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계속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셨을 때에 사람에 몸을 입으시고 사셨던 삶의 방식과 그리고 왜 그렇게 육체를 입고 오셔서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여김을 받으시며 사셔야 됐는지에 대해서 핵심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그 다음에 볼지여다 나와 함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인제 이 구절을 인용하는데 사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하느님을 의지하며 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죠. 왜냐하면 천사들도 완전한 존재는 아니고 그리고 하늘에 있으면서 하느님이 그들에게 명하시는 구원받기로 택함을 받은 후사들을 우리를 섬기는데 있어서 아마 천사들도 그 하나님에 끊임없는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들도 하나님 앞에 끊임없는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들도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고 봐야죠. 의지한다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봐야죠. 그렇지만 천사들은 우리들보다 훨씬 나은 입장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들이 있을 때에는 육체를입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적어도 천사들은 우리가 육체 안에 있는 동안에 경험하는 이런 종류에 많은 죄와 그리고 하나님 한분만을 바라보기에 방해가 되는 많은 어려움들은 없는 가운데 하나님을 섬긴다고 봐야죠. 그런 점에서 보면은 우리가 훨씬 더 어려운 위치에 있는 거죠. 그래서 하늘 나라에 가면 우리가 천사에 도움을 받을 일이 없죠.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그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꼭 필요 합니다. 예수님은 죄는 없으신 분이였지만 그러나 예수님에 생애도 사람에 몸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야 하는 그런 형편에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에 죄는 없으셨지만 인간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는 동안에 예수님은 천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더 많이 하나님을 의지하셔야만 했고 천사들이 하나님에 도움을 바라는 것보다 더 많이 하나님을 의탁하며 주님에 도움을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에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가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잠시 천사와 못하게 여김을 받을 수 있었던 그 이유중에 하나를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하나님을 의지하면 살리라 이런 태도를 보이시면서 살았던 것도 확실히 천사보다 못하게 여김을 받는 받게 되는 사람들 눈에 그렇게 비치게 되는 하나에 요인이였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데 사실은 예수님이 이와 같은 육신에 계실 때에 보여줬던 이와 같은 태도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 많죠. 육체에 계실 때에 이렇게 나는 그를 의지하리라. 그리고 겸손하게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아버지 하나님을 마치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셨습니다. 이 땅에 계실 때에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했던 것과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면서 사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아마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면 예수님은 더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했고 우리들은 주님을 덜 의지했다라는 차이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께로 향해졌고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당신에 인성 속에 감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을 덜 의지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 동안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어린 아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에 생명과 삶과 복음에 승리와 영혼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모든 성취에 비밀들을 아버지께 전적으로 의탁하고 그리고 주님을 의지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에 생애는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사람에 몸을 입으신 동안에 이렇게 철저하게 아버지를 의지하며 사셨다는 것이죠. 그렇다면은 우리들은 더 말할 필요 없이 하나님 아버지를 더 깊이 더 많이 의지하고 신뢰하면서 사는 그 길만이 육체 가운데 있을 때 믿음 안에서 살도록 우리를 지켜주신 지켜주는 방법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나와 및 내게 하나님이 주신 자녀라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계셨지만은 그러나 그분은 본질상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택하신 많은 자녀들 그래서 당신에게 이끌어 오게 하셔서 구원을 얻게 하시는 많은 무리들은 당신 자신과 또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자녀들 이였습니다. 사실 자녀들이라 이렇게 일컫게 되는 것이 사람들 속에서 일어나는 부모와 자녀들 관계를 지금 영적인 관계 속에다 유추하는 것 아니에요.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그 몸에서 태어나야 했고 또한 혈육을 함께 나누고 있어야 했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셨고 그런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와 한 형제가 되시지만 그러나 사람에 몸을 입고 하나님에 아들로 오신 예수님에 생애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가 어떻게 보이게끔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지를 나타내신 훌륭한 말하자면은 본이였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들과 형제라 일컬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지만 그러나 이 땅에서 정작 사람에 몸을 입고 사신 방식은 우리에 형제로 사셨다기 보다는 우리에 아버지로 우리에 부모님으로 사셔서 그래서 형제로서 우리를 섬기시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인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신 생애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하나님에 아들로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우리가 한 형제라 일컬음을 받으시면서 우리를 섬기셨지만 그러나 눈에 보이도록 우리를 섬기시는 예수님에 그 생애 속에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고 얼마나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어떻게 다루시고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싶어 하셨는지를 예수님에 생애를 통해서 생생하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동안에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많이 증거해 주셨지만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이 살아간 그 삶은 형제이면서 아버지에 마음으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이는 육신으로 계셨던라면 자기에 백성 자기에 자녀들을 끌어 안으셨을 그런 방식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우리들을 보살피시고 돌보셨는데 그것이 곧 아버지에 마음으로 아버지에 모본으로 우리에게 나타났다 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우리에 죄를 위해서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섬겨주신 예수님에 그런 생애를 보면서 우리들도 그렇게 일생을 사는 동안에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에 아들이셨지만 동시에 아버지로서 하나님에 마음으로 우리를 돌보셨던 것 그것을 깊이 잊지 않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교훈과 그가 보이신 삶에 모본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시는 지를 깊이 이해하고 그리고 정직하게 받아 들이는 것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내일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