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2일 새벽예배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히 7:14-17).
율법대로 하자면 사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제사장이 되실 자격이 없는 거죠. 왜냐하면 율법에서는 그 제사장에 출신을 레위에 후손들로 레위 지파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것을 가리켜서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육체와 상관된 것이다. 라고 말하는 육체와 상관된 것. 육체와 상관된 것으로 하자면 예수님이 레위지파에서 태어나셔서 레위지파에 후손들 중 하나로서 제사장이 되셔야 마땅했다 그거죠.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생명에 능력을 쫒아서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셨다 이렇게 말하죠. 어 만약에 만약에 예수님이 레위지파에 자손 중에 한 사람으로써 구약에 나오는 많은 제사장 중에 한 사람 이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제사장이 직분을 감당할 수 있었다면 그 레위에 후손들이 드리는 제사장으로써의 제사 그 효과 이상을 벗어 날 수 없었을 것이에요. 그러면 결국은 우리 인간들에 의해서 제사를 드려주지만 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영원하고도 새롭고 산 길을 열어주시는 대신에 일시적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실 뿐이라는 거죠.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하나님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 대신 제사를 드리게 하심으로써 영원히 단번에 우리를 위한 구속을 이루어 주실 그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우리를 위한 구원에 계획은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될 수 없었을 것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에 뜻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서 일시적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길을 열어주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영원히 단번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시기 위한 것 이였기 때문이죠. 그러니깐 육체에 속한 제사장으로서는 그런 일들이 불가능 했고 영원히 하나님께 속한 예수님과 같은 그런 제사장이여야지만 가능했거든요. 그러니깐 그런 모든 면에 있어서 완전히 차이가 나는 제사장이시니깐 오히려 레위지파에 속하지 아니하는 것이 영원한 제사장인 예수님에 특성과 그리고 예수님에 사람됨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그러한 부분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예수님께서 육체로 쫓아 아니 나시고 오히려 멜키세덱과 같이 레위지파하고는 상관이 없이 선택된 제사장이 되었다 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율법에 이야기가 나오면서 율법은 온전치 못함으로 패하고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셨다. 이거거든요. 왜 율법 이야기가 나오야 하면은 그렇게 레위지파에 사람들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어서 우리의 제사를 드려 줌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일시적으로나마 열어 준다 라고 하는 이 사상이 율법에 규정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율법에 요구를 이루기 위해서 오셨지만 율법이 가져다 주는 효과만 가져다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그 율법에 요구대로 오셔서 자기를 제물로 드리심으로 복음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신 거거든요. 그러니깐 예수님이 율법 아래 태어나시기는 하셨지만 그러나 율법 아래 태어나시기는 하셨지만 반드시 그 율법 이상이여야 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제사장 되심도 율법에 의하여 구속 될 수는 없었다는 거죠. 이 레위에 지파가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라는 규정 그 자체가 바로 율법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율법 그 전체로서 충분하지 않다 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죠. 그래서 그 율법은 이제 다가올 하나님에 더 놀라운 법에 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에요. 