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말하는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함을 입은 자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이 하나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그분이 우리에 형제라 일컬음을 받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아니 하셨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지 않으셨다면은 그러면 우리들이 아마 그 예수님을 이렇게 친밀하게 느낄 수가 없었을 것이에요.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도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이 ‘나는 곧 길이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님께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이제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왜 하나님이신 그분이 천사보다 조금 못하다 라고 하는 오해를 받으실 수 있기까지 그렇게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야 했는가 그거를 설명하는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서도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우리와 하나 되시기 위함이였다 라는 것이죠. 만약에 예수님이 성자였다고 할지라도 사람에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시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그 예수님이 하나님께 이르는 구원에 가장 중요한 길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심으로써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잠시 계심으로써 우리는 보다 생생하게 예수님이 어떻게 사람이시지만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는 구세주가 되셨는지 그리고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시면서 우리를 섬기신 생애를 보면서 하나님에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사랑이 보이는 사람에 모양을 하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섬김을 통해서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볼 수 있겠끔 만들어 주신 것이죠. 그것도 예수님이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였죠. 그래서 우리들이 흔히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실까? 생각할 때에는 즉시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고 어떻게 우리를 위하여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걸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구나 그걸 배우는 거죠. 예를 들어서 내가 진리를 깨닫지 못할 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실까? 그때마다 무지한 백성들에게 친절하게 진리에 말씀을 가르치던 예수님을 보면서 아아 나같이 무지한 사람을 하나님이 사랑하실 때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구나. 알게 되는 거죠. 가난하고 병들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실까? 내가 이렇게 주님을 훌륭히 섬기지 못하는데도 내가 여전히 하나님 앞에 소중한 존재일까? 이런 것들은 모두 예수님 생애를 보면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섬기신 생애를 보면서 어떻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되고 또 알게 되는 것이죠. 바로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우리와 한 형제 되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 하셨다 라는 거죠.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가장 잘 보여주실수 있으셨다는 거죠. 그래서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에 말씀이 있었지만은 그러나 오늘날 우리처럼 하나님에 대해서 상세하게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수는 없었죠. 그래서 구약이 만약에 그림을 보는 거라면 신약시대에는 그 그림 밑에 대사가 나와서 말이 나와서 자막이 나와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 외국어를 자막으로 처리해서 그것을 또렷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한 것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이죠. 예수님이 만약에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이렇게 생생하게 하느님이 우리에게 뭘 원하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알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잠시 천사와 못하게 여김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사람에 몸을 입게 하셔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한 형제나 일컬음을 받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두 번째는 선포하기 위해서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여기에 보면은 그 시편에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러면서 기자가 이런 이야기를 해요. 내가 주에 이름을 내 형제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이미 구약에 나와있는 시편에 말씀을 인용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 바로 이 예언이 이루어 진 것이라고 해석을 한거죠. 그래서 예수님은 그렇게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가장 실감나게 그리고 가장 죄인들에게 가슴 깊이 하나님에 말씀을 선포하고 그래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구원에 도리와 그리고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가르쳐주신 것이죠. 이 자체가 벌써 예수님이 천사보다 못한 자라고 여김을 받으 실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셔야 했던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에요. 어떠하던지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구원에 이르기 위한 믿음을 원하셨고 인간들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순종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가장 생생하게 하나님이 우리들을 사랑하신다는 것과 그리고 우리에게 어떻게 주님을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하는 길을 보여주셔야 됐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는 반드시 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가 와서 생생하게 이 하나님에 구원에 길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구원에 관에서 증거하는 사람일뿐이지만 예수님을 당신에 아들인 성자를 사람에 몸을 입어 이 세상에 내려 보내심으로써 구원에 관한 증거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관한 증거라고 그리고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당사자로써 우리들에게 하나님에 말을 전파하심으로써 그들을 온전히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자기에 외아들을 사람에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내려오게 하신 것이죠. 그래서 단지 사람에 몸을 입은 것을 보고 예수님이 천사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러나 이런 구원에 이치를 분명히 알고 나면 그런 오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에 아들로써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야 했던 충분한 이유를 우리는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계셨던 그 예수님은 참 사람이셨지만 그러나 참 하나님이셨으며 인간이셨으나 우리에 형제셨으나 참 하나님에 아들이요 참 신이셨다 라는 사실을 우리가 새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고귀한 당신에 아들 그 하나님을 부끄러운 그 사람에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내려보내서 우리와 한 형제라고 일컬음을 받게 하셨을까? 우리들은 생각하면서 새삼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에 그 크신 사랑에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