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 새벽예배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히 7:20)
녹취자: 이한슬
레위의 자손들은 제사장 되는 것을 소명을 받았다든지 하나님앞에 맹세를 한다든지 그런 개념이 아니고 그냥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아버지가 제사장이니까 그 가문에서 계속해서 제사장으로써 세워지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특별히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가끔은 전혀 사명감이 없는 이런 사람들이 제사장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치 그 나라의 왕이 왕의 자식이 왕이 되듯이 그렇게 대대로 왕이 될 때 그 중에는 정말 백성을 사랑하고 그 나라의 통치자가 될 만한 덕목을 갖춘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나와서 나라를 고통스럽게 하듯이 제사장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자면 엘리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의 이야기라든지 성경에 일일이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수가 아주 많았으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아주 분명히 맹세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자신이 나는 대제사장이 됨에 있어서 나는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 라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 그러니까 삼위의 하나님이 하나님 이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 아버지는 홀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성자와 성령과 더불어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을 때 맹세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이 율법에서 육체를 따라 난 혈통적인 제사장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주 확실한 제사장직에 대한 헌신과 그리고 제사장으로서의 분명한 사명감이 예수님께 있으셨다 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서 또한 제사장이 되던 레위지파의 무리와 영원한 제사장의 반차를 쫓아서 오신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서 오신 이 예수님의 제사장 되심과는 아주 현저한 차이가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사실들이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잘 드러났습니다. 예수님 시대 때에 제사장과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서 영원히 우리의 제사장이 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한번 비교를 해보십시오. 그때 그 제사장들은 그렇게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고 속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무지하고 백성들을 사랑하기 보다는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를 사랑하고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눈이 어두워져서 자신들이 드리는 이 제사의 완전한 성취이신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는데 앞장서는 무리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헌신적으로 사셨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생애 전체가 하나님께 복종하는 생애였고 자기 유익을 구하는 생애가 아니라 하나님께 이 백성들을 위해서 당신을 제물로 바치신 그런 생애였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예수님의 온갖 관심은 어떻게 하면 이 인간들을 회개케 하여 당신을 통해서 구원받아 하나님께 나아가게 함으로써 이 인간을 정말 인간되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하나님께 만족을 드릴 수 있을까 그것이 예수님의 관심사였습니다. 제사장들처럼 자신의 지위를 보존하고 하나님을 섬기라고 준 자신의 본분을 마치 이 세상에서 출세의 수단으로 삼고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아주 뚜렷하게 대조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렇게 제사장들의 중요한 직무는 백성들에게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 앞에 대신 고하고 제사를 드림으로 그 백성들을 하나님과 화해시켜 주는 것이었고 그리고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는 것 이것이 제사장의 고유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그들을 위해 제사를 드려주는 그런 것이 고유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많은 제사장들이 있었지만은 예수님이 오셔서 당신을 따르는 많은 무리를 보고 느끼신 소감은 목자인 양같이 유리하며 고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가슴아파 하셨고 그래서 그 제사장들이 이루지 못했던 그 일을 당신이 대신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시고 먹이시고 그리고 그들을 고치시고 가르치시고 마지막에는 그들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어 십자가에 못박는 그런 삶을 예수님이 사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모든 것을 보면서 결국은 얼마나 인간이 이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유익을 얻지 못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새로운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약속에는 보증이 필요한데 보증이 없으면 그 약속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될 거라고 하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자면 ‘내가 너에게 돈 좀 줄게’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저 인간이 진짜 줄까? 여지껏 거짓말 많이 했는데’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보증인을 써서 훨씬 더 권위 있는 보증인이 도장을 찍어서 ‘얘가 안주면 내가 대신 책임을 지마’ 이러면 틀림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약속하고 세우신 그 새 언약의 보증인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보증인 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할 수 없게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새 약속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고 그 새 언약안에서 우리에게 새 영을 주셔서 우리의 마음에 새 법을 새겨서 이제는 하나님과 영원히 화목한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게 해 주실 거라고 하는 이런 영적인 축복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축복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에 예수님이 보증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이 복된 은혜가 있기 위해서 예수님이 그렇게 고난을 당하고 죽으신 그 처절한 고난과 이런 것들이 반드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은혜를 힘입어서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제 일시적인 화목이 아니라 영원한 화목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들을 누리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우리 인간의 뜻대로 살면서 불순종하고 죄를 짓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그러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삶을 살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자기를 제물로 드리는 죽음의 희생을 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 하나님과의 화해를 지키기 위해서 힘쓰고 그 화목 안에서 행복을 누리면서 사는 그런 신자들이 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