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28일 새벽예배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히 7:11-13).
제사장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요. 이 제사장에 직분은 레위지파에 소속된 것 이였습니다. 근데 레위지파에 소속된 것 이였는데 그 레위지파에 소속되어서 그 제사장에 직분이 죽 전해 내려오게 되죠. 근데 예수님은 레위지파가 아니거든요. 예수님을 지파로 따진다는 것 자체가 조금 우습지만 은 그렇다 이거죠. 그렇게 본다면 은 결국 뭐를 이야기 하냐면 은 제사가 죄인이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방법을 하나남이 보여주신 건데 그 방법이 영원하고 완전한 방법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결국 그 그것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완전한 방법 이였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계속 제사를 드리고 그렇게 모든 하나님에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것으로는 불가능하고 그것이 완전한 제사장에 직분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랬기 때문에 또 다른 제사장이 필요했다. 그 한 예로 이제 멜키세덱을 드는 거예요. 멜키세덱이 레위에 지파가 아니지만은 하나님 앞에 아브라함의 십 분에 일을 받고 그리고 복을 빌어 주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했다면 은 그러면은 굳이 레위지파에 메일 필요가 있겠느냐? 그래서 레위지파를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죄인들을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는데 사용하셨지만 멜키세덱을 통해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언제든지 이 유한한 레위지파의 제사장을 파하고 또 다른 멜키세덱과 같이 밑도 끝도 없는 그런 분을 세우셔서 그래서 새로운 반차를 만드시고 그래서 거기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죄인으로 하여금 당신 앞에 나올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여실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렇다면 레위지파에게 제사장 노릇을 하라고 지정한 그 법이 바로 다른 것이 아닌 율법을 통해서 그것이 지정되었거든요. 율법을 통해서 그것이 지정되었으니깐 그렇다면 은 그 율법을 통해 지정된 것이 변화될 수 있지 않느냐? 즉 무슨 뜻이냐면 레위지파 너희가 제사를 드려서 내 백성으로 내 앞으로 나오게 하라 이렇게 만약에 되었다고 할 거 같으면 그러면은 반드시 새로운 제사장이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에 백성을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한다면 그 율법은 끝나야 되지 않느냐 이거죠. 여전히 그 율법이 계속 역사하고 계속 유효하다면 그러면 레위 지파에서 계속 나와서 제사를 드려야지 그 율법에 지정되지 않은 다른 어떤 사람이 나와 가지고 제사를 드려서 그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그것도 방식도 완전히 달라요. 레위지파에 의해서 율법에 따라 제사를 드릴 때에는 일시적으로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는데 그게 새로운 제사장은 나와서 자기 자신을 제사에 방법이고 뭐고 다 다르죠. 임시적인 제사가 아니라 영원히 제사 드려주신다. 뿐만 아니라 율법에서는 제물에 이름이 쭉 거론됐는데 그 다음에 새로운 제사장이 나타나서 내 자신이 제물이다. 그것도 매일 드리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드렸기 때문에 이제는 믿기만 하면은 그 영원한 제사가 너희에게 적용된다.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제사에 방식을 제시하니깐 그러면 새로운 율법이 필요한 거 아니냐? 새로운 법이 필요한 거 아니냐? 그래서 율법을 옛 언약이라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속죄에 제사는 새 언약 속에 계시된 거다. 이 얘기에요. 그래서 이 법이 인간이 처음 창조 되었을 때에는 하나님에 법을 하나님에 사람 마음에 새겨놓으셔요. 하나님에 사람 마음에 법을 주죠.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우리와는 비교 안 될 정도로 하나님 앞에 쉽게 순종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어렵게 불순종 했죠. 근데 그 어려운 방법을 택한 거죠. 그래서 이 속에 죄에 법이 없어요. 죄를 지을 가능성은 있지만 죄에 법이 없고 하나님에 법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기쁨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복종하면 사는 거예요. 타락했어요. 그 다음에 그 법을 어디다 새기세요? 돌비에다 새기는 거예요. 사람에 몸 바깥에다 새기는 거예요. 근데 이미 벌써 사람에 몸 바깥에다 하나님에 법을 세웠는데 이 사람 속에는 이 하나님에 법이 모두 사라지고 죄의 법이 지배하는 거예요. 그러니깐 바깥에 새겨진 하나님에 법을 그대로 행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게 율법이에요. 