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24일 새벽설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과학은 모두 인과 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과 관계로 되어 있어서 원인이 없는 결과라고 하는 것이 없다는 얘기죠. 그래서 원인이 없이는 결과가 없고, 반드시 어떤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있고, 또 그 결과는 또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되고 이렇게 해서 모든 만물들의 질서를 해명하는 거죠. 거기까지는 크게 잘못된 것이 없는데 이제 천지 창조같은 것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그래서 원인자가 없으면 결과가 없죠.
그래서 사람들이 창조된 피조 세계를 보고 ‘저절로 있었다’ 그게 사실은 원인이 없는데 어떻게 결과가 있을 수 있겠어요. 거기까지는 그렇게 큰 문제가 없는데 그 다음이 문제인데, 그 원인과 결과를 재는 인과의 법칙이 반드시 지금 보이는 것이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설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의 교리를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이유도 지금 실험이 안되니까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냐 그런 입장이예요. 그렇다면 물질이 원래 있었다고 하는 것을 누가 증명해 볼 수 있겠어요. 똑같이 함정이 있는 거죠. 그래서 이런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라고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원인과 결과의 연결 고리 속에 오늘날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거만 용납을 하는 거죠. 그렇게 되니까 결국은 과학이라는 그 틀 속에 모든 것이 갇혀버려서, 그래서 보다 더 커다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그러면서 이런 혼돈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예요.
그래서 성경이 오늘 이야기하는게 뭐냐하면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오늘 우리의 눈 앞에 있는 이 창조 세계가 나타난 것, 우리들이 이미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법칙에 의해서 설명이 되는 것이 아니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 과학으로 그것들을 입증할 수 없으니까 그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해 보일 수는 없을 거 아니예요. 그러면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느냐? 반문이 나오잖아요.
성경은 아는 것에 대해서 두가지 방향으로 이야기합니다. 알기 때문에 믿는 것이 있고, 믿기 때문에 알게되는 것이 있다이런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현재적으로 원인과 결과에 대한 과학적인 증명이 불가능할 때 그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 아는 방식이 알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알게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 가운데는 입증할 수 없는 것들이 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원인과 결과의 과학적인 접근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까요? 물론 성서학 속에는 이 정경의 형성사라든가, 소위 이야기하는 성경의 외적인 증거들을 다루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외적인 증거들을 다루는 학문이 있어요. 그러나 그것도 그렇게 다루는 학문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개인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아, 정말 그렇게 되니까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이구나 수긍이 되지만 처음부터 마음속에 아니 1500년전부터 시작을 해가지고 주 1세기까지 쓰여진 이 책들이 이게 어떻게 모든 사람들의 그냥 작품이지 어떻게 그것을 지멋대로 묶어논 이 한권의 책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것에 따라서 목숨을 걸 수 있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외적인 증거, 즉, 외증들을 연구하는 학문의 세계속에 들어가도 그것 때문에 무릎을 꿇고 아, 하나님의 말씀이었구나 그러고 참회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하는 사실이 논쟁에서 될 사실이 아니라 이것은 자기 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지는 거예요.이것을 성령의 내증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의 내증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자기가 성경의 진리를 체험함으로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 말씀이 살아있고, 그리고 이 말씀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향해서 주시는 메시지이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깃들여 있어서 죽은자를 살리고, 그리고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에게 빛을 주는구나 그것들을 체험하게 될 때 그때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믿게되고 나면은 그 다음에 성경에 관한 학문들을 공부해 나아갈수록 점점 더 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정말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들이 쌓여가게 됩니다. 이건 적전으로 성령님의 역사에 기대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또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이럴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그렇게 믿어지는 것은 아니란 말이죠. 성경이 역사하기 전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믿어지는 것은 아니죠. 또, 성령이 역사하셔서 한때 믿어졌다고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흐려질 수 있어요.
