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23일 새벽예배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 3:15-19).
다시 한번 앞에 나왔던 이야기들을 반복하면서 그러면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에 음성을 들을 때 마음을 강팍하게 해서 그래서 넘어졌던 하나님에 진노를 받고 쓰러졌던 그 심판에 사실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들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던 그런 사람들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였느냐. 그렇게 다시 한번 이야기 하면서 근데 여기에서 하나님에 사랑을 받는 백성들 이라는 사실과 또 그 하나님께 진노를 받는 백성들이라는 그 사이에 어떻게 조화점을 찾을 수 있겠는가. 인제 이런 문제가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아마 내일 아침쯤에 사장에서 그 이야기가 나오겠습니다만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사실 우리들은 좀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은 위험스러울 정도로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보는 거죠.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많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떠한 진노도 우리들에게는 그렇게 하실수가 없다. 그렇게 아주 간단하게 정리를 하고 성경에 이렇게 명백하게 나오는 진술들이 있어서 그것들을 자꾸 이렇게 외면하면서 지나가거든요. 근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아마 지난주일 오후에 제가 설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나님 하나님 백성들을 향해 가지고 범죄할 때에 가지고 계신 마음에 변화들. 이런 것들을 성경에서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에 진노에 대해서 다시 눈 뜨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에서도 보면은 당신이 직접 건져내신 백성들인데 그 백성들을 하느님께서 진노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진노는 무엇 때문 이였을까요? 강팍하다는 이야기를 쭉 하다 그런 이야기가 나왔으니깐 마음이 강팍했기 때문이겠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죠 그죠? 근데 사실은 왜 지금 강팍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해 나아가냐면 불순종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진노를 사는 삶에 실체를 한번 벗겨 보는거죠. 그들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해서 하나님에 명령을 거역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삶에 내면에는 뭐가 있을까? 그것이 바로 강팍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 그 지속적인 불순종으로 하나님에 진노를 사고 그래서 그 하나님에 진노로 말미암아서 심판을 받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불순종 하는 삶의 한 복판에는 마음 한 복판에는 하나님 앞에 강팍해진 마음이 있었다 라는 것이죠. 마음이 강팍해지고 나면 이미 다 설명을 드렸습니다만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만 마음이 강팍해지면 하느님께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강팍해지는 데에는 신령한 정서가 거의 메마릅니다. 오히려 은혜를 많이 받았을 때에는 그런 신령한 정서가 충만해요. 그래서 웃기도 잘하고 울기도 잘하고 물론 이건 하나님에 말씀에 대해서 웃기도 울기도 잘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이렇게 풍부한 정서를 신령한 정서를 소유합니다. 그러니깐 그런 풍부한 정서를 소유하니깐 생각하는 것도 아주 신령한 방향으로 많이 작동합니다. 그래서 움직이는 거죠. 그래서 뭐다 뭐다. 이렇게 깨달으면서 나아가는 거죠. 근데 이제 마음이 강팍해지고 나면은 그런 신령한 마음들이 바짝 마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말씀 속에 담겨진 하나님에 말씀 속에 담겨진 풍부한 하나님에 감정 이런것들을 거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말씀이 담겨진 하나님에 마음이 담겨진 하나님에 말씀에 대란 이해가 현저하게 떨어지게 되요. 그 대신 어떤 것들이 많아지게 되냐면 세속적인 정서에 대해서는 아주 풍부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세상적인 것들에 욕심 그것들을 갖고자 하는 욕망 그것들에 대한 어떤 뭐라고 그럴까 그런 것들을 갖고 싶어하는 안달복달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속에 많아져서 그런 것들을 스스로 통제를 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됩니다. 이렇게 강팍해지고 나면은 하나님에 어떤 마음이나 하나님에 생각 이런 것에 의해서 쉽게 영향을 받지 않아요. 그러면서 그 사람에 삶이 불순종 가운데 아주 딱딱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그것이 바로 이렇게 됐는데 이것이 바로 불순종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 삶에 근원이였어요. 마음에서 삶이 나오니깐. 그럼 이제 오늘 마지막으로 왜 왜 그대 마음이 딱딱해지고 그리고 굳어졌을까 라고 하는 거죠. 근데 오늘 여기 보니깐 이유가 뭐 때문이라고요. 마지막 절에? 믿음이 없기 때문이였다.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였다. 그 여러분 그런 저 있잖아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쩌다 어려운 일을 만났는데 하나님을 의지할 마음이 생겨요. 어린아이처럼 내 생애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밖에 없다. 이렇게 하고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는 마음이 생겨나거든요. 근데 그렇게 어린 아이처럼 온전히 하나님을 의뢰하는 마음이 생겨나는데 그렇게 온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의뢰하는 마음이 생길 때 절대로 마음이 딱딱하지 않아요. 오히려 아주 말랑말랑해요. 어린아이에 속 살같이 말이죠. 그런 경험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흔히 하나님 앞에 마음이 녹는다 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딱딱한 것들이 쭉 녹아내리면서 아주 부드러운 쌔게 만지면 터질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되는 거잖아요. 그때 특징이 뭐냐 하면 하나님 뜻 하나님에 생각 하나님에 마음 이런 것들에 아주 예민하게 움직이는 거죠. 아주 예민하게 움직이는 거죠. 그게 바로 하나님에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그 마음이거든요. 사실 우리들이 객관적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사는 길은 절대로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적인 그 의지와 말하자면 옛 자아에 충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순종하는 삶을 살수 없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데 정도가 있습니까? 수준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순종은 뭐라구요? 무제한에 순종이고 전방위적인 순종이에요. 결국은 총체적인 순종이에요. 그리고 그런 총체적인 순종을 통해서만 우리들이 죄를 죽일 수 있고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런 마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거죠. 근데 그게 맨 정신으로 되냐 이거에요. 맨 정신으로. 그게 그렇게 옛 자아 자신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기 사랑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게 가능하냐 이거죠. 그렇게 쉬운게 아니거든요. 옛 자아에 집착하는 자기 자신으로서는 이런 하나님에 명령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굉장히 힘들다. 그래서 마음이 강팍한 상태에서는 순종할래야 순종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이죠. 그 마음에 강팍이라는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에 심판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거예요. 자기가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고 내세를 묵상하고 내세에 몸부림 치면서 하나님 안에 순종함으로 거할려고 노력하지 아니한 것에 대한 심판적인 성격을 지고 있단 말이죠.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 마음이 강팍해진 것에는 누구도 원망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이런 모든 일들이 사도 편지를 쓰고 있는 이 히브리서에 수신자들 히브리인들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였기 때문에 경고하고 또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편지를 보면서 우리들이 그렇게 우리 자신을 경고하고 또 경고해야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