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30일 새벽예배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히 4:7)
히브리서 제 4장 제 7절입니다. 7절 8절 두절을 우리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 여호수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가나한을 정복하게 하셔서 일단은 그 광야에서 약속하신 그 가나한 땅에 들어가서 육체적으로 안식을 누리는 축복들을 실현 하시죠. 실현 됐다 이거죠. 만약에 그것으로서 안식이 끝나는 것이라고 하면은 그 가나한 땅에 이미 들어가서 살고 있던 시대에 태어난 다윗이 왜 그럼으로 너희는 오늘날 주에 음성을 듣거든 강팍하게 하지 말라 왜 그렇게 이야기 했겠느냐 이거죠. 그 이야기는 이미 벌써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한 땅에 들어가는 가운데 일어난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를 들자면 3장 15절 같은 게 그런 거잖아요. 그죠? 성경에 이미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그게 결국 미수기 14장 요새 우리들이 수요 예배 때 보고 있는 그 장면에서 나오는 이야기잖아요. 그러니깐 결국은 뭘 의미하냐면 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성취하게 된 가나한에서의 안식은 그것 말고 그 앞에 모든 하나님에 백성들에게 있을 안식을 내다 본 거거든요. 그것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여기서 말씀하신 거거든요. 그걸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거거든요. 그렇게 된다면 결국 어떤 이야기가 나오냐면 그 안식이 도대체 뭐냐? 가나한에 들어가서 누렸던 그 안식 말고 또 다른 안식이 있다면 그건 뭐냐? 우선 그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지금 다윗이 민수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다시 반복을 하는데 그 다윗을 가만히 보면은 마치 이미 가나한 땅에 들어왔는데도 또 다른 안식이 남아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한단 말이죠. 근데 그 안식이 뭐냐? 그거는 그리스도에 구속으로 말미암는 쉼이에요. 육체에 쉼이에요.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이거는 싸바티스 노스가 아니라 카파오시스에요. 그래서 구속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영원한 안식이에요. 영혼에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에 안식이란 말이죠. 그 참된 안식을 이스라엘 백성들 가나한에서 완벽히 누렸냐 하면은 그건 아니거든요. 가나한에 들어갔죠.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광야에서 방황 하던 때에 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완벽한 행복을 거기에서 누리겠죠. 그렇지만은 여전히 거기에도 전쟁과 고통 기근 사망 이런것들이 있었어요. 역시 이 지상 생활이라는 한계도 있지만 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분순종 하니깐 거기에 전쟁 실패 흉년 이런 것들이 그 약속에 땅에도 역시 파고 들어왔단 말이죠. 근데 그걸 통해서 보여주는게 뭐냐 하면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한에 들어가서 맛보는 말하자면은 진짜 하늘 나라에 맛 보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그 육적인 안식을 통해서 보다 더 완전한 우리에 영혼에 안식이 필요하다 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죠. 또 그것을 갈망하면서 살도록 그렇게 자극해 주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에 광야에 이 길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라는 거죠. 광야에 길은 우리에 인생에 길은 자체가 어떻게 보면은 가나한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또 동시에 끝나지 않는 길이 또 있다. 그거 뭐냐 하면 육적인 안식을 누렸지만 영원한 육적인 안식을 뛰어 넘는 영혼에 참 된 안식 그래서 영혼과 육에 온전한 쉼은 이제 이렇게 이 세상에서 구원 받은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주님에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그것들을 누리는 거죠. 그런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데 두 가지를 우리들이 생각해야 하는데 하나는 그러한 영원한 세계에서 맛 볼수 있는 그런 참 된 안식을 하나님께서 신자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수시로 맛보게 하신단 말이에요. 그리고 성도는 그 하늘 축복을 미리 맛봄으로써 이 어두우 세상에서 하나님에 뜻대로 아버지에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담력을 얻게 됨 이에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은 더 쉽게 설명을 하자면은 우리들이 여기가 하나님 나라는 아니잖아요. 완전한 가나한은 아니잖아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에 의해서 정복했던 그런 가나한과 같은 곳일 수 있어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 세상이. 그렇지만 우리들이 믿고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가 있고 근심과 고통 괴로움 자기가 부서지지 않은데에서 오는 그런 악함. 그런 것들이 남아 잇거 든요. 그니깐 어떻게 보면은 평화가 없는 날들을 보낼 때가 많단 말이죠. 그렇지만 우리들이 그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구속을 생각하고 하나님에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렇게 아버지 앞에 매달리고 아버지에 은혜를 구하면은 그러면은 반드시 뭐가 오냐 하면 이렇게 죄 많은 세상에 살면서도 하늘나라에서 맛볼 수 있는 그런 평강 은혜 쉼 이런 것들이 온단 말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싶어 하는거 아니에요. 그죠? 그런 거를 맛보면서 그러면서 이제 살아가는 거에요. 그래서 다시 힘을 얻고 이제 죄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에 뜻대로 살아야 할 담대한 결심들을 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 것들이 고려가 되야 되고 또 하나는 뭐냐면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 영원한 나라에 완전한 안식을 얻기 까지는 이 세상이 충분하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쉬면 안된다 이거죠. 그래서 꾸준히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 뜻대로 거룩하게 살려고 애를 써야 한다 이거죠. 아까 말씀드린 하늘에 축복을 미리 맛보면 그런 은혜는 반드시 자기 자신이 주님에 사람으로 거룩하게 변화 되어가는 성화에 과정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거든요. 그런 것들을 통해서 맛보게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자기가 많이 깨트려 지고 변화되는 가운데 그 때에 비로서 하나님에 뜻대로 주님에 말씀대로 살아가는 기쁨과 참 된 은혜들을 우리들이 경험하고 또 깨닫고 발견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이제 이런 이치에서 우리에 삶을 볼 때에 절대로 우리에 마음이 강팍해져서 그래서 주님에 음성이 들릴 때에 우리에 마음이 강팍해져서 주님에 음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주님에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런 불행한 일 이렇게 고통받는 일 그런 것들 우리에게 없어야 되겠다 하는 것이죠. 믿음으로 산다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믿는 믿음 하나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산다 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영향을 받는 다는 의미에요. 주님에 생각 주님에 마음 주님에 의지 주님에 뜻 이 주님이 맡겨 주시는 사명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거기로부터 받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에 뜻대로 하나님 앞에 이렇게 살아가는 그런 하나님에 뜻 하나님에 음성 하나님에 마음 이런 것들을 가슴에 새기면서 이렇게 계속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아직까지도 안식이 남아 있어요. 그리고 그 안식은 미리 앞당겨서 맛 볼수 있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정말 하나님에 뜻대로 순종하면서 살아서 그 하늘 안식을 미리 맛보고 그리고 그 힘을 가지고 궁극적으로 그 안식을 얻을 때까지 신앙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