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18일 새벽예배
“그 후에 말씀하기시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9-10).
그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원래 제사 제도가 필요하게 된 원인 자체도 인간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범죄 했기 때문에 필요하게 된 거 아니 예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범죄 한 된 인간들로 말미암아 그 일어나게 된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이 단절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불순종을 속하시게 하기 위해서는 순종해야 했고 우리가 지은 죄 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당신 자신이 희생재물로 바쳐져야 됐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그래서 순종하신 거죠. 그래서 그 예수님이 오셔서 순종하고 자기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치심에 있어서 율법아래 태어나신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율법을 범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되었으니까 그 율법을 범하고 지은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율법이 죄 지은 자를 향해서 요구하는 그 요구를 예수님이 감당하셔야 됐다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율법을 따라서 죄를 지은 그 대가를 인간들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감당하셔야 됐다 하는 거죠.
그러면 이제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죠. 아니 그러면 율법을 따라서 인간은 죽지 않느냐. 그런데 사실을 그것만 가지고는 안돼요 왜 안 되냐 하면 그래서 제가 늘 말씀드릴 때 인간이 죄를 지을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그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죠. 만약에 그 죄가 사람에 대한 범죄 였다 든지 사람에 대한 책임이었다면 그러면 어느 정도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은 그 죄를 죄라고 판단하시는 분리 하나님이세요. 그러니까 인간에게 베푸신 이 그 은혜가 무한한거죠.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하나님의 형상을 주셔서 그 피조물위에 뛰어난 인간의 자리를 허락하시고, 그리고 모든 것들을 그에게 맡기시고, 또 하나님의 그 피조물에 대한 모든 사랑 가운데 탁월한 사랑을 인간이 받고, 그렇게 하면서 존재하던 그 인간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해라, 그러고 하나님이 명령하셨다 이거죠. 그걸 인간이 범했어요. 그러니까 받은바 은혜와 받은바 하나님의 은혜가 무한하고 또 그 받은바 은혜가 무한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분이 영원하고 무한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영원하고 무한하신 분을 향한 범죄는 그 죄의 성질 자체가 무한하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지만 적합하다 이거죠 그렇지 않겠어요? 절대로 잔인한 것이 아니라 이거죠. 근데 율법 아래에서 태어나서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영원할 수가 없고 그리고 인간이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기는 하지만은 그러나 그것이 완전한 심판일 수는 없는 거죠. 그 정도 가지고 인간이 하나님 앞에 지은 죄지를 속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지옥의 영원한 형벌의 교리가 나오는 거예요. 그걸 또 성경이 지지하고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가장 이상적으로 그 인간을 하나님께서 형벌하시는 거죠. 그거죠. 그렇게 해서 인간을 가장 위치에 맞게 하나님의 정의에 합당하게 형벌을 하게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그 형벌은 어 영원한 형벌은 아니지만 그러나 완전한 형벌이었다 이거죠. 우리 인간은 불안전하고 또 그 형벌 자체가 무한하지만은 그러나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드리신 이 형벌은 완전한 형벌이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없으신 몸으로서 우리를 위해서 당신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셨으니까 그래서 완전한 형벌이었고 하나님의 그 율법을 범해서 인간들이 지은 모든 죄를 구속하기에 충분했다 이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제 오늘 이 히브리서에 보면은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하심이라. 그래서 제사 제도를 폐하신 것은 결국 둘째 것을 세우시기 위함이었다. 이거죠. 이것도 어느 날 갑자기 이 제사제도를 하나님께서 딱 폐하신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자연히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어버린 거죠. 왜 그랬냐 하면은 A .D.70년 인데 그러니까 주후 70년에 자꾸 이제 로마제국 시대죠. 자꾸 반란을 일으키고 소동을 하니까 독립하겠다고, 그러니까 로마에서 쳐들어갑니다. 그래서 그 여러 달 동안 항쟁을 하지만은 그러나 결국은 로마를 당할 리가 없겠죠. 그래서 결국은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에서 굶어 죽고 그리고 뭐 정말 피가 도랑을 이루는 그런 살육의 사태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어 결국은 이제 그 백성들이 제사도 드릴 수 없게 되는 그런 처지가 됩니다. 그런데 이제 그 일이 있기 전에 이미 벌써 이제 그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이렇게 되는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이미 국제적으로 흩어져요. 이미 벌써 그때에 벌써 일어난 일이예요. 그게 벌써 586년 이후에 벌써 일어나 주전에 그래서 벌써 이렇게 다 흩어져요. 그러니까 옛날처럼 무슨 절기가 됐다고 그래서 예루살렘에 쭈루루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고 그럴 수 있는 처지가 안 되는 거죠. 