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26일 새벽설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창세기 한 장 더 보겠습니다. 창세기 5장입니다. 5장 21절입니다.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드셀라를 낳았고 므드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365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니라” 아멘
마태복음 1장에서는 계속 누가 누구를 낳는다는 출생의 족보가 기록이 되어 있는데 창세기 5장에는 계속해서 죽는 사망의 족보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선악과를 따먹어도 절대로 안 죽는다 그러고 오히려 내가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아질 것이다 이렇게 유혹을 했는데 그 유혹한 것이 사실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오히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응변적으로 보여주시는 사건이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사망의 족보입니다. 계속 사람이 죽어가는 이야기가 나타나는 것이죠.
근데 거기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사람이 한 사람 나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에녹이라는 사람입니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뭐냐하면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그 약속이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지만, 그러나 죽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에녹이 한 사람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하나님께로 들려 올라가는 이 사건은 아주 굉장히 커다란 의미가 있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보편적인 죽음속에서 역사하는 하나의 매우 중요한 사건, 그리고 보편적인 그 죽음속에서, 보편적인 죽음의 그 위협속에서 거기에서 그 죽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게 결국은 나중에 이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모든 사람에게 왕 노릇할 것이지만, 죽음이 결코 우리를 삼킬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후에 생겨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하나의 암시다라는 말입니다.
그 캄캄한 사망의 어둠속에서 죽음을 보지 않는 한 사람에 대한 놀라운 이 구원의 여망을 에녹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근데 이 에녹이 그런 사실을 보여주는 인물로 쓰임을 받았다고 하면 이것은 아주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 에녹에 대한 이야기가 유다서에도 나오는데 거기는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외친 예언자로 등장을 합니다.
근데 이제 창세기로 넘어가보면 에녹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짤막하게 나와요. 65세에 므드셀라를 낳고, 그리고 그 후에 300년을 더 살면서 자녀를 낳았는데 365세를 향수하고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았는데 죽은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는 이런 이야기이거든요. 그러면 창세기의 기사만을 보아서는 에녹이 매우 특별한 삶을 살던 사람이었다라고 하는 흔적인 잘 안 나타나요. 그런데 유다서에는 아담의 7대손 에녹이 심판을 외쳤다, 그 시대에 범죄하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다라고 하는 기록이 나와요.
그러면 이걸 전부다 조화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래서 뉴베리라고 하는 성서 신학자는 이 문제를 아주 의미있게 당시 동양에 있었던 고대 금동에 있었던 그 풍습과 관련시켜서 이제 이런 해석을 가하는 거죠. 상당히 귀담아 들을만한 해석이라고 보는 거죠. 므드셀라라고 하는 그 이름이 원래 매튜셀라예요. 매튜는 죽음을 의미하는 거고, 살라는 샬라흐라는 동사인데 던지다, 보내다 그런 뜻이예요. 그래서 이 매튜셀라라고 하는 이것이 창을 던지는 사람, 뭐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매튜 살라는 말하자면 동네가 있으면 그 동네 어구에서 원래 보통 명사였다는 것이죠. 그래서 동네 어구에서 외적들이 쳐들어 오면 그것을 감시하면서 동네사람들에게 그 외적이 쳐들어 오는 위험을 알려주는 사람이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만약에 다른 부족들이 공격을 해오면 제일 먼저 누구를 죽이겠어요? 매튜셀랴를 죽이고, 그 다음에 전쟁이 일어난 것을 더 이상 못 알리게 하면서 그 부족을 쳐들어 오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매튜 셀라가 죽었다라고 하는 이야기가 뭐냐면 적군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이 매튜 샐라, 므드셀라라고 나오는데 65세에 므드셀라를 낳은 것이죠. 그래서 이제 어떤 추측을 하냐면 므드셀라라는 이름이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사람이 직접 생각해 내서 지은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므드셀라라는 이름을 계시해 주셨을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죠. 성경에는 그런 예가 많으니까 아들을 낳으면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렇게 한 것 처럼 그렇게 계시적으로 주어진 이름이 많으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주어졌을거라 보는 거죠. 그 당시에 그런 풍습을 생생하게 알고 있는 이 에녹에게는 아이를 가졌는데 그 아이의 이름을 므드셀라라고 계시가 되었을 때는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죠. 그래서 이제 나중에 연대계산을 해보면 므드셀라가 죽은 다음에 노아 홍수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주 응변적인 사건이 되는 거죠. 그래서 므드셀라를 낳고 그냥 평범한 필부의 삶을 살아가다가 므드셀라를 낳은 것이 계기가 되어서 이제 이 에녹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 이후에 살았는데 그 삶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녹의 생애는 365년을 두토막으로 나누면 65세까지의 생애와 므드셀라를 낳은 300년의 생애였다는 것입니다. 65년의 생애가 평범한 생애였다면, 300년의 생애는 각성된 생애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므드셀라를 낳고 그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눈 뜨면서 산거죠. 그 살았던 삶의 방식이 일부가 유다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눈을 뜬 이 에녹이 당시대 사람들에게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 앞에 그 죄를 버리고 돌아올 것을 외쳤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쨌든 이 에녹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외친 그런 삶이 되었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친 삶을 살다가 죽은 삶이었는데 그 모든 동기가 믿음이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 믿음의 정체가 무엇인가? 그게 6절에 나오는데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살아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그래서 에녹을 이야기하다가 이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는 것을 언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산다라고 하는 것이 여기 11장에 보면 그 믿음으로 산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지만 그 믿음이 어떤 종류의 믿음이냐 하는 것은 일곱빛깔 무지개와 같애요. 그래서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며칠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아벨의 경우에는 어떤 믿음이라고 했어요? 하나님께 순종하며 최선의 것을 드린 그것이 믿음이었단 말이죠. 그래서 일곱빛깔 무지개처럼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 믿음이 어떻게 그들 가운데서 역사했는가 하는 것을 아주 다양하게 나타나고 이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굳게 믿으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갔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진실한 성도들이 되는 것, 그것이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당신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사는 것 그것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없는 것이죠. 헌신이 있고 하나님을 향한 봉사가 있어도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이죠.
기도하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와 이처럼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오늘도 우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그 은혜를 받고 깨달았사오니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 순종하며 주님을 위해 일하고 역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당한 삶의 상황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이 위인들처럼 우리가 그렇게 믿음으로 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