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20일 새벽예배
“안식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눅 24:1).
부활에 아침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다고 아주 분명하게 약속하셨는데 그랬는데 제자들이 믿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난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이 믿지를 못했습니다. 제자들도 믿지 못했으니깐 제자들 이외에 예수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것을 믿었을 리가 없죠. 그런데 이제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은 비록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라는 것은 믿지 못했지만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향한 깊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감히 예수님에 무덤에 접근을 못했는데 이 여자들은 안식 후 첫 날 이른 새벽에 이 무덤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이 여자들에 마음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에 시체에 향품 이라도 넣어드려야겠다. 그래서 예수님은 돌아가셨지만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이 여인들에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에 무덤을 향해서 올라오고 있는 것 이였죠.
사랑은 이처럼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져도 계속 남아 있습니다. 죽음과 유사해요. 그래서 미움과 유사합니다. 그래서 미움도 아주 깊으면 그 사람이 죽어 버렸는데도 그 미움이 여전히 역사하고 있듯이 역시 죽음도 이 사랑도 상대방이 죽고 없어져도 계속 그 감정은 남아 있는 거거든요. 어떤 의미에서 더 애절하게 타오를 수 있겠죠. 그죠? 다시 볼 수 없으니깐 그래서 우선 배우는 거는 그런 거예요. 비록 부활은 믿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이 여인들에 마음에 사라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이나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이 부활에 첫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시고 이 하찮은 여인들에게 당신에 부활에 영광스러운 첫 모습을 나타내 보여 주셨어요. 지금도 예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에 비밀을 알려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에 비밀을 보여주시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씀에 참 뜻을 깨닫게 하시고 은혜에 세계를 알려주시고 하나님에 영광에 아름다움을 보여 주셔요. 그래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 안에서 더 많은 지식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시는 거죠. 왜냐하면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식을 주셔야지만 더 당신과의 관계가 긴밀해지고 당신을 잘 섬기시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우리도 이제 우리에 속마음이 있잖아요. 그거를 누구한테 보여 줍니까? 신뢰할 수 없고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신뢰하는 신뢰하지 않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사람에게 자기에 속마음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때로는 자신에 약점을 포함해서 속마음을 다 보여주죠. 왜 그렇게 함으로 관계는 더 친밀해지고 그리고 그를 더 많이 의지하고 도움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그렇게 하는 거죠.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속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자신이 약점을 잡히는 것이지 결코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 세상에 살아 계실 때에도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나타내 보여주신다는 사실을 아주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나도 저를 사랑하여 저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랑하면은 친밀함이라면 나타내리라는 계시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만약에 주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신앙에 대해서 더 깊이 알고 싶으면 그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더 힘쓰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더 많은 것들을 하나님에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이죠. 그런 사실을 여기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예수님이 정말 원했던 것은 자기에 부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은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이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하는 분명한 신앙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뒤에 이 여인들은 깊은 시름과 고통 속에 슬플 속에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시면서 마지막에 남기신 말이 다 이루었다. 였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 십자가에서 다 성취하시고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는 순간에 모든 것을 성취했고 그리고 이제 잠시 기다리면 찬란한 부활에 영광이 도래할 것이라는 그 사실을 예수님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명백하게 제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만약에 이 여인들이 예수님에 그 약속을 믿었더라면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며 예수님께서 운명하셨을 때에 이 여인들은 깊은 기대감을 가지고 그리고 저렇게 우리에 죄를 우리를 모두 끌어안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그 예수 그리스도에 그 놀라운 십자가에 죽음이 나에게 놀라운 사건이 되고 그리고 잠시 후 그 죽음을 깨고 영광스럽게 부활 하실 것이다 하는 이 놀라운 확신이 그에게 있었을 겁니다. 만약에 있었다면 그들은 결코 예수 죽으신 후에 그 날을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 속에 지내기 보다는 오히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영광스러운 기대감 속에서 지내고 그리고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말 할 수 없는 기쁨 가운데 맞이할 수 있었을 겁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 신앙이 없는 십자가 신앙은 외짝에 신앙입니다. 부활 신앙이 없는 십자가 신앙은 반쪽짜리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고난에 신앙을 인해서 슬퍼할 뿐 그에 다시 살으심을 인해서 기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십자가에 진리를 반쯤만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그리스도에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도 함께 예수님과 형벌 받은걸 보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보면서 예수님이 자기를 에워싸고 있던 그 모든 파괴적 세력들 죽음과 율법에 정제와 율법에 저주 사망에 모든 속박들을 한 번에 셔버리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보게 되는데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에 품에 안겨서 그리스도가 대신 죽어준 사람들은 또한 그리스도가 부활할 때에 그리스도 품에 안겨서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그 덕을 힘입어서 함께 부활에 영광을 누리는 겁니다. 그분 안에 있던 죽음과 율법에 정제와 저주에 파괴적 능력들이 그에 부활과 함께 우리에 부활로 말미암아 깨트려지고 그래서 우리들이 말할 수 없는 자유함으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 어떤 사망이나 기품이나 높음이나 어떤 피조물이라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궁극적으로 우리들이 우리에 썩을 몸이 다시 부활하고 영원히 쇠하지 않는 찬란한 몸으로 우리 주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한 삶을 누릴 그 날을 소망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부활에 능력으로 우리들이 죽음과 방불한 영혼에 어두움에서 새 빛을 발견하고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세력들이 아무리 강해도 그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신 그 위대한 능력에 힘입어서 우리들이 그 모든 것들을 깨고 이길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에 아침에 이렇게 영원토록 부활하신 예수와 동행하면서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