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새벽예배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히7:28)
녹취자: 한성일
정확한 말씀입니다. 율법이 제사장을 세워서 그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잠시 용서받게 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과 다시 교통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율법에 의한 제사의 방법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 한계가 무엇이냐 하면 여기서는 약점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흠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흠, 죄없는 사람이 영원히 단번에 제사를 드려서 죄없는 제물의 희생을 통해서 영원한 속죄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이 먼저 자기를 위해서, 자기도 죄가 있으니까 자기를 위해 제사를 드리고 그리고 헌제자를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 죄의 용서를 잠시 받게 했는데 제사를 드리러 오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도 약점이 있는 사람이었고 또 드리는 제물도 짐승에 불과했으니까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그런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잠시 죄없다 하시고 부족한 제물도 넉넉하다 하시고 잠시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셔서 마음을 푸시고 잠시라도 인간과 더불어 교통하실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라고 하는 그 자체가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은혜가 역사하고 있는 율법에 의한 제사 제도지만 여전히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숙제는 무엇이냐 하면, 죄있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은 그 하늘 자원을 힙입고 살아가지 못하는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과 화목한 길이 열리고 거기로부터 쏟아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전적으로 필요합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제사 제도를 통해서 잠시 하나님과의 화해의 길을 여시고 거기서 사죄의 은총,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은혜의 감격들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시 닫히게 됩니다. 이게 바로 약점입니다.
그래서 그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 이것은 새언약인데, 이미 벌써 율법이 주어지고 나서 예수님이 오시기전서부터 새언약이 주어질 것을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새마음을 주셔서 새언약을 지키게 하시고 그 새언약을 따라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전에는 제사장이 죄있는 제사장이었지만 이번에는 죄없는 제사장, 전에는 약점이 있는 제물로 제사를 드려주었으나 이제는 흠없고 완전한 자신의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전에는 속죄의 효과가 잠시 미쳤으나 이번에는 속죄의 효과가 영원하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드리는 이 헌제자는 구약시대에나 지금이나 모두 죄인들입니다. 그 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시게 함으로써 이제는 닫혔다 열렸다 하는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려서 거기로부터 언제든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 하늘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는 그런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본다면 너무 너무 그리워하던, 그런 그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방법이 신약시대 때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자가 낳은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자가 없는데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도 세례요한보다는 크다, 이것이 바로 새언약하에서 맛보게되는 하나님 나라의 축복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예화) 그러니까 우리는 늘 그런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마치 공기를 호흡하는 사람이 공기의 축복성에 대해서 모르듯이 우리가 모르는 것입니다. 요새 제가 공기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배시간에 이사람 저사람을 불러서 이야기를 해봐도 다 주먹구구식으로 그러니까 엉터리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 것인가 굉장히 많이 배우게 됩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공기 중에 산소의 농도가 21%인데, 몇% 정도만 내려가면 인간이 살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받는 그런 상황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너무 높아도 안됩니다. 그래서 설악산의 산소농도가 21.3%입니다. 그정도가 사람들에게 시원하게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호흡을 하면서 이것을 자꾸 빨아먹습니다. 그러니까, 공기가 탁해지고 나면, 밖에 나가서 시원한 공기를 쐬면 공기가 이렇게 고마운거구나 알게 되듯이 이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나아갈 수 있고 이렇게 된 것이 이게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도 만약에 제사를 드린다고 생각해보십시오. 1년에 몇번 날 잡아야지만 제사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리고 다시 막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언제나 기도하고 그리고 자기의 죄지은 것을 마음 아파하며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위해서 대속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붙들고 하나님 앞에 용서와 자비,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십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야할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로 멀리 떠나서 그 사랑과 은혜를 등지고 살아야할 이유가 있느냐 말입니다. 그래서 예전보다 배나 더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며 그 은혜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그 일이 있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제물이 되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서 당신은 하나님 앞에 분노와 저주를 한몸에 받으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거기로부터 하늘자원을 공급받으면서 그 은혜를 누릴 때마다 항상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아뢰고 그리고 나에게 이러한 영혼의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멸시와 욕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구나하는 그 고백이 우리 속에 항상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다 살고 하나님 앞에 옳다 인정함을 받고 그리고 우리가 용납된 후에도 우리들이 자랑할 것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 십자가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