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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6일 새벽예배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20).
여기서 이야기하는 그 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그 구약 시대에 많은 경건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그 은혜에 대해서 쉼없이 노래하긴 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너무나 두려운 분이셨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가장 커다란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하나님은 당신이 가지고 계신 인자와 자비, 은혜 이런 성품은 하나님이 분명히 갖고 계셨는데 근데 그것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엄위, 그의 위엄, 그의 권위, 그의 의로우심 이런 것들을 더 많이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왜 전자보다는 후자를 많이 느껴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으로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해 주시되 율법을 통해서 계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 계시를 해 주셨으니까 하나님 앞에 자신 있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율법의 요구를 다 충족시켰어야 되거든요. 그런데 누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사랑과 은혜 자비 이런 것들을 느끼고 또 기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그 하나님의 엄위와 위엄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두려움, 엄격하심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이 공포 그런 것들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절대로 죄인이 담당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담대하게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언제든지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담대할 수 있는 이유와 근거가 우리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율법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고 율법의 요구대로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이 있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 이 구속의 하나님의 사역과 계획이 너무너무 신비하고 아름다워요.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그 속죄의 사역으로 율법의 요구의 입을 막고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길이 바로 그 “길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았다는 것 결국은 그 휘장 하나가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구분했고, 만약에 구약의 시대에 그것을 누가 찢고 만약에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러면 아마 긍휼이 없는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거기는 대제사장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죽어도 그것 꺼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일설에 의하면 뒤에 줄이 이렇게 달려있었는데, 옷 가장자리에는 방울이 달려서 움직이면 딸랑딸랑 움직여서 바깥에서 안 죽고 살았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만약 소리가 안나고 똑 떨어진 소리가 나면 죽은거죠. 그래서 일설에 의하면 뒤에 있는 줄이 있어서 그걸 잡아당겼다고 보는 거죠. 그러면 시체가 지성소에서 성소로 끌어내어지는 거죠. 그래서 제사장들에 의해서 떠내어 들려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엄청난 두려움과 이런 것들을 동반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휘장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그 휘장이 찢어졌다 그래서 그 찢으신 그 휘장 사이로 그 길이 났다 그런 것이죠. 그것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가리키는 것이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 휘장이 찢어진 것도 기적적인 사건이었지만, 신약에서 보면 이 휘장이 아래로부터 위로 찢어진 게 아니라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집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친히 주도하신 기적적 사건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에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마지막 죽으시는 그 순간에 휘장이 위에서부터 찢어지는 거죠. 그래서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구별이 없어지게 되는데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불러 주셨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제사장인 우리들이 지성소에 들어가 주님을 자연스럽게 뵙게 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찢어진 휘장을 지나서 간다는 거죠. 그리스도 예수의 속죄의 죽으심의 공로를 힘입어서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새롭고 산 길이다“ 이렇게 묘사했거든요. 새롭다는 것은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길이다. 예전의 길은, 하나님을 뵈오러 가는 길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율법을 지키고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으니까 제사라고 하는 방법을 통해 가는 것입니다. 그 방법을 약간 개선한 최신 방법이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그런 방법이었다라고 하는 것이고 새롭고 산길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곳을 계속 밟고 지나가도 효력이 감퇴하지 않고 살아서 역사하는 길이라는 그 살아서 역사한다는 뜻은 끊임없이 그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는 길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도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는 그 효력이 감퇴하거나 혹은 쇠하거나 전혀 그렇게 하지를 않는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서 나오는 이야기가 “휘장은 곧 저희 육체니라” 다시 한번 여기에서 나옵니다. 항상 성경에 아주 일관된 진술이예요. 비유을 사용하셨지만 그러나 그대로 해설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것은 A는 B다라고 할 때 동일체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 동일체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 동일체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휘장은 곧 저희 육체니라“ 휘장을 위에서 아래로 찢을 셨을때휘장이 그렇게 찢어진 자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휘장이 찢어진 거든요. 지금은 휘장 없잖아요. 다 사라졌잖아요.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구분이 휘장이 찢어진 그 자체는 다른 모든 의미보다도 가장 치명적인 의미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구별이 사라졌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구별이 사라졌다면 그러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성막들도 있고 다 있는 거죠. 그런 것들은 그대로 살아 있는 거죠. 그러면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을 통해서 우리들이 이방인이었는데 이방인들이라고 할찌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면 우리를 모두 제사장으로 부르셨기 때문에 믿는 사람 안에서는 이방인과 제사장의 의미가 사라졌다는 것이예요. 그러면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가? 마찬가지로 이방인과 유대인이 다 하나요, 그 하나된 그 모든 사람이 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리움을 받았기 때문에 사실은 이 제사장 밖에 못 들어가는 성소 바깥에 뜰에서 대기하고 기다리던 이방인의 뜰에서 대기하던 모든 사람들을 한꺼번에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성소로 불러들이시고, 그런데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구별이 사라지니까 자연스럽게 그 성소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이 지성소로 드나들 수 있는 자격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위에서 아래로 가르신 것이예요. 그 가르셔서 이 지성소 사이로 드나들게 하실 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육체의 비유하심 즉, 육체와 휘장을 비유적 동일체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거 아니예요. 그러면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구별이 사라져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으심 때문이고, 그 육체의 찢어짐이 바로 그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의 찢어짐이라고 말할 것 같으면 그 성막 뜰에 혹은 이방인의 뜰에 있던 사람들이 성소에 들어오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다 말장난이란 거죠. 왜냐하면 어차피 궁극적인 목적 자체는 성소가 아니라 성소를 지나서 지성소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뵈옵는 것이 구속의 목적이었으므로 그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누가 성소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누가 성소까지만 들어오고 성소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없다 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직접 뵈올 수 있으므로 그 성소에서 지성소 사이의 구별이 없어서 주님을 뵈오러 가는 것이나 성막 뜰이나 이방인의 뜰에서 성막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나 이 모두가 다 하나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바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육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라고 하는 이 정말 엄청난 사건을 통해서 그래서 그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고 그리고 자신의 자신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라고 하는 사실을 깊이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매순간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의지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분의 구속의 은혜가 처음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 받을 때만이 아니라 숨질 때까지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구속 사역의 중보를 힘입어서 섬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중보 사역 안에서 숨쉬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노래하고 그리고 그 마지막 그 중보사역의 품 안에서 우리는 죽고 그 중보사역의 품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찬송의 제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를 위해 이처럼 위대한 일을 행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그 아름다운 중보사역과 우리같이 쓸모없는 죄인을 위해서 육체를 가르시고 그래서 우리에게 새롭고 산 길을 열어 주시고 그래서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며 살게하신 그 크신 은혜를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등진 채 살아가는 많은 영혼들이 있고 우리 자신도 그렇게 살때가 있습니다. 오 주님 오늘 이 아침의 시간에 오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새롭게 해 주셔서 아버지 앞에 살게 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