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말씀은 히브리서 2장 18절입니다. 히브리서 2장 18절. 같이 읽겠습니다. 히브리서 2장 18절입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예수님이 왜 천사보다 못하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를 받으시면서 까지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는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한 다음에 예수님도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으니깐 또한 시험받는 사람들을 능히 도우실 것이다. 예수님이 죄는 없으신 분이였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셔서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시험을 많이 당하셨습니다. 그 히랍어 성경에 보면은 여기서 시험을 당한다는 말이 페이라스무스데이라는 단어인데 페이라스무스데이는 수동태이고 원래는 페이라죠라는 단어에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왜 이렇게 저게 진짜 가죽일까 요즘은 시장에 가서 보면은 만져봐도 잘 모를 정도로 어쩜 그렇게 잘 만드는지 몰라요. 가죽하고 똑같이 생겼는데 가서 심지어는 만져봐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가죽이 아니라 인조에요. 인공피혁이란 말이죠. 그런 것들은 잘 모르지만은 뭘 보면 알수 있냐면은 뒤집어 보면 알죠. 뒤집어 보면 은. 진자 가죽은 뒤집어 보면 은 겉모습은 똑같아도 뒤집어 보면 은 숨구멍도 있고 틀리죠. 인공피혁은 뒤집어 보면은 천 느낌이 나죠. 그런거를 확인해보는 것을 페이라고 하죠. 뭐라고 그래요. 그러니깐 여기서 시험을 받았다라고 하는 말은 예수님이 죄는 없으셨지만 끊임없이 예수님이 진짜인가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믿음이나 혹은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성품 참 사랑의 성품이 진실된가 시험해보는 일들이 계속 있었다는 거죠. 누가 그렇게 시험을 했는가. 하나님이 시험을 하셔서 뭘 어떻게 하신 거라기 보다는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이 세상 속성 자체가 그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유혹하거나 시련을 주고 해서 그 믿음이 참 된 믿음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 이거에요.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이런 얘기 거든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네요 그죠. 금 색깔을 한 것과 진짜 금의 차이는 어떻게 알 수 있죠? 공기중에 가만히 내버려 두면 금하고 똑같이 생겼는데도 일년 이년 삼년 쓰면은 변색이 되죠. 그런데 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도 녹이 슬거나 변색 되지 않잖아요. 그니깐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누가 애를 쓰지 않아도 공기중에 내버려 두면 그런 작용이 있듯이 사람에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누가 예수님을 시험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해서 시험을 해보지 않아도 죄와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그런 작용을 예수님이 거치셔야 했다 이거죠. 그것들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많이 당하신거에요. 고난을 많이 당하신거에요. 그러니깐 그런 것들을 인해서 고난을 많이 당하신거에요. 그래서 그 시험받는 과정을 통해서 고난을 많이 당하신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그 고난을 당하시면서 거기에 굴복하지 않으시고 그 고난을 당하시면서 그 시험을 당하시면서 굴복 하지 아니하시고 그 시험을 당하는 과정을 통해서 당신이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며 또 그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우리에 구원을 위해서 주신 아버지께서 주신 그 사명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라는 사실을 입증하시기 위해서는 고난을 많이 당하셔야 했습니다. 그런 시험 속에서 당신 자신에 이 참된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시험을 많이 당하셔야 했단 말이죠. 그리고 그 시험은 항상 예수님께 고난 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가 만든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에 땅에 온 것처럼 고통을 받으시고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런것들을 그렇게 뼈저리게 경험하시면서 사신 것이죠. 만약에 사람에 몸을 입고 오지 않으셨다면은 예수님이 그런 고난을 그렇게 뼈저리게 당하셔야 했을 이유가 전혀 없으셨죠. 그런데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그런 뼈저린 고난을 당하시면서 이생을 사신 거죠. 그렇게 큰 고난을 당하시면서 뼈저린 고난을 당하시면서 이 세상을 사신 것이죠. 그래서 앞에 논리로 본다면은 예수님이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실 수 밖에 없었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다는 오해를 받으시면서 까지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그것은 우리에 구원을 우리에 구속을 위한 것이였어요. 우리에 구속을 위해서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 오셨는데 그렇게 우리를 위해 사람에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는 많은 시험을 당하시고 그리고 그 시험 속에서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난을 많이 당하신 것이죠. 그래서 성경에 보면은 히브리서 5장을 보면은 예수님이 육체에 계실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고에 소원을 올렸다 라고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 그렇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매달리며 그렇게 사셨던 것이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은 물론 예전에도 우리는 사랑하셨고 그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육체에 계실 때에 사람에 몸을 입으시고 인간이 얼마나 쉽게 시험 당하고 그리고 그 시험을 참고 인내하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난이 필요하고 그렇게 죄 가운데 시달리는 인간들이 불쌍한가를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게시는 동안에 정말 처절하도록 뼈저리게 예수님께서 더 잘 알게 되신 것이죠. 그러니깐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어떤 분이신가 하면은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심이라. 그래서 당신이 육체에 계실 때에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지금도 시험받는 자들 그 중에서도 어떤 자들? 시험을 받으면서 하나님에 도움을 구하고 그 은혜를 구하고 주님 앞에 살려고 하는 그런 모든 사람들을 사랑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지금도 보좌 우편에 서서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간구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시험을 당하는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시험이 아무리 크고 시련이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이 이미 이 길으 걸어가셨고 또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기만 하면 주님께서 어떤 시험 속에서든지 우리를 붙들고 또 지켜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우리들이 가져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 그렇게 하나님 앞에 우리들이 당하는 죄는 없으셨지만 우리들이 당하는 이 인생에 있어서의 시련을 모두 당하신 분이셨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당신과 같이 시험을 당하면서 당신은 모든 사람들을 기뻐하시면서 그러면서 주님을 찾는 모든 사람들을 당신이 연약함에 둘러 쌓여서 시험을 받으시던 때를 생각하시면서 돕고 싶어 하시는 이게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깐 중요한 것은 믿음이지 시련과 그리고 시험이 아니에요. 시험이 아무리 크고 시련이 깊어 보여도 주님을 완전히 의지하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애정과 능력을 가지고 우리를 도우시는 거에요. 왜? 왜냐하면 예수님이 예수님이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고난을 많이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