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2장 17절입니다. 신약성경 355페이지입니다. 히브리서 2장 17절. 신약성경 355페이지입니다. 2장 17절 어제하다 다 못한 부분입니다.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구속에 대해서 어제 설명을 드렸죠. 이제 그렇기 때문에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다시 말하면 천사와 잠시 못하게 여김을 받으면서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지라도 사람에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 애기거든요. 왜 그러는가 왜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그렇게 내려오는 것이 마땅하실 수밖에 없으신가. 그 이유는 바로 무엇 때문 이였냐면 당신 자신이 대제사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에 몸을 입으셔야 했고 어제 구속에 대해서 설명 드리는 가운데 그 말씀을 드렸죠.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대제사장에 계시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 대제사장은 아주 특별한 대제사장인데 어떤 면에서 자기 몸을 제물로 직접 드린다는 면에서 특별한 대제사장 이였죠. 그러니깐 한편으로는 대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도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셨어야 했지만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는 더더욱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셔야 됐다 그런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는 오셨기 때문에 당신이 죄를 구속하셔야 할 백성들에 대해서 더 많은 사랑을 갖게 되신 것이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셔야 했던 이유였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도 제가 한번 예수님에 텅욕신에 대해 설명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사람에 몸을 입고 오신 이유가 그게 네 가지 인데 첫째는 인간과 하나되기 위해서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셨고 두번째는 그렇게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예수님이 죽으실 수 있었다는 거. 죽기 위해서는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셨어야 했다는거.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셔야지만 죽으실 수 있었으니깐. 세 번째는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들을 좀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하게 되셨다는거. 그런 것들을 말씀 드렸는데 오늘도 똑같은 겁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에 몸을 입고 오신 것이 사람들 보기에는 천사들만 조금 못하다 하는 평가를 받으실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몸을 입고 오신 것은 바로 이렇게 우리에 죄를 구속하시기 위함이였다. 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깐 형제들과 같이 되는 것이 정말 마땅했다 라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대제사장으로 계셨는데 그때 그 대제사장이 어떻게 당신에 직무를 수행해 나가셨는가.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자비롭고 충성스러운 대제사장 이였다. 자비롭다는 것은 당신이 구속해야할 이 세상에 인간들에 대해서 가지고 계신 성품이였고 충성스럽다고 하는 것은 당신 백성들을 위해 구속하실 때에 그것을 받아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말씀이였단 말이죠. 그러니깐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대제사장으로 사시고 마지막에 자신을 제물로 바치실 그때까지 자신이 구속해야 할 백성들을 구약에 있었던 그 어떤 대제사장들보다도 진심으로 사랑했던 분이라는 거죠. 그래서 그 백성들을 아주 사랑하시고 그래서 어떻게 하던지 당신을 버려서 라도 그 백성들에게 구속에 은혜를 주고 싶어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다 라는 거죠. 대제사장은 항상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자신이 우선 정결하여야 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구약에서는 대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때 드리는 제물과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범죄였을 때 드리는 제물이 같았어요. 소를 잡아서 하나님께 드렸거든요. 그러니깐 그렇게 정결한 상태에서 비로서 하나님에 백성들과 하나 된 형제 의식을 느끼면서 그 백성들에 편에서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비는 사람이 바로 대제사장이였단 말이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고 그 하나님을 향해서 충성스럽게 사셨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들과 한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우리들을 깊이 사랑하시고 그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자기에 백성들에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마치 자기에 죄를 주님 앞에 탄원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죄에 은총을 간절히 빌으실 수가 있었다 라는 거죠. 그래서 죄인들은 악했지만은 그렇게 대신 그 백성에 죄를 짋어 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사죄에 탄원을 올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에 중보에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간에 죄를 용서하시기로 하신 것이다 라는 거죠. 그래서 어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와 같을 때 모세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니깐 주님이 그 죄를 돌이키신 것과 마찬가지로 돌이키게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런 일을 하셨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을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셨고 사람에 몸을 입고 계시는 동안에 대제사장으로 사셨는데 그분에 삶은 자비로운 삶이였다. 라는 것이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에요. 지금도 그 예수님께 진심으로 나아가서 자신의 죄와 강팍함을 빌고 주님에 용서을 간절히 구하면 주님께서 우리에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리고 지금도 하늘 보좌 우편에서 우리에 죄를 위해서 간고하고 그리고 용서를 위해서 중보하신 것이에요. 그러니깐 예수님에 중보와 그 다음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대신 기도하시는 그 중보기도의 사건을 기억하면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담력을 얻게 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반드시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야 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을 향해서는 충성스러운 그런 대제사장이였다 하는 것이죠. 그러니깐 구약에서도 항상 고민이 그런 거였거든요. 백성들에 편에 서면 선 사람과 하나님에 편에 서는 사람들이 가끔은 생각이 다른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사장들은 백성들에 편에 서는 사람들이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에 계시에 편에 서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니깐 대제사장들은 전통과 사람이 중요했지만 선지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계시와 하나님에 영광이 중요했거든요. 그래서 종종 이 두부류에 충돌하는 것처럼 성경에서 보인단 말이죠.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사람들을 향해 한 없이 자비로우셨기 때문에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셔서 주님에 사명을 감당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조금도 손상 시키지 않고 그 일을 감당하실 수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신에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열심히 주님을 위해서 봉사하고 하나님에 뜻을 마지막까지 이뤄 드릴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삶을 예수님이 사신 것이 바로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야 했던 이유였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사람에 몸을 입고 오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하나님에 사랑을 받고 그리고 어떻게 그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눈에 보이는 생생한 본보기를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와 사신 그 삶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할까 하는 것을 배우고 또 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