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아들 바나바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행 4:36~37)
녹취자 : 양일구
I. 본문해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소유를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자기의 소유를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삶을 산 초대 교회의 생활상을 한마디로 요약해 주는 부분입니다.
A. 위로의 사도 바나바
오늘 본문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바나바라는 사람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5장 이 후부터 바나바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후에 바나바가 사도 바울의 회심을 증명해주는 증인이 되기 때문이며, 바나바가 사도 바울과 함께 복음 사역을 훌륭하게 성취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9장에서 회심하고 예루살렘 교회에 등장하게 될 때, 바울의 악명이 예루살렘 교회에 많이 알려져서 사람들이 쉽게 바울의 회심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변호해주었던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바나바라는 사람을 이 지점쯤에서 거론합니다. 이 후에 예루살렘 교회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던 인물을 먼저 거론을 하고 그래서 역사서술 전체가 어떻게 이 사람이 사도 바울의 회심을 입증하고 후에 바울의 동반자가 되어서 선교에 헌신하게 되었는가를 이야기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바나바는 원래 레위족사람이었습니다. 제사장의 지파입니다. 원래는 요셉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요셉이라는 이름은 감추어지고 바나바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그 이름은 사도들이 붙여준 이름이었습니다. 바나바라고 하는 것은 “바”는 아들이라는 뜻의 아람어입니다. “나바”는 권위자, 권면하고 위로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권함의 아들, 위로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바디메오, 바예수 이런 경우는 뒤에 나오는 것도 사람이름입니다. 그래서 바디메오 그러면 디메오의 아들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사람이 부실했으면 부모들이 이름도 안지어준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버지 이름을 뒤에 붙여서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 천한 이름입니다. 여기서 바나바라고 하는 것은 뒤에 나바가 사람이름이라기 보다는 명사로 위로의 아들 그런 뜻입니다.
별명같이 요셉이라는 사람에게 붙여준 것입니다. 이 사람은 요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회심을 했습니다. 회심을 하고 교회에 들어왔고, 여러 가지로 봉사하는 가운데 이 사람이 보여준 어떤 인격적인 특징 때문에 사도들이 요셉이라는 이름 대신 바나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이 후에 요셉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바나바라는 이름이 본명처럼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면 생각하기를, 얼마나 그의 인격과 섬김이 사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면 요셉이라는 옛 이름을 지워버리고 바나바라는 새 이름을 지어줄 정도로 사도들에게 큰 인격적인 감동을 끼쳤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감동이 어떤 것이었는가 하면, 사람들을 위로하고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바나바는 아주 온화한 성격을 가진 겸손하고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사람을 세워주고 자기는 그 뒤에 숨기를 좋아하는 그런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등장할 때만 해도 바나바는 이미 예루살렘 교회의 저명인사가 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누구도 쉽게 그 회심을 믿어주지 않는 초심자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흐르면서 하나님이 사도 바울을 사용하시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바나바는 스스로 사도 바울을 위해서 돕는 훌륭한 비서로 자청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처음에는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나오다가 후에 바뀌어서 바울과 바나바라고 나올 정도로 성품적으로 사람을 섬기기를 좋아하는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회심하고 상당기간 동안 사람들을 권면하고 위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섬기는 사역 속에 온전한 성품이 들어났습니다. 그런 것들이 잘 들어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특징이 되어서 바나바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 그리워집니다. 오늘 같을 때에도 교회는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람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그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그릇된 길에 처했을 때 학자의 혀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그들의 정신을 일깨우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영혼들 하나하나를 사랑으로 돌보고 그들을 격려해서 올바른 길을 보이되, 억지로 하거나 강압하거나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아니하고 인격적으로 그들에게 감화를 주어서 따뜻한 위로와 격려 속에서 그들을 세우는 권위자, 이런 사람이 교회에 너무나 필요합니다.
교회생활을 해보면 어떤 때는 목회자가 불러서 혼을 냅니다. 그래서 못된 행실을 끊고 확 잡아땡겨서 옳바로 생활하라고 할 때도 있고, 혹은 불러서 야단치지 않고 함께 눈물을 흘려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목회자의 위로보다는 함께 섬기는 평신도로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할 때, 그 위로와 권면이 큰 힘이 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잘 하던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그래서 연약한 자들을 잘 붙들어주고 믿음 안에서 위로하고 격려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이름이 바나바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 훌륭한 권위의 기술로 어떻게 섬겼을까, 성경이 침묵해도 우리는 눈에 보듯이 훤히 알 수 있습니다. 이 바나바는 설교하기에 적합한 사람이었다기보다는 실족하고 흔들리고 연약한 자들을 잘 붙들어 주는 탁월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럼 점에서 오늘 날 바나바의 사역을 뒤이을 수 있는 훌륭한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오늘 날과 같이 형식적인 신앙이 유행을 하고, 교회가 점점 커지면서 사람들 사이의 친밀하고 따뜻한 관계들이 힘들어지는 이런 때에는 바나바와 같은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실 구역을 돌보고 영혼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바나바의 사역이 몸에 배인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며 그 사람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 일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교회를 따뜻하게 사랑하고 위로하고 돌보고 그런 사람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큰 사랑을 깨달으면 이렇게 사람들을 세우는 일에 헌신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훌륭한 일이 바로 영혼들을 섬기고 세우는 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