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인제 예수 그리스도에 하신 일을 설명한 다음에 그렇게 천지를 창조하신 분 아들 성자에 대해서 말하기를 이는 하나님에 영광에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러거든요. 우선 첫 째에 하나님에 영광에 광채시라 이거는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시긴 전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에 몸을 입고 오신 그 성육신 하신 예수님에 영광에 광채를 의미하는 겁니다. 그러니깐 이런 것이 되죠. 뭐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요즘은 모르는데 옛날엔 하수도 공사같은거 하다가 보면 은 종종 나오는 녀석이 두더지입니다. 두더지. 두더지는 땅속에서만 땅을 파고 살죠. 뭐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은 그 두더지를 바깥으로 끄집어내서 햇빛에 쪼이면 은 두더지가 눈이 먼다. 뭐 그러더라. 뭐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는데 만약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당신 자신에 영광을 직접 보여주신다면 은 어떤 결과가 나올까? 출애굽기 33장 20절은 말하기를 나를 보고는 살자가 없으며 그랬거든요. 나를 보고는 살자가 없으며 그러니깐 그 하나님에 찬란한 영광 앞에서 인간이 그것을 바라보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다 이거죠. 감당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실은 당신이 이 자리에 계시다 라고 하는 그 효과만을 나타내신 거예요. 그래도 인간들은 그 영광을 감당할 수 없어서 엎드려 지거나 벌벌 떨거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모세에게 제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그렇게 탄원할 정도로 그런 엄청난 것이 하나님에 영광 이였거든요. 그 인간이 해만 똑바로 쳐다봐도 눈이 망가지는데 순간적으로 망막이 타거든요. 망가지는데 하물며 직접 하나님에 영광을 우리들이 본다고 하면 살아 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 없죠. 그런데도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가장 잘 아는 방법은 그게 영광을 경험하는 거죠. 그런데서 어려움이 생기잖아요. 인간이 하나님에 영광을 직접 볼 수 없고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가장 잘 아는 것은 하나님에 영광을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이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보면 은 여름 같은 때에는 여름이 아니여도 마찬가지죠. 햇빛이 굉장히 따갑거든요. 그래서 제가 부산에 내려가서 언젠가 한번 안과 대학병원에 있는 안과과장을 만났는데 저한테 그런 충고를 해요. 운전을 하거나 하실 때 꼭 선글라스를 쓰십시오. 햇빛이 많이 비춘다 라고 생각될 때 왜 그러냐고 그러니깐 앞에 가는 차 유리나 반짝거리는데 비춰서 그 반짝이는 빛이 눈에 들어 오면은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순간적으로 망막이 상한 답니다. 사람은 잘 못 느끼면서 살아가는데 그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서 일어나면 시력이 떨어지고 눈에 문제가 생긴데요. 그래서 햇빛이 너무 과하다 생각되면 항상 선글라스를 끼라고 그러더라구요. 영광을 경험해야지만 거기 엎드려져서 하나님에 하나님 되심을 인정할 수 있는데 그 영광을 보여주는 인간이 감당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내려 보내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그 찬란한 햇빛을 선그라스를 쓰고 보는 것처럼 그렇게 어느 정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에 몸을 입히고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써 하나님에 직접적인 찬란한 영광을 감추시고 믿음을 가진 사람이 찬란한 영광을 발휘할 수 있도록 예수님에게 그 하나님에 영광을 어느정도 감추신 가운데 주님에 영광을 드러내신 거예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정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하나님에 영광을 입으신 몸으로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죠. 그런데 그 머. 가난한 집안에 태어 나셔서 그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가난한 결핍 속에서 일생을 사시고 멸시와 천대를 당하시고 그리고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고 이렇게 했으니 그 어디 찬란한 영광을 볼 수 있어요 그 속에. 그래서 그렇지 그거는 모두 세상에 있는 영광에 관점을 가지고 예수님을 보려고 하니깐 예수님이 하찮은 분이 된거지 믿음에 눈으로 보면은 그 분 안에는 모든 지혜와 보화가 감춰져 있고 그 분 안에는 정말 찬란한 하나님에 영광이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영광에 광채이시다. 그래서 지금도 믿음에 눈을 가지고 그 예수님께 나아가서 그 예수님에 성품을 깨닫고 그 예수님에 어떤 분이신지 진리에 말씀을 통해서 깊이 이해하고 나면은 우리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한 빛이 그 예수 그리스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거에요. (찬송) 믿음에 눈으로 보면 힘이 없어서 죽으신 분이 아니고 능력이 없어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신게 아니야. 거기서 비치는 찬란한 빛을 보면서 거기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게 되는. 결국은 말이죠. 한사람에 막돼먹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진실한 이 경배자가 되느냐 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영광에 광채를 경험하고 그 앞에 엎드려 졌느냐. 라고 하는 것이죠. 그렇게 예수님이 하나님에 영광에 광채가 되신 거예요. 두 번째는 본체의 형상이시며 그랬거든요. 본체의 형상이시면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하나님에 본체의 형상이다 그러면은 하나님이 영이신데 그런데 어떻게 본체가 있겠고 어떻게 형상이 있을까 그러죠. 