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에서 결론을 냅니다. 왜 하늘 아버지에 아들이신 성자께서 성자께서 천사들과 조금 못하다는 오해를 받으시면서 까지 사람에 몸을 굳이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야 했는가. 그 결론을 내고 있는 것이죠. 목적은 우리를 마귀를 없이 하시고 또 우리를 죄로 메어 종노릇하는 우리를 거기에서 건져주시기 위해서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셨고 그 방식은 구속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게 이 구속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원래 이 구약으로 넘어가면 은 히브리말로 가알이라고 하는 건데 구속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구약으로 넘어가면 은 내가 만약에 뭘 잘못을 하게 되잖아요 근데 다른 사람이 그 대가를 지불하고 나를 형벌 받을 죄에서 구원해 주는 것. 이것이 구속이에요 구속입니다. 그 예를 들자면은 어떤 여자가 혼자 되었다 그럽시다 그러면은 혼자되었다 그렇게 되면은 그 혼자된 여자를 가장 가까운 친척이 가장 가까운 친척이 그를 받아 들여서 그래서 자기 아내로 삼아서 후사를 끼치고 자기에 유혹을 나눠주고 이런 거거든요. 그거를 인제 구속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구약에 개념에서 보면은 그런 것들이 구속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다. 그랬을 때에는 하나님이 커다란 고통과 어려움 속에 우리들이 있게 되었을 때 주님이 대가를 치르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 그런 것을 의미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신약에 넘어오면서 그런 것들이 개념이 영적이 개념으로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죄로 말미암아서 자기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죄에게 팔려서 종노릇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통해서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함으로써 그를 그 죄와 그 죄의 영향으로부터 건져 주셔서 다시 하나님 앞에 사람을 받으면서 살게 하시는 것. 이것이 구속이라는 개념에 아주 중요한 토대가 되는 겁니다. 바로 그러한 구속이라는 방식으로 마귀를 멸하시고 또 죽음이 두려워서 일생동안 죽음에 매여 종노릇 하는 우리들을 건져주신 것이다 그런 말씀입니다. 근데 이 구속을 위해서는 반드시 제사가 필요했습니다. 제사라는 방식 그 자체가 즉 구속을 의미하는 거거든요. 죄는 내가 지었는 짐승이 나를 위해 대신 죽음으로써 하느님이 잠시 나를 기뻐하시고 교제에 문을 열어주시는 것이죠. 이런것이 바로 구속이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 구속을 위해서는 제사가 필요했고 제사를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속죄가 되기 위해서는 영원한 구속이 되기 위해서는 아들이신 그 분이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 제물로 드리셔야 됐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 자신이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셔야 했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 분이 드리신 제사의 특성은 당신이 대제사장인 동시에 당신 자신이 제물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거죠.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런 의문이 들 겁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의문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제물로 받으셔야 됐을까? 두 번째는 왜 그 사람이 꼭 예수님이 셔야 했을까? 우리같은 사람들은 왜 안될까? 우선 첫째는 말이죠. 구약에서 보면은 하나님께서는 우상과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가 사람에 제사를 하나님께서는 받으시는 분이 아니에요. 사람 자신을 죽여서 드리는 그런 종류에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에 첫 번째 질문 같은게 나올 수 있죠. 그렇지만 단 하나의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뭐냐 하면 죄 없으신 당신의 아들이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거였어요.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아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짐승을 죽여서 드리는 제사는 모두 한시적인 제사였기 때문에 영원한 구속을 위한 제물이 될 수는 없었어요. 여러분이 생각해도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짐승이 죽어서 잠시 속죄에 혜택을 인간에 주고 하나님과의 교제에 길이 열린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적이고 그것들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가르치고자 하는 또 다른 실체가 있었다고 봐야지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짐승이 우리를 위해 죽음으로써 그 죄가 영원히 속죄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 구약에 이루어진 짐승이 죽어가고 거기에서 인간과 잠시 하나님이 교통하시는 구속에 방식은 한시적인 방식이였고 그걸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사람이신 하나님에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영원한 구속을 이룰 것을 미리 보여준 그런 방식이였다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람에 몸을 입고 오신 이유도 바로 그렇게 죽으시기 위해서 사람에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하나님 앞에 화목 제물로 드리시는 것이죠. 