유명하게 해준다는 집이 있었어요. 그래서 조금 일찍 내려가서 이제 그때 교회에 간사들 몇 명하고 같이 내려갔는데 일부로 갔어요. 가서 밥을 먹는데 근데 그렇게 소문같지를 않아. 조금 후회를 하면서 밥을 먹는데 생선 하나를 구워가지고 나왔는데 청어쯤 되나 그랬어요.
아주 맛잇게 노릇노릇 오븐에 구워가지고 소금을 뿌려서 그래서 나와요. 그래가지고 이제 야 이거 배도 고픈 김에 이거 맛있겠다 먹자 하고 젓가락을 탁 집어 드는 순간에 피가 쫙 하고 나오는 거에요. 그래서 보니깐 겉에는 구워졌는데 안에는 날생선이야. 비릿내가 싹 쏟아지면서 물고기 배속에 있는 피하고 섞여가지고 쭉 하고 나온. 그 다음부터는 밥을 못 먹었어요. 지금도 생각만 하면은 속이 울렁울렁해서 먹지를 못하겠어요. 한동안 생선을 안먹었어요. 말하자면은 겉은 무엇인가 믿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영혼에 깊이 들어가서 그 사람을 변화시켜야지만 그것이 진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소유한 것인데 속사정은 변화된 것이 없어요. 겉만 익었어요. 그래서 겉은 익어서 사람들 보기엔 참 신자네 많이 변했네 그러는데 속은 하나도 안 변했어요. 그러니깐 결국은 자신에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라고 주장은 하지만 그러나 진짜 그 사람에 속은 변하지 않은거에요. 그러니까 변화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니깐 변화되지 않은 욕망에 지배를 받으면서 변함이 없는 삶을 계속 살아가는 거에요. 그것을 야고보 사도는 그것에 허위를 증명할려고 그러는 거에요. 이것은 다 거짓말이다.
그러니깐 이것은 하나에 문화적인 현상으로써 그가 어떤 기독교에 관한 지식을 소유하고 하는 문화적인 현상으로써 교회에 익숙해져 있는 그런 삶을 보여주는 것이지 진자 이 사람 속이 변화되고 새로워진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거죠. 그걸 여기서 논증하는 거에요. 이게 야고보 선생에 논리는 뭐냐 하면 결국은 이렇게 해서 그 사람들을 비난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참 신앙으로 돌아가라. 참 신앙으로. 그러면 너희들이 그렇게 탐욕에 사로잡히고 그런 삶을 살 수 없을 꺼다. 그리고 주님에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고 허탕한 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다시 한번 우리들이 이 시간을 정말 우리에 속까지 변화시키는 신앙인지 우리들이 다시 돌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