그게 본체라고 하는 이 말은 오히려 영어로 말하면 substance 본질을 의미하는 거에요. 본질. 그래서 눈에 보이는 형체가 아니라 본질의 형상이며 하나님은 영 이시에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봤다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 이에요. 하나님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볼 수 없는 영적인 존재 순결한 영이세요. 만약에 봤다고 그러면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뭔가 매개체로 사용하시는 것을 본거지 하나님 자신을 볼 수는 없어요. 인간에 육신에 눈으로는 볼 수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양심을 본 적이 있어요. 선을 본 적이 있어요? 없잖아요. 다만 착한 일을 하면 선한게 선한 일을 한게 저런거 구나 그렇게 알게 되듯이 모르는 거죠. 이렇게 바깥을 내다 보면은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빨래가 막 나부끼면서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나면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알게 되듯이 하나님을 본게 아니라 뭔가 하나님이 일하고 지나가시는 흔적들을 본거죠. 그러니깐 예수님이 그 하나님에 본체에 형상이시다라고 할 때에는 눈에 보이는 이런 형태를 마음속에 그리면 안되고 요 뭐냐하면 본질적으로 하나님에 형상을 가지신 분이였다. 그 형상은 뭐냐 하면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라 이거 역시 영적이고 정신적인 특성이에요. 그러니깐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본질과 그분에 영적이고 정신적인 특서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예수님은 눈에 보이게끔 나타내서 인간에게 알려 주신 분이에요. 그래야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깐. 그러니깐 에수님은 뭐라고 그러셨어요. 아버지를 보여달라 라고 하는 제자에 말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나에게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 그러니깐 어떤 생각을 해야되면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실까 그러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어떻게 사람들을 사랑하셨는가를 보면은 알수 있는 거에요. 하나님 아버지에 마음이 우리들이 죄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 아버지에 마음이 어떠했을까 이러면 예수님이 어떠 하셨는 가를 보면 알수 있는 거예요. 회개하고 돌아가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 주실까 예수님이 회개하는 죄인과 장기와 세리들을 어떻게 하셨는 지를 보면은 알 수 있다 이거죠. 그렇게 하나님이 다르실까. 그걸 보고 하나님이 어떤 본질에 형상을 가지신 하나님에 본질에 형상을 가지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에 모든 삶은 그러니깐 어떻게 되냐 하는 거에요. 우리는 가끔 예수님만 너무 찾는다 그러는데 그게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인지 깊이 연구하면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깊이 깨닫고 예수님을 만나면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저절로 알게 되는 거죠. 근데 그 예수님을 뛰어 넘어서 하나님을 알려고 하면은 알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유대교 속에서 그렇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싶어 하고 또 구약에 율법을 배우고 지키고 가르치고 그렇게 살았고 또 많은 유대인들이 그랬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수 없었어요. 그러나 사람에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그 분이 어떤 분인지를 깊이 깨닫고 그 분이 누구인지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있었고 그걸 깨닫는 만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저절로 알게 됬어요. 왜냐하면 그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본질의 형상이시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에 신앙에 입문은 그리스도를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깨달아 가는 것 그래서 골로세다에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모든 지혜와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주님을 어떤 분인지를 알아가는거죠. 그래서 예수님을 사랑한다 라고 하는 것은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 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가는 거에요. 말씀을 통해서 생활 속에서 설교를 통해서 독서를 통해서 체험을 통해서 아 예수님이 이런 분이시구나 내가 죄를 지었을 때에는 예수님이 이렇게 다루시는 구나 회개 할때는 이렇게 다루시는 구나. 간고할 때는 이렇게 다루시고 지혜가 없어서 지혜를 구할 때는 하나님이 예수님이 이렇게 다루시는 구나. 그걸 보면서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배워나가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에 전생애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좌정이 되야되. 어떻게 알자. 힘써 알자. 힘써서 예수님이 누구 인지 그래서 매일 기도 할때도 하나님 오늘도 제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그 영광에 광채로 주님을 알게 되고 그 본체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서 내 삶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되도록 도와 달라.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