그거가지고 도저히 안 되니깐 그 다음에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에 법을 다시 우리 안에다 새기신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 거듭난 사람에게 새기신 거예요. 이게 로마서 8장에서 생명과 성령에 법이라고 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7장으로 넘어가면 은 근데 차이점이 있어. 무슨 차이점이 있냐면 생명과 성령에 법이 여기 있는데 이게 하나님에 법이거든요. 근데 가슴 안팎에도 거듭난 인간들은 아담하고는 달리 그 우세한 하나님의 법과 함께 열세한 죄의 법이 공존해요. 그게 이제 가슴 아픈 거죠. 죄의 법이 공존해. 그러나 선을 행하고자 하는 하나님에 법이 우세하고 다음에 악을 행하고자 하는 죄의 법이 아주 열세하죠. 그래서 은혜를 많이 받고 신앙에 원리를 따라 살고 죄 죽임을 잘 하면 하나님에 법이 강력해 지고 생명과 성령에 법이 강력해지고 죄에 법은 거의 힘을 못 써요. 근데 그렇게 은혜 생활 안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살지 않으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죄의 법이 융성해 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를 어떻게 하냐하면 심지어는 일시적으로 생명과 성령에 법을 중지시켜 버려요. 그래서 어떻하냐면 우리를 말이죠 노예처럼 사로잡는 죄에 법 아래로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거다 그러잖아요. 확 사로잡아 가지고 힘을 못 쓰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으로 그렇게 다루어야 해요.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동물을 각각 붙잡는 방법이 각각 다르죠. 예를 들자면은 좀 기분 나쁜 얘기지만 뱀 같으면 어떻 할까요? 두 군데를 잡아야 합니다. 머리 바로 아래 부분하고 맨 꼬랑지 부분을 잡아야 해요. 왜냐하면 독사같은 것은 꼬리에 독침이 있어요. 그래서 그 꼬리로 탁 치면은 독이 이래서 꼬리만 잡으면 머리가 휙 돌면서 물어 그러니깐 머리 아래하고 이거 두 개 잡는 거예요. 토끼는 어떻하죠? 귀를 딱 잡아요. 귀 절대 안 풀어지거든요. 귀 잡고. 닭은 어떻게 잡죠? 날개 두 개를 딱 잡고 그러죠. 그 다음에 또 뭐가 있을까? 소는 고삐를 딱 잡아야 되죠 그렇죠. 그렇게 동물마다 이렇게 붙드는 방법이 있듯이 죄도 그걸 다루고 붙드는 방법이 있어요. 만약에 닭을 닭을 만약에 어디를 닭을 만약에 꼬리 하나를 붙든다고 생각해봐요 진짜 아마 복잡한 일이 생길 거예요. 그러다 똥이라도 누면 어떻게. 한번 생각해봐요. 그럼 뱀을 꼬리만 허리만 붙들던지 꼬리만 붙든다고 생각을 해봐요. 그럼 아마 불행한 일이 생길 거예요. 그렇듯이 죄도 마찬가지예요. 다루는 법이 있어 딱 붙들고 그러면은 정말 우리들이 훌륭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러한 모든 죄 때문에 우리 스스로 도저히 하나님 앞에 나아 갈 수 없는 그런 사람들 레위 지파에 후손들이 제사를 드려주어서 일시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만들어 주지만 그러나 그거 가지고는 도저히 하나님 앞에 영원한 제사를 드릴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그래서 사람이 드리는 임시적인 제사가 아니라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기 위해서 그래서 하는 거예요. 유대인들에 입장에서 보면 은 예수님이 제사장이라는 건 참 이해가 안 갔을 꺼에요 그죠? 제물도 없고 더 중요한 문제는 뭐냐 하면 레위 지파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에요. 그거를 바울이라고 믿어지는 이 처자가 이제 논증하는 거예요. 멜키세덱은 레위지파냐? 멜키세덱은 아브라함 시대 사람이니깐 레위지파를 이야기 하려면 모세 시대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그러면 멜키세덱은 레위지파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그러면은 믿음에 조상이라고 일컫는 아브라함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복을 빌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만들었느냐? 그 레위지파에 제사장 직분에 메이는 것 자체가 임시방편적인 거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레위지파에서 태어나시지 나실 필요가 없었던 것을 지금 넌지시 설명하는 거예요. 그 뒤편에 보면은 계속 나옵니다. 설명하는 거예요. 만약에 예수님이 레위지파에서 태어나셔서 레위지파에 후손으로 구약에 제사장 중에 한분이 되셔서 그렇게 해서 일을 해 나아갔다고 하면은 그 분은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예시 할 수 있는 한 수단은 될 수 있을지언정 자기 자신이 본체는 될 수 없다. 왜 예수님은 다른 법을 도입하려고 오신 분이기 때문에 율법 아래 태어나서 율법대로 판단을 받으시고 우리에 죄를 속량하시긴 했지만 율법 아래 묶여 있을 수 있는 분은 아니다. 그러면서 이제 유다에게 주신 그 예언을 따라서 그래서 나타나셔서 그래서 이제 예수님이 이 레위지파가 드렸던 제사에 의해서 제시된 그 실체로써 오셔서 그래서 영원히 완전한 제사를 드려주시기로 그렇게 약속 하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