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새벽예배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히 5 : 14)
녹취자 : 김용재
바로 앞부분에서 젖을 먹는 자 마다 어린 아이니 이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라고 나옵니다. 확실한 사실 하나는 신자를 어떤 계급으로 나누는 건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신앙의 성장에 과정과 정도에 있어서 어린 아이에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어른과 같이 장성한 사람으로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린 아이에서 어른으로 정상적으로 자라가는 것이라면 문제가 다른데 영적 그리스도인과 육적 그리스도인에서 다루는 것이 이제 그런 것인데 정상적으로 자라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기에 오랜 기간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상태가 병적으로 아주 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코 그 사람이 건강한 신앙생활 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런 유아 상태로부터 벗어나서 장성한 분량에 까지 성장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라고 하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의라는 것은 청교도들에 의하면 특별히 존 오웬에 의하면 의를 세 가지로 나눕니다. 첫째는 속성적인 의라고 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하나님 자신의 성품으로서의 의라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가 본받고 그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원래 의라고 하는 것은 당신의 거룩함을 해치는 모든 것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의라는 것이 굉장히 위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 의로운 성품 때문에 자신이 부딪힐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의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의로우시다는 사실이 항상 두려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속성에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율법적 의입니다. 이것은 율법에 적인 사항들을 지킬 때 그것이 하나님 앞에 의로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복음적 의입니다. 이것은 율법을 다 지키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복음적 의라고 해서 이것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사셔서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주는 그 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속성적 의는 율법적 의를 요구하는데 그 율법적 의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신의 거룩을 보존하기 위해서 그 이 세상의 인간들을 심판하시는 것이 속성적 의의 발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누구도 하나님 앞에 살 수 있는 인간이 없으니까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복음적 의를 덧입혀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받아들여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가해져 결국은 그것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성이 되지 않습니까? 그 말씀을 경험함으로써 그 사람이 장성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의의 개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나오는 이야기가 그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니라. 이런 사람들은 단단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경험하고 신앙이 어른처럼 된 사람들은 단단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우리의 몸에 충분히 영양분을 공급해 줄 수 있는 음식들은 유아식이 아니라 어른들이 먹는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충분히 섭취하고 힘을 내게 될 때에 어른들로써 적합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먹고 많이 힘을 써서 활동함으로써 그러면서 점점 몸이 튼튼해지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몫을 감당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고 그래서 그 말씀을 경험함으로써 구원 받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믿음이 자라고 어른이 되는 그런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r
그러면서 여기에서 세 가지를 들고 있는데 그것이 뭐냐면 지각을 사용한 자이고 연단을 받은 자이고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지각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고 나야지만 신령한 세계에 대한 지각이 생겨나고 또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한 지각이 생겨납니다. 의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는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부패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영적인 태만이나 영적인 침체나 이런 것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의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경험함으로써 그가 장성한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그는 영원한 것들과 신령한 세계 그 다음에 영혼의 비밀한 세계에 대해서 눈이 떠지게 되고 거기에 있는 많은 것들을 지각하게 됩니다. 죄는 손에 잡히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데 그것들을 파악하게 되고 알게 됩니다. 그것들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것들을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 속에 있는 죄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데 신령한 안목들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자기 안에서 자잘한 것이라도 역사하는 것을 보게 되고 그것들이 자기 속에서 움직이면서 어떤 세계를 구축해 가는 것들이 눈에 파악이 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지각들이 생겨서 그것들을 사용함으로써 그런 것들을 싸우고 죄를 죽이고 하는 안목들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각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신앙생활이라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연단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연단을 받았다는 것은 뭐냐 하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받는 환란과 고통 시련 이런 것들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아가면서 단련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별로 중요한지 몰랐는데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고 자기에게 주신 영혼의 좋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고통과 어려움 속에 들어가고 하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아 이게 잘못됐구나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더 많이 깨달아서 다시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의 결론에 도달하고 하면서 이미 받았던 확신이나 이미 받았던 확신을 통해서 갖게 되는 더 세부적인 확신들에 대해서 또 확인을 하고 점검을 받고 하는 가운데 그런 것들이 다져지는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계속 다져지는 가운데 단련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확신 같은 것들이 굳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무엇인가 선한 뜻을 가진 것들이 다져지고 다져져서 웬만한 것으로 흔들 수 없는 그런 것들로 변화되는 것, 그것이 바로 장성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앙이 성장한다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선악을 분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선악은 이 세상에서 선과 악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판단력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선악을 분별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본성의 빛으로도 파악 할 수 있는 선악에 대한 분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악이 시작되는 그 맨 초기부터 다시 말하면 선하고 악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데 있어서 영적인 안목을 함께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선악을 분별하는 것들을 본성의 빛으로도 충분히 파악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진짜로 영적인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 보게 되면 사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사실은 잘 판단이 안 된단 말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지식 자체가 너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밤에 열린 신문 나온 걸 보니까 어떤 형제가 글을 쓰셨는데 아 새가족 반이라니 내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 뭘 그런 거정도 모르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 투덜대면서 새가족반 들어갔는데 그 다음 말이 재밌습니다. 아 들어갔는데 자기 생각하곤 좀 다르고 묻느니 모르는 것뿐이요 대답하자니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 것들이 지식이 전무하니까 그게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이 없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지라고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도 매일 같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의 세계 죄의 세계에 대해서 무지한가 하는 것을 저도 뼈저리게 느끼면서 공부를 하니까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해가지고는 우리들이 장성한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더 많이 알도록 한편으론 지적으로 깨달아 알도록 부지런히 하고 또 한편으로는 영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열어주셔서 그것들을 더 깊이 연단되어서 내 지식이 되도록 하고 그렇게 해야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