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 9일 새벽예배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찌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히 8:8-9).
그러면서 여기서는 이제 계속 새 언약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죠. 새 언약 옛 언약 근데 그 옛 언약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그 신에 산에 주신 그 언약을 말하는 겁니다. 십계명을 포함해서. 근데 그 언약을 이스라에 백성들에게 주시는데 그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말로 언약이라 이렇게 번역 됬지만은 좀 정확하게 말하면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약속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깐 언약이라는 말은 일방적으로 약속하는게 언약이잖아요. 근데 원래 의미상으로는 서로가 약속을 하는 거에요. 하나님도 당사자가 되고 사람도 당사자가 되어서 서로 언약을 하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맺어진 언약이 바로 옛 언약이에요. 근데 그 언약이 있고 새 언약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와 맺어진 언약이거든요. 근데 이 언약은 포괄적 성향이 있어요.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이게 대등한 당사자일 경우에는 하자 말자 이렇게 다툼이 있을 수 있는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그렇게 대등하게 전세계약 맺듯이 그렇게 맺을 수 있는 사이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과 하나님이 약속을 맺으시지만 하나님이 그들 모두를 끌어 안고 포괄적인 언약을 맺으시는 거에요. 예를 들자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면 태어나는 즉시 대한민국 국민이 됩니다. 출생신고를 하든지 말든지 그것과 상관이 없이 그러니깐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아이를 누가 건드리거나 죽이거나 그 아이를 괴롭히거나 하면은 법에 의해 처벌을 받고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그게 결국 뭐냐면은 태어나자마자 그 아이가 나라와 약속을 맺게 되는 그 약속 속으로 들어오는 거에요. 그렇죠? 그렇게 되는 거에요. 그니깐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자기 백성과 약속을 그렇게 맺으시는 거죠. 그런데 이제 새 언약과 옛 언약은 어떤 차이가 있냐면은 하나님이 나는 이런이런 거를 원한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이렇게 이렇게 살아 주기를 바란다. 그런거를 하나님이 옛 언약은 사람들 몸 밖에 돌 판에 새기셨어요. 쉽게 먼져 새기셔서 그거를 보고 인간들이 이제 율법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에 뜻이였는데 새 언약은 그 사람의 마음에 두시는 것 그래서 이 언약을 약속을 언약을 지키면서 살아가게 하는 힘이 옛 언약은 돌 판에 있어서 그것을 보고 ‘아 이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나’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명령을 안지키고 살 때 이런 벌을 주시는 구나. 이런거를 깨달으면서 살게 하셧거든요. 그런데 그 약속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지켰으면 좋았을 텐데 지키지를 못했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유다 백성들에게 말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에 12지파 가운데 유다지파가 맏은 아니였지만은 신앙적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역사에 있어서 영적이 대표적 지파가 되는 거죠. 그래서 그 지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시는 거에요. 독신적으로 그래서 제유법적인 표현이에요. 유다 집합 하나를 들어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표현하는 방법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유다 지파라고 표현하는 표현은 똑같은 말에 반복이다 그렇게 보시면은 되요. 근데 그 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그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순종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들이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깐 율법은 하나님을 뜻을 보여주고 죄가 무었인지 알려줄 수 있을 뿐이지 사실은 그 율법 자체에 사람들을 그 율법대로 살고 순종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라는 거죠. 그러면 하나님이 지킬 수 도 없는 율법을 왜 주셨을까? 이건 두 가지로 요약이 되요. 그들이 그 율법을 모두 지켜서 구원에 이를수는 없었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은 정도로 율법을 못지킨 것은 아니에요. 무슨 뜻인지 알죠? 우리 모두 다 지금 말하자면 온전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모두다 똑같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때도 마찬가지에요. 율법을 지키는데 율법을 완전히 지켜서 구원에 이를수는 없고 율법을 주실때에 하나님이 그런걸 지키면서 살아갈수 있는 능력을 공급해주려는 목적으로 율법을 준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그 율법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을 때 그것을 보고 누가 얼마나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가 그걸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도 알고 본인도 알게 하신 거죠. 그래서 여전히 구약에서 율법을 통해서 비록 그들이 구원 받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고 순종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축복받고 또 사랑을 받았고 그리고 그대로 살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는데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로 보면 그 율법을 배반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것으로 그렇게 평가가 되는 것이 구약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파기되고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 율법을 못 지켜서 그래서 율법을 파괴한 자로 나타나서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다시 이 언약 말고 새 언약을 준다. 그래서 두 번째 율법을 주신 이유가 뭐냐 하면 보다 더 이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이제는 내 자신의 힘으로 이 율법을 지켜서 완전함에 이르러 하나님께 구원 받을 수 없으니깐 이제는 외부부터 얻는 하나님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하다 이거를 깨닫게 하시므로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소망하게 하시기 위함이였다. 그렇게 해서 이제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을 것들을 사모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하나님이 이번에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 약속을 마음 안에 두시는 거에요. 이 마음 안에 약속을 두신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성경이 필요 없다 그 뜻이 아니라 마음안에 법을 두시는 하나님에 법을 두시는데 그 법이 뭐냐면은 성령님이 오셔서 거듭난 우리에게 함께 하시는 은혜의 법이에요. 그래서 새 언약을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의 법이 주어져서 그래서 그 법은 실제로 율법과는 달리 실제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고 바라시는 바를 따라서 살 수 있게 하는 바를 그런 힘을 우리에게 공급해 주는 그러한 법을 은혜의 법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죠. 물론 죄의 법이 그 안에 함께 있죠. 그러나 우선적인 우세한 법이 은혜의 법이기 때문에 그래서 성원에 삶을 살면서 은혜의 법을 강화하고 죄를 죽이는 삶을 살면 훌륭하게 우리들이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면서 살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새 언약과 옛 언약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옛 언약의 시대가 아니라 이런 새 언약의 시대에 태어나서 그 언약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것이 말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이고 은혜라고 우리는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도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으로 불러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깊게 순종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간고하고 기도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저희와 함께 해 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그래서 오늘도 우리 안에 있으신 은혜의 법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해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