이렇게 이제 그런 일이 일어날 때 그것을 해결하는 길이 뭔가? 그것은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식어져서 이렇게 전에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확신하던 바에 대해서 회의할 수 있는 거죠. 정말일까? 이렇게. 그것은 불신앙하고는 달라요. 회의는 믿으려고 하는데 안믿어지는 거고, 불신앙은 안 믿겠다라고 하는 고집이예요. 물론 회의를 하게 되면 그 믿음의 능력들이 많이 감퇴하게 되죠. 그리고 회의를 거쳐서 잘못하면 불신앙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는 거죠. 그때에 그것이 회의인가 아니면 불신앙인가 하는 것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냐면 그 사람이 믿고자 하느냐, 그러니까 만약에 안 믿겠다라고 하는 고집인 불신앙이라면 그가 자신의 믿음 없는 것을 인해서 전혀 고민하지 않을 것이고, 회의하고 있는 중이라면 그러나 주님을 믿고 싶다면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믿음을 구하고, 그것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거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태도의 차이가 납니다.
여러분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면 천지가 창조된 것을 믿는 거라는 거라는 거죠. 그것을 믿게 만드는 것이 뭐냐면 믿음이란 말이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어떻게 알게 되냐면 믿음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하나님을 믿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믿음을 갖기 전에는 사실 이 천지가 창조된 것이 참 신비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러나 깊이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의 경우는 그래요. 그렇게 깊이 생각하게 안되요. 하나님을 믿고 나니까 그 다음에 천체와 우주 하늘의 별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하면서 그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고나니까, 모든 것이 아구가 맞으면서 정말 그렇구나하는 그런 믿음이 더 생기지, 믿기 전에는 그게 뭐 그렇게 심각하게 사실 생각을 안했어요. 그냥 그런가보구나 하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살아왔죠. 그런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을 믿고나니까 새로운 믿음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요지는 이거예요. 여러분들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비로소 우리들이 과학적으로 탐구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도 우리들이 알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믿음이 어떤 종류의 믿음이에요? 성경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이렇게 하셨다고 기록이 되어있는 거기에 대한 믿음이예요. 그러니까 성경이 이야기하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기초한 믿음이예요. 내가 아무렇게나 믿고 그렇게하면 그 믿음이 하나님을 속박해서 내가 원하는 데로 뭐든지 하시게끔 할거다라고 하는 그런 종류의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들이 믿음의 위대함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세계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그래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믿으면 믿을수록 우리의 지성이 감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성이 이 외연을 확장해나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래서 지상의 스위치를 끔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우리들이 알기 때문에 믿게 되는 것이 있고, 또 믿기 때문에 알게 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실험하고 경험할 수 없는 것은 믿기 때문에 알게 되는 거예요. 천지창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 뭐, 그 다음에 인간이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사실, 그리스도의 부활, 동정녀의 탄생 이런 것들, 삼위일체 하나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이런 것들은 우리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알게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굳게 믿고 나면 성경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빨라집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에 어떻게 되냐면 성경에 들어가 보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고, 우리는 어떤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고, 어떤 삶을 살때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는 삶이고, 그것은 지성을 통해서 배워가고, 그러면서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가 그런 믿음을 갖게 될 때, 이 지성적으로 외연이 계속 확대해 나가서, 공부해 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가는 가운데 이 지적인 외연이 계속 넓혀가고, 그래서 탄탄한 지성과 논리위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켄트 베리의 안셀름 같은 사람이 그런걸 이야기를 많이 했지요. 뭐냐면 처음 믿을 때에는 우리들이 아멘 하는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만, 믿고난 후에는 내가 왜 그것을 믿는가? 부지런히 탐구해야된다라는 것이고, 그럴 때에 우리의 믿음이 허공에 뜬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확고한 지성의 기초위에 서 있는 신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가지다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우리의 인간의 지성으로 알 수 없는 것을 믿어지게 하는 성령의 역사와, 그리고 그렇게 믿어지게 된 것에 대해서 나는 왜 그것을 믿을 수 밖에 없는가?라고 하는 것을 이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고 탐구하고 공부함으로써 그것들을 이렇게 다 믿음으로 세워가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믿음의 세계에서 우리들이 견고하게 서서, 그때 요동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때 오늘 이제 있을 존 오웬의 생애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 많고, 그 어렵고, 그 엄청난 설교를 그 교인들이 들으면서 신앙생활을 해오고 그러니까 조금만, 저는 설교를 하면서 최근에 들어서 이제 한 2~3년 사이에 느끼는 겁니다만은 어느정도 깊은 기독교의 세계, 깊은 그 은혜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하는 그 욕망이 저는 점점 증대하는데 근데 조금만 들어가면 막 어렵다고 난리니까, 그 어렵다는 게 두가지거든요. 하나는 뭐냐면 관심사가 너무 다를때, 나는 이 땅에서 그냥 먹고 위로받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관심사가 하나님의 그 놀라운 계획에 대해서 보여줄때 그 관심사가 너무 달라 그때 어렵다고 하죠. 그러니까 애들로 말하자면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놀고 싶은데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으라고 할때, 그러니까 자꾸 어렵다고 그러는 거죠. 근데 컴퓨터 들어가서 게임이 아무리 어려워서 첫판에 도전하면 거의 빵점밖에 안나와도 자기가 좋아하면 어렵다고 안그래요. 오히려 아이들이 게임이 누구든지 한번에 도전하면 100점 받을 수 있고 그것이 딴~따따 따다 딴~ 참 잘하셨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싱거워서 그 다음에 들어가지 않아요. 그게 왜냐하면 관심사의 차이예요.