사실은 인간에 죄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짐승이 우리에 죄를 대신해 죽었지만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에 짐승을 죽여서 드렸지만 예수님이 대신 고난을 받으셔야 했던 죄에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죄가 아니라 우리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에 죄를 합한 과거와 현제와 미래에 모든 인류들이 지었고 짓고 있고 또 지을 그 모든 구원 받을 사람들에 죄를 짊어지신 형벌이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볼 때에 사람에 몸을 입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 마땅했다. 또 왜 꼭 예수님이여야 했느냐 하는 아담이 죄 없는 상태에서 죄 지어서 그래서 그를 문을 삼아서 온 인류에게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리고 그에 육신에 씨로 태어난 모든 사람에 마음 속에는 하나님 앞에 아담이 대표자로 지은 그 원죄와 그리고 그 원죄로 말미암는 죄를 짓고자 하는 부패한 성품이 함께 유전이 된 것이에요. 그러니깐 그 모든 더럽혀진 인간들에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서는 죄 없으신 사람이 오셔서 대신 속죄 제물이 되어 주셔야지만 죄 없는 상태에서 범죄함으로 형벌을 불렀던 아담과 그 후손에 죄를 구속할 수 있었어요. 근데 이 세상에는 죄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에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죠. 그래서 사람에 몸을 입으실 때에도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자연적인 육신에 번식 방법을 통해서 죄가 그 부모로부터 예수님께로 물려지는 것을 차단하신 것이죠.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 혼자만이 온 인류에 대표자가 되어서 인류에 대표자로써 죄를 지었던 아담에 그리고 그 후손에 죄를 구속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근데 그런 구속을 위해서 예수님 자신이 대제사장이 되어서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린 것이죠. 구약에 성소가 성막이 가운데 들어가게 되면 열여덟 평 된다고 보는데 열두 평은 성소라고 하는 곳이고 거기에는 제사장들이 들어가는 곳이에요. 제사장들은 수가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파별로 돌아가면서 근무를 서는 그런 형태였는데 그리고 이제 거기 들어가면 다시 작은 방이 하나 더 나오는데 여섯 평정도 되는 방이였는데 거기를 지성소 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지성소 속으로 사람이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 지성소 속으로 사람이 들어가는데 거기에는 한 사람만 들어가요. 대제사장만. 그리고 항상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 일년에 한 차례씩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경배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하나님과 만남이 있고 인제가 있어요. 근데 얼마나 어미로운지 거기서 잘못하면 대제사장들이 죽는 일도 발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제사장은 특별히 거기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청결하게 하고 그리고 들어가는 것이죠. 근데 예수님이 바로 그런 대제사장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서 제사를 드리게 되신 거죠. 성경은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부르는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죽으실 때에 위로부터 아래까지 성소와 지성소까지 가로 막고 있는 휘장이 있습니다. 그 휘장은 아주 단단한 실로 짜져 있어서 양쪽에서 황소가 잡아 당겨도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단단한 천인데 그게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지는 거죠. 그리고 거기에서 이제 제사장이 대제사장만 드나들었던 지성소 까지 드나들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에 죽음에 힘 입어서 언제든지 누구에 다른 사람에 중보도 없이 오직 우리를 위해서 휘장을 찢으신 그리스도 예수에 구속에 은혜에 힘 입어서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당당히 나아가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당당히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하더라도 항상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간다 하더라도 항상 그 뒤에는 거룩하고 어미로우신 하나님 앞에 이 죄 많은 인간이 당당하게 나아 갈 수 있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나에 죄를 구속하셨기 때문이라는 그 인식이 아주 분명하게 살아있는 것이에요. 내일 나머지 부분을 하겠습니다만 그렇게 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찢어 놓으신 그 휘장 사이로 우리들이 수시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니깐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라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고 이렇게 언제든지 그 하나님을 나에 친근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이 아름다운 하나님과의 교제 생활을 위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을 자기 자신을 바쳐서 구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예수님은 천사보다도 조금 못하다는 오해를 받으시면서 까지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야 했던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