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17일 새벽예배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히 10:8).
만약에 제사를 하나님께서 정말 원치 않으셨다면 왜 그런 제사제도를 구약에 만들어 놓으시고 또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심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제사제도를 이행하게 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나오는 거죠. 그렇죠? 그래서 여기서 이제 하는 의미는 뭐냐면 하나님께서 제사제도를 원치 아니하셨다 라기 보다는 구약의 그 제사제도와 신약의 그 구약의 옛 언약에서 주어진 제사제도와 새 언약에서 주어진 은혜를 비교하는 것 이예요. 구속과 은혜를, 그래서 두개를 대조함으로써 새 언약의 우월성,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은혜가 구약의 율법에 비해 탁월하다고 하는 것을 논증하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번제를 기뻐하지 않는다. 제사를 기뻐하지 않는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구약에서 제사를 드릴 때 그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있어야 하느냐 하면은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제사 드리는 제사자의 마음이 제사의 정신과 일치해야 돼요. 제사자의 삶과 마음이 제사의 정신과 일치해야 돼요. 그러면 제사자가 제사 드리는 그 제사행위의 일치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은 결국 뭐냐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구약에 보면은 그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그 율법대로 행하면서 사는 삶이 없는 제사는 그건 하나님 앞에서 짐승들을 죽이는 것에 불과하다 이거죠. 선지자들이 강력하게 탄핵하는 거예요. 그런 방식의 제사는 이방인들이 드리는 거죠. 이방의 제사는 무슨 도덕적인 삶이나 고차원적인 그런 성결한 삶, 그런 건 필요 없어요. 그냥 어떻게 살았던지 간에 신에게 나와서 짐승을 죽이고, 헌물을 드리고 그래서 신들을 달래기만 하면 되는 거죠. 그러나 구약의 하나님을 믿는 종교에서는 그런 식의 제사는 통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식의 제사는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아요. 하나님을 오히려 진노하게 하는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이예요. 그것을 오늘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 있는 것 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뭐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두루마리에 기록된 것을 행하러 왔나이다. 두루마리는 성경을 그 당시에 양피지에 같은데서 말아서 사용을 했으니까 성경을 가리키는 거죠. 거기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그것을 제사라는 행위보다 훨씬 기뻐 하신다 라고 하는 거죠. 문제는 뭐냐면 인간에게 그렇게 행할 능력이 없는 거죠. 그죠? 그래서 구약에서 율법은 인간에게 그것을 행하라고 요구하면서 율법이 주어졌는데 그 율법대로 인간이 못하는 거예요. 율법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표준은 제시가 되었고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징벌이 무엇인지는 보여 주었는데 실제로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는 힘과 능력은 없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능력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런 힘과 능력이 없으니까. 그 다음은 어떻게 되냐면은 불순종 하게 되는 거예요 자꾸.
그런데 새 언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거죠. 그래서 거듭난 사람들에게 생명과 성령의 법을 마음에 심으시는 거예요. 생명과 성령의 법을 마음에 심어놓으시면 그 법이 역사하여서 움직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순종하며 살 수 있도록 놀라운 힘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이 구원받고 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으 면은 하나님을 믿는 자녀로써 살아가는 이 일이 그렇게 기쁘고 감사 할 수 없어요. 그리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그 일이 무거운 십자가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나. 아! 정말 행복하다, 기쁘다, 감사하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힘이 없고 부족할 때에는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순종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거예요. 그 은혜와 힘은 말 할 수 없이 놀랍고 행복한 거죠. 그러죠?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거죠. 그것이 바로 이제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것 이예요.
그래서 8절 밑에 9절에 보면 이렇게 나오죠.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니 첫 것을 패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래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방법이 있는데, 두 가지로 다스립니다. 하나는 율법으로 하나는 은혜로 다스려요. 근데 둘 다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도 없고, 둘 중에 어느 하나에 의해서도 다스림을 받지 않는 사람도 없어요. 믿지 않는 사람들은 율법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고, 믿는 사람들은 은혜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아요. 율법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는 다는 이야기는 이해를 할 수 있겠죠? 하나님의 요구를 보여주고, 그 요구대로 살지 못하면 하나님이 어떠한 심판을 주실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근데 은혜로 다스린다 라는 이야긴 뭐냐 하면 구원 받은 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성령의 법을 통해 통치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은혜를 죄 가운데 있으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자꾸 식어,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안 살려고 해, 불순종해, 그러면 이제 곤고해요. 근데 은혜를 하나님께서 부어주시고 그 은혜가 죄 죽임을 실천하고 진실한 삶을 살면 은혜가 풍성해져, 그래서 그 풍성 해지 면은 그 풍성한 은혜 속에서 그 하나님 앞에 새롭게 살 수 있는 힘과 은혜와 능력을 얻게 돼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되죠. 그래서 그런 은혜와 능력을 얻게 되면은 아주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잖아요. 그러면은 하나님이 그 주신 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주시는 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그럴 수 있게끔 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한 사람은 준엄한 심판이 있는 율법을 통해 다스리시고, 한 종류의 사람들은 계속 그 속에 은혜를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첫 번째 거는 앞에 거는 첫 번째 약속 옛 언약이 하는 일이고, 뒤에 거는 새 언약이 하는 일이예요. 그래서 아직까지 주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옛 언약아래 있는 사람 들이예요. 행위언약 아래 있는 사람들, 지금도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그런 은혜를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문제는 뭐냐면 우리가 순종하지 않기 때문 이예요. 순종하면 하나님이 그런 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순종하지 않으면 안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매 순간 하나님의 뜻대로 주님 기뻐하며 살아가게끔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오늘도 그렇게 순종하면서 사는 여러분들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