그러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유대인들이 흩어지는 곳곳마다, 제사는 아무 대나 드릴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요. 율법에 의하 면은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한 곳에서 드리게 되어 있는 거죠. 그걸 맘대로 정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무슨 절기가 됐다고 해서 쭉 올라가서 금방 제사 드리고 올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안 되니까. 그러니까 가는 곳 마다 회당을 만들게 되요. 회당을 만들게 되어서 관심 자체가 제사에서 책으로 옮겨오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자라나는 후손들을 그 책을 율법 책을 가르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이런 방향으로 바뀌게 되는 거예요. 근데 어느 정도로 회당이 많았냐 하면은 하여튼 유대인 가는 곳에는 항상 회당이 따라 다녀서 열 집 정도가 이주를 하면은 제일 먼저 회당을 지었다 그래요. 그리고 거기에 이제 가르치는 랍비가 있고 그리고 거기서 이제 이 자기 자라나는 아이들이 예배를 드리고 어른들도 거기서 예배하고 성경을 배우게 되죠. 지금도 미국 같은데 가면은 유대인 회당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 가지고 십자가는 물론 없고 그냥 뭐 이렇게 교회당 비슷하게 지었는데 좀 작죠. 그렇게 지어 놓고 안에다 이스라엘 다윗의 깃발을 걸어났습니다. 그리고 들어가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무슨 공회당 비슷하게 지어났어요. 들어가서 모이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이미 벌써 주전 500년경 이후에 벌써 일어나기 시작한 거죠. 그러면서 이제는 광범위하게 이제는 제사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책의 종교로 변모하게 되는데, 그 회당을 이용해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로마 입장에서 보면은 그런 일들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유대교 교리의 갈등들이 유대교 안에서 일어나는 자기네 들 끼리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유대교의 한 종류 일 것이다 이렇게 안이하게 이해하면서 그 덕분에 기독교는 회당의 껍질을 통해서 급속하게 전파 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사도들이 후에 복음 전파하는 아주 훌륭한 곳으로 사용한 곳도 바로 그곳 이예요. 왜냐하면 이제 제사가 아니라 이제 성경을 펴놓고 설교를 하는데, 구약을 펴놓고 설교를 하면서 거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의 주인공으로 묘사하면서 거기서 복음이 어떻게 성취됐는지를 구약을 설교 하는 것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사의 제도가 끝나고 넘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것을 패하시고 둘째 것을 세우시게 하기 위함이다. 이거죠.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직까지 이것을 몰라 그래서 둘째 것은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그를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은혜 언약을 세우시는 거예요. 첫 번째 것을 폐하고 옛 언약을 폐하고, 두 번째 것은 새 언약을 세우는데 새 언약이 수립되기 위해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려 우리의 죄를 용서 받게 하시는 일이 있어야 했다 이거죠.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각별하신 그런 은혜가 반드시 필요했다 이거죠. 그렇게 해서 이제 새 언약이 세워지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입었다.
거룩함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우선 이 거룩함도 이미 이루어진 거룩함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거룩함을 이야기 할 수 있어요.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에 우리를 안 믿는 이 세상에서 구별해 내신 다는 점에서 볼 때에는 이미 벌써 거룩해진 거죠. 그렇죠? 벌써 거룩하게 구별 되어진 거죠. 그러니까 벌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입적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어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과 하나님의 백성들로 나누어 진거예요. 그들이 섞여 산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구별된 것 자체가 거룩 이예요. 그래서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만 거룩한 백성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지를 못 해고 일단 구원 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이미 이루어진 거룩 이야. 근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렇게 거룩하게 그런 구별되어서 거룩하게 된 것 만으로 만족하지 아니하시고 그렇게 구별된 백성이라는 이름의 합당한 존재와 삶으로 거룩해 지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죠. 그래서 그것은 이제 끊임없이 성화의 삶을 살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죠. 예전에는 그렇게 거룩해져 갈 수 있는 그 내적인 힘과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어떻게 받을 수가 없었어요. 속에 자기가 없어. 왜냐하면 율법이 그걸 주지 못하니까, 그래서 그랬는데 이제 새 언약을 통해서는 하나님이 그렇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능력과 힘을 주시는 거예요. 그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거룩해지고 이미 거룩하게 입은 자로써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또 거룩한 존재가 되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힘을 공급해 주셔요.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변해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