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하나님에 영광에 광채시고 본체의 형상이신 성자께서 하신 일이 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능력에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는 것이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죄를 깨 끗게 하시는 것이고 세 번째는 위엄에 보좌 우편에 앉으신 거죠. 근데 이제 이것을 히랍어 성경을 보면 은 첫 번째 두 번째는 현재에도 계속되는 하고 계신 일로 나오고 그래서 그리고 세 번째는 예전에 하셨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일로 나와요. 그러니깐 번역을 하자면 은 만물을 붙들고 계시고 죄를 깨 끗게 하시고 위엄에 보좌 우편에 옛날에 앉으셔서 지금까지 계속 계시느니라.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고선 첫 번째 능력에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고 그랬잖아요? 흔히 어떤 사상이 있냐 하면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 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창조하실 때에 법칙까지도 창조 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이 만물을 간섭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각각 법칙에 따라서 움직인다. 그리고 사람도 하나님이 사람도 창조하시고 그리고 이 세상에 두신 것은 사실이지만 일일이 그 삶 속에 간섭하셔서 그에 일을 도와주시고 이렇게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그를 거기서 건져 주시고 그런거 안하신다 그거죠. 옛 날에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초보적인 신앙 시대니까 그렇게 하셨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법칙만 만들어 노셨다 그런 거죠. 그래서 인간들이 그 속에서 살아가게 하셨고 그래서 그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 그렇게 깊이 개입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이런 거죠. 그래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악한 사람들을 벌주려고 하고 그리고 선한 사람들을 장려하려고 하고 다시 말하면 니들끼리 살아라. 니들끼리 살아라. 하나님이 커다란 틀만 만들어 놓으시고 나머지는 인간들이 알아서 하게끔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다 그런 거죠. 그런 사상이 있어요. 근데 이런 성경 말씀에 보면 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 지잖아요. 그게 능력에 말씀으로 만물을 지금도 붙들고 계시다 이거죠. 만약에 아까 말한 것처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필요도 없겠죠. 그러지 않아요? 내가 주님에 일을 하는데 도와달라고 많이 기도 하는 것보다 가서 자기가 열심히 하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아요. 근데 오늘 성경에 보면 그게 아니거든요. 하나님을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세상을 붙들고 계신 것이에요. 지금은 이제 성자 하나님에 아들이신 그 성자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그리고 다시 주님에 보좌 우편에 앉으셨는데 거기서 하나님과 하나 돼서 이 온 세상을 붙들고 계신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상이 하나님 법칙 가운데 움직이도록 지금도 붙들고 계시고 또 이 세상에 모든 인간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 창조 된 인간들이 살아가도록 붙드시고 피조 된 이 세상에 모든 만물들을 또한 하나님이 먹이고 입히시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이 하나님과 더불어 만물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그리스도께 은혜를 구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매 순간 우리들이 먹고 입고 살고 숨 쉬는 모든 인생이 그분에 손에 붙잡힌 결과로 살아가는 것이고 그 도움을 힘입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라 하는 것을 깊이 자각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에 뜻대로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그런 삶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여기서 성경에 보니깐 그 성자께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 근데 그 붙드는 방법이 뭐냐 하면 능력의 말씀으로 그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때에 그 모든 만물이 그 창조에 복종하신 것이 창세기에 나온 것처럼 지금도 그 분께서는 말씀으로 온 세상을 붙들고 계시는 것이에요. 그 말씀은 하나님과 성부 하나님과 성자에 의지이고 그 의지가 말씀으로 표명되면 그러면 모든 만물들은 그 의지 앞에 복종하는 것이에요. 이것이 바로 성자께서 하나님에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지금도 하고 계시는 일이다. 이거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될 것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자하며 산다라고 하는 것은 피조물에 당연한 위치이고 그래서 이 세상에서 창조한 이 모든 인간들에게는 기도에 본성이 있어요. 기도에. 저는 병원에 가서도 그런 걸 여러 번 느끼는데 간절히 성도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러 나오면은 주위에 있는 병자들이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인데도 나도 좀 기도해 주고 가면 안되냐고 그러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어요. 