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새벽예배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 3:17-19)
녹취자 : 최정미
사람이 병에 나아서 뛰어다니고 하니까 그곳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도들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자기들의 경건이나 능력으로 사람들을 살려낸 것으로 믿지 말아라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지금 이 사람을 낫게 한 것이다 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전파하는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 기적과 같은 일들과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많은 은혜는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한 것들임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이 주어졌을때 우리가 예수님을 자랑하고 복음의 본질을 생각나게 해주는 그러한 사람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거기에 충실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유대인인 너희들이 몰라서 그랬을 것이고, 관원들도 몰라서 예수님이 죽음선고에 해당된다 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관원들은 세상의 사람들로 예수님을 정죄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또 혹은 이제 종교재판을 했던 유대인들의 종교적공의의 관원들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두 번 재판을 받으시는데 유대인들의 종교에 의해서 사형에 해당하는 것을 받고 그러나 실권이 없기 때문에 로마빌라도의 법정에서 다시 사형언도를 받고 이렇게 되었습니다. 연루된 모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복음을 전파하면서 이들을 정죄만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몰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너희들이 죽인 나사렛 예수가 사실은 메시야 였고 그런 메시야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아나시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왜 죽으셨는가 하는 문제가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고 하면 예수님이 옳았다하는 것인데 너희들이 예수님을 죽였지만은 하나님은 너희가 한 행동이 옳았다면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으니까 너희가 한 일이 틀린 것이고 예수님이 옳은 분이다 라는 이런 선언을 했습니다. 그 예수님이 옳으신 분이였다면 중대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왜 죽으셨을까? 그래서 깨닫게 되는 것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예수님이 대표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우리가 어떻게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의 효과를 우리에게 적용시켜서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구원의 덕을 보게 되는 것인지를 여기서는 회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회개가 아닌 회개와 믿음을 동시에 말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무엇에 대한 회개입니까? 그 회개는 자기의 죄에 대한 회개입니다. 바로 자신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니 사실은 그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까 사실은 그 죄 때문에 자신이 예수를 죽인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죄에 대해서 회개하는 그것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진실한 참회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형식적인 신자들이 많고 이름뿐인 신자들이 많은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모르는 채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생활 자체를 하나의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교회에 대한 흥미 기독교에 대한 흥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기독교신앙에 대한 본질에 접근하기는 매우 힘듭니다. 보십시오. 2,3장에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 회개와 죄 사함을 받으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을 것이다 라고 똑같이 말합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진실한 자각과 깨우침 거기에서 나오는 심오한 탄식과 슬픔 이런 것은 없고 모든 것이 행복하고 즐겁고 좋은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모든 종교생활이 결국 자신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회개와 정직한 참회 그것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게 되는 놀라운 기쁨과 죄 사함을 얻고 그리스도와의 교통을 통한 것이 신앙생활의 정수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죄를 진실하게 회개하라는 외침은 지금이나 현재 공통된 외침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진실한 회개 없이 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믿는 집안에서 태어난 어린아이 혹은 어린아이상태에서 죽은 사람들 같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진실한 참회가 없는 사람들은 구원받았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모든 회개가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러 진실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인 것과 예수님이 자신의 죄로 인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에 대한 심오한 참회, 진실한 뉘우침 이런 것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다음에 주어지는 이야기는 “죄 없이 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에 이를 것이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거기서 한없이 주님으로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유쾌하게 되는 날이 이를 것이요” 하는 것은 모든 짐을 벗어버리는 데서 오는 평안함과 행복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이 가져다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성령님을 보내주십니다. 그 성령님을 통해서 놀랍게 은헤를 받고 새롭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평강과 모든 기쁨은 이세상의 모든 곤고하고 힘든 고통을 이기게 만들어 주는 하늘 자원의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고난을 많이 겪어도 그 속에서 주님의 위로가 넘치면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됩니다. 시련과 핍박이 많아도 주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가 많으면 능히 시련과 핍박을 이기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그런 성령의 은혜를 주십니까? 참회하는 사람들 죄를 뉘우치는 사람들에게 이런 성령의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사도가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결과가 무엇인지 이제 명백하지 않습니까? 앉은뱅이를 일으켜 기적을 일으키고 사람들이 그 기적을 일으킨 자신들을 바라보면서 칭찬하고 칭송하는 그런 상황만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이 사건은 계기가 될뿐 사람들의 마음속에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하여 그들로 회개하게 하고 죄 사함을 얻게 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으로 인하여 행복한 사람들 그리스도 예수의 속죄의 덕을 누리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도 살아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