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25일 새벽설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 11:4).
이제 여기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거론이 되는데 대체로 역사적인 순서에 따라서 기록을 하고 있는 것 같애요. 그래서 이제 가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나서 낳은 자식들이거든요. 근데 아벨에 대해서 창세기에 잠깐 나오기는 하지만, 아벨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엄청난 일을 하면서 그래서 그렇게 살아온 그런 역사적인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믿음의 사람으로서 처음 거론이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창세기를 찾아가 보면 가인과 아벨은 무슨 차이가 있나? 제사를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를 않으셨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가인이 아벨을 미워하고 들판에 있을때 아벨을 쳐죽입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땅이 저주를 받고 가인이 저주를 받고 하나님 앞에서 더 멀리 떠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어디를 봐도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도대체 그 믿음이 뭔가에 대해서 이제 좀 애매해 보입니다.
이제 이것에 대한 해석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고, 아벨은 육축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하는데 가인은 곡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드렸고, 아벨은 자기 짐승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드렸다는 말이죠. 그래서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아담이 타락한 이후 어떻식으로든지 짐승으로서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제사가 계시되었을 것이다. 그 제사의 예법에 아벨은 맞게끔 행동을 했고, 가인은 맞지 않게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아벨의 믿음이라고 할때 이것이 하나님이 가르쳐준대로 순종한 믿음이 아니냐 그렇게 보는 거죠. 그것이 전통적인 해석이구요.
또 하나의 해석이 있는데 이것이 뭐냐면 아마 아벨과 가인의 때는 아직 하나님 앞에 구체적인 제사의 예법이 계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물에 문제가 된 것이 아닐 거다. 또 구약에 넘어가면 율법이 오고나서 제사에 대한 규례들이 들어오는데 거기에도 보면 곡식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는 곡식을 제물로 받는 제사가 있었단 말이죠. 그렇게 본다면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거절하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신 것은 그 제물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뭔가 다른 것이 있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아벨의 제사와 가인의 제사를 비교할 때 가인의 제사는 그냥 곡식을 드렸다고 되어 있고 아벨의 제사에는 첫새끼를 하나님 앞에 드렸다는 히브리 말로 백홀 사상이 나옵니다.
그 첫새끼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 난 것이 모든 기력을 가지고 태어난다라고 보는 것이죠. 그리고 의미적으로도 처음 난 것은 아주 소중하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를 대표할 만한 것이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박홀이라고 하는데 그러면은 영어로는 “the choice”가 됩니다. 최상의 것이다 그런 뜻이 됩니다. 이것이 나중에 출애굽기에 가서 양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희생함으로써 애굽의 가득했던 죽음의 그 위협을 모면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유월절이라고 하는데 그 후로부터는 이제 첫 초태생들이 모두 죽는 그 무서운 심판이 있을 때 하나님이 구속하셨기 때문에 모든 초태생이 하나님의 것으로 분류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런 배경으로 이러한 그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연관이 있는거다 보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가인과 아벨은 제물의 차이보다는 아벨의 제사는 최선의 것을 드리는 제사였고, 가인의 제사는 그렇지 않은 제사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벨과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과 가인의 제물은 거절하신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죠. 이렇게 될 경우에는 아벨이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그 믿음이 최선의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린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중에서 어느것이든지 간에 우리들이 취할 수 있는 해석이라고 여겨져요. 어쨌든 그렇게 된다면 첫 번째 것을 취한다면 아벨의 믿음은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제사의 방법대로 온전히 순종한 믿음이고, 그리고 두번째 경우에 따른다면 아벨은 최선의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린 그런 종류의 믿음이 되는 것이죠. 어쨌든 이 두 가지를 합쳐서 생각을 해 본다면 하나님 앞에 주님이 가르쳐주신 바대로 순종한 제사였고, 최선의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린 제사였다라고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예요. 그것이 믿음이었다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 믿음의 근원이 무엇인가? 주님이 가르쳐 주신 제사의 예법대로 순종하고, 또 자신의 최선의 것을 드린 믿음이었다고 생각할 때 그렇게 믿었던 이유, 그 근원은 무엇인가? 이거죠.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가치있는 분이시라고 하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예요. 비록 자기도 이렇게 살아있고 이런 저런 제사로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고 안드릴 수도 있고 또 이런 저런 제물을 바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지정해 주신 대로,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가장 최선의 그 제물을 드릴 수 있었던 그 배경에는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분이시고, 그리고 온 우주의 중심이시고 자기는 그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된 정말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피조물이라고 하는 그런 인식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사람의 제사를 믿음으로 드려진 제사로 보시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던 것이예요. 이것이 작은 제사의 사건이었는데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벨은 믿음으로 산사람으로 기록이 되고, 가인은 그 믿음으로 산 사람을 미워하게 되고 그를 죽이는 살인의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더 멀리 떠나가게 되고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예요.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 앞에 주님이 우리의 가장 소중한 분이시고, 그리고 우리의 최선의 것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분이시다 그거를 생각하면서 그분께 모든 것을 드리면서 사는 그 아름다운 믿음과 순종의 그 삶이 작아보이지만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의 인생의 전부이고, 온 우주의 중심이며, 그리고 주님의 기쁨이 우리의 최고의 행복이다라고 하는 가치 기준을 가지고 살때에는 그러한 헌신의 섬김을 통해서 우리가 더욱 하나님과 연합되고 섬기면 섬길수록 최선의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면 드릴수록 주님이 더없이 소중해지고 너무 귀하게 그렇게 여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불순종하고, 그리고 자신이 최선의 것을 드리지 아니하면 이 가인과 같이 마음이 굳어지고, 그래서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고, 하나님께서 믿음이 없는 그 삶을 굉장히 슬퍼하시고,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자신의 최선의 것을 드리지 않는 그러한 잘못된 신앙이 결국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아우를 쳐 죽이게 하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네 아우가 어디있느냐” 그럴때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그러고 하나님 앞에 대드는 무서운 마음의 굳어짐으로 흘러가 버리는 것이죠. 굉장히 무서운 거죠. 그래서 두려운 마음으로 우리들이 매일매일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있어서 전부이고 최고라고 하는 신앙속에서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오늘 이시간에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오늘 이시간에도 저희와 함께 해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주님께 순종하는 주님께 최선의 것을 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도록 하나님이 많이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주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