찬송을 불러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있는데 기도해 주는 걸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이게 바로 인간이 희미하긴 하지만 불신자들을 포함해서 모든 인간에 본성 속에 남아 있는 능력으로 만물을 붙드시는 성자 그리고 성부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에요. 그래서 그 기도에 본성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 안 믿는 사람들도 그러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그 기도에 의지해 돼야겠냔 말이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새벽기도 나와서 기도하고 그러는 것이 특별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이게 옛날부터 이렇게 살았어야 된거야. 근데 그냥 고집쓰고 기도 안하고 그리고 그냥 사는 거죠. 그러는 동안에 결국은 능력에 말씀에 붙들려서 사는 인간에 참된 본분을 잃어버리는 거에요. 그러니깐 기도생활 많이 할 때는 항상 피조물에 위치로 돌아가 그리고 겸손해져요. 그리고 기도하지 않으면은 그 위치를 잊어버리고 이탈해요. 그리고 하나님 거스르고. 대적하고 그러는 결과가 나온단 말이죠. 그 모든 것이 잘 못된 것이에요.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죄를 없이 하시고 그랬죠. 이것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묘사에요. 현재 지금도 죄를 옛날부터 없애셨지만 지금도 죄를 없애고 계신다. 없이 하신다. 성자께서 하시는 일이 죄를 없애시는 일인데 그건 뭘 통해서 없애죠. 죄에 용서를 통해서 정결케 하심. 용서를 통해서 인간에 죄를 없애시기 위해서는 예수님 자신이 먼저 인간에 모든 죄를 위한 대속에 제물이 되셔야 했다 는 거죠. 그러니깐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모두 이 죄를 모두 깨끗게 하시는 분이시지만 특별이 이 죄를 깨끗게 하시기 위해서 자기를 버리신 성자 하나님이 그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죄를 없애실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거죠. 그래서 누구든지 죄를 정결케 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에 죄를 진실로 뉘우쳐야 되요. 그러면 그 예수님이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에 죄를 깨끗게 하심. 그래서 그렇게 우리에 죄를 깨끗이 씻고 나면 우리에 마음 속에 새로운 본성이 생겨나서 이제는 죄 가운데 살면서 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아야할 거룩하고 진실한 본성이 마음 속에서 생겨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매순간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하는 그런 존재들이 되는 것이에요. 마지막 세 번째 하나님에 위엄에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랬죠. 하나님에 보좌 우편에 앉았지만 실제로 천국에 가면은 보좌가 세 개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보좌는 하나만 보이는 거죠. 그러면 왜 그렇게 됬냐?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아들로서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인간들을 위해서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인간들을 위해 내려오셔서 고난을 당하고 대속 제물로 죽고 그리고 다시 부활하심으로서 성부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게 큰 상을 주시는데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에 보좌 우편에 앉게 하신거에요. 그리고 그분에 영광이 찬란하게 빛나게 하셔서 온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그 아들에게 위임하신 것이죠. 그래서 실제로 하나님에 나라로 올라가게 되면 은 보좌가 셋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보이는 것이에요. 거기에서 인제 세상 끝날 까지 온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거죠. 하나님을 대신해서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거죠. 그리고 온 세상이 끝나면서 다시 그 영광에 북권이 영광에 그 통치자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성부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거죠. 그때까지는 주님에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거죠. 보좌 우편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말 찬란한 예수 그리스도에 영광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는거죠. 그래서 그 세상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이미 그 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지금도 그 보좌에 앉으셔서 온 땅을 다스리시고 능력에 말씀으로 그들을 붇드시고 죄를 정결케 하시고 그 다음에 거기서 성도들에 기도를 들으시고 거기서 온 하나님에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 지기를 주님 자신 또한 간구하고 계시는 곳이 바로 하늘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에 죄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처럼 높이셔서 우리를 통치하고 다스리고 우리에 죄를 정결케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께 소망을 품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 피조물인 우리에 위치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신자에 행복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