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25일 새벽예배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그렇게 해서 이제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거든요. 그렇게 했더니 온전케 되신 거죠.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예수님의 인생에 무슨 죄가 있다던지 문제가 있어서 죄로 말미암는 불완전하면서 완전함으로 나아갔다 그런 뜻이 아니라 육체를 지니신데에서 오는 죄는 없지만 그런 한계 한계가 죄는 아니잖아요 그러니깐 어린 아이들이 큰 고통을 못 견딘다 그래서 그것이 죄는 아니잖아요. 어린 아이니깐 아직 고춧가루 못 먹잖아요. 고추장 못 먹고 그러는건 죄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깐 그런 면에서 예수님께서 말하자면 그런 한계를 가지고 계셨는데 그런 것들이 받으신 고난을 통해서 그렇게 온전히 순종할 수 있도록 한계를 계속 넓혀가셨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못 박혀 자기에 몸을 드리실 때에는 정말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육체 이것이 육체에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우리를 위한 구속에 제물로 당신을 드려야 하는 그 명제 앞에서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고 하나님이 그 분에 몸을 제물로 받으셔서 우리에 죄를 용서하시기에 충분한 헌신을 드리시게 된 거에요. 그런 면에서 온전하게 되셨다 이거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어린 아이 일적에 십자가를 지고 죽게 하시지 않고 그렇게 성년으로 모두 자라게 하신 후에 그렇게 그에 몸을 받으신 것이죠. 그러면서 이제 그래서 어떤 결과를 가져 오게 되었는가 그걸 두 가지로 이야기 하는데 우리에 구원에 근원이 되신 것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과 이걸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건 이제 내일 나옵니다.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거든요. 그러니깐 여기에서 나타나는 온전케 되었음은 모든 순종하는 자에게 구원에 근원이 되셨다 라고 나오거든요. 그래서 성경대로 표현하면은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에 근원이 되셨다. 영원한 구원에 근원이 되신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해가 가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우리에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율법대로 우리에 죄에 대한 형벌을 치르셨기 때문에 율법대로 우리에 죄에 대한 형벌을 치르셨기 때문에 그랬기 때문에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이 자기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 라는 사실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에 근원이 되셨는데 영원히 그러니깐 요즘에는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은 또 세월이 흘러가고 나면은 행위로 구원받고 그러는거 아니라는 거죠. 언제나 영원히 그 예수님이 우리에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율법대로 우리에 죄에 대한 형벌을 감당하고 죽으신 형벌에 인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에 의해서 그것을 ale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거에요. 영원히 그 방법은 같은 방법이에요. 그런 면에서 영원한 구원에 근원이 되신 것이다. 다른 근원은 없죠. 없죠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이렇게 우리에 구원에 근원이 되실 분이 없다.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근원을 주신 적이 없다. 그거를 아주 굳게 믿고 그렇게 살아갈 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하고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이라고 하는 확신 속에서 살게 되는 거에요. 그리고 그런 확신이 없이는 그리스도와 깊이 교통할 수가 없다라는 거죠. 그러니깐 우리가 꼭 필요한 대상이 아니고는 우리가 그 대상을 깊이 탐구해서 알 수가 없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대상을 사랑할 수 없는 거죠. 그러니깐 그리스도니깐 항상 그리스도가 절박하게 내 인생에 필요하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없는 그리스도가 제외된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내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인생이다. 그리고 그 것은 이 세상에 모든 것을 준다 할지라도 그것은 의미가 없는 불행한 인생이다. 그런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핍박을 견디고 그리고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거죠. 이런 것들이 없으니깐 오늘날 많은 크리스찬들이 바꿔버리는 거에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자면 핍박 받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바꿔 버려요. 핍박에서 피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바꾸는 거죠. 그런건 아무것도 아니죠. 핍박에 시기에 믿음을 지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뭐냐 하면 평안한 시기에 믿음을 지키는 것. 핍박에 시기에는 노골적 배교를 요구하는데 오늘날 세속주의는 노골적 배교를 요구하는게 아닙니다. 근데 그 때에 더 많이 믿음을 빼앗기는 거에요. 상실하는 거죠. 이런 상황이 계속 되면서 이제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없으면 껍질입니다. 언젠가는 여건이 아직 주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세상으로부터 유혹이 강력하게 온다던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이 온다고 하면은 언제든지 주님을 버립니다. 아주 쉽게 버립니다. 교회를 떠난다는게 아니라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는데 그것과는 상관없이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버립니다. 그래서 신자에 가장 커다란 의무는 뭐냐 하면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 언제? 날마다 매 순간마다. 이게 중요한거죠. 그런데 인제 누구에게 그런 영원한 구원에 근원이 되시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구원에 근원이 되시잖아요 그죠? 그건 교리적으로 너무 명백한 거잖아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원은 믿음에서 나며. 근데 여기는 그런게 아니고 순종하는 자에게 근원이 되셨다. 이것은 마치 순종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 것처럼 이렇게 묘사되고 있잖아요. 그건 아니에요. 그럼 뭐냐.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거죠. 또 진짜 정말로 믿는 사람들 진실로 믿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보여주는 거죠. 그게 뭡니까. 순종이라 이거죠. 믿음에 결국은 순종에 이르는 것이에요. 그래서 믿음에서 하나님에 말씀은 복음은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나니 할 때에 처음 믿음은 구원을 얻는 즉각적 믿음이지만 뒤에 나오는 믿음은 성화를 통해서 통해서 이루어진 믿음이거든요. 성화에 삶을 많이 살면 살수록 그것이 결국 뭐냐하면 하나님께 그만큼 많이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그런 온전한 순종에 삶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거에요. 로마서에서 보면은 그 복음에 목적 그 자체가 온 세상을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는 것이죠. 복음을 모르고 예수님을 몰랐을 때에는 마구잡이로 살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죠.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싫어하고 그리고 삶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래서 신명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진노가 머물러 있는 그런 다 깨진 막되먹은 인간이였단 말이죠. 그러다 복음에 깨서 아 예수님이 나 같은 인간을 위해 죽으셨구나. 아 예수님이 나 같은 인간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고 버림을 받으셨구나. 그런 거를 깊이 뼈저리게 느끼면서 그러면서 그 앞에서 깨트려지는거. 깨트려지면서 비로서 순종을 배우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비밀은 이 하나님을 거스리면 완고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비밀이에요. 보여지지 않는다고. 그러니깐 마치 수박을 갖고는 있어 수박을 갖고는 있는데 그냥 계속 겉을 핥아 먹고 갖고만 놀 뿐이지 호두를 줬는데 하나를 입에다 넣고 사탕처럼 계속 빠는 거에요. 갖고는 있어요. 그런데 그 호두에 맛을 몰라요. 근데 큰 형은 그걸 망치로 깨트려서 그래서 속에 것을 파먹는 거에요. 맛을 알죠. 그러니깐 맛을 모르면 그 다음에는 어때요. 막 호두 빨아먹다 방바닥에다 퉤하고 밷어 놓죠. 맛을 모르니깐 가치를 모르는거죠. 형이 가서 주서다가 저 구석에 가서 물로 씻어가지고 돌로 깨트려서 그거 먹는 거에요. 내 얘기 하는 거에요. 바로 그거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절대로 순종하지 아니하고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아요. 비밀이에요. 비밀이에요. 보여지지 않아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