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 25일 새벽예배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 할 수 없노라”(히9:5).
이 속죄소라고 하는 것은 곧 시은소라고도 하는데 근데 이제 이 속죄소는 어떻게 어떤 공간적인 그런 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법궤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하게 나오죠. 그래서 이 법궤를 이제 나무로 짜고 그리고 그것을 이제 금으로 둘러싸서 그 속에다가 이제 그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십계명의 돌비와 그리고 만나 항아리가 들어 있고 뚜껑을 덮고 그 뚜껑처럼 만들었는데 금으로 되어 있고 그리고 그 금으로 된 뚜껑 그 위에 다시 붙어 있는 그런 천사가 마주보는 모양의 형상이 있어요. 거기를 가리켜서 이제 시은소라 혹은 속죄소라 이렇게 불러요. 그래서 이제 왜 그럼 거기를 그렇게 시은소, 속죄소라 장소처럼 부르느냐. 그 거기에 이제 그룹 천사모양인데 그 그룹은 하나님의 영광을 옹위하면서 하나님을 보좌하는 그런 종류의 천사거든요. 그래서 그룹이라는 말이 히브리말로 케룹인데 카라브 가까이 다가 가다 라는 동사에서 온거에요. 영어로는 체루비라고 그러고 그리고 복수가 되면 체루빈이 되죠. 캐루빈 혹은 영어로는 체루빈이 되는데 그렇게 해서 그 그룹이 거기에 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눈으로 보이는 형상은 아니시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지성소속에 지성소에 임하실 때에 이러한 천사가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모신다 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형상을 만들었던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강림하셔서 죄를 용서하시기도 하고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도 하신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거기를 속죄소라고 불렀던 거예요.
어쨌든 성막 뜰에서 성막 성소, 성소에서 지성소, 지성소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이 속죄소라고 하는 것이죠.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을 만나고 뒤편에 가면 이야기가 나옵니다마는 거기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고 오직 대제사장만 일년에 속죄일에 딱 한 번만 들어 갈 수 있는 거. 거기에서 하나님을 대면하는 거다 이런 얘기예요 . 거기서 하나님을 대면하는데 그러면 밖에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하고 주님을 만나는 거 이런 것과 어떤 차이가 있냐 하는 거죠. 여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거 임재의 영광에 있어서도 달라요. 하나님이 오셔서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시는 그 임재의 영광의 정도에 있어서도 다르다 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제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신앙을 이렇게 세등급으로 이렇게 나누어 보기도 해요. 그래서 처음에는 성막 뜰만 밟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었다가 그 다음에는 신앙이 좀 깊어져서 성서 속으로 들어가고, 그 다음에 더 신앙이 깊어져서 지성소 속으로 들어가는 신앙을 이야기하기도 해요. 지성소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됐다 라고 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그 임재의 영광을 마주 해야 하는 그런 큰 일 들이 남아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지성소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이거는 물론 대제사장이 이제 자기도 죄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제사 드리기 전에 자기도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그리고 성소 지성소로 들어가게 돼요. 대제사장도 자기 자신도 죄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허물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빌고 용서 받아야 할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지성소에서는 대개 이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향한 그 전체의 대표자로서 이 대제사장이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향한 죄 사함과 하나님의 은혜 이런 것들이 주어 진다하는 점에서 이제 공동체적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아주 훌륭하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제사장이 아니라 대제사장으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래서 자기 자신을 재물로 드리시고 우리를 위한 화목제사가 하나님께 바쳐지게 되는데, 그것을 통해서 주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가 무엇이죠. 한사람 예수님 한사람을 위한 제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바쳐 제사를 드리심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용서의 은혜를 베푸시는 거죠.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서 믿음으로 그 공로를 자신에게 적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는 역사가 나타났던 거예요.
그런 점에서 볼 때에 이 구약시대에 이 지성소에서 대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 백성들을 위해서 빌고 또 제사하고 또 거기서 하나님께 자기의 백성들을 위해서 빌었을 때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동체적으로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셨던 그 모형이 그대로 실현됐다고 볼 수 있는 거예요. 이게 바로 지성소, 특별히 이 속죄소의 아주 놀라운 특성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 이예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구약의 아주 복잡해 보이는 제사제도를 통해서 아주 명백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계셨고 그리고 그 제사제도를 통해서 그 제사제도의 의미를 깊이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갈망하지 않을 수 없도록 메시아를 갈망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신 거예요. 그래서 이 그 속죄소 하나님이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고 은혜 베푸는 그 속죄소 바로 아래에는 그 법궤가 있는데 그 법궤 속에 세 가지가 있다고 그랬잖아요. 십계명의 돌비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만나가 있는데, 이게 결국은 당신이 그 시은소에서 혹은 속죄소에서 사람들을 공동체적으로 용서해주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또 죄를 사해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 그 속에 세 가지를 넣어두신 거예요. 그래서 만나는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십계명의 돌비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율법,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지가 이런 거다 라고 하는 것을, 이렇게 살아라. 하나님의 의지는 이런 거다 라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 위에서 이제 용서와 그 다음에 은혜 베푸심이 이루어졌던 거죠. 오늘도 마찬가집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의 은에서 용서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전능하신,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삶에 대해서 의지를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깊이 터득하게 되는 거죠. 그때에 비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를 깨닫게 되고, 또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얼마나 우리들이 올바로 살아야 되는가 하는 것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