설명 드리자면 이런거에요. 맨 처음에 하나님은 사람을 이세상에 지으시고 자기에 법을 자기에 법을 사람에 마음에 두셨어요. 그래서 법이라고 하는 것은 인제 이렇게 실효적인 거거든요. 그러면 무슨 뜻이냐면 이런거 아니에요. 좌측으로 통행하는 것이 법이 였는... 우측으로 우측으로 통행하나? 맞죠? 사람. 사람들이 자동차가 모두 우측으로 가잖아요. 그죠? 이렇게. 근데 구라파에서는 좌측으로 가는 차선으로 바뀌었어요. 호주나 영국같은데 가보면 은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깐 처음에 운전하면은 정신이 하나도 없죠. 너무 불편하니깐. 이쪽에서 이쪽으로 가니깐요. 근데 차를 다니는데 법이 바뀌었어요. 이쪽 차선이 아니라 갈 때에는 이쪽 차선으로 가고 올 때에는 이쪽 차선으로 온다 법이 바뀌었습니다. 법이 바뀌면은 처음에는 혼란이 옵니다. 그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즉시 이쪽으로 통행하고 반대쪽으로 통행 합니다. 그죠? 이렇게 움직이게 되죠. 법은 그렇게 법을 정해 놓으면 사람들이 마음에 아주 커다란 부담을 갖고 그 법대로 해야 되겠다 라고 하는 강제력을 마음에 느낍니다. 이게 법에 효과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해 놓으시고는 그 마음에 법을 새겨 놓으셨어요. 근데 그 법이 뭐냐 면은 하나님에 법이에요. 하나님에 법은 무슨 뜻이냐 하면 마음에 강한 강제력을 느끼는데 하나님에 뜻대로 살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살아야 되겠다 라고 하는 그런 저항하기 힘든 강한 법을 하나님께서 이 사람 마음속에서 새기시는 거죠. 그런데도 범죄를 합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이 그 다음에는 그 법을 사람 마음에 새길 수가 없으셨죠. 사람 마음에 하나님에 법이 있었는데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법보다는 죄에 법이 더 강력하게 우세하게 되어졌기 때문이죠. 그러니깐 하나님이 그러니깐 그 법을 사람 마음 속에 새길 수가 없어서 사람 마음 밖에다가 새깁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요구에요. 그것이 뭐죠? 율법이에요 율법. 그러니깐 율법은 사람 몸 밖에 새겨진 하나님에 법이에요. 근데 지킬 수가 있나 이 속에 이미 벌써 죄에 강력한 법이 역사하고 있는데 밖에 새겨진 하나님에 법도대로 살수가 없는 거에요. 그러니깐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율법 목적 자체가 밖에 있는 하나님에 법을 들여다 보면서 자기 안에 있는 죄에 법을 보라 이거에요. 그래서 도저히 자신은 하나님에 요구를 다 이행할 수 없다 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자비를 호소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예수님이 밖에 새겨진 율법에 요구대로 살지 못한 인간에 많은 죄와 허물을 짊어지시고 대신 형벌을 당하고 죽으신 거예요. 그걸 통해서 우릴 구원하시고 우리 안에다가 다시 율법을 새기시는 거에요. 거듭난 사람 속에 있는 생명과 성령의 법이에요. 그걸 가슴에 새겨가지고. 그래서 이제는 마음속에 있는 생명과 성령에 법을 따라서 살게 하신 거예요. 그래서 은혜가 떨어지고 그러면은 우리 안에 근데 우리 안에 하나님에 새겨진 하나님에 법은 죄가 없을 때에 아담과 하와에게 새겨진 법하고 조금 달라요. 어떻게 달랐냐 하면 그때는 죄의 법은 없고 성령, 생명에 법 하나님에 법만이 있었는데 물론 탁락할 가능성은 있지만 근데 우리에게는 하나님에 법과 죄에 법이 공존해요. 그래서 우리들이 은혜 생활을 잘 하면은 생명과 성령에 법이 강력하게 역사해서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신실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해요. 근데 그렇게 은혜 생활을 잘 못하면 은 죄에 법이 역사해서 우리를 죄 아래로 잡아 오는 거예요. 그래서 때로는 일시적으로 생명과 성령에 법을 중지시켜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경건하게 살고 죄를 죽이고 하나님에 은혜 아래서 살려고 애를 쓰고 은혜에 순간에 부지런히 기도하고 그래야 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도 보면 이제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에 성령에 법을 숨겨 놓으시는 거죠. 그 일을 바로 율법이 할 수 없었는데 그 일을 바로 예수님이 오셔서 바로 그 일을 하시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구원 받기 전 뿐만이 아니라 구원 받은 후에도 예수 그리스도 은혜 아래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좋은 것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왔고 그래서 그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우리가 행해야할 일들인 것이죠.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