그래서 존 파이퍼라고 하는 조나단 에드워드를 30년 동안 이렇게 이미 300년전에 죽은 분이지만, 그 분 밑에서 이렇게 멘토링을 받았던 목사님이예요. 미국의 유명한 작가입니다. 태어난지 300년쯤 되었어요. 올해가 300년 되는 해라고 하는데 그 분이 자기의 책 속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요. 뭐냐면,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한번 읽어서 모두 이해될 수 있는 책만 읽기 때문에 지적인 진보가 없다입니다. 항상 모두 이해되는 책은 좋은 책이 아니다. 자기는, 그 사람은 그것보다 좀더 높은 수준의 책을 읽어야 한다라고 합니다. 그래야지만 자기의 발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도 똑같습니다. 한번 들어서 아이고 뭐 다 알겠네. 본문만 나오면 아, 서론은 이렇게 되고, 중간은 이렇게 되고 마지막 결론은 예화로 끝나겠구만, 축도로 마치고 그렇게 무슨 발전이 있겠느냐 자기가 정답써가지고 와서 확인을 하는 거죠. 그래서 설교가 전개되면서도 아직까지도 이게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다라고 할때, 그러면서 깊은 은혜를 받게될때 그때에 테이프틑 다시 듣게되고, 두 번 세 번 듣게되고 도서관의 테이프들을 부지런히 대출해가는데 설교가 조금 어려웠기 때문에 그렇게 대출해 가는 거예요. 뻔히 알면 누가 그렇게 하겠어요.
그래서, 그러니까 이제 시간이 흐를수록 여러분들이 믿음이 더 견고해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지성적인 영역들을 넓혀가야 되는 것입니다. 뻔히 아는 이야기만 계속하면 절대로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집중하고 예전보다 훨씬 더 설교에 집중하고 그리고 설교 이후에 이미 지난 설교가지고 더 많이 공부하고, 이렇게 하면서 내가 왜 믿을 수 밖에 없는가? 뻔한거잖아요. 천지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은 뻔한거 아니예요. 근데 왜 내가 그것을 믿을 수 밖에 없는가? 그리고 그 깊은 목적이 무엇인가? 탐구하면서 가야합니다.
그래서 어쨌든 말씀에 더 깊이 속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할 수만 있으면 말이죠.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렵게 설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여러분들이 알아들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그 경계선상에서 이제 조화를 이루면서 가려고 내깐에는 무지하게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면 진짜 은혜 생활을 열심히 하는 교인들은 오히려 그게 좋아요. 엊그제도 심방가니까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인데, 엄마, 아빠의 손에 이끌려서 장년 예배 딱 들어왔어요. 그런데 천지 창조의 목적 2번째 시간이었는데 그날 설교가 좀 길었죠. 몸도 굉장히 불편한 형제인데 휠체어에 앉아 설교를 듣는데, 여러분들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그 시간에 완전히 말씀에 사로잡혀서 은혜를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먼데서 이 아이가 등록하니까 부모들이 모두 함께 같이 신앙생활하게 된거죠. 너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뭐냐면 집중이예요. 집중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그래서 믿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그렇게 될때 하나님의 더 깊은 은혜의 역사들이 나타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신실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사랑해 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아버지 앞에 나아와 간구하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하나님 저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저희가 하나님의 그 큰 사랑과 은혜를 알고 믿음과 지성에서 살아가도록 복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