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15일 새벽예배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6-7).
인용되고 있는 것이 시편이지만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렇게 그 만들어서 이제 인용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제 그 구약에서 드렸던 그 제사, 여기는 이제 번제함과 속죄제라 그러는데, 하나님 앞에 번제는 이제 그 어 번제는 제사 드리는 방식에 의한 분류이고, 그리고 이제 속죄제는 제사를 드리는 목적에 의한 분류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래서 번제는 태워서 드리는 제사로써 헌신, 헌신 이런 것들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속죄제는 목적 자체가 어 그 죄를 속함을 받는 데에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그 번제와 속죄제, 이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구약의 제사가 쓸데 없다 라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어 하나님께서 이 번제와 속죄제 같은 제사를 통해서 충분히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 아니었다. 그런 말씀 입니다. 그렇게 충분히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 받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도록 충분히 길을 열어놓은 것이 아니었다. 임시적이고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가 라고 하는 이야기죠. 어 그렇게 하면서 임시적이면서 일시적 일 수밖에 없었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그러면서 이제 그 구약의 제사가 그런 정도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신 것이다. 그런 이야기죠. 그래서 제사의 방법을 주셔서 그래서 그 제사를 통해서 그 백성들을 일시적으로 용서하시고 일시적인 속죄의 효과를 주시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만나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만나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최종적인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속죄의 방법이었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속죄의 효과가 일시적일 수 없다. 이 얘기죠. 그래서 그것이 속죄의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보다 더 완전한 것이 필요했다 이거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그 제사를 위해서 내가 온 것이 아니라 두루마리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제가 왔습니다.” 그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셨다. 그 얘기죠. 자 그러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내가 두루마리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왔나이다 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 겠느냐. 이거죠. 이건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하므로 사셔서 마지막에 자기 자신을 우리 인간을 위한 영원한 속죄의 제물로 바치실 것을 포함하는 거죠. 그래서 인간의 불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죄 용서의 방법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 사람은 필요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불순종함으로 심판을 받게 될 그 인간들을 대신해서 그 불순종을 대신해서 순종을 드리죠. 그리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시는 것도 그런 순종의 전체적인 과정 가운데 일부였다. 라고 하는 것 이예요. 그렇게 함으로써 이제 인간의 불순종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감당하시고 당신 자신을 순종으로 드리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불순종이 없었고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는 전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복종하고 순종하신 생애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하신 그런 생애가 된 거죠.
근데 이차적으로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드리시고 그 효과로 인해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므로 써 이젠 도저히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살려고 해도 그렇게 온전히 순종하며 살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살아 갈 수 있는 새로운 은혜의 언약 속으로 사람들을 부르시는 거죠. 그래서 순종하면서 살아가게끔 만드는 거죠. 그래서 그것이 그리스도와 연합과 관련해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통해서 이루신 하나님 앞에 자기를 드린 복종의 삶이, 그로 인해 구원받은 우리들을 통해서 계속 연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삶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거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자신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살려고 하고 그리스도와 같은 온전한 삶을 살려고 하고 순종하려고 하는, 그런 삶을 계속 살아가려고 하는 가운데 온전한 순종의 삶을 하나님 앞에 바치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그 일이 하나님 앞에 단순히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제사를 드리시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기에 자신을 바친 삶을 사시게 되는 거죠. 그렇게 됨으로써 하나님 앞에 더 큰 영광과 존귀를 돌려드릴 수 있게끔 된 것 이예요. 이렇게 된 것이 바로 성경이 이야기 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와 번제, 속죄제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 온전한 삶을 더 기뻐하셨듯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의 형식과 예배와 이 모든 것들이 귀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방편에 참여한다는 사실 때문에 받는 영광보다는 오히려 거기에서 받은 은혜를 토대로 자신의 전 삶의 영역에서 순종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복종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그 순종하는 삶을 통해 받으시는 영광이 훨씬 더 크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속죄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그 속죄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제 우리가 다시는 우리 자신의 